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9 16:50:24
북한산 삼무 산행기
1. 일 시 :2011년1 2월 18일 ( 일요 정기산행 ) 10:00
2. 산행지 : 삼각산(구기동 훼미리마트앞10:00-문수사11:30-대남문12:30-대성문13:00-일선사 입구13:30
-평창동 매표소14:00)
3. 참석 산우들 : 단풍진운, 장사민영, 느림보규홍, 오천사영수(문수사에서 합류)
오늘의 산행을 삼무 산행으로 이름한 것은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의 4시간여의 산행 시간 동안 무 알콜 섭취, 무 니코친 흡입, 무 음담패설 발설의 삼무 계를 철저히 지켰음을 기리고자 함이다.
단풍이 20분전, 내가 10분전, 장사가 10시 정각에 도착한다. 멀리 사는 순서대로 먼저 도착하는 것은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오늘부터 날이 풀린다고는 하나 아직 코가 찡할 정도로 차다. 해가 나고 바람이 없어 천만 다행이다. 발걸음도 가벼이 출발하지만 산을 멀리 한지 한참이라 가파른 코스는 피하고 싶다.
들머리 구기동 매표소에서 장사가 겨울여행은수에게 전화한다. 은수가 일일대장을 내게 맡기는 대신 2차를 쏘겠다고 공언을 했기 때문이다. 은수의 귀경 시각 및 접근경로를 파악해야 날머리를 정해 놓고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으잉? 은수 왈, 2차라는 건 하산주에 조인한다는 말이 아니고 하산주 2차에 조인한다는 뜻이었다나? 그렇다면 굳이 은수가 사는 정릉골로 하산하지 않아도 될 듯...
자주 안 가보던 코스를 가 보기도 싶고, 장사가 문수사에서 공양을 하는 것이 어떠냐 라는 제안에 만장일치로 오케다. 한 겨울이지만 경사면을 올라가니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한다. 야, 얼마만에 산에서 등으로 땀을 흘려 봤나?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 30분 쯤 올라가자 휴게소가 나타나고 외투를 배낭에 집어넣는 관물정돈시간.
단풍이 커피믹스를 꺼내든다. 각자 자기 배식그릇을 준비해 따끈한 커피를 한잔 씩 젓는다. 옷차림을 가벼이 하니 훨씬 가쁜하다. 날이 차서 땀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으니 그닥 힘이 들지 않는 것 같다. 단풍의 학교 이야기랑, 장사의 새로 시작한 일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깔닥고개 너머로 보이는 대남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처럼 날아 오를 듯하다.
문수사에 가까와 지자, 염불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보살 지장 보살 지장 보살 지장... 분명히 지장 보살을 외는 것 같은데, 들리기는 보살 지장을 반복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렇게 들리리라...
열한시 반에 문수사에 도착했으나 공양은 열두시부터라 한다. 오천사가 비봉 부근에서 전화를 해왔길래 문수사에서 함께 공양을 하자고 청한다. 식당과 대웅전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12시 10분 전쯤 식당에 들어와 배낭으로 자리를 맡아 두자 드디어 배식이 시작된다. 단풍이 공양비로 나누어 준 천원짜리 지폐를 함에 넣고 차례로 스텐그릇에 반찬부터 담는다. 당근 오이 피망으로 된 야채 샐러드를 조금씩 담고, 총각 김치도 몇 조각 넣고, 고추 장아찌... 이건 한 개를 집어야 하나 두 개를 넣어도 되나...망설이다, 남기면 안되는 분위기라 한 개만 담는다. 그 다음은 밥과 국의 배식. 밥은 남기지 않을 만큼 한 주걱을 퍼 담아주고 국은 미역국을 한 국자 부어 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잠뽕이 돼 버린다. 그래도 이 추운 겨울 산중에서 뜨끈한 국물을 들이키며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음에 희희낙낙이다.
단풍이 점심으로 가져온 밑반찬을 꺼내 준다. 아직 들어 가 본 적은 없지만 마치 감방에서 사식을 넣어 먹는 듯한 착각이 든다. 동시에 30년 전, 눈 내리는 철책선에서 근무 시절 양구 산꼭대기에서 짠밥 먹던 풍경이 오버랩 되고... 고추가루 하나 남김 없이 싹 먹어 치우고 설겆이까지 초벌, 두벌 먹은 사람이 각자 끝낸다. 짬밥 없는 식당...언제나 우리나라의 모든 식당들이 이런 수준이 될까? 한 해 동안 음식 쓰레기로 낭비되는 돈이 17조원이라 카던데...설겆이를 끝내니 오천사영수가 한 그릇 들고 나타난다. 굿 타이밍이다. 아까는 앉을 자리도 없었는데 영수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우리는 커피로 입가심 한다. 식당을 나오니 바깥에서도 미역국 사발을 붙들고 공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역시 미리 와서 기다리길 잘했네...
대남문 부터는 영수의 카메라 플래시가 따발총 쏘듯 한다. 찍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찍을 때마다 우리 모델들은 빵긋 빵긋 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은 머릿 속 생각일뿐, 얼굴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소 지어야 한다는 생각 만으로도 얼굴 근육이 떨리기 시작해 급기야 장사가, "영수야, 니 카메라 때문에 오래 못 살겠다...ㅠ" 하소연한다. 대남문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간 삼각산 영봉들을 일견하고 대성문으로 향한 성곽 고갯길을 올라 탄다. 대성문에 당도하니 양지 바른 남쪽으로 등산객들이 펭귄 떼 모냥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컵라면을 먹거니, 귤을 까먹거니 하고 있다. 장사가 칼바위 능선을 바라보며, 단풍아 내가 65세가 되도 저 칼바위 능선을 탈 수 있겠나? 하니 단풍이 그라모 탈 수 있지, 동아줄 등으로 안전장치 다 맹길었다 아이가 하며 안심시킨다.
나는 속으로 장사 저 인간, 일본에서 황천 갈 뻔 해 놓고도 아즉 정신 몬차리고 있네 하며 학을 띤다. 형제봉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평창동 매표소까지 내려가는 하산 길은 편안한 산보길이다. 길이 편하다 보니 FTA가 우쨌는니 저쨌느니 해싸며 쉬엄 쉬엄 내려오다 영수가 준비해온 코코아를 또 한잔 씩 타 먹는다. 나는 내 먹는 것 챙기기에도 급급했는데 산우들 먹을 것까지 챙겨서 오는 단풍이나 오천사의 배려심이 대단하다.
평창동 주택가를 한번 휘~ 돌고 나와서 가나아트센타 쪽 고객길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하차. 장사가 새로이 찜해둔 통영생선구이 집과 부근당구장을 몇차례나 왕복하며 결국에는 겨울여행은수와의 하산주2차 도킹에 성공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