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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대체(大體)
當舜之時 有苗氏不服 其不服者 衡山在南 岐山在北 左洞庭之波 右彭澤之水 由此險也 以其不服 禹請伐之 而舜不許曰 吾喩敎猶未竭也 久喩敎 而有苗氏請服 天下聞之 皆薄禹之義 而美舜之德 詩曰 載色載笑 匪怒伊敎 舜之謂也 問曰 然則禹之德不及舜乎 曰 非然也 禹之所以請伐者 欲彰舜之德也 故善則稱君 過則稱己 臣下之義也 假使禹爲君 舜爲臣 亦如此而已矣 夫禹可謂達乎人臣之大禮也
飜譯
순임금 시절에 유묘씨라는 사람들이 복종해 오지 않았다. 그들이 복종해 오지 않은 이유는 남쪽으로는 형산이, 북쪽에는 기산이, 왼쪽에는 동정의 파도가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팽택의 물이 그들을 험하게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복종하지 않자 우가 그들을 치자고 청하였다. 이에 순임금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깨달아 가르침을 아직 끝까지 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들을 깨우치고 가르쳐주자 마침내 유묘씨들은 복종해 왔다. 세상이 이 소문을 듣고 모두 우의 의로움은 엷고, 순임금의 덕은 높다고 여겼다.
詩經에서는 이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온화한 얼굴빛에 웃음 띠며, 화 내시는 일도 없이 가르쳐 주시네.’
이는 순임금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의 덕이 순임금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인가?”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우가 그들을 치자고 청한 것은 순임금의 덕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좋은 것은 임금에게, 잘못된 것은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신하의 도리이다. 만약 우가 임금이었고, 순이 신하였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는 신하된 자로 대체에 통달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紬繹
꿈보다 해몽이 좋은 이야기이지만, 대체(大體)라는 중요한 말이 나온다. 대체(大體)는 일이나 내용의 기본적인 큰 줄거리라는 뜻으로 잘 쓰는 말은 아니지만, 도대체 또는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라는 부사의 형태로는 많이 쓰이는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라는 사람은 신하된 자로 대체(大體)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전체적인 줄거리가 탄탄하게 완성되어 있으면 그 세부적인 내용도 따라서 알차고 탄탄해질 수밖에 없다. 수학 또한 대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세부적인 응용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우리의 인생 또한 전체적인 줄거리인 대체를 알고 있다면 매 순간의 삶을 얼마든지 알차게 잘살 수 있고, 매 순간 가장 바람직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생에 있어 대체(大體)인가? 세상에서 싸움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은 싸우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싸우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겨낼 수가 없다. 싸우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이겨낼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공부하고 신나게 노는 사람이다. 억지로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이 신나게 공부하고 노는 사람보다 어떻게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고찰해보면 인생에 있어 대체(大體)는 마음이 없는 것과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삶의 매 순간 마음이 없고, 무엇과 신나게 놀 수 있다면 우리 삶에는 그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대체(大體이고, 우리 삶의 本質인 것이다.
시간에는 현재(始, 核心)와 미래(終, 結果)가 있고, 일에는 본(本, 核心)과 말(末, 結果)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성(性, 核心)과 정(情, 結果)이 있다. 현재는 우리 삶의 핵심이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虛像이다. 본(本)은 일에 있어서 핵심이지만 말(末)은 本이 쌓여서 미래에 만들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性은 인간의 핵심이지만 情은 인간 감정이 표현되는 결과일 뿐이다. 인간이 삶에 있어서 고통과 번뇌를 갖는 이유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묶여있고, 本보다는 末을 더 중요시 여기고, 性을 모르고 情으로 살기 때문이다. 핵심 보다는 결과라는 虛像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모순이 만들어지고, 그 모순이 인간에게 고통과 번뇌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本末이 전도(轉倒)된 삶을 살고 있기에 모순과 괴리감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 모순과 괴리감이 마음의 고통과 번뇌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래(未來)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瞬間)인 현재(現在)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인 현재에 충실하면 그에 따른 미래는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미래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인간은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만이 실체(實體)일 뿐인데, 미래라는 虛像에 얽매어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과 괴리감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고통과 번뇌는 바로 이 모순과 괴리감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인 현재만이 實體이며, 미래라는 虛像에 얽매어 있는 것이 바로 마음(관념)이다. 虛像이고 거짓인 마음(관념)이 많으면 實體를 정확하게 볼 수가 없고, 들을 수가 없게 된다. 나는 그런 경험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마다 겪는다. 나는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어떤 주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이것을 듣는 사람은 모두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 사람의 의식수준에 따라 내 말을 모두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자신의 생각으로 듣고, 본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가 한 말은 가장 眞理에 가까운 말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해석한다. 예수가 한 말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그가 곧 예수의 삶을 살 터인데, 예수가 한 말을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眞理에서 크게 벗어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이 우리가 보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더욱 극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소위 눈의 맹점이라는 것이다. 망막의 한가운데, 시신경이 안구와 연결되는 부위에는 광수용체가 없는 맹점이 있다. 이것은 다음 페이지의 그림으로 금방 알아낼 수 있다. 두뇌가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 페이지의 그림을 눈높이에 들고 왼쪽 눈을 감아보라. 그리고 오른쪽 눈으로 격자무늬 그림의 한가운데 있는 점을 주시하라. 별 모양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따라 그림을 앞뒤로 움직여보라(약 25~32cm 거리). 별 모양이 사라지는 것은 상이 맹점에 맺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른쪽 눈을 감고 별을 주시하라. 격자무늬 그림 속의 점이 사라질 때까지 그림을 앞뒤로 움직여보라. 점이 사라지면, 점은 없어졌지만 격자무늬는 손상되지 않고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이것은 두뇌가 스스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늬를 그 자리에 채워 넣기 때문이다.
