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 소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고향
흰 바람벽이 있어
이른 봄
국수
여승(女僧)
山
모닥불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여우난골
古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 취했노라 - 노리다께 가스오 에게
절간의 소 이야기
夏畓
황 일 (黃 日)
수라
바다
개
절망
통영 1
통영 2
수박씨, 호박씨
北新북신 -西行詩抄서행시초2
고독(孤獨)
적막강산
탕약
寂境(적경)
제 3 인공위성
축복
눈
허준(許俊)
목구
북방에서 _ 정현웅에게
어리석은 메기
준치가시
산골총각
집게네 네형제
백석 시인 소개
~~~~~~~~~~~~~~
멧새 소리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별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고향
나는 北關(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如來(여래) 같은 상을 하고 關公(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
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백 석 시전집
~~~~~~~~~~~~~~
이른 봄
골안에 이른 봄을 알린다 하지 말라
푸른 하늘에 비낀 실구름이여,
눈 녹이는 큰길가 버들강아지여,
돌배나무 가지에 자지러진 양진이 소리여.
골안엔 이미 이른 봄이 들었더라
산기슭 부식토 끄는 곡괭이 날에,
개울섶 참버들 찌는 낫자루에,
양지족 밭에서 첫운전하는 뜨락또르 소리에.
골안엔 그보다도 앞서 이른 봄이 들었더라
감자 정당 40톤, 아마 정당 3톤 ―
관리위원회에 나붙은 생산 계획 숫자 위에
작물별 경지 분당 작업반장회의의
밤새도록 밝은 전등 불빛에.
아, 그보다도 앞서 지난해 가을
알곡을 분배받던 기쁨 속에, 감사 속에,
그때 그 가슴 치밀던 증산의 결의 속에도.
붉은 마음들 붉게 핀 이 골안에선
이른 봄으 드는 때를 가르기 어려웁더라.
이 골안 사람들의 그 붉은 마음들은
언제나 이른 봄의 결의로, 긴장으로 일터에 나서다니.
~~~~~~~~~~~~~~~~~~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지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엎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잡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언 옛적 큰어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었인가
겨룰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
여승(女僧)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山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山
머리 빗기가 싫다면
니가 들구 나서
머리채를 끄을구 오른다는
山이 있었다
山너머는
겨드랑이에 짓이 돋아서 장수가 된다는
더꺼머리 총각들이 살아서
색시 처녀들을 잘도 업어간다고 했다
山마루에 서면
머리 언제나 늘 그물그물
그늘만 친 건넌山에서
벼락을 맞아 바윗돌이 되었다는
큰 땅괭이 한 마리
수염을 뻗치고 건너다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그 쉬영꽃 진달래 빨가니 핀 꽃바위 너머
山 잔등에는 가지취 뻐꾹채 게루기 고사리 山나물판
山나물 냄새 물씬물씬 나는데
나는 복장노루를 따라 뛰었다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하는 아이도 새 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옆
~~~~~~~~~~~~~~~~~~~
여우난골
박을 삶는 집
할아버지와 손자가 오른 지붕 위에 한울빛이 진초록이다
우물의 물이 쓸 것만 같다
마을에서는 삼굿을 하는 날
건넌마을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왔다
노란 싸리잎이 한불 깔린 토방에 햇츩방석을 깔고 나
는 호박덕을 맛있게도 먹었다
어치라는 산새는 벌배 먹어 고흡다는 골에서 돌배 먹
고 아픈 배를 아이들은 떨배를 먹고 나었다고 하였다
삼굿 : 삼(大麻)을 벗기기 위하여 구덩이에 쪄내는 일. 구덩이를 파고 그 바닥에 솥을 걸기도 하지만, 솥 대신 돌무더기를 달군 다음 그 위에 풀을 한 겹 깔고 삼단을 세우고 위에서 물을 부어 넣어, 그 뜨거운 증기로 삼 껍질을 익히게 함.
한불 : 상당히 많은 것들이 한 표면을 덮고 있는 상태.
토방 : 마루를 놓을 수 있는 처마 밑의 땅.
햇츩방석 : 햇칡방석. 그 해에 새로 나온 칡덩굴을 엮어 만든 방석.
어치 : 까마귀과의 새. 몸길이 34cm. 비둘기보다 조금 작으며 몸은 포도색, 머리털은 적갈색임. 목소리가 고우며 다른 새들의 흉내를 잘냄.
