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 년 1
토정이 아산 현감을 발령받아 부임한 것은
무인년(戊寅年, 1578년) 봄이었다.
토정의 나이예순두 살이었다.
토정은 아산에 부임하자 포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선 아산의 현황을 파악하였다.
그래서 만나는사람마다
가장 어려운 일이 무어냐고 직접 묻곤 했다.
그때 나온 것이 양어장 문제였다.
아산의 양어장에서 나오는 잉어는 워낙 맛이 좋아
아산 지방의 특산물로 이름이 높았다.
서울의벼슬아치들이 그것을 알고는
나랏님께 바치는 공물품목에 넣었는데,
중간에 손을 대는 관리들이 많아
해마다 잉어 공물량이 늘어났다.
잉어 양식량은 늘같은데 할당량이 늘어나니
백성들만 죽을 지경이었다.
토정은 그 말을 듣고
즉각 양어장을 흙으로 메꿔폐쇄시켜버렸다.
잉어를 아예 산출시키지 않아
공물량의 많고 적고로 인한
시비가 생길 겨를이 없게만든 것이었다.
토정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선조가 자신을인정했다고 해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와 절친한율곡이 권력의 핵심에 있고,
같은 화담 산방 출신인박순이 영의정이며
조카인 산해가 대사간, 산보가 집의의 직책에 올라
조정의 인정을 받고 있는
유망한관리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토정은 오히려 그런 벼슬에는
근처에도 가지않으려고 애를 썼다.
포천 현감이나 아산 현감 같은벼슬을 맡은 것은
그 나름으로 백성에 대한 사랑을
직접 실천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토정이라는 이름은 조선 팔도 어디를 가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백성을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백성으로부터 받는 신뢰,
그것이 토정의 진정한 힘이었다.
토정은 즉각 자신이 조사한 아산의 현황을
글로적어 한양으로 보냈다.
토정은 이 상소를 통해
임진대환난을 암시하면서
군대 문제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상소는 거의가 다 군대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토정은 생애의 마지막을 예견하면서도
임진대환난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문제가 가장 컸던 것이다.
"엎드려 아룁니다.
비록 만병 통치의 영단(靈丹)이 있을지라도
열병을앓는 자가 복용하면 죽는 일이 있고,
비록 불결한것일지라도 열병을 앓는 자가 복용하면
사는 일이있사옵니다.
진언을 채용하는 도리도 또한 이와같사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우생의 말을 지극히불결하다 하지 마시고
성은을 베푸시어 백성의 병을구하여주십시오.
신은 들으니 '임금된 이는 백성으로써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다'고
하였사옵니다.
신은 한 가지 일을 예로 들어
자세히아뢰겠사옵니다.
일찍이 들으니 우리 아산에서
하루에 소장을 올리는 자가
4, 5백 명에 이른다고 하기에,
신은 사람이 많아서 그러하고
풍속이 나빠서 그렇다고생각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신이 부임한 뒤에 보니
사람이 많고
풍속이나빠서그런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원통한 백성이많은 것이
다른 고을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때문이었사옵니다.
신은 청컨대 그 사유를 말하겠사옵니다.
지나간 계축년(癸丑年, 1553년)에
군적을 정비할때,
이 고을의 현감이 아전에게 매를 쳐가면서
장정을많이 끌어들이게 하였사옵니다.
아전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늙고 병들어 금방죽게 된 사람도
장정에 충당시키고,
이어서 나무, 돌,닭, 개의 이름까지도
장정으로 채워 넣었사옵니다.
그래서 장정이 다른 고을보다 배나 더 있는
것이옵니다.
비록 우리 아산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산이가장 심했던 것이옵니다.
따라서 남는 장정은 다른고을에 옮겨
보충하게 되었사옵니다.
갑술년(甲戌年, 1574년)에 군적을 개정할 때도
예전숫자에 따르고 감히 고치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나실지로는 아산의 백성으로서
아산의 군적에충당시켜도 오히려 부족한데
하물며 다른 고을의군역이겠습니까?
굳이 보내야 한다면 강아지나 장승을
몰아보낼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삼대 독자인 사람도 면역되지 못한자가 있고,
70세가 되어도 군에서 제적되지 못한 자가있사옵니다.
정원에 결원이 매우 많은데,
하물며 다른고을의 군역에 복무하는 일이겠습니까?
각종 군병과 관부의 노비가 이미 그 본인이 없으면
반드시 그 일족에게 대가를 징수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백성이 갑자기 그 대가를 마련해내지 못하면
독촉하거나 잡아들이옵니다.
