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과 보살의 마음은 체성이 동일하다. 우리의 한 생각이 미혹으로 어그러져 각성을 등져 여의는 까닭에 이러한 심성을 믿고서 미혹을 일으키고 업을 지어 갖가지 고뇌를 겪는다. 만약 이 탐진치를 일으키는 마음이 그대로 보살이 계정혜의 마음을 원만히 증득하는 마음임을 안다면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이 보살이 신통을 드러내고 묘법을 설함이 아니겠는가?
【역주】 《관경》에 이르시길, “제불여래께서는 곧 법계신이니, 일체 중생의 심상 속으로 들어간다.” 하셨다. 중생의 자성은 곧 제불의 법신이다. 중생심을 떼어놓고 달리 제불의 법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과 체는 둘이 아니고, 갖가지 마음은 같지 않다. 성으로 말미암아 작용을 일으키고 작용은 반드시 체를 섭수한다. 그래서 일체 중생의 심상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성과 체는 대대가 끊겨서 자도 아니고 타도 아니며, 자이면서 타이고, 들어감도 아니면서 들어감이니, 마음이 곧 성인 까닭이다.
“이 마음이 부처를 지으니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님(心作心是)”이치처럼 “마음바깥에 들어감(心外而入)”을 집착하지 말라. 마음에는 바깥이 없는 까닭이고, 자성의 부처님과 저 부처님은 본래 둘이 아닌 까닭이다. 또한 수덕修德에 공功이 있어 성덕性德이 바야흐로 드러나고, 제불이 미묘하게 작용하니 곧 중생의 성덕이 바깥으로 드러난다. 성덕은 수덕을 여의지 않아 모름지기 지성으로 칭념하여 부처님을 감득하고, 수덕은 성덕을 여의지 않아 자성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지혜. 덕능. 신통(성덕)을 보문시현普門示現한다.
제불과 중생심의 체성은 방 안의 천 개의 등불처럼 서로 비추어서 서로 갖추고(互具) 두루 갖추며(遍具), 서로 포섭하고 두루 포섭하니, 부처는 중생심 중의 부처이고 중생은 불심 중의 중생이다. 부처는 본래 함이 없고 하지 않음이 없으며, 유심이 아니고 무심이 아니며,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가 끊어지며, 또한 네 가지 문이 원융하여 문마다 서로 거두어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쓰심은 중생의 심념에 의지해 증상하고, 보리정도의 염에 수순하여 불력이 명훈가피하여 바깥으로 드러나고,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짓는 탐진치의 염은 불력이 따르지 않아 안으로 숨는다. 그래서 중생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고, 중생의 염을 염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지성심으로 감통感通하고 일심칭념이면 반드시 감응을 얻는다.
감응은 또한 여러 종류로 나뉘니, 현감현응顯感顯應. 명감명응冥感冥應. 명감현응冥感顯應 등이다. 학불인은 의혹이 많이 있어 경전에서 갖가지 수승한 묘용을 법문하거늘 왜 자신이 관세음보살을 칭념하여도 감응이 적은가? 문제의 대부분은 「수덕修德」에서 비롯한다. 설령 마음 바깥에서 법을 취하고 마음 바깥에 부처가 있을지라도 일정한 공덕을 닦을 수만 있다면 여전히 보살의 감응을 얻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글을 참조하라! 「일심으로 칭념하여 괴로움을 여의고 해탈하거늘 여하히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칭념하여야 반드시 감응하겠는가?」 (제 86칙 보충) 「무엇을 지심至心이라 하는가? 지심의 표준은 무엇인가?」 (제 88칙 보충)
【사구감응四句感應】 천태지자 대사, 《묘법연화경현의妙法蓮華經玄義》 첫쩨는 명기명응冥機冥應이니, 만일 과거에 삼업을 잘 닦아 현재에 신구의를 운용치 않아도 전생의 선근의 힘을 빌리므로 이를 명기라고 한다. 비록 영묘한 감응을 현세에 보지 못해도 은밀히 법신의 이익 되는 바가 되어,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깨닫고 알아지는 것을 명응이라 한다. 둘째는 명기현익冥機顯益이니, 과거에 선근을 심어 명기가 이미 성취되어서, 곧 부처님을 만나 뵙고 설법을 들어 현전에서 이익을 얻는 것으로 이를 현익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처음 나오셔서 가장 먼저 제도를 받은 사람처럼 현재 수행을 한 적이 있는가! 제불께서 그의 전생 근기를 비추어 보시고, 스스로 가셔서 제도하신 것이니, 곧 그 뜻이다.
셋째는 현기현응顯機顯應이니 현재 신구의로 부지런히 정근하여 게으르지 아니하면 감응이 내려올 수 있다. 이는 수달須達장자가 무릎 꿇고 간청하니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무셨고, 월개장자가 몸을 굽혀 간청하니 부처님께서 성 문턱에 서 계신 것과 같다. 곧 수행자가 도량에서 예배. 찬탄하고 참회하면서 영험과 서상을 느끼는 것이니, 곧 이것이 현기현응이다. 넷째는 현기명응顯機冥應이니 사람이 한평생 부지런히 고생하여 현세에 선행을 많이 쌓아도 현세에 감응이 나타나지 않아 느끼지 못하지만 은연중에 그 이익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현기명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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