벌배 :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야생 배.
열배 : 아직 채 익지 아니한 풋배.
~~~~~~~~~~~~~~~~~~~~~~~~~~~
古夜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뒤로는 어늬 山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山 어늬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밝어먹고 은행여름을 인두 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고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끊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녀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 오는 탓이다
잠풍 : 잔잔하게 부는 바람.
달재 : 달째. 달강어. 쑥지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몸길이 30Cm 가량으로
가늘고 길며, 머리가 모나고 가시가 많음.
진장 : 진간장. 오래 묵어서 진하게 된 간장.
~~~~~~~~~~~~~~~~~~~~~~~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따디기 :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흙이 풀려 푸석푸석한 저녁무렵.
누굿한 : 여유있는.
살틀하던 : 너무나 다정스러우며 허물없이 위해주고 보살펴 주던.
~~~~~~~~~~~~~~~~~~~~~~~~
나 취했노라 - 노리다께 가스오 에게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 1943년 < 압록강 >
~~~~~~~~~~~~~~~~~
절간의 소 이야기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人間)
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낳게 할 약(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칠십이 넘은 노
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마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
추었다 : 추스렸다.
~~~~~~~~~~~~~~~~~~~~~
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어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
황 일 (黃 日)
한 십리(十里) 더 가면 절간이 있을 듯한 마을이다. 낮 기울은
볕이 장글장글하니 따사하다. 흙은 젖이 커서 살같이 깨서 이지
랑이 낀 속이 안타까운가 보다. 뒤울 안에 복사꽃 핀 집엔 아무
도 없나 보다. 뷔인 집에 꿩이 날어와 다니나 보다. 울밖 늙은 들
매남ㄱ에 튀튀새 한불 앉었다. 흰구름 따러가며 딱장벌레 잡다가
연두빛 닢새가 좋아 올라왔나 보다.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였다.
새악시도 피였다. 새악시 복사꽃이다. 복사꽃 새악시다. 어데서
송아지 매―하고 운다. 골갯논드렁에서 미나리 밟고 서서운다.
복사나무 아래 가 흙장난하며 놀지 왜 우노. 자개밭둑에 엄지 어
데 안 가고 누었다. 아릇동리선가 말 웃는 소리 무서운가, 아릇동
리 망아지 네 소리 무서울라. 담모도리 바윗잔등에 다람쥐 해바
라기하다 조은다. 토끼잠 한잠 자고 나서 세수한다. 흰구름 건넌
산으로 가는 길에 복사꽃 바라노라 섰다. 다람쥐 건넌산 보고 부
르는 푸념이 간지럽다.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들매나무 : 산딸나무. 층층나무과에 속하며, 정원수로 심고 열매는 식용함.
튀튀새 : 티티새. 자빠귀. 개똥지빠귀. 10~11월에 데를 지어 도래하여 겨울에는
낮은 산, 평지, 밭, 풀밭 등에서 살며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냄.
한불 : 상당히 많은 것들이 한 표면을 덮고 있는 상태.
아릇동리 : 아랫동네.
담모도리 : 담 모서리.
~~~~~~~~~~~~~~~~~~~~~~~~~~
수라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바다
바닷가에 왔더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접시 귀에 소기름이나 소뿔등잔에 아즈까리 기름을 켜는 마을에서는 겨울밤 개 짖는 소리가 반가웁다
이 무서운 밤을 아래웃방성 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있어 개는 짖는다
낮배 어니메 치코에 꿩이라도 걸려서 산너머 국수집에 국수를 받으려 가는 사람이 있어도 개는 짖는다
김치 가재미선 동치미가 유별히 맛나게 익는 밤
아배가 밤참 국수를 받으려 가면 나는 큰마니 돋보기를 쓰고 앉어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
절망
북관(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북관(北關)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
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늬 아침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가펴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 길동 : 저고리의 깃동.
* 가펴로운 : 가파른.
~~~~~~~~~~~~~~~~~
통영 1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 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천희: 바닷가에서 시집 안 간 여자를 '천희'라고 하였음. 또한 천희는 남자를 잡아먹는(죽게 만드는) 여자라는 속뜻도 있다.
*미역오리: 미역줄기.
*소라방등: 소라의 껍질로 만들어 방에서 켜는 등잔.
~~~~~~~~~~~~~~~~~~~~~~~
통영 2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잘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프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샘이 있는 마을인데
갬터넨 오구작작 물을 깉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고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고당: 고장.