그리하여 남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번을 서고 또 일족의 번을 서게 하며
여자로 하여금 자기의 군포를 바치고
또 일족의군포를 바치게 합니다.
남자는 군대 막사에서 울부짖고,
여자는 감옥에서 울부짖사옵니다.
농사와 누에 치는 일에 때를 잃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모두 없사옵니다.
부대에서달아나 타향에 숨어서
꼬리를 감춰버리며 사라져없어지기에 이릅니다.
진실로 슬픈 일이옵니다.
원통함을 호소하는 자가날마다 관정에 가득합니다.
어떤 자는 그 일족의촌수도 알지 못한다고 일컫고,
어떤 자는 아무런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변별하고자 한다면궐번은 누가 설 것이며,
만약 변별치 않는다면병정으로 인한 백성의 병폐는
마침내 구제할 수 없을것이니
장차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현의 원통한 백성이 이미 천여 명이 되니
온나라 안의 원통한 백성은 몇 만이 될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이렇기 때문에 병정으로 인한 백성의원통한 기운은
천지 사이에 꽉 차서 삼광이 흉을고하고
전염병이 치성하니 또한 두렵사옵니다.
문왕이 기산을 다스릴 때 어리고 아버지가 없으며,
늙고 자식이 없으며, 늙어서 아내가 없고
, 늙어서남편이 없는
이 네 부류의 사람은 천하의 궁민으로서
호소할 곳 없는 자들이라,
문왕이 정령을 발포하여인정을 베풀 때에는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우선하였사옵니다.
오늘날의 궁민은 문왕 때보다 많사옵니다.
그러나백성 중에는 구휼의 은택을 입는 자가 없으니
신은그윽히 성명하신 전하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본현에 사족(士族)인 김백남이란 자가 있는데,
나이예순한 살에 아직까지 배우자가 없다고 합니다.
신이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사옵니다.
어떤 사람이말하기를
'우리 현에는 사람이 부족하여
사족을 각종부역에 충원시킨 일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다른 고을로 옮겨가버리면
일족이 그 대신 침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근심하여
일족을 피하기를 함정을 피하듯 합니다.
김백남의 이름이 일찍이 군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위 삼기를 즐겨하질 않사옵니다.
그래서늙은이가 되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라고 하였사옵니다.
신이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보니
탄식과 측은함을견딜 수 없었사옵니다.
또 말하기를
'백남은 형제중에서 건실한 자이옵니다.
그의 맏누이 김씨는 나이쉰 살인데
아직 시집가지 못하였으며,
그의 동생김견이란 자는 쉰일곱 살인데
아직 장가가지 못하여
다 백남의 집에 의탁해 살고 있습니다'
고하였사옵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옵니다.
또 사족 박필남이란자가 있는데
나이 쉰이며,
정옥이란 자는 쉰다섯살이고,
정권이란 자는 예순두 살이며,
박유기란 자는일흔한 살인데
모두 아직 남의 남편이 되지못했사옵니다.
신이 들은 것만도 이와 같으니
신이 알지 못하는사람이 어찌 여기에 그치겠나이까?
사족인 자가 이와같으니
서인의 경우에는 어찌 다 헤아릴 수있겠나이까?
백성은 그 배우자를 사별하여
홀아비와 과부가 된자도 또한 궁민이라고 말하는데,
저들은 처음부터천륜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실로 천하에 지극한궁민이옵니다.
한갓 어진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침해를 입어 그들의 생리로 하여금
더욱궁하기가 이와 같게 하였으니
소장을 올리는 일을어찌 그만 둘 수 있겠나이까?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옵니다.
근본이 견고해야나라가 편안한 것이옵니다.
지금 바다 건너에는 강한적이 칼을 갈고 있고,
안에는 원통한 백성이 많으니
혹이나 위급한 일이 있게 된다면
어찌 구제할 수있겠나이까?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니
나라가 편안하기를기필하기 어렵사옵니다.
만약 이것을 염려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은 소홀히 여기는 데서 일어나고,
화는 뜻밖에일어나는 것이니
대처의 방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사옵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급히 팔도에명령하시어,
그 호수(戶數)를 감손하고 그 군인의정원수를 감한 뒤에
현재의 군사를 잘 운용하고 잘길러서
뒤늦은 후회가 없게 하시옵소서.
대체로 백성이 흩어지는 것을 근심하면
모름지기 은덕으로 위무해야 할 것이옵니다.
