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잡아가지 말라고 항의하다가
증언자 : 김재호(남)
생년월일 : 1948. 5. 17(당시 나이 32세)
직 업 : 양돈업(현재 무직)
조사일시 : 1989. 4
개 요
5월 18일 저녁 중소기업은행 앞을 지나던 김재호 씨는 대학생을 끌고 가는 공수들에게 항의를 하다가 구타를 당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무릎관절의 통증이 심해 고생하고 있다.
학생을 잡아가지 마라
1980년 당시 나는 유덕동에서 양돈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네 식구가 먹고사는 데는 크게 불편이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5월 18일 저녁, 시내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후 거리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통금시간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금남로 5가에 있는 중소기업은행 앞을 지나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공수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내가 만류했다.
"학생을 끌고 가지 마라. 잡아가서 무엇 하려고 그러느냐?"
"당신이 뭐길래 간섭하느냐?"
그러고는 곤봉으로 나를 내리쳤다. 그 통에 윗입술이 찢어지면서 이 두 개가 부러졌다. 젊었을 때 주먹세계에서 싸움께나 하고 다녔지만 너무 갑자기 당한 일이다 보니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또다시 워커발로 걷어찼다. 그대로 쓰러진 나를 네 명의 공수가 동시에 달려들어 온몸을 지근지근 밟고, 곤봉으로 두들겨팼다.
나와 함께 있던 친구 역시 등치가 좋았으나 공수들의 기세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공수들이 나를 너무 심하게 때리자 말주변이 좋았던 그 친구가 사정을 하여 겨우 풀려났다.
곧바로 친구의 등에 업혀 양동의 '동진외과'로 가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다리에 부상이 심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나 일단 집으로 왔다.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다음날 병원에 가려다가 "부상자는 요시찰 인물이 되어 감시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서워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지 못하고 한약, 양약 등을 먹으며 자가치료를 했다. 무릎에 통증이 심해 1년 지나서 겨우 걸을 수가 있었다.
아픈 나로 인해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아내가 혼자서 돼지를 키웠는데 그나마 1982년, 돼지값 파동으로 집안이 폭삭 망했다. 돼지고기 한 근 값이 2백원까지 내려갔으니까 본전도 찾지 못한 셈이다. 다행히 원호대상자인 아버님의 연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날씨가 궂으면 무릎관절이 심하게 부어오르고 통증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한다.
재작년(1987년)에 기독병원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오른쪽 무릎관절에 뭐가 들어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수술해도 완치되지 않는다고 하니 무릎의 상태가 심해지면 수술할 생각이다.
작년(1988년)에 부상자 신고를 했다. 시민군으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다쳤기 때문에 항상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나 광주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다.
(조사.정리 신봉화) [5.18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