*아개미: 아가미.
*호루기: 쭈꾸미와 비슷하게 생긴 해산물.
*황화장사: 온갖 잡살뱅이의 물건을 지고 집집이 찾아다니며 파는 사람.
*오구작작: 여러 사람이 뒤섞여 떠드는 수선스런 모양.
*녕: 이엉.
~~~~~~~~~~~~~~~~~~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人精)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옛임금의 땅과 나무
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작고 가벼웁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五千)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녚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었던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밝는다 : 껍질을 벗겨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지어낸다.
도고하니 : 도고하게. 짐짓 의젓하게.
함곡관(函谷關) : 요동반도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목.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
오두미(五斗米) : 도연명의 월급. 당시 현감의 월급이 오두미에 해당되었음.
녚차개 : 호주머니
~~~~~~~~~~~~~~~~~~~~
北新북신
-西行詩抄서행시초2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香山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아 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비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박혔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小獸林王소수림왕을 생각한다 廣開土大王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
고독(孤獨)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휘파람 호이호이 불며
교외(郊外)로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문득 옛일이 생각키움은-
그 시절이 조아졌음이라
뒷산 솔밭 속의 늙은 무덤 하나
밤마다 우리를 맞아 주었지만 어떠냐!
그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혔는가를 알려고 해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떡갈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어도 겁나지 않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제1과(第一課)를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배웠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 높이 단장(短杖) 홰홰 내두르며
교외(郊外)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그 날 밤
성좌(星座)도 곱거니와 개고리 소리 유난유난 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필요없이 금(金)모래 구르는 청류수(淸流水)에 몸을 담갔다
별안간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울부짖고 번개불이 어둠을 채질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몸에 피를 흘리며 발악했던 것을 깨달었도
내 주위에서 모든 것이 떠나 갔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인생의 제2과(第二課)를 슬픔과 고적(孤寂)과 애수(哀愁)를 배웠나니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깃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낙사랑(絡絲娘)의 잣는 실 가늘게 가늘게 풀린다
무엇이 나를 적막(寂寞)의 바다 한가운데로 떠박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부서진 배(船) 쪼각인가?
나는 대고 밀린다
적막(寂寞)의 바다 그 끝으로
나는 바닷가 사장(沙場)으로 밀려 밀려 나가는 조개 껍질인가?
오! 하늘가에 홀로 팔장끼고 우-뚝 선 저-거무리는 그림자여......
* 단장 : 짧은 지팡이. 손잡이가 꼬부라진 짧은 지팡이. 개화장(開化杖)
* 낙사랑 : 실을 두른 여자.
~~~~~~~~~~~~~~~~~~~~
적막강산
오리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定州 東林 九十여 里 긴긴 하룻길에
산에 오면 산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아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여 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아진다
~~~~~~~~~~~~~~~~~~~~
寂境(적경)
신 살구를 잘도 먹더니 눈 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
제 3 인공위성
나는 제 3 인공위성
나는 우주 정복의 제 3 승리자
나는 쏘베트 나라에서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쏘베트 나라에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해방과 자유의 사상
공존과 평화의 이념
위대한 꿈 아닌 꿈들……
나는 그 꿈들에서도 가장 큰 꿈
나는 공산주의의 천재
이 땅을 경이로 휩싸고
이 땅을 희망으로 흐뭇케 하고
이 땅을 신념으로 가득 채우고
이 땅을 영광으로 빛내이며
이 땅의 모든 설계를 비약시키는 나
나는 공산주의의 자랑이며 시위
공산주의 힘의, 지혜의
공산주의 용기의, 의지의
모든 착하고 참된 정신들에는
한없이 미쁜 의지, 힘찬 고무로
모든 사납고 거만한 정신들에는
위 없이 무서운 타격, 준엄한 경고로
내 우주를 나르는 뜻은
여기 큰 평화의 성좌 만들고저!
지칠 줄 모르는 공산주의여,
대기층을 벗어나, 이온층을 넘어
뭇 성좌를 지나, 운석군을 뚫고
우주의 아득한 신비 속으로
태양계의 오묘한 경륜 속으로
크게 외치어 바람 일구어
날아 오르고 오르는 것이여,
나는 공산주의의 사절
나는 제 3 인공위성
~~~~~~~~~~~~~~~~~~~~~~
축복
이 먼 타관에 온 낯설은 손을
이른 새벽부터 집으로 청하는 이웃 있도다.
