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30(거인42회차) - 석병산 구간 : 삽당령에서 백복령까지..(남진) 언제 : 무술년(18년) 푸른달 5월 열여드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삽당령 ~ 두리봉 ~ 석병산 ~ 고병이재 ~ 생계령 ~ 백복령 (대간 약17.5km ) 시간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433 에 있습니다 요 몇 년간 계속 산행 기를 쓰면서 봄마다 했던 얘기.. 가뭄이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붙어 있었는데 올해는 지긋했던 가뭄이라는 단어는 잊어버린 것 같은 착각 속에 남북의 훈풍만큼이나 날씨도 제자리를 찾으니 산으로 들로 오지 산행을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농촌 어르신들께 조금은 죄송한 맘이 있던 터인데 가볍기만 하다 대간 길도 이제 힘들게 올라온 만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동해를 벗 삼는 명산들이 봄단장을 마치고 손짓 한다 백두대간 삽당령에서 백복령까지 (남진)
강릉시 속살인 삽당령에서 시작 외고단 갈림길에서 정선군과 만나 강릉시와의 경계를 계속 이어가는 구간으로 두리봉에서 삽당령까지 옥수를 모아 주수천을 만들어 강릉 옥계항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고 백복령 카르스트 지형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제공하지만 카르스트 지형의 피해자 자병산과의 만남과 동해가 가까운 만큼 넘기 힘든 백두다간이 만들어낸 영동과 영서의 기준을 잠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오늘 당일 산행으로는 조금 긴 산행... 그래서 갑자기 남진으로 결정되고,,, 삽당령(揷唐嶺) 도착
삽당령(揷唐嶺)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를 이어주는 35번 국도상의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다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꼿아놓고) 갔다 하여 '꼿을 삽(揷)'자를 썼다는데서 유래하며 정상에서 북으로 대기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붙여진 또 다른 유래가 있고 이 고개의 위치가 강릉과 임계 사이, 또는 동쪽 석병산과 서쪽 대화 실산 사이에 있다는 의미의 ‘사이’의 옛말 ‘샅’과 산신당과 같은 당집을 뜻하는 ‘당’이 합 해져 ‘샅(사이)’ 에 당집이 있는 고개’ 라는 뜻으로 ‘샅당령’이라 일컬은 것이 전음되어 ‘ 삽당령’이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자료 : 강릉시 홈피 정리 성황당과 유래 안내문까지 함께 한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임도가 있는석병산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바로 임도를 만나 횡단하고
처음부터 관리가 안돼 산행에 오히려 새로운 장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목계단을 힘들게 올라온다. 첫 봉에서 좌측으로
왕산 38호지 표지가 나뒹굴고 있는 헬기장 이 곳이 왕산면인데, 담 구간인 대간 대관령 능경봉에서 보게될 제왕산에서 왕산리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려말 신군부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꼭두각시로 앉혔던 우왕을 유배를 보낸 곳이 대관령 아래 아랫마을인 전설은 안고 있는 지역으로 우왕이 기거했다고 해서 왕산리가 되었다 강릉시 속살에서 정선군과 만나 함께 동행할 외고단(왕산면) 갈림길 삼각점이 있는 지도상 866봉 삼각점이 있는 북쪽으로 대관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울트라 바우길 띠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마루금은 우측으로 돌아서고
그럼 좌측으로 두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두번째가 두리봉으로 한참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 모두가 이름을 남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살다 갔는 가는 남길 수 있다. 죽어서도 이렇게 멋진 나무처럼...
눈속에서도 생명을 자랑했던 강원도에서는 구황식물로 알려진 얼레지꽃 알림판... 그러나 이제 벌써 꽃을 불 수가 없었다
두리봉 직전 갈림길... 두리봉에서 갈라진 백두만덕지맥을 여기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제 백복령까지 주수천을 만나게 된다 만덕지맥을 기본으로 많은 줄기들이 나뉘어 지고 있다. 이 줄기들은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두리봉에서 식후경 식후경 후 두리봉에서도 살짝 보이는 석병산을 향해 다시 산행은 시작되고
헬기장도 지나고
석병산 직전 약간 좌측으로 들어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石屛의 의미를...
