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키야 우파니드는 우파니샤들 중 가장 짧습니다.
세상에는 경전들이 많습니다.
성경에도 구약, 신약이 있고
또 두꺼워서 그것의 정수를 파악하는 것은 평생이 들 수 있습니다.
불교의 경전들에는 담마파다,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등 얼마나 많습니까?
그 경전들의 주된 내용을 이해하기는 평생의 노력이 들 수 있습니다.
힌두의 경전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꼮 읽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 자신이 경전입니다.
진리는 그대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이 우파니샤드는 말합니다.
그대의 하루의 삶은
깨어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꿈이 없는 수면의 상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셋 너머에 네 번째인 투리야가, 초의식이 있습니다.
순수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대의 나가 있습니다.
우주 전체는 중심의, 나의 진동입니다.
중심은 아직 모르고
중심에서 좀 떨어진 진동들을 그대는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
소위 말하는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대는 감각들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물질적 대상들을 경험합니다.
도시가 있고, 산과 강이 있고
사람과 동물들이 있고
일터가 있고, 일을 하고, 동료들이 있고,
그대는 하루는 울고, 다음 날은 웃습니다.
종교들이 있고, 경전들이 있고,
그들 지도자들의 말을 듣습니다.
가장 먼 곳입니다.
가장 무지스러운 곳입니다.
가장 느린 진동의 부분입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오면,
즉 진동을 전혀 달리하는 상태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대의 두번째의 상태로, 진동으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대의 잠의 초기에는
꿈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그대가 감각들을 안으로 향하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감각들이 바깥으로 향하게 해서 보았던 것들 즉
친구들, 직장, 종교, 식물과 동물들이 있는 세상이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것들이 어디로 갔어요?
그것들은 거기에 여전히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대가 진동을 달리하는 그대의 안으로 이동하였을 뿐입니다.
그대는 이제 그대의 내부의 대상들을 지각합니다.
그대의 과거의 행위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를 수 없던 욕망들을
꿈 속에서 충족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깊은 잠이 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욕망이 없으며
어떤 꿈도 꾸지 않습니다.
세상이, 프라크리티가 거의 없습니다.
아주 조금 있습니다.
무지가 아주 조금 있습니다.
원인의 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그때 희열을 경험합니다.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그 희열은 그대의 중심인 나에서 조금 흘러나온 것입니다.
희열의 잠을 경험하다가
깨고는 무지스러운 깨어 있는 상태로 떨어집니다.
갑자기 일, 동료, 친구들이 있는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그대가 있음을 자각합니다,.
또 꿈을 꾸고, 자고 하기를 수억년 되풀이 합니다.
그대가 중심인 나를 깨달을 때까지......
깨어있고, 꿈꾸고, 잠을 자는 것은 프라크리티, 구나들 즉 물질입니다.
이것들을 관리하는 분이 신입니다.
이것들은 신의 하위의 부분들입니다.
그대는 어쩌다 물질에 들어가 있습니다.
물질에서 벗어나 순수한 의식에, 우주의 중심인 신에, 그대의 나에 이르는 것이 수행입니다.
어쩌면 그대가, 그대의 존재가 경전입니다.
그대는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대는 진리이며. 진리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안으로 향하여 그대의 나를 발견하십시오.
그대의 나에 이르면
그대는 그대의 모든 세포들이 아난다로 춤을 출 것입니다.
그대는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대의 나에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를 수 없습니다.
신의 은총이 없이는, 나의 은총이 없이는 나에 이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