어린것의 첫생일이니
어린 것 위해 축복 베풀려는 이웃 있도다.
이깔나무 대들보 굵기도 한 집엔
정주에, 큰방에, 아이 어른― 이웃드이 그득히들 모
였는데.
주인은 감자 국수 눌러, 토장국에 말고
콩나물 갓김치를 얹어 대접을 한다.
내 들으니 이 집 주인은 고아로 자라난 사람.
이 집 안주인 또한 고아로 자라난 사람.
오직 당과 조국의 품안에서
당과 조국을 어버이로 하고 자라난 사람들.
그들의 목숨도 사랑도 그리고 생활도
당과 조국에서 받은 것이어라.
그리고 그들의 귀한 한 점 혈육도
당과 조국에서 받은 것이어라.
이 아침, 감자 국수를 누르고, 콩나물 데워
이웃 사람들을 대접하는 이 집 주인들의 마음에
이 아침 콩나물을 놓은 감자 국수를 무주하여
이 집 주인들의 대접을 받는 이웃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히 차오르는 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간절한 축복
그리고 당과 조국의 은혜에 대한 한량없는 감사.
나도 이 아침 축복 받는 어린 것을 바라보며,
당과 조국의 은혜 속에 태어나 이 어린 생명이
당과 조국의 은혜 속에 길고 탈 없는 한평생을 누리
기와,
그 한평생이 당과 조국을 기쁘게 하는 한평생이 되기
를 비노라.
~~~~~~~~~~~~~~~~~~~~~~
눈
초저녁 이 산골에 눈이 내린다.
조용히 조용히 눈이 내린다.
갈매나무, 돌배나무 엉클어진 숲 사이
무리돌이 주저앉은 오솔길 위에
함박눈, 눈이 내린다.
초저녁 호젓도 한 이 외딴 길을
마을의 여인 하나 걸어간다
모롱고지 하나 돌아 작업반장네 집
이 집에 노전결이 밤 작업에 간다.
모범 농민, 군 대의원, 그리고 어엿한 당원―
박순옥 아맹이의 위에 눈이 내린다
지아비, 원수를 치는 싸움에 바치고
여덟 자식 고이 길러내는 이 홀어미의 어깨에,
늙은 시아비, 늙은 시어미 정성으로 섬기여,
그 효성 눈물겨운 이 갸륵한 며느리의 잔등에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내린다.
이 여인의 마음에도 눈이 내린다
잔잔하고 고로운 그 마음에,
때로는 거센 물결치는 그 마음에
슬프고 즐거운 지난날의 추억들 위에,
타오르는 원수에의 증오 위에,
또 하루 당의 뜻대로 살은 떳떳한 마음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이 쌓인다.
다정한 이야기같이, 살뜰한 쓰다듬같이
눈이 내린다.
위안같이, 동정같이, 고무같이
눈이 내린다.
이 호젓한 밤길에 눈이 내린다.
여인의 발자국을 그리며 지우며,
뜨거워 뜨거운 이 여인의 가슴속
가지가지 생각의 자국을 그리며 지우며
푹푹 나리여 쌓인다. 그 어느 크나큰 은총도
홀아비를 불러 낮에도 즐겁게
홀어미를 불러 이 밤도 즐겁게
더욱 큰 행복으로 가자고, 어서 가자고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는 당의 은총이.
밤길 위에,
이 길을 걷는 한 여인의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쌓인다.
은총이 내린다.
은총이 내려 쌓인다.
~~~~~~~~~~~~~~~~~~
허준(許俊)
그 맑고 거룩한 눈물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그 따사하고 살틀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당신은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것이다
쓸쓸한 나들이를 단기려 온 것이다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이여
당신이 그 긴 허리를 굽히고 뒷짐을 지고 지치운 다리로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를 지날 때든가
추운 겨울밤 병들어 누운 가난한 동무의 머리맡에 앉어
말없이 무릎 위 어린 고양이의 등만 쓰다듬는 때든가
당신의 그 고요한 가슴안에 온순한 눈가에
당신네 나라의 맑은 하늘이 떠오를 것이고
당신의 그 푸른 이마에 삐여진 어깨쭉지에
당신네 나라의 따사한 바람결이 스치고 갈 것이다
높은 산도 높은 꼭다기에 있는 듯한
아니면 깊은 물도 깊은 밑바닥에 있는 듯한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그리고 이 하늘 아래 바람결 속에 퍼진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詩人)은 안다
'도스또이엡흐스키'며 '조이스'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
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안에 굴어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 것에게 엿 한 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아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량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사람은 모든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그 멀은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사람이여
이 목이 긴 시인이 또 게사니처럼 떠곤다고
당신은 쓸쓸히 웃으며 바둑판을 당기는구려
~~~~~~~~~~~~~~~~~~~~~
목구
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글어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해에 멫번 매연지나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질으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위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초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애하고 그리고 합문뒤에는 흠향오는 귀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귀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녯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水原白氏 定州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많은 호랑이 같은 곰같은 소같은 피의 비같은 밤같은 달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잦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
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
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
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
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쏠론(Solon) : 남방 퉁구스족의 일파. 아무르강의 남방에 분포함.