석병산을 지나 가야할 931봉으로 이어지는 하늘길과 그 뒤로 멀리 두타 청옥 라인까지 보인다. 비교적 고도차가 없는 길이다
석병산 직전 오늘 구간 마지막 지점에서 만나게 될 임계 카르스트 지형을 미리 보여 준다
석병산 갈림길... 좌측으로 올랐다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먼저 삼각점 봉이 보이고.. 넘어로 정상석이 있다.
석병산 가는 길... 범바위가 있는 정이리골로 내려 갈 수 있는 상황지미 갈림길도 있다 정상석 직전 우측으로 내려가야 일월문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시나요? 일월문에 바위를 담아야 완성된다는...
일월문 전망대에서.... 오랜만에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하늘과의 교감... 자연이여 내게로 오라 나쁘지 않죠? 오늘만큼은... 정상석 방향 외돌괴도 펄벅이 그렇게 좋아했다는 가을하늘 못지 않은 봄하늘을 배경삼아 한 폭의 병풍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일월문 전망대에서 본 두리봉에서 백복령까지 옥수를 모아 흐르는 주수천이 동해와 만나는 강릉 옥계항
정상석 바위 아래 여기를 일월문으로 착각할 수도... 정상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 본다 수연소금님 고맙습니다. 역시 오늘도 강제로? 한컷... 석병산 정상에서 본 가야할 대관령 풍차와 그 뒤로 황병산 군부대 시설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조금 좌측으로 두리봉과 두리봉에서 우측으로 만덕지맥 산군들이 이어지고 있고 산군들 뒤로 강릉남대천이 흐르고 있다 斗里峰은 옥계면, 왕산면 그리고 정선군 임계면 사이의 산으로 두루뭉술해서 두리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어떻게 두리뭉실하게 보이나요? 사실 마을에서 봐야 하지만...왜냐면 여기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므로... 우리나라에 많은 두리봉이 있는데, 큰 산에 빌 붙어서 두리뭉실하게 살아가고, 시루봉보다는 펑퍼짐하고 더 후덕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산우님들이 알고 있는 두리봉을 잘 보세요, 두리봉은 거의 후덕하게 생겼습니다 ??? 풍수지리학에서 보면 곡식을 담는 용기 중에 말(斗)이 있는데 이런 종류의 명당은 양택으로 되는 경우가 많아 말(斗) 명당을 斗리봉이 대신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말 두리봉을 음차해서 斗圍峯이라 부르기도 한다 좀 더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만덕지맥의 주산 만덕산이 여러 갈레의 산줄기들을 분기시키고 있다. 한 번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 만덕지맥을 따라 좀 더 우측으로...지맥은 만덕봉에서 뒤에 있는 매를 닮은 매봉산으로 해서 산줄기를 이어간다 석회암 지대의 특성을 갖춘 지역에서만 자라는 풀로 "백리향"이라는 식물을 아시나요? 석병산 정상에 서식한다는데
이제 석병산의 열기도 식힐겸... 다시 되돌아 와 헬기장을 지나고
헬기장을 지나 다시 상황지미갈림길... 이번에는 병곡을 따라 호식총(虎食塚)이 있다는 성황뎅이로 하산할 수 있다 황지미凰池尾는 사일거사(四一居士) 심래조(沈來助)가 남긴 유래에 봉황이 날아오는 정자에 못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전국 최고의 생태수목원으로 알려진 정선군 임계면 임계리 화천동에 있는 백두대간 수목원 이정표가 나오는 공터도 지나고
폐헬기장이 있는 지도상 906봉도 지나고...일부 지도에 석병산 남봉이라고
빙 돌아가야 할 오늘의 날머리인 자병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백두대간과 석병산 안내판이 있는 고병이재(골뱅이재, 기뱅이재).. 고뱅이가 강원도 방언으로 무릅[膝]을 나타낸다
지금은 재로서는 기능을 상실한 듯... 하산하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바로 한계령에서 처음 발견되어 불리게 된 한계령풀 안내판이 나오지만... 강원도의 봄은 이미 여름을 향해 있는 듯... 잡풀만이....
그래서 빌려 왔습니다. 12년 백두대간시 강철님의 작품
지도상 900봉 삼각점봉으로 백두대간 안내문도 있다
자병산은 더욱 가까워지고... 하지만 아직 먼 길....
전 구간인 두타 청옥라인까지...
가야 할 931봉이 기다리고 있다
福과 壽命을 준다는 의미인가? 복수초 알림판... 세월의 흔적?
