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칙 취암수미(翠巖眉毛) 취암스님의 눈썹
“어째 스님의 눈썹을 보려 하나? 그러다 큰 코 다친다!”
그대의 눈썹은 어떤가?
취암스님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면
눈썹이 문제가 아니라 목이 달아날지도…
헛된 망상에 빠지지 말 것!
안목 갖춘 자도 정신 바짝 차려야 속지 않는다.
➲ 본칙 원문
擧 翠巖夏末示衆云 一夏以來 爲兄弟說話 看翠巖眉毛在麽
保福云作賊人心虛 長慶云生也 雲門云關
➲ 강설
여기 등장하는 취암(翠巖)스님은 설봉(雪峰)선사의 법제자이다.
설봉선사의 인정을 받고는
명주(明州)의 취암산(翠巖山)에서 후학을 지도하였기에 취암선사라고 했다.
이 얘기 배경은 취암산에서 대중을 이끌 때이며,
해제를 하면서 법문을 한 앞부분에 해당될 것이다.
취암, 보복, 장경, 운문스님은 사형제이다.
이미 각자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세 스님이 뒷날 취암스님의 법문을 전해 듣고 평을 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취암스님이 여름안거 마지막 날에 대중들에게 법문하셨다.
“여름 안거를 시작한 이후로 그대들을 위해 법문을 했다.
보라! 이 취암의 눈썹이 아직 붙어 있는가?”
미모재마(眉毛在麽) ‘눈썹이 붙어 있는가?’의 뜻.
선가(禪家)에서는 절대적인 이치와 동떨어진 세간적인 얘기를 많이 하면
눈썹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음.
그러므로 이 말의 본뜻은 ‘허튼소리나 한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있음.
➲ 강설
취암선사께서는 안거기간에 대중들에게 참 많은 법문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석 달의 안거를 마치고 흩어지기 직전에 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미끼로 썼다.
“내가 이런 저런 법문을 참 많이 했다.
그런데 깨달음의 경지에서 어긋나는 얘길 많이 하면 눈썹이 다 빠져버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 어떤가? 이런 저런 얘길 많이 한 이 취암의 눈썹이 붙어있는 것인가?”
어째 취암스님의 눈썹을 보려고 하시나?
취암스님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칠 걸. 그대의 눈썹은 어떤가?
취암스님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면
눈썹이 문제가 아니라 목이 달아날 걸. 헛된 망상에 빠지지 말 것!!
➲ 본칙
보복스님이 (전해 듣고는) 한마디 했다. “도둑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거짓이지.”
➲ 강설
보복스님은 참 친절하시다.
그대가 상대하는 이가 큰 도둑임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지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대의 모든 것은 이미 취암스님에게 도둑맞았을 것이다.
그러니 말에 따라가지 말고 취암스님의 마음을 낚아채도록 하라.
➲ 본칙
장경스님이 (전해 듣고는) 한마디 했다. “돋아난다.”
➲ 강설
장경스님은 참 어렵다. 눈썹이 빠지기는커녕 돋아난다고?
아, 장경스님은 참 모진 선지식이다.
취암스님의 그물을 겨우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장경스님의 함정을 피하긴 어려울 듯싶다.
➲ 본칙
운문스님이 (전해 듣고는) 한마디 했다. “관문이로다.”
➲ 강설
운문스님이야 본디 시원시원하시지.
그렇긴 하지만 자상하시진 않아. 하긴 너무 자상한 게 독이 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지금 그대가 어떤 관문에 갇혔는지를 아시는가?
벌써 빠져 나왔다고? 글쎄다. 다시 한 번 잘 살펴보시구려.
길은 어디에 있나. 지도가 없어도 그들은 알지.
➲ 송 원문
翠巖示徒千古無對 關字相酬失錢遭罪 潦倒保福仰揚難得
嘮嘮翠巖分明是賊 白圭無玷誰辨眞假 長慶相諳眉毛生也
➲ 송
취암스님 대중에게 법문하신 것,
옛날과 지금에 상대할 자 없도다.
➲ 강설
설두스님은 취암스님의 이 법문이 너무나 탁월하여 견줄 이가 없다고 평가한다.
대중의 모든 안목을 일시에 뺏어 버리는 취암노인의 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맞상대는 그만두고, 누가 그를 빗겨갈 수 있을까?
➲ 송
관문이라는 말로 응대한 것은,
돈을 잃고 죄를 지은 격이네
➲ 강설
관문(장벽)이라고 표현한 운문스님의 평은 참 시원하다.
시원하긴 한데 잘 살펴야 한다.
설령 취암스님을 빗겨간다 해도 운문스님의 장벽에 갇힐 수 있다.
그래서 설두영감님은 돈을 잃은 놈이 죄까지 뒤집어쓴 꼴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운문스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자유의 몸이 된다.
➲ 송
완곡하게 표현한 보복스님의 말은,
칭찬인지 견책인지 알기 어렵구나.
이런 저런 법문을 하신 취암스님은,
의심할 것 없이 천하의 도적이니라.
➲ 강설
설두스님은 보복스님의 평에 속기 쉽다는 것을 은근히 밝혀 놓은 것이다.
보복스님은 참 친절하게 평을 하셨는데, 그 친절함이 시험무대일 줄이야.
설두영감님 좀 미안하셨나?
어찌 자신의 입으로 취암스님이 도적이라고 발고해 버리시는고?
허나 정신 차려야 한다. 설두영감님도 그렇게 친절하기만 한 분은 아니라네.
두 분 영감님의 훔치는 솜씨는 천하일품이니, 잘 살펴야만 한다.
➲ 송
희고 맑은 옥에는 한 점 티가 없나니,
뉘라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리리오.
➲ 강설
옥집에 가면 모든 게 진짜처럼 보인다.
탁월한 안목이 없다면 진열된 상품 중에
어느 것이 보석이고 어느 것이 평범한지를 알기 어렵다.
관광객의 솜씨 정도로는 대부분 속는다.
선사들의 모든 것 응축한 한마디는 안목을 갖춘 자도 정신 바짝 차려야 속지 않는다.
➲ 송
장경스님이 취암스님 뜻을 척 알아보고는,
취암스님 눈썹이 오히려 돋는다고 하네.
➲ 강설
장경스님은 취암스님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다.
그래서 대뜸 눈썹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돋아난다고 평을 한 것이다.
이제 장경스님이 비정한 선지식이라는 것을 아셨는가?
원래 선지식의 안목에는 정(情) 따위는 없다네.
하지만 그 시험을 통과한 그대는 참 멋쟁이라고 할 수 있지.
[불교신문3677호/2021년8월3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