돌비 : 돌로된 비석
미치고 : 몹시 불고
보래구름 : 많이 흩어져 날리고 있는 작은 구름덩이
~~~~~~~~~~~~~~~~~~
어리석은 메기
어느 산골 조그만 강에
메기 한 마리 살고 있었네
넓적한 메기네
왁살스럽고 쭉 뻗친 수염
위엄이 있어
모래지, 버들치, 잔고기들이
그 앞에선 슬슬 구망만 찾았네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이
메기에게는 을시년스럽고
산골 강에 사는 잔고기들이
메기에게는 성 차지 않았네
이런 메기는 그 언제나 용이 돼서
하늘로 오르고 싶었네
하루는 이 메기 꿈을 꾸었네
조그만 강을 자꾸만 내려가
큰 강 되고,
크나큰 강을 자꾸만 내려가
넓은 바다 설레는 물 속에서
푸른 실, 붉은 실 입에 물고
하늘로 둥둥 높이 올랐네
그러자 꿈을 깬 메기의 생각엔
이것은 분명 용이 될 꿈!
메기는 너무도 기쁘고 기뻐
그 길로 강물을 내려갔네
옆도 뒤도 돌볼 새 없이
급히도 급히도 헤엄쳐갔네
앞에서 참게가 어디 가나 물으면
메기는 눈 거들떠보지도 않고
"용이 되러 가네"대답하였네
뒤에서 뱀장어가 어디 가나 물으면
메기는 눈 돌이켜 보지도 않고
"용이 되러 가네" 대답하였네
작은 강을 자꾸만 내려가
큰 강 되고
큰 강을 자꾸만 내려가
넓은 바다 나설 때
늙은 숭어 한 마리 메기 앞을 막으며
어디로 가느냐 말 물었네
메기는 장한 듯 대답하는 말
"용이 되러 가네"
늙은 숭어 웃으며 다시 하는 말
"이렇듯 늙은 나도 못 되는 용,
젊은 메기 네가 어떻게 된담!"
이 말 듣자 메기는 꿈 이야기 하였네
그 좋은 꿈 이야기 늘어놓았네
그러자 늙은 숭어 껄껄 웃어 하는 말
"그것은 다름 아닌 낚시에 걸릴 꿈"
이 말에 메기는 가슴이 철렁
그러자 얼른 눈 둘러보니
실 같이 가느단 빨간 지렁이
웬일인가 제 옆으로 흘러가누나
작은 강, 큰 강 헤엄쳐 내리며
배도 출출히 고픈 김이라
용도 꿈도 낚시도 다 잊은 메기
지렁이도 낚싯줄도 덥석 물었네
꿈에 물은 붉은 실, 붉은 지렁이
꿈에 물은 푸른 실, 푸른 낚싯줄
꿈에 둥둥 하늘로 오른 그대로
낚싯줄에 둥둥 달려 메기 올랐네
어리석고 헛된 꿈을 믿어
용이 되려 바다로 내려 왔다가
낚시에 걸려 죽게 된 메기
눈에 암암 자꾸만 보이는 것은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
그 강에 사는 작은 고기들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
그 강에 사는 작은 고기들
이것들이 차마 잊히지 않아
메기는 자꾸만 몸부림쳤네
낚시를 벗어나려 푸덕거렸네
~~~~~~~~~~~~~~~
준치가시
준치는 옛날엔
가시 없던 고기
준치는 가시가
부러웠네,
언제나 언제나
가시가 부러웠네.
