욥기 13:1-19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우스 땅에 살던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고, 모든 면에서 부유한 삶을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 욥에게 인생 전체가 흔들린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다복했던 자녀들과 그 많던 재산이 한순간 사라졌고 악성 종기가 온 몸에 나면서 욥의 목숨까지 위협했습니다. 욥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큰 고난에 처한 욥의 소식은 친구들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의 눈에 비친 욥은 처참할 정도로 변해 있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게 된 모든 순간을 저주하는 욥의 절규와 탄식을 들은 친구들이 욥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입을 뗀 데만 사람 엘리바스를 시작으로 빌닷에 이어 소발이 하는 말을 들은 욥이 12장에 이어 계속 자신의 주장을 이어갑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와 전하는 친구들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말이 아니라 독선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과 직접 변론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1절~2절입니다.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사람마다 살아가며 보고 듣고 깨달아가는 영역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살아오면서 욥이 보고 듣고 깨달은 지식은 친구들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아는 것 정도는 이미 자신도 모두 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깊은 지식을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향한 친구들의 일방적인 매도가 얼마나 경솔한 것인지 비난하고 있습니다.
현재 욥은 친구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자랑할 상황이 아닙니다. 욥의 이야기는 욥의 깊은 통찰에서 나온,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지혜와 오묘한 섭리에 대해 인식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욥은 친구들과의 헛된 논쟁을 멈추고 오직 하나님과 논의하기 원한다는 간절함을 전하며 친구들에게 거짓 변론을 그치고 자신을 말을 들으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4절~6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너희는 무식을 거짓말로 때우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모두가 돌팔이 의사나 다름없다. 입이라도 좀 다물고 있으면, 너희의 무식이 탄로 나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내 항변도 좀 들어 보아라. 내가 내 사정을 호소하는 동안 귀를 좀 기울여 주어라.
돌팔이 의사는 고통받는 환자의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전혀 상관없는 처방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무책임한 진단과 치료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며 심한 경우 환자가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욥은 비유를 통해 친구들이 현재 내뱉고 있는 말들이 자신의 고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판단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죄일 뿐이니 그만 멈추라고 지적합니다.
6절~11절입니다.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욥은 스스로를 변론하며 친구들에게 그들의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자신이 현재 당하는 고난과 관련하여 자신의 무고함을 경청해 달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도리어 불의를 말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앞장에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신의 체험을 말하며 욥을 정죄했습니다(4:7~21). 빌닷과 소발도 하나님의 공의를 언급하면서 욥의 고난을 인과응보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로 규정하며 욥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진리에 가까워 보이지만 욥이 처한 상황과는 무관하기에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욥의 비판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욥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은 분명 범죄의 결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지속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자 친구들은 욥에게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라며 그를 정죄하는 말을 거듭 내어 뱉었습니다. 그러자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자신을 죄인으로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지를 지적합니다. 또한 친구들의 불의와 거짓은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밝히 드러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너희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12절입니다.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새번역성경은 12절을 너희의 격언은 한낱 쓸모 없는 잡담일 뿐이고, 너희의 논쟁은 흙벽에 써 놓은 답변에 불과하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지만 적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유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옳은 이야기라 해도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교훈일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13절~19절에서 욥은 하나님과 직접 변론을 희망하며 자신의 무죄를 다시 주장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불의를 말하는 친구들을 강력하게 경고하던 비판을 멈추고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3절의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는 표현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냄으로 발생하게 될지 모르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해도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15절을 새번역성경으로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셔도, 나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겠다.
욥은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할지라도 하나님께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욥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말도, 자신을 죄인으로 단정짓는 친구들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극한 고난 가운데 처했지만 욥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이 이러한 믿음과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평소 욥의 삶이 하나님과 친밀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때로 삶에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도 신앙적인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을 떠나 방황의 길로 들어설 때도 있습니다. 오늘 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 삶에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우리를 지켜줄 것 같은 사람이나 우리를 지켜낼 것 같은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유한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든든한 재물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실 때에만 우리의 영혼은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 얻은 백성답게 오늘도 우리 각 사람에게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 안에서 우리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은총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의 삶의 자리가 고난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답을 찾는 은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고난 중에 처한 욥은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3절). 교우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어떤 상황에서 고백하고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2. 하나님께서 내 삶을 보시고 변론하기 원하신다면 어느 영역일까요? 묵상해 보십시오.
3. 하나님께서 내 삶을 보시고 책망하기 원하신다면 어느 영역일까요? 묵상해 보십시오.
4. 오늘 나는 누구를(무엇을) 의지하는 하루를 살아야할까요? 묵상해 보십시오.
(작성: 이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