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6일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편해문, 소나무)
어쩔 수 없는 현실
“놀이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학교와 교사와 보호자에게 없다. 놀이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다. 놀이보다는 유지가 먼저였다. 놀이보다는 방역이 먼저였다. 놀이보다는 안전이 먼저였다. 놀이보다는 통제가 먼저였다. 이렇게 COVID-19는 놀이의 시대를 ‘반(反) 놀이의 시대’로 아무런 저항 없이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퇴행시켰다.”(323쪽)
그렇다. 코로나와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는 1학년을 통틀어 50여 일 등교했고, 등교한 그 며칠도 쉬는 시간 없이 촘촘히 수업을 끝마치고 바로 학교를 나와야만 했다. 같은 반 아이들의 얼굴도, 선생님의 얼굴도 온라인 수업을 할 때 모니터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교실에서는 마스크로, 가림막으로 몇 겹씩 가리고 안전을, 방역을 지켜야 했다. 안타까웠지만 처음 겪는 ‘종잡을 수 없는 위기’(335쪽) 앞에서 생존, 안전, 방역은 꼭 지켜야 했고, 통제는 당연했다. 끝내 코로나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차츰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마주하는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위험천만한 세상을 살면서 전염병까지 세게 앓고 난 우리는 이제 더욱 철저히 개인의 안전을 위해 타인과의 거리두기를 자발적으로 열심히 실천하게 되었다. 거리두기와 통제가 익숙해진 일상에서 아이들의 놀이와 자유는 안쓰럽고 걱정되는 대목이었지만 쉽게 잊었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지 뭐.’
첫째가 1, 2학년 때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집에 초대해서 놀아도 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워낙 내성적이고 예민한 아이가 친구를 초대해 놀고 싶다는 이야기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코로나 시기라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나름 용기를 내어 아이가 초대하고 싶다는 친구 엄마에게 물었다. 초대해줘서 고맙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노는 건 어려울 것 같다며 미안하다 했다. 놀이터에서 노는 건 어떨까 하며 시간을 맞춰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관계가 있었던 사이도 아닌데 이야기를 더 이어가는 건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두 번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지 뭐.’가 반복되다 보니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다시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위험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공포에 어린이의 놀이와 자유가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331쪽) 놀이 철학이 나에게는 없었기에.
아이가 마음껏 놀았으면, 잘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누구와 놀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싶었고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코로나 이전 관계가 있었던 몇몇 이웃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이들이 타인과 맺는 관계의 전부였다. 그 시간 중 적지 않은 시간을 게임과 유튜브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 뭐.’하고 있다. 나는 관계가 주는 즐거움, 배움, 성장을 경험했고 공동체의 유익을 누렸기에 함께함을 지향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놀이도 관계, 타인과 함께함 가운데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기대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다 맞는 내용인데, 격하게 동의하는데 지금 나는, 우리 아이들은 저자의 절절한 호소와는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따끔하게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뭐 하세요. 그거 아니잖아요. 아시잖아요.’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저자가 곁에 서서 조곤조곤 혼내는 듯한 느낌. ‘그래. 아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하지. 난 아이에게 충분한 놀 시간을 줄 수 있어. 놀 터야 조금 수고롭겠지만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그런데 놀 친구가 없잖아. 코로나라서 조심스럽잖아.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해봤는데 안 되는 걸 어떡해. 게다가 이제는 게임과 유튜브가 제일 재밌는 놀이가 되어버렸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계속해서 이유를 찾았고 변명을 이어갔다. 혼나기 싫어서. 그러다 2023년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가 말하는 놀이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기어이 따졌다.
“밖에 나갔더니 우리 아이와 함께 놀 아이들이 없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길 바란다. 그렇게 누군가 나와서 놀고 있다면 다른 집 부모도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올 것이다. 같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옆집 부모와도 손을 잡지 못하게 만드는 이 자본의 경쟁과 소외와 분열에 맞서는 용기와 저항이 진정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싸움 자체가 우리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304쪽)
“자본주의 시장에서 아이들이 게임을 적게 하거나 못하게 할 방법은 없다. … 다른 관점과 철학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왜 게임에 몰입하는 것일까? … 아이들이 경쟁에 지쳐 그 힘겨움을 덜고자 게임에 몰입하는 거라고 한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을 살펴야 한다. 비겁하게 핑계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그동안 놀지 못한 놀이에 허기가 져 게임에 빛과 같은 빠르기로 입문하는 것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면 빼돌리고 빼앗은 ‘놀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과 ‘극단적 이윤 추구’라는 천박한 게임의 본질에 관한 무자비한 비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298쪽)
“아이가 밖에서 노는 것도 재미있고 게임도 재미있다는 것을 몸으로 균형 잡게 해주자. 주체적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과 놀이는 만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과 놀이의 균형을 이렇듯 아이 스스로 잡을 수 있으면 문제는 풀린다.”(302-303쪽)
이런,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더 이상 따질 수가 없다. 애써 찾아냈던 이유도 남아 있지 않다. 찬찬히 나에게 질문을 건넬 뿐이다. ‘나는 요즘 얼마나 아이 손을 잡고 바깥에 나가보았던가. 땀 흘리며 숨이 찰 때까지 뛰어보았던가. 게임을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세계를 신나게 설명하는 아이의 찐웃음을 너그럽게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20년 동안 아이들과 아이들의 놀이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한 저자의 간절한 외침을 더 많은 이들이 아프게 듣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즐겁게 저항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아니, 왜 혜화 샘 글만 댓글이 없지?
목욜 아침모임에서 합평으로 다 얘길 나눠서 그런가?
짝궁과 이미 서로 다 주고받으신 건가?
합평에서 나온 이야기 바탕으로 퇴고하실 거죠?라고 쓰려고 보니;;;;
14일부터 혜화 샘, 온가족 첫 외쿡여행 가신대요.
그것도 다름아닌 이스탄불~~~!
버라이어티한 추억 많이 쌓으시고요. 멋진 사진들도 공유해주세요!
ㅎㅎ 합평한 내용 바탕으로 퇴고 바로 해보려 했는데 못해서.. 밀린 숙제가 되었네요ㅎㅎ;;
일단 다녀와서 해보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