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 식의 이름과 역할
이와 같이 우주의 근원은 오직 아뢰야식으로, 일체의 현상은 모두 여기에서 전개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유식(唯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아뢰야식의 전개를 그 역할에 따라 여덟 가지로 나눈 것이 팔식(八識)의 이론이다. 즉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의 전오식(前五識)과 제6의 의식, 제7의 마나식, 제8의 아뢰야식이 그것이다.
① 전5식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오식(前五識)은 단순한 감각작용으로서, 안식(眼識)은 빛깔만을 인식하고, 이식(耳識)은 소리만을 인식하며, 비식(鼻識)은 냄새를 맡고, 설식(舌識)은 맛을 보며, 신식(身識)은 촉감에 의해 외계를 인식할 뿐이다.
② 제6 의식
제6의 의식(意識)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의지하고 않고 단지 그것들의 종합된 경험에 의해서 비교·추리·추억 등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가령 이식(耳識)이 어떤 소리를 들었다면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사람의 음성이라면 남자인가 여자인가, 또 처음 듣는 것인가, 들어본 것인가 등을 인식하는 작용을 한다. 우리는 흔히 직접 보고 듣지 않고도 어떤 일을 인식할 때 ‘육감(六感)이 어떻다’는 말을 하는데, 이 육감이라는 것이 바로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직접 의지하지 않고 전오식이 끼친 경험만에 의해서 인식하는 제6 의식의 인식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③ 제7 마나식
제7 마나식[末那識]의 마나(末那)란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를 음사(音寫)한 것으로, 흔히 뜻[意]이라고 옮기며, 의지(意志)를 의미한다. 이 마나식은 앞의 전6식(前六識)과 뒤의 제8 아뢰야식 사이에 있으면서 사고하고 분별하고 사량(思量)하는 것이다. 이 제7식이 제6 의식과 다른 점은 항상 쉴 새 없이 사량한다는 점이다. 즉 제7식은 제8식을 대상으로 인식작용을 일으키고, 제6식은 이 마나식을 근거로 하여 여러 가지 대상을 인식한다. 이 때문에 제6식은 마치 마음 밖에 실체가 있는 듯이 인식하여 일체의 만물이 공간적으로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외계의 사물[法]과 그것을 인식하는 자아[我]가 실재한다는 미혹의 생각을 낳는다. 이 미혹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악업을 짓고 그릇된 인생관, 그릇된 세계관을 지닌 채 생사(生死)를 무한히 유전(流轉)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계의 사물과 그것을 인식하는 자아에 대한 그릇된 고집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올바로 체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 두 가지 집착[我執, 法執]만 버리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④ 제8 아뢰야식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간직한다[藏]’는 뜻을 지닌 식이다. 일체 선·악의 종자를 간직[含藏]하고 있다는 뜻에서 능장(能藏)이라고 하고, 그 속에 간직되어 있는 종자를 소장(所藏)이라고 한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각각의 식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정의하면, 전오식은 빛깔[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觸] 등이 나타났을 때만 그것들을 알려줄 뿐 영구적이지도 못하고 자세히 살펴 사랑하지도 못한다[非恒非審]. 제6 의식은 그러한 전오식을 토대로 이미 지나간 잠재의식[過去落謝塵]을 되살려[再生] 곧잘 비교·추억·추측 등 살피고 사량하는 일을 하지만 역시 영구적이지는 못하다[審而非審]. 이에 비해 제7 마나식은 제8 아뢰야식에 의지하여 그 주관[見分]을 대상[所緣]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식의 사량을 끊임없이 영구적으로 행한다[亦恒亦審]. 또한 제8 아뢰야식은 선·악의 종자를 간직한 채 항상하는 것이지만, 살펴 사량하지는 못한다[恒而非審].
한편, 아뢰야식은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하는데, 이숙(異熟: 달리 익힌다)이란 선·악의 업인(業因)으로 말미암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과(果)를 얻는다는 뜻이다. 즉, 결과가 원인과는 달리 맺어진다는 뜻으로, 모든 과보를 초래하는 원인은 선이거나 악이지만 그 원인이 무르익어 결과를 이루었을 때 그 결과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는 것이다[因是善惡 果唯無記]. 간단히 말하면, 이숙(異熟: 다름게 익음)은 선인낙과(善因樂果: 선한 원인은 즐거운 결과를 낳음) · 악인고과(惡因苦果: 악한 원인은 괴로운 결과를 낳음)의 불교의 인과사상 또는 교의를 말한다. 이와 같이, 이숙, 즉 선업과 악업이 각각 낙(樂)과 고(苦)로 성숙되어 나타나는 것을 업이숙(業異熟)이라고도 한다. 또 제7 마나식을 사량식(思量識 )이라고도 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7식만이 제6식과 제8식의 사이에 있으며 항상 살펴 생각하고 헤아리기 때문이다. 한편 전육식은 요별식(了別識)이라고도 하는데, 육식은 어느 것이나 객관 대상[境相]을 요별(了別)하기 때문이다.