준치는 어느 날
생각다 못해
고기들이 모인 데로
찾아갔네,
큰 고기, 작은 고기,
푸른 고기, 붉은 고기.
고기들이 모일 데로
찾아갔네.
그기들을 찾아가
준치는 말했네
가시를 하나씩만
꽃아달라고
고기들은 준치를
반겨 맞으며
준치가 달라는
가시 주었네,
저마끔 가시들을
꽂아주었네.
큰 고기는 큰 가시
잔 고기는 잔 가시,
등 가시도 배 가시도
꽂아주었네.
가시 없던 준치는
가시가 많아져
기쁜 마음 못 이겨
떠나려 했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간다는 준치를
못 간다 했네.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
더 준다는 가시를
마다고 하고,
붙잡는 고기들을
뿌리치며
온 길을 되돌아
달아났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달아나는 준치의
꼬리를 따르며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이때부터 준치는
가시 많은 고기,
꼬리에 더욱이
가시 많은 고기.
준치를 먹을때엔
나물지 말자,
가시가 많다고
나물지 말자.
크고 작은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준치 가시를
나물지 말자.
~~~~~~~~~~~~~~~~~~~~~~
산골총각
어느 산골에
늙은 어미와
총각 아들 하나
가난하게 살았네.
집 뒤 높은 산엔
땅속도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에
백년 묵은 오소리가
살고 있었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오소리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 갔네.
하루는 아들 총각
밭으로 일 나가며
뜰악에 널은 오조 멍석
늙은 어미 보라 했네
(어머니, 어머니,
오조 멍석 잘 보세요,
뒷산 오소리가
내려 올지 몰라요.)
그러자 얼마 안 가
아니나 다를까
뒷산 오소리
앙금앙금 내려왔네.
오소리는 대바람에
조 멍석에 오더니
이 귀 차고
저 귀 차고
멍석을 두루루 말아
냉큼 들어
등에 지고
가려고 했네.
조 멍석을 지키던
늙은 그 어미
죽을 애를 다 써
소리지르며
오소리를 붙들고
멱씨름했네.
그러나 아뿔싸
늙은 어미 힘 없어
오소리의 뒷발에
채여서 쓰러졌네.
오소리는 좋아라고
오조 멍석 휘딱 지고
뒷산 제 집으로
재촉 재촉 돌아갔네.
해 저물어
일 끝내고
아들 총각 돌아왔네.
오조 멍석
간 곳 없고
늙은 어미
쓰러졌네.
오소리의 한 짓인 줄
아들 총각 알아채고
슬프고 분한 마음
선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을 찾아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오조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범벅할까,
에라 궁금한데
떡이나 치자!)
오소리는 오조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덧거리도 힘껏 걸어
모으로 메쳐댔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뒷발로 걸어 차서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채인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동쪽 마을
늙은 소를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랫더니 늙은 소가
대답하는 말―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기장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노치 지질까,
에라 입맛 없는데
죽이나 쑤자!)
오소리는 기장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애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대가리로 받아넘겨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받긴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서쪽 마을
장수바위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장수바위
대답하는 말―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찰벼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전병 지질까
에라 시장한데
밥이나 짓자!)
오소리는 찰벼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이빨로 물고 닥채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물린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남쪽 마을
늙은 영감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늙은 영감
대답하는 말―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수수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지짐 지질까,
에라 배도 부른데
지짐이나 지지자!)
오소리는 수수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쳤네.
그러자 오소리는
콩하고 곤두박혀
네 다리 쭉 펴며
피두룩 죽고 말았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땅속에 고래 같은
기와집 짓고,
잘 입고 잘 먹던
백 년 묵은 오소리,
이렇게 하여
죽고 말았네.
그러자 아들 총각
이 산골 저 산골에
널리널리 소문놨네―
백년 묵은 오소리
둘러 메쳐 죽였으니
쌀 빼앗긴 사람
쌀 찾아가고,
옷 빼앗긴 사람
옷 찾아가라고.
그리고 땅속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은
땅 위로 헐어내다
여러 채 집을 짓고
집 없는 사람들께
들어 살게 하였네.
이리하여 어느 산골
가난한 총각 하나,
오소리 성화 받던
이 산골, 저 산골을
평안히 마음놓고
잘들 살게 하였네.
