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문학 2023.봄호(제101호)에 동화 '보어네 하늘바위정원'이 실렸습니다.
자연사랑과 생명존중에 대한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동화> 보어네 하늘바위정원
정혜진
보어(Boar) 부부가 산 아래쪽에서 먹이를 찾고 있을 때입니다.
“탕! 탕!탕!”
요란한 총소리가 산속을 흔들었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가 잽싸게 몸을 숨깁니다.
“여보, 괜찮소?”
바람처럼 달려온 아빠가 엄마를 걱정합니다. 보어부부는 나무숲 뒤에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날쌘 멧돼지라도 이번엔 잡힌 것 같지?”
“농작물만 해치지 않아도 사냥까지는 안 할 건데 불쌍한 놈들!”
두 사람이 멧돼지 이야기를 하며 지나갑니다.
“사냥꾼들이 나타났어요. 요 며칠 전에도 검지아빠가 총에 맞고 끌려갔잖아요.”
엄마가 낮은 소리고 말하면서 몸을 부르르 떱니다.
“맞아, 그랬었지. 사냥철에는 특히 조심해야 돼요.”
아빠도 겁먹은 얼굴입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들 소리도 총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하늘바위가 있는 천석산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이제 돌아갑시다.”
아빠가 엄마를 일으켜 세웁니다. 보어부부는 나뭇잎을 수북하게 깔아 만든 보금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여보,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겠어요. 조금 있으면 아가들도 태어날 텐데요. 미리미리 안전한 곳에 터를 잡아야지요.”
엄마가 심각하게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좋은 장소를 마련할 테니 걱정 말아요.”
아빠는 엄마를 안심시킵니다.
“아주 특별한 곳으로 가야해요. 누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장소로요.”
“당신 마음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쉽시다.”
아빠가 비스듬히 누우며 엄마를 쉬게 합니다. 그런데 엄마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또 아이들 생각이 나서 소리죽여 울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또 우는 거요? 이제 그만 잊으라니까.”
아빠가 엄마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럴수록 엄마는 더 서럽게 웁니다.
“불쌍한 우리 하늘이 소망이, 엄마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불쌍해 죽겠어요.”
아빠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지난여름 하늘이와 소망이는 엄마랑 구경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아빠는 탐방을 나가고 없을 때입니다. 셋이서 산 아래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밭이 가까운 곳입니다. 그곳에는 부드러운 풀과 열매들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멀리 나온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와! 저기 맛있는 거 있다. 얼른 가보자.”
하늘이 말에 소망이도 좋아서 같이 갔습니다. 나무 사이를 막 뛰어갈 때입니다.
“철거덕!”
“철거덕!”
갑자기 철사 줄이 옭아맸습니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쳐놓은 올무였습니다.
“엄마! 엄마! 살려주세요.”
아이들은 발버둥을 치며 엄마를 불렀습니다.
“뭐야? 우리 애들 비명소리!”
깜짝 놀란 엄마가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애들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가까이 가본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이들은 목과 발이 묶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잠깐 딴 곳에서 눈을 판 사이,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입니다.
“이를 어째? 우리 애들을 어떡해?”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구하려고 죽을힘을 다 썼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점 힘이 빠져갔습니다. 그럴수록 엄마 마음은 타들어갑니다. 아이들 살릴 방법을 찾지 못해 숨이 넘어갈 지경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멀리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옵니다. 손에는 총과 낫과 몽둥이가 들려있습니다. 순간 엄마는 나무 숲 뒤로 몸을 감췄습니다.
“엄마! 엄마! 살려줘요.”
하늘이와 소망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엄마 귀를 때렸습니다.
“오늘은 어린 멧돼지가 걸렸네.”
사람들은 인정머리 없이 아이들을 내리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분노가 폭발해 벌떡 일어섰습니다. 목숨을 걸고 공격할 태세입니다.
