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등단
•대구수필문예대 수료
•수필문예회, 수비작가회, 대구수필과비평회, 국제아름다운소리협회 회원회원
사위가 어두워져 온다. 검은 구름이 내려앉더니 하늘이 울음을 토해낸다. “엄마 가지 마 나도 갈 거야 같이 가 엄마” 상처 입은 작은 짐승처럼 그 아이가 울부짖는다. 귀를 막고 달린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멀어지는 거리만큼 나를 부르는 절규도 멀어져 갔다.
아침 설거지도 밀어놓은 채 TV를 보고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프로다. 잃은 사람, 버림받은 사람, 저마다 헤어진 사연은 가지가지다. 하지만 핏줄을 그리워하는 애절함과 가족을 찾겠다는 절실함은 모두가 한마음이다. 단서라고는 발견된 장소와 당시 추정되는 나이와 입었던 옷이 전부다.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실낱같지만 칠팔세 이전의 어린이들이 반백의 모습으로 가족을 찾는다.
출연자 중엔 해외로 입양된 젊은이들도 있다. 외국에서 자란 정서 탓일까, 그들의 표정은 밝다. 코리아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모국이라고 부른다. 훌륭하게 자라서 당당한 모습으로 이 땅을 밟았다. 자기를 버린 나라에게 그들이 던진 말은 사랑의 메시지였다. 모국을 사랑하고 부모를 원망하지 않으며 버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만나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웃는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을 보듬어 주지 못하고 외면했던 미안함 속에 그 아이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보고 싶다. 어떻게 변했을까, 한 사람 한 사람 사연이 이어지고 끝날 때마다 화면에 눈을 꽂고 기다려 본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바람 한 자락이 불자 꽃비가 내리듯 고운 빛깔의 단풍잎들이 후루룩 떨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일렁인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내가 봉사하게 될 보육원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노랑 옷을 입고 단풍나무에 기대선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가서서 “안녕” 하고 머리를 쓰다듬자 부끄러운 듯 건물 안으로 숨어 버렸다.
그곳에는 보육사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린이를 돌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눈망울들이 애처롭다. 무슨 사유로 버려져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들을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가슴을 짓눌렀다. 중증 장애아들이다. 가까이 가자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가 입을 방긋거리며 손을 내민다. 미소 짓는 얼굴이 인간의 표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말은 할 수 없어도 나의 방문을 환영하는 사랑의 표현일 것이리라. 안타까운 마음에 얼른 안아주자 옆 침대의 어린애가 자기도 안아 달라는 듯 옷자락
을 잡아당긴다. 내려놓으려 하자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욱 힘껏 매달린다. 얼마나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을까, 사랑에 목말라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져 왔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누가 허리를 찌른다. 돌아보니 노랑 옷을 입고 있었던 그 아이다. 여러 색깔의 단풍잎을 한 주먹 불쑥 내밀고는 달아나버린다. 어느 봄날, 2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보육원 문 앞에서 발견되었다. 커다랗고 까만 눈망울이 흑진주처럼 예쁘다고 원장이 진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진주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진주는 언제나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를 쳐다보는 어린아이의 눈빛에 그리움과 공허감까지도 느껴진다.
왜일까,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도 자꾸만 눈에 밟혔다. 진주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그림을 그렸다며 내게 보여준다. 원장과 나를 엄마 아빠로 그 옆에 작은 아이는 자기라며 우리는 한가족이야라고 말한다.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가족을 갖고 싶었을까. 어린이날이나 연말이 되면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면서 자녀들을 동반해 온다. 봉사는 뒷전이다. 장애아들에게 신기한 듯이 다가가 “불쌍하지, 다칠라, 조심해라,” 자기 자식 건사하기에 바쁘다. 이렇게 지각없는 사람들이 다녀간 후에는 아이들이 우울해하며 며칠씩 밥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봉사가 아니라 날개 꺾인 천사들을 더욱 아프게 한 셈이다.
진주와 함께한 시간이 두 해가 지났다. 키도 많이 자랐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부르는 호칭도 선생님에서 엄마로 바뀌었다. 말이 없던 아이가 끝없이 재잘거리며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또래보다 영리하고 생각도 깊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언어를 구사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를 만나서 행복하고 사랑한다면서 목을 감싸 안는다. 어느 순간부터 입양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회의를 했으나 식구들이 반대했다. 남편은 한 생명을 자식으로 가슴에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느냐면서 사랑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니 충동적인 감정으로 섣불리 결정짓지 말라고 한다.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여느 때 같으면 ‘엄마 안녕히 가세요.’ 하던 아이가 그날은 무슨 일인지 가지 말라고 하다가 끝내는 따라가겠다고 졸라댔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담당 보육사에게 데리고 가서 하룻밤 재우고 오겠다고 하자 규정상 아니 된다고 한다. 따라가겠다고 울부짖는 아이를 떼어놓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진주와 함께한 마지막이었다. 진주는 나와의 이별을 예감했던 걸까.
아버님이 병환으로 입원하셔서 얼마 동안 봉사를 할 수 없었다. 회복될 무렵 내가 사고를 당해 두 번이나 수술했다.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발로 걷기까지는 2년이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지만 당면한 나의 상황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잊어 갔다. 성탄절을 앞두고 옆집 아주머니가 보육원에 봉사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봉사? 그래 진주가 있었지, 불현듯 진주가 생각났다. 얼마나 자랐을까 보고 싶었다. 보육원을 찾았다. 진주는 없었다. 영·유아만 보호하는 시설이라 초등학교 갈 무렵 일반 보육원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매일같이 울면서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몇 장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진주가 남기고 간 것이다. 모든 그림엔 단풍잎
이 그려져 있었다. 왜 그림마다 단풍잎이 있냐고 물으니 엄마가 좋아해서라며 엄마가 오면 꼭 전해 주라고 당부한 뒤 떠났다고 한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책임한 사랑을 퍼부으며 버림받고 상처 입은 한 생명을 내가 다시 버렸다.
옮겨 갔다는 보육원으로 찾아갔다. 나를 알아볼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하지, 용서부터 빌어야지, 그곳에도 진주는 없었다. 몇 달 전 해외로 입양 갔다는 것이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자기 핏줄만 고집하는 우리의 정서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다. 가족들의 반대로 입양할 수 없었다는 건 핑계이고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진주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움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마음과 사랑이 완벽한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떠나오는 발걸음이 무언가 잃어버린 듯 허전하다. 돌아보니 여섯 살배기 진주가 울며 나를 부르고 있다. ‘엄마, 같이 가 엄마, 나도 따라갈 거야.’
한 자락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도 같은 진주의 삶, 그의 생에 자신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정착한 그곳이 아무리 기름진 땅이라 할지라도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릴 때까지는 얼마나 척박했을까. 그 아이가 보고 싶다. ‘진주야 밤의 끝에는 해가 뜬단다. 이제는 드난살이에서 벗어나 아픈 삶을 이겨내고 그토록 바라던 가족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 다오.’ 혹여 그 아이가 보이진 않을까 하고 오늘도 TV 앞에 앉아 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줄을 섰건만 진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럽게 울어대던 마지막 모습만이 내 가슴에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