주변세계를 볼 때도 우리는 우리의 시각에 맹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빈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든지, 페르시아산 장식 카페트를 들여다보고 있든지 상관없다. 두뇌는 마치 구멍난 곳을 짜집기하는 능숙한 수선공처럼 교묘하게 빈 곳을 채워 넣는다. 그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두뇌는 우리의 시각적 현실이라는 직물을 너무나 능수능란하게 짜깁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출처; 마이클 탤보트의 ‘홀로그램 우주’)
마음은 거짓된 虛像이다. 세상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듣는다는 것은 거짓으로 세상을 사는 것에 다름 아니다. 거짓으로 사는 삶에는 온갖 모순과 괴리감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과 괴리감이 인간에 고통과 번뇌를 안겨주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대체(大體)는 미래(終, 結果)가 아닌 현재(始, 核心)만을 살고, 일함에 있어서는 말(末, 結果)에 휘둘리지 말고 본(本, 核心)을 다하는 것이며, 사람을 대할 때는 정(情, 結果)이 아니라 성(性, 核心)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 삶에는 모순과 괴리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순과 괴리감으로 비롯되는 고통과 번뇌도 없다. 삶이 오직 현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장 가치가 높다. 그런 가치들이 하루하루 쌓여서 미래에 멋진 결과로 나타날 뿐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詩經의 노송 경지습(魯頌 駉之什)에 있는 반수(泮水)라는 시를 감상해 보자.
思樂泮水 薄采其芹 즐거워라 반궁의 흐르는 물 그곳에서 미나리나 캐어보세
魯侯戾止 言觀其旂 노나라
임금님이 오시니 그분의 쌍룡기가 보인다네
其旂茷茷 鸞聲噦噦 그분의 쌍룡기는 펄럭펄럭 말방울 소리는 딸랑딸랑
無小無大 從公于邁 늙은이
젊은이 구분 없이 모두가 임금님을 따라가네
思樂泮水 薄采其藻 즐거워라
반궁의 흐르는 물 그곳에서 마름 풀 캐어보세
魯侯戾止 其馬蹻蹻 노나라
임금님이 오시니 그분의 타신 말 늠름하네
其馬蹻蹻 其音昭昭 그분의
타신 말 늠름하니 그 울음소리도 밝고 맑다네
載色載笑 匪怒伊敎 온화한
얼굴에 웃음 띠며 성내는 일도 없이 가르치시네
思樂泮水 薄采其茆 즐거워라
반궁의 흐르는 물 그곳에서 순나물 캐어보세
魯侯戾止 在泮飮酒 노나라
임금님이 오시니 반궁에 앉아 술을 드신다네
旣飮旨酒 永錫難老 맛있는
술 거나하게 드셨으니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사시겠지
順彼長道 屈上羣醜 길게
난 저 길을 따라가셔서 오랑캐 무리 굴복시켰다네
穆穆魯侯 敬明其德 온화하신
노나라 임금님은 경건하게 그 덕을 밝히신다네
敬愼威儀 維民之則 거동이
경건하고 신중하시니 모든 백성들의 모범이시네
允文允武 昭假烈祖 진실로
문과 무를 갖추시어 위대한 열조들이 강림하시네
靡有不孝 自求伊祜 효도하지
않은 적이 없으시니 스스로 구하신 복 이도다
明明魯侯 克明其德 밝고
맑은 노나라 임금님은 훌륭히 그 덕을 밝히시어
旣作泮宮 淮夷攸服 반수
가에 반궁을 세우시니 회수 가에 오랑캐 굴복한다네
矯矯虎臣 在泮獻馘 범처럼
용맹스런 신하들은 반궁에 베어온 귀 바치고
淑問如皐陶 在泮獻囚 고요처럼
심문 잘하는 이는 반궁에 포로들을 바친다네
濟濟多士 克廣德心 쓸모
있는 많은 무사들은 착한 마음 더욱 더욱 넓히어
桓桓于征 狄彼東南 늠름하게
위풍당당 출정나가 동남쪽 오랑캐 물리쳤다네
烝烝皇皇 不吳不揚 그
많고 빛나는 무공에도 떠들지도 자랑도
아니하고
不告于訩 在泮獻功 무공을
다투는 일도 없이 반궁에 모든 공을 바친다네
角弓其觩 束矢其搜 뿔
장식한 활은 구부정하고 묶어 놓은 화살은 많기도 하네
戎車孔博 徒御無斁 무기
싫은 수레는 크고 넓은데 수레와 군사는 잘도 따르네
旣克淮夷 孔淑不逆 회수가
오랑캐를 무찌르고 순하고 착한 마음 순종을 하네
式固爾猶 淮夷卒獲 우리님의
계략 굳게 행하여 회수가의 오랑캐 평정했다오
翩翩飛鴞 集于泮林 훨훨
날고 있는 저 올빼미 반궁의 숲 속으로 내려앉아서
食我桑黮 懷我好音 우리
뽕나무 오디 따먹고서 나에게 좋은 소식 들려준다오
憬彼淮夷 來獻其琛 잘못을
깨우친 회수 오랑캐 스스로 찾아와 보물 바치니
元龜象齒 大賂南金 커다란
거북에다 귀한 상아라 남방의 금도 많이 있다네
반궁(泮宮)은 노나라의 학교로 노나라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반궁을 세운 노나라의 임금이 반궁을 중심으로 훌륭한 정사를 펼치는 모습을 백성이 기리고 칭송하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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