바로 그때 엄마머리를 꽉 누르며 꾸중하는 손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엄마였습니다.
“어리석은 것, 같이 죽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애들이 살아온다던? 침착해라!”
돌아가신 엄마가 수없이 가르쳐 준 말입니다.
“이 엄마가 잡혀가도 너희들은 살아남아야한다. 뒤돌아볼 생각 말고 무조건 빨리 도망가야 한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준 말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엄마 말에 잠시 주춤하고 있을 때입니다. 힘이 센 남자 네 사람이 애들을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갔습니다. 눈앞에서 애들을 빼앗긴 엄마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나쁜 인간들! 벌 받을 인간들! 못된 사람들!”
푸념을 늘어놓은 엄마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몸이 벌벌 떨리고 얼어붙어서 꼼짝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빠는 텅 빈 집에서 식구들을 기다렸습니다. 밤이 깊어지도록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식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제발 무슨 일만 없어라. 무사하기만 해라.”
아빠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며 눈에 불을 켜고 산속을 헤맸습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쓰러져 울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습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소? 아이들은?”
엄마는 울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알렸습니다. 듣고 있던 아빠는 기가 막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해 발을 쿵쿵 굴렀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아빠가 엄마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보, 새로 태어날 희망이를 위해서 그만 집으로 갑시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빠의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같이 가볼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기 천석산 위쪽으로 가봅시다. 내가 보아둔 곳이 있소.”
아빠가 찾아놓은 보금자리는 바위가 앞을 막아선 뒤쪽입니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우뚝우뚝 솟아 있는 밋밋한 바위산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올라오지 않는 곳입니다.
“어때요?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언제 발견했어요? 최고의 명당이네요.”
오랜만에 엄마가 활짝 웃었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여기를 정원으로 꾸밉시다. 우리들 정원으로요,”
다음날부터 보어부부는 하늘아래 바위가 많이 있는 천석산 위쪽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자,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은 옹달샘으로 만듭시다.”
“그 옆으로는 꽃밭을 만들까요?”
움푹 페인 작은 계곡 비탈에는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있습니다.
산꼭대기 쪽에는 억새풀과 키 작은 나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소나무와 전나무도 있습니다.
아래쪽 큰 계곡에는 잣나무도 있고 옆으로는 맛있는 약초도 많습니다.
보어부부는 입으로 꽃씨를 물어다가 주변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금자리는 바위아래쪽 속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꾸몄습니다. 옆에는 활엽수가 있어서 조금만 노력하면 편안한 곳으로 변신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한꺼번에 무리하지 맙시다. 앞으로 차근차근 조금씩 다듬어 나갑시다.”
봄이 되자 사방에서 풀이 자라고 꽃도 피기 시작합니다.
“희망이가 나오려나 봐요.”
5월이 되자 엄마는 희망이 10남매를 낳았습니다.
“보어네 베이비 텐 탄생!”
아빠는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하늘바위 천석산 정원에서 태어난 소중한 핏줄입니다. 아이들 등에 담황색 세로 줄무늬가 생겨나 참 귀엽습니다.
“우리 정원에 베이비 텐 놀이터를 꾸며줍시다. 애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멋진 정원을 만듭시다,”
엄마아빠는 애들이 자란 모습에 신바람이 났습니다.
“저기 저 파란 하늘, 아름다운 구름이 우리 정원 손님인 것 같소.”
“해님 달님 별님도 우리 손님으로 모십시다,”
보어부부는 베이비 텐이 희망을 가져왔다고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걱정거리가 사라진 하늘바위정원이 너무 좋아서 날마다 싱글벙글 웃음꽃도 늘어만 갑니다.
첫댓글 좋은 동화가 실리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보어부부가 꾸민 천석산 공원에 가보고 싶습니다.
보어부부가 그곳에서 희망이들과 행복하게 잘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동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달아 좋은 동화를 쓰신 부지런하심에 또 탄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