~~~~~~~~~~~~~~~
집게네 네형제
어느 바다가
물웅덩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물웅덩이에
집게 네 형제가
살고 있었네
막내 동생 하나를
내어놓은
집게네 세 형제
그 누구나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웠네
남들 같이
굳은 껍질쓰고
남들 같이
고운 껍질 쓰고
뽐내며 사는 것이
부러웠네
그래서
맏형은
굳고 굳은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했네
그래서
둘째 동생은
곱고 고운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했네
그래서
셋째 동생은
곱고도 굳은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했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하고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런데
어느 하루
밀물이 많이 밀어
물웅덩이 밀물에
잡겨버렸네
이때에 그만이야
강달소라 먹고 사는
이빨 센 오뎅이가
밀물 다라
떠들어 와
강달소라 보더니만
우두둑 우두둑
깨물었네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하던
맏형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난데없는 낚시질꾼
주춤주춤 오더니
물웅더이 기웃했네
이때에 그만이야
망둥이 미끼하는
배꼽조개 보더니만
낚시질꾼
얼른 주워
돌에 놓고 돌로 쳐서
오지끈 오지끈
부서졌네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하던
둘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부리 굳은 황새가
진창 묻은 발 씻으러
물웅덩이 찾아왔네
이때에 그만이야
황새가 좋아하는
우렁이 하나
기어가자
황새는 굳은 부리
우렁이 등에 쿡 박고
오싹 바싹
쪼박냈네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하던
셋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러나
막내동생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해서
오뎅이가 떠와도
겁 안 나고
낚시질꾼 기웃해도
겁 안 나고
항새가 찾아와도
겁 안 났네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하는
막내동생 집게는
평안하게 잘살았네
~~~~~~~~~~~~~~~~
백석(白石)
1912. 7. 1 평북 정주 ~ 1995. 1. (83세) 2001/04/30 동아일보 자료 참조
시인.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북방정서를 통해 시화(詩化)했다.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 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 자야부인에 대하여 ]
김자야(金子夜)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1932년 김수정의 도움으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약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1938년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찡으로 떠나게 되면서 이별했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1989년 백석 시인에 대한 회고 기록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바 있고, 1990년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출간했다.
분단에 의해 묻혀진 천재시인
당 시대에는 최고의 천재성을 인정받던 시인이 해방 후에는 남에서는 철저하게 묻혀
졌으며, 북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인. 남쪽에서는 단지 그가 해방 후 북쪽
을 선택했거나, 북쪽에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단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며,
북쪽에서는 사상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대만큼의 문학적 활동을 하지 못했던 시인.
그런 시인이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남쪽 독자들에게 읽혀지기 시작했으며, 많은 시
인들이 백석에게서 영향 받았음을 시인하게 되었다. 남쪽에서 백석이 재조명되면서
북쪽에서 역시 백석이 뒤늦게 재조명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
다. 1963년 작고한 것으로 알려졌던 백석이 1995년 작고한 것으로 확인된 요즘 그
의 시를 읽는 마음이 여간 지난날과는 다르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남쪽을 선택하지 않은 작가들 덕분에 남쪽을 택했던 작가들은 실상 그들
이 누려야 될 영광 이상으로 문학적 업적이 과대평가되기도 하였다. 백석의 등장은
한국문학을 그만큼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백석만의 독특한 문학적 성과
백석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이다. 1930년대 우리 문단의 특징
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카프 계열의 작가들이고, 또 하나는 이른
바 순수문학 계열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철저한 계급의식에 의해 작품
을 썼다면, 후자는 계급의식은 배제한 채 그야말로 순수문학만을 했다. 카프계열의
작가들은 당시 식민지 조국이 처한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지만, 리얼리즘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채 경도된 경향성을 보임으로 해서 문학적 성취가 뒤따르지 못했다.
