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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18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역사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가 우승 기념으로 받은 나무로 일장기를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손기정기념재단
2024년 파리 올림픽의 개막(7월 26일)이 99일 앞으로 다가왔어요.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하계 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고, 과연 어느 종목이 될지도 관심사라고 합니다. 하계 올림픽 금메달 100개를 달성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옛 소련 포함), 독일(옛 동독 포함)을 비롯해 12국뿐이고, 한국은 지금까지 금메달을 96개 획득했다고 해요.
하계 올림픽은 1896년 제1회 대회가 열렸고 올해가 33회예요. 우리나라가 처음 출전한 하계 올림픽은 8·15 해방 3년 뒤인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이었습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 2개 처음 따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 뒤인 1948년 7월 29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은 낯선 국기를 들고 들어서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던 손기정이었습니다. 그가 태극기를 들고 선수단 앞에 선 기수(旗手)를 맡았던 거예요.
망해버린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남의 나라 국기인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선 손기정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우승 기념으로 받은 나무를 끌어안고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7종목 선수단 67명은 당당히 태극기를 앞세우고 경기장에 섰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곧 수립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독립국 대우를 받았던 것이죠. 사실 우리나라 선수단은 같은 해 1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첫 올림픽 출전이었죠.
하지만 갓 식민지에서 벗어난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었던 한국 선수들은 출전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생을 겪었습니다. 복권을 발행한 끝에 간신히 참가 자금을 모았고, 지금은 12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면 되는 길을 9국 도시 12곳을 거쳐 무려 21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대한민국 선수단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제1호 올림픽 메달이었습니다. 왼쪽 고막이 터지는 부상을 겪고도 8강전에서 승리했고, 준결승전에서도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편파 판정에 눈물을 삼켜야 했죠. 역도 미들급의 김성집 선수도 동메달을 땄습니다. 전체 성적 종합 32위, 아시아 국가 중에선 2위였습니다. 귀국한 선수단은 종로 2가에서 서울역까지 가두 행진을 했습니다. 새 나라를 열었다는 광복의 기쁨이 그 위에 고스란히 겹쳐졌을 것입니다.
1966년부터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6·25전쟁 중에 열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우리 선수단은 동메달 2개를 획득하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선 복싱의 송순천이 대한민국 첫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일본 땅에서 태극기를 휘날린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선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로 종합 순위 26위에 올랐습니다.
1966년 태릉선수촌이 설립돼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이 이뤄지는 등 국가 차원의 스포츠 육성이 본격화됐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마침내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이 탄생했죠. 첫 올림픽 출전으로부터 28년 만에 이뤄진 값진 성과로, 그 주인공은 남자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의 양정모였습니다.
양정모는 "왜 우리는 매번 정상의 문턱에서 돌아서야 하느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며 "막상 시상대에 서자 고통스러웠던 체중 감량이 떠올랐다"고 회고했습니다. 몬트리올에서 여자 배구가 딴 동메달이 우리나라 단체전의 첫 메달이었어요. 종합 순위는 무려 19위였습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사설에서 '체력은 국력이라는 상징을 그대로 빌린다면 이번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는 이제 우리 국력이 세계 19위라는 것을 선명히 상징한 축전(祝典)이 됐다'고 썼습니다.
땀으로 만들어낸 메달 366개
1980년대 들어서 대한민국은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했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선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로 메달 수가 훌쩍 늘어나 종합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선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였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고 순위로, 당시의 놀라운 성적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는 국민이 많습니다.
동계 올림픽에선 1988년 캘거리 올림픽 때까지도 메달이 없었으나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선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종합 순위 10위에 올랐습니다.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쇼트트랙의 김기훈이었습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선 금 6, 은 6, 동 2로 종합 순위 5위까지 차지했죠.
그 과정에서 숱한 감격의 순간과 스타들이 배출됐습니다. 신궁(神弓)이라 불렸던 양궁의 김수녕은 세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등 모두 6개의 메달을 휩쓸었습니다. 마라톤에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황영조가 금메달을 따내 손기정의 한(恨)을 풀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수영에서 첫 금메달을 땄고 역도의 장미란은 세계신기록을 들어 올렸죠.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선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의 여왕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하계 올림픽에서 총 287개(금 96·은 91·동 100), 동계 올림픽에서 79개(금 33·은 30·동 16)의 메달을 획득했는데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선 또 어떤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져 국민을 감동·열광하게 할지 기대됩니다.
▲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정모 선수가 환영 인파에게 손을 흔들고 있어요. /조선일보DB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오른쪽) 선수가 자신을 환영해주는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어요. /조선일보DB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바벨을 들어 올리는 모습. /고양시
▲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선수들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이덕훈 기자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