931봉에 올라 바로 앞에 보이는 지도상 922봉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간다. 직진하면 925봉으로 해서 민둥산으로...
922봉 좌측으로 명당자리의 묘지가 있다하여 이곳을 살피기 위해 말을 머물게 했다는 기르마동 마을이 보인다 12년 첫 대간 산행시 백복령에서 922봉을 넘지 못하고 기르마동으로 탈출 했었는데... 강원도의 힘...겨울 대간길은 피하는게 상책
민둥산 갈림봉인 922봉 직전 되돌아 본 걸어온 대간길... 석병산 좌로 두리봉 우로 만덕산이 조망된다
석병산도 겉으로 봐서는 석회암벽이 드러난 정상 일대와 석회암반으로 이루어진 동해 쪽 골짜기들만이 석회암의 성질을 가진 듯해 보이지만, 석병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고 한다 언제 이 아름다운 석병산도 자병산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있으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자병산을 보면서 걷는 대간길이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우측으로는 강릉 옥계항이 오늘 계속 조망된다. 산계리는 석병산(石屛山)과 자병산(紫屛山) 두 산을 기점으로 맑은 물이 양쪽에서 흘러 들어 한 때 쌍계리라 불렀다고 한다
좌측으로는 대관령에서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을 당겨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산에 아무 이름이나 붙이면 안되는데... 태형봉이 니들 넋두리 받아 주는 곳이냐? 922봉 정상도 지나고.. 우리는 단지 하루 시간을 빌려 잠시 걷는 산객일 뿐... 922봉에 기대어 살고 있는 주민들이 주인임을 잊지 말자..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와 이제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안부도 지나고
839봉에서 바라 본 자줏빛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자병산의 모습은 다가 올 수록 처참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끔 나타나는 고목이 주는 나이는 이렇게 먹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나이를 먹으면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우측으로 해서 다시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바로 강릉 서대굴 안내판이 나오고...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있는 석회동굴로 동대굴도 옆에 있다
직원리 방향 큰피원으로 하산할 수 있는 생계령
生溪嶺은 강릉 산계리 사람들이 정선 임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로 산계령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특히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이 고개에서 도토리 열매를 채취했을 것이고... 백복령보다 더 많이 이용했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이 곳에 주막집이 있었다고 하니 옛 영화를 한번 그려본다.
직원리 방향... 옛날에는 임계리와 옥계리 사이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으나 백복령(白茯嶺)이 커지면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철탑이 보이기 시작하는 869봉과 자병산이 나란히 보인다. 자병산의 높이가 873인데 869봉보다 더 낮으니...
폐헬기장을 지나고
1차 향토음식점 이정표가 나오면 대간길은 좌측으로...이제 길은 넓고 좋다
앞으로 869봉이 보이지만 좌측에 보이는 산불감시초소봉을 지나 한참을 돌아서 간다
카르스트지형 안내판이 있는 두번째 향토음식점 갈림길
석회암층으로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빗물에 의해 석회암의 탄산칼슘층의 용해되어 침식이 나타나는데 특히 백복령에서 삽당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둘러싼 임계면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정선 백복령 카르스트 지대라고 명명되어 있지만 임계 카르스트 지형이라는 구역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그래서 임계면에서는 여기에서 생태음식점까지 구간을 중심으로 탐방로 조성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카르스트 지형 안내판 뒤로 실제 카르스트 지형이 있다
석회암층 덕분에 자병산이 석회암을 주 원료로 하는 시멘트 공업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처참한 자병산의 모습은 걷고 있는 중에도 자꾸 앞을 가로막고 있어 걷는내내 참으로 안타깝다 자꾸만 낮아지는 자병산의 모습... 지도에만 덩그러니 나와 있는 높이만이 세월을 기약할 수 없으니...
철탑을 우회하면... 번호 확인이 쉽지 않다. 지도상 45번 철탑으로 추정되는데...
869봉 직전 갈림길... 앞에 보이는 봉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산불감시초소 옆으로 석병산과 두리봉을 당겨본다
44번 철탑
44번 철탑 사이로 마지막 봉인 869봉을 보면서 진행
869봉 직전 좌측으로 진행
자병산에서 생산되는 광물을 이동을 위한 도로를 횡단한다
우측으로 백복령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인다
대간 마루금은 좌측 능선으로 해서 자병산으로 올라야 하나... 현실은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하나?