순수문학을 한다는 이들은 식민지 조국에서 살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외면함으로 해
서 작가가 기본적으로 지녀야할 민중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두 계열의 작품만을 보면서 리얼리즘과 문학적 성과를 동시에 이룬 작가
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뒤늦게 우리 문단에서 평가받고 있는 백석이
야말로 리얼리즘과 당시 선진 사조였던 모더니즘을 제대로 표현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백석 시인이 주로 활동을 한 시기가 1930년대입니다. 1930년대 시는 1920년대 시와
는 차별성을 갖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령 1920년대 대표 시인으로는 김소월이
나 한용운 같은 분들을 들 수가 있는데, 그 분들이 근대성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
다고 한다면 1930년대 시인들은 그래도 현대성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더욱 간격을 넓
혀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30년대라고 하면 일본의 식민지 체제가 극
성을 떨치던 시기입니다. 후반에 가면 갈수록 한국어 말살 정책이 펼쳐졌고 그래서
민족의 생존이 위협받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석이 되살려 쓴 것은
줄기차게 우리말에 관한 되새김이나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체험 같은 것
또는 감각적인 뿌리 같은 것들이 백석의 시에 많이 나타나고 그것이 거의 주조를 이
루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런 시대에 백석이 되살려 쓴 토속적인 세계나 민속적인 고
향이나 우리말의 되새김 같은 것들은 모르긴 몰라도 나름대로 시사적인 가치가 뚜렷
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30년대 시인뿐 아니라 근현대시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시인 두 분을 들라고 한다면 흔히 정지용 선생과 백석 시인을 들게 되는데, 이 두
분이 상당히 대조적인 방법을 시에서 실천해 보이고 지향하는 세계를 각각 뚜렷하
게 각인시킨 시인으로 여겨집니다. 아마 제가 관심 있는 시어 쪽만 두고 말한다면,
가령 정지용 시인이 아주 섬세하고 묘사적인, 그야말로 영롱한 시어를 빚어냈다고
한다면 백석 시인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우리말의 서사에 깊이 스며드는 서술 언어
를 발전시킨 시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분이 보여주는 시의 대조적인 측면이
곧 우리 시가 추구하는 시어적 차별성이라고 한다면, 백석은 아마도 정지용 시인의
반대편에 세워놔도 손색이 없는 시인으로 평가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겨집니다.
(이상 김명인)
백석이 널리 알려지게 된 두 번의 계기
첫 번째는 김자야라는 기생 출신의 여인이 유산을 길상사에 대부분을 기부하면서이
다. 바로 김자야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여주인공인 것이다.
두 번째는 2004년 대입 수능시험에 그 말 많던 복수정답으로 문제된 것이 바로 백석
의 명시 <고향>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능에 나온 문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백석의 훈훈한 시 <고향>을 감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해금은 되었지만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만 머물던 백석이 이제 제도권으로 진입하게
된 계기가 이번 수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중화를 넘어 최고의 민족시인으로
이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백석을 읽고 있다. 백석의 거의 모든 시편들을 암송하고
있는 신경림 시인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최고의 시인으로 백석을 꼽고 있으며, 고
은 시인은 “근대 시사에 가장 빛나는 시인”이라고 평하고 있으며,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시집 제목을 『모닥불』, 『외롭고 높고 쓸쓸한』처럼 백석의 시제목 또는 <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오는 구절에서 했을 만큼 열광적이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
가 한국문단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백석을 지난 문단사에서 가장 독보적
인 시인으로 평가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이른바 전문가들의 평가와 달리 여
전히 백석은 대중에게 낯설기만 하다. 대중들이 시를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절음 사람들은 수능을 준비하면
서 모의고사에 나온 백석의 시에 반하여 백석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찾
아볼 수 있다. 인터넷에 보면 의외로 백석 시를 처음 접한 것이 수능 모의고사 지문
을 통해서였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이제 백석은 마땅히 자신이 이룬 문학적 성과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
한다. 창씨개명이 한창이고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어 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
에조차 당당히 우리말과 글로 시를 쓰면서 훌륭한 시편들을 남겼던 백석 시인의 작
품이 보다 대중적으로 읽히고 확산되는데 이번 시집이 기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출판사 서평)
백 석 - 글 : 고 은 -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누구에게도 말없이 새김질하는 시였다
머리에 손깍지 베게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아내도 집도 다 없어지고
압록강 끄트머리
신의주 목수네 집 문간방에 들어
싸락눈 문창을 때리는 추운날
다 가라 앉아버린 마음속 앙금
먼산 뒷섶 바위섬에 따로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 맞고 서 있는
갈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자란 평안북도
말더듬이 인듯
그 고장말 아니면
다른 말은 몰라
여학교 영어 교사를 아무리해도
다른말은 몰라
어쩌다 사랑하는 여자를 나타샤라고 불러보고는
도대체 시인이란 유난히 우렁차거나
유난히 애절하거나
그것말고
이리도 이른 봄날의 가난으로 남는 잿빛인가,
이리도
어스름인가
누구인듯
아니 달밤의 박꽃인듯
차츰차츰 밝아오는 어둠 아닌가
한국시의 가슴속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