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5월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에 등극했다. 불과 30세이던 1799년 쿠데타를 일으켜 ‘종신 통령’에 취임한 그는 35세이던 1804년 황제가 된다. 하지만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 패배 후 엘바 섬에 유배된다.
약 1년 동안 엘바 섬에 갇혀 지내던 나폴레옹이 탈출한다. 당시 프랑스 최대의 일간지 〈모니퇴르〉의 보도가 흥미롭다. 나폴레옹이 탈출한 1815년 3월 1일 〈모니퇴르〉는 “살인마, 소굴에서 탈출!”이라고 보도했다. 그 후 “괴수, 카프 도착”, “폭군, 리용 통과”, “약탈자, 수도 60마일 지점 출현”으로 표현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윽고 나폴레옹이 수도 파리 인근까지 오자 〈모니퇴르〉는 “보나파르트, 급속히 전진! 그러나 파리 입성을 불가”라고 썼다. 하지만 곧 이어 “황제, 퐁텐블로에 도착하시다”로 바뀌었다. 퐁텐블로는 베르사유 축성 이전에 황제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호화로운 성이다.
나폴레옹은 집권 후 황궁으로 꾸며 관저로 사용했던 튀일리 궁전으로 옮겨간다. 〈모니퇴르〉는 급기야 “어제 황제 폐하께옵서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튀일리 궁전에 듭시었다”라고 상전벽해의 환골탈태를 선보였다.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친 우리나라의 어떤 신문이 떠오른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부터 100년 후인 1904년 5월 18일 〈광야〉와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가 태어났다. 이육사는 무려 열일곱 차례나 투옥된 끝에 결국 옥사한 의열단 단원으로, 독립유공자이다. 출생지인 경북 안동에 ‘이육사 문학관’이 있고, 대구시 북구 북성로 48-1에 ‘264작은문학관’도 있다.
그에 견줘 1915년 5월 18일 태어난 서정주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걸었다. 갖은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그는 독립 이후 자서전을 통해 “미래의 일본 주도권은 기정 사실이니 한국인도 거기에 맞추어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친일을 하였노라 변명했다. 상황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 색깔을 바꾸는 도마뱀처럼 그는 모니퇴르적 변용을 선보였던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를 차용하자면, “광주 학살 독재자를 찬양하기 위해 / 나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그렇게 요란하게 살았나 보다”쯤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