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랑스런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엡1장1-14절을 반복 묵상해 보세요.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자 또는 하나님을 본받자 하는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권고하심을 받아들여 아버지 앞에 나아가고 나아가므로 되어 집니다.
엡2장에서 1-10절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되어 진 사실을 근거로
11-22절까지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 피로 가까워지고 십자가로
화목하게 되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나님의 집이 되어가야 합니다.
2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 가운데 행하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 우리 범죄를 위해 자신을
생축과 같이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롬4:25) 이것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분이 향기로운 제물이 되심은 하나님의 진노를
중화시키는 제물이기 때문이며 그로인해 우리가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신 제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의 제사장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시는 중보의 제사장이십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는 우리를 향해 사랑가운데 행하라고 하십니다.
3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음행, 더러운 것, 탐욕 등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지 못하는
것들을 나열합니다. 너희 안에서 이런 것들이 재잘대지 못하도록 하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성도들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 밖에 있을 때와 같이
법 정신으로 속에서는 튀어나오듯 하지만 제동의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의를 얻어 성령의 기름부음에 잠기면 이런
것들은 자신의 격에 도무지 맞지 않고 시시하게 보여 쳐다보지도 않게 되는 겁니다.
4절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3절은 사람 속에 있는 내적인 것이며 그 다음 4절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입니다. 문제는 입입니다. 누추함 곧 천박한 말입니다.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고 지혜로운 말을 하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희롱의 말의 반대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길들여져야 합니다.
마땅치 않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안에서는 진리의 성령이 일하시고
말씀을 우리의 직관과 양심이 받아 밖으로 드러내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은 곧 금이라고 할 만합니다.
입이 바쁘면 귀가 둔해집니다. 귀가 바쁘면 당연히 입이 다물어 지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은 의인은 들으려고 하나 악인은 말하기에 바쁘다고 하는 겁니다.
5절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너희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음행, 더러움, 탐하는 자, 이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입니다. 다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므로 우상숭배가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으로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음행(포르노스) 포로노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더러움, 탐하는 자
이런 것들이 우상숭배인데 우상숭배는 사실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겁니다.
육적인 도덕은 우리의 양심과 이성에 새겨지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되고 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가다보면 육체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통곡과 눈물과 간구와 소원의 모델이 되신 주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본받게 됩니다.
6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헛된 말 곧 빈말을 말합니다. 이런 말로 속이지 못하게 하라입니다. 불순종은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 그 분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이 되고 진노 아래에 놓이는
것입니다(요3:36) 그러므로 설교를 들을 때에 그 말씀이 무엇에 유익을 주는 것인가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과연 그 설교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진리 안에 주를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가는 방법을 설명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아니면 시간적으로 헛된 말에 속게 되고 맙니다.
7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 참예(메토코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6:14)는 뜻입니다.
숭배적인 신앙과 인격적인 교제의 신앙이라는 말을 합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죽으심으로 우리를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 놓으시고 그리로 부르시므로 우리가 회개와 세례(침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 의를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주를 향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면 예수믿는 불신자를 양산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를 테면 7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는 믿는다는 신앙의식은 있지만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모시지 않으므로 그리스도를 밖에 모신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예수 믿는 이방인이 되어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힘을 얻지 못하는
불신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교회는 땅에 있는 복을 구하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의 기도를 할 수밖에 없으며 세속적인 것에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는 사사 때와 같이 백가쟁명의 때이며 엘리야 때와 같이 진리의 말씀이 가려진
시대여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기에 요나의 표적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의롭게 된 하늘의 의인들의 행함이 있는 간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첫댓글 아멘 입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하죠.
1년 중 가장 날씨가 좋고 쾌적하기에 이런 별칭을 붙여 5월을 찬양하는 듯합니다.
언제나 목사님의 영적인 아침식사는
제겐 "5월의 여왕" 입니다.
말씀안에서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기 때문 입니다.
주께 감사합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서신의
지성소 또한 바울서신의 여왕이라고도 하는데 머리이신 주님이 왕이시니
교회의 비밀인 에베소서를 수신하는 우리가 그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