잡아들이는 것만이능사는 아니옵니다.
군사가 적은 것을 근심하면
모름지기 의용을 가르쳐야 할 것이고,
숲처럼 수만 많기를 숭상할 것은 아니옵니다.
지금은 정병이필요한 때이지
숫자만 따질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옛날 주나라가 쇠미하였을 때
열국이 전쟁으로강함을 다투었사옵니다.
위나라가 진나라와 싸우게되니
누구나 진나라가 이길 것이라고 말하였사옵니다.
왜냐하면 진나라의 군사는 많고도 강하였는데
위나라 군사는 적고도 약했사옵니다.
수가 많고 적은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쉽게 알 수 있지만,
기세가강하고 약한 것은
지혜 있는 사람도 살피기 어려운것이옵니다.
그때 위나라의 신릉군은 능히 그 형세를 살필 수있었기 때문에
한단에서 진나라 군대를 방어할 수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사옵니다.
사람들이 나를위하여 죽고자 한다면
수만의 군사만 가지고도 저들을꺾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죽고자하지 않는다면
비록 백만의 대병을 가졌더라도
홀로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명령을 내리기를 '
부자가 함께군중에 있으면 아버지는 돌아가고,
형제가 함께군중에 있으면 형이 돌아가고,
독자로서 형제가 없는자는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라'고 하니,
돌아가는군사가 2만이나 되었사옵니다.
신릉군은 그 나머지군사로써 진나라를 이겼사옵니다.
신릉군이 더욱 증원이 요구될 때를 당해
감하고 또감하고서도마침내는 성공한 것은,
사람의 숫자만많은 것은
적은 사람이 화합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 반대이옵니다.
태평한세상에 처해 있으면서도
오히려 적이 오기 전에 먼저나라의 근본을 절단합니다.
오는 자를 위로하고
모인자를 편안하게 하는 도리를 모릅니다.
오직 남의 아버지를 가두고
남의 형을 가두는것으로 좋은 법을 삼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독자나형제가 없는 자로 하여금
자기의 병역에 분주하게 할뿐만 아니라
또 그 일족의 병역에 분주하게 하며,
다만 일족의 병역에만 분주하게 할 뿐 아니라
또 닭,개, 나무, 돌까지도
일족의 병역에 분주하게 합니다.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라고 한 명령이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사옵니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가
장가들고시집가는 일을 알지 못한 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곤궁 속에서 죽어가는 자가 허다합니다.
이때를 당하여 지혜와 계략이 있는 자가
수만의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나라를 침범한다면
백성의마음은 와해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원통해하고 민망해 함이 워낙 커서,
전쟁이 발발해 몇달이나 며칠이 못 되어도
한 지아비도 나라를 위하여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비록 요순을따르고 탕무를 본받지 못할망정,
차마 성명하신전하로 하여금
위나라 공자 신릉군만 못하게 만들수야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일족이 대신 입역하는 법을폐지한다면,
병역을 싫어하는 자가 돌아보고 염려할것이 없어서
또는 옮겨가서 병역을 기피하려는 마음이있을 것이니,
부족되는 군의 수가 더욱 비고 성기게될 것이다.
그러면 이보다 더 큰 근심거리는 없을것이다
'라고 합니다.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족을 대신징집하면
장정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서
어떤 이는 중이되고,
어떤 이는 도적이 되곤 합니다.
그리하여 백성은 날로 적어집니다.
이것으로 일족을징집하는 것은
백성을 흩어지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알게 됩니다.
그런데 군대 수가 어떻게 비고 성기지않게
할 수 있겠나이까?
일족을 대신 징집하지 않는다면,
생업에 안도하여
어지럽게 흩어진 자가 도로 모일 것이니
백 사람을잃고 천 사람을 얻게 되어
군액이 비고 성긴 것은그리 근심할 바가 아닐 것이옵니다.
또 병역을 져야 할 백성이 타관에 옮겨가 있는 곳은
다 이웃의 다른 나라에 간 것이 아니고
팔도 안에있으니
만약 그들이 가 있는 곳의 관으로 하여금
하나하나 찾아내어 그 곳의 병역에 복무할진대
어찌본 고을을 피하여 다른 고을의 병역에
복무하겠나이까?
본 고장에 있어도 일족의 대역이 없고
다른 고을에정착하여도
또 '병역에서 벗어나' 편안히 있을 수없다면
비록 상을 주며 옮기라고 하여도 옮기지 않을
것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