이제 백복령에 가까워지고..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야 지도에 나오는 철탑을 볼 수 있는데...
정선과 강릉의 경계인 백복령이 보인다. 오늘도 17기 대간 식구들을 안전하게 움직이게 한 애마가 있는 곳으로...
백봉령 白福嶺 42번 국도 정선군 임계와 동해시 옥계를 이어주는 고개. 百復嶺 , 百腹嶺,白鳳嶺,百伏嶺 등으로 불리워지는 白福嶺는 읍지류 삼척부에 기록하기를 白福嶺으로 기록 되어 있다 업드릴 복(伏)자를 쓰는 “百伏嶺”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도를 모태로 하여 발생한 오류로 보이며 白茯笭은 한약재인 白茯을 가져다 쓴 오류 (안내판)이고 포장도로 중간쯤에 백복령 옛길이 있다고 한다
동해시가 백복령 옛길 복원사업의 명칭을 ‘백두대간 동해 소금길’로 변경하고 본격 추진에 나섰다고 한다 또 신흥마을~서학골 구간 17.5㎞는 지난해 국가 생태 탐방로 사업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mod=news&act=articleView&idxno=837145 17년
정선아리랑의 고장 정선...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 얽어매고 찌거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 헐께눈에 노가지나무 뻐덕지개 부끔덕 / 세쪼각을 세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양 / 웃짐 지고 강능 삼척으로 소금 사러 가셨는데 / 백복령 구비 부디 잘 다녀오세요." 정선 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백복령 고갯길을 넘어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의 산물이 교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소 당일 산행으로는 긴 거리... 뒤풀이도 여기서 삼겹살로 했는데... 순신간에 치워진 뒷정리... 17기팀의 팀워크 인정...
각종 준비에 힘써 주신 17기 회장님 이하 운영진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덕분에 과식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수고했습니다.
한반도의 母山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정수리인 백두산을 향해 달려온 백두대간길... 우리 국토의 골격이자 한반도의 생태축으로 역할을 담당한 대간 산줄기에 기대어 수많은 물줄기가 흐르고 또 거기에 기대어 마을이 마을이 연결되고... 수많은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면서 수많은 숨은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지만 구름이나 새처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대간길은 또 다른 장벽이였다 장벽은 서로 다른 풍속과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했던 것 또한 역사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백두대간과 9정맥을 하면서 옛 선조들이 나눈 지방 이름들을 살펴보면 결국 산줄기가 장벽이였다 특히 강원도처럼 동고서저의 지형이 뚜럿하고 동해와 접하고 있는 지형적 특성이 영동과 영서를 갈랐다 영남지방은 조령을 기준으로 남쪽을 말하는데 결국 낙동간 문화권을 말함이니 낙동정맥 천의봉까지 일 것이고 영동과 영서는 대관령을 기준으로 하기에 관서.관동지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서는 남한강 문화권이다 영서지방은 급하지 않은 완만한 지형에 눈도 많이 내려 농사에 적합하여 사람이 살기에 충분한 조건이지만 영동지방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선선하지만 경사가 급하여 백두대간은 육지로 향하는데 장벽이였다 그래서 영동지방 사람들은 영서지방보다는 주로 영남지방으로 많은 왕래를 할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조건은 영서지방을 강원도로 취급을 안하고 영동사람끼리만 결혼했다는 우스개 소리는 대간이 주는 힘이다 이미 우리가 걸었던 백두대간 육십령을 중심으로 호남과 영남 그리고 충청남.북도를 호서지방의 기준으로 삼는데 어떤 호수를 얘기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동과 영서처럼 산줄기가 이름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어찌됐든 기준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오늘 영동과 영서의 동고서저의 확실한 지형을 맛볼 수 있었던 삽당령에서 백복령까지의 대간길 오늘 백두대간길에서 강릉 옥계항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사실 산줄기만큼이나 동해도 또 다른 장벽이였다는 사실... 바다가 육지라면... 거기에 얼마 되지도 않은 땅덩어리도 또 다른 산줄기가 가로막고... 영동지방 사람들만이 느껴야 했던 우스개 소리가 척박한 땅에서도 삶을 이어왔던 자부심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 하루이다 이제는 터널이 뚫리고 도로가 새로운 소통을 열먼서 영동사람들에게도 우스개 소리가 이제는 대간이라는 장벽을 품에 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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