이상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 (항이비심, 恒而非審) — 이숙식(異熟識) — 심(心)
제7 마나식[末那識] — (역항역심, 亦恒亦審) — 사량식(思量識) — 의(意)
제6 의식(意識) — (심이비항, 審而非恒)
전오식(前五識) — (비항비심, 非恒非審) — 요별식(了別識) — 식(識)
3. 주관과 객관의 관계
우리는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등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 우리 인식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객관이라고 하고, 이러한 객관적 현상을 느끼는 각 개인의 마음을 주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계의 자연현상은 모두가 우리들의 안식, 이식 등 주관의 활동에 의해 나타난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비단 외계의 현상 뿐 아니라 우리 마음 속의 현상도 모두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제8 아뢰야식이 변화한 현상으로, 마음 이외에 어떤 실체라든가 본체라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이 아뢰야식연기론의 주장이다. 즉 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물속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체의 모든 것은 아뢰야식에서 전개된 것이고 마음 이외에 따로 사물[法]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인식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즉 어두운 그믐밤에는 달을 볼 수 없듯이 외계의 실물이 없다면 어떠한 인식작용이나 자연현상도 인정될 수 없을 것이며, 더 나아가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등의 심리적 현상도 일어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전개된 이론이 사분설(四分說)과 삼류경설(三類境說)이다.
다시 말해 외계의 객관적 사물은 모두 우리들의 심리적 작용이 빚어낸 표상 또는 현상이라는 것으로, 이 경우 주관과 객관의 관계 내지는 주관이 객관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 것이 다음의 사분설이다.
① 상분
상분(相分)의 상(相)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객관적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경우 직접적으로 사물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일단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 마음속에 비추고[映寫], 그 비쳐진 그림자[影像]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대상 즉, 사물의 영상을 상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모양인 것이다. 이런 인식의 대상 즉, 객관을 경(境)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거울에 한 송이의 꽃을 비추었다고 할 때 거울은 우리들의 마음 즉, 주관이고 거울에 나타난 꽃은 상분이다.
② 견분
견분(見分)의 견(見)은 주관을 뜻하는 것으로, 앞에서 든 비유로 설명한다면 거울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속에 비춰진 모습 즉, 상분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을 견분이라고 한다.
③ 자증분
자증분(自證分)은 주관인 견분이 행하는 인식작용을 다시 확인하는 작용을 말한다. 앞에서 든 비유에서 견분이 거울의 비추는 힘이라면 자증분은 거울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④ 증자증분
자증분이 주관과 객관 양자의 인식을 확인하는 것인데 반해 증자증분(證自證分)은 내면적인 반성과 자각의 작용을 말한다.
이상의 사분설을 물건을 자로 재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한다면 자로 잴 대상인 물건은 상분이고, 재는 자는 견분이며, 자로 잰 결과 몇 자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자증분이고, 다시 몇 자 몇 치라고 장부에 써 넣는 것은 증자증분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오직 심식(心識)의 작용으로서 결국, 마음 스스로가 마음을 인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사분설이 객관적 사물을 인식하는 주관의 정신작용을 설명한 것인데 반해 삼류경설은 인식의 대상[境 ]을 그 성질에 따라 성경(性境), 독영경(獨影境), 대질경(帶質境)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① 성경
성경(性境)이란 아뢰야식 가운데 간직되어 있던 종자로부터 나타난 실제 성품[實性]을 지닌 대상을 말한다. 가령 한 마리의 호랑이를 대상으로 하여 누가 어디서 보든지 틀림없는 호랑이로 인식될 경우, 그 인식대상[相分, 境]으로서의 호랑이를 성질상 성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 독영경
독영경(獨影境)은 인식하는 주관[見分]의 잘못으로 인하여 극히 주관적으로만 인식하는 대상을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 호랑이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그 호랑이는 단순히 일반적인 동물학상의 호랑이가 아니라 산신(山神)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그렇게 터무니없이 산신으로 표상된 호랑이를 독영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③ 대질경
대질경(帶質境)이란 참된 본질과 거짓된 망정(妄情)이 혼합되어 나타난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성경과 독영경의 중간 정도의 것을 일컫는다. 즉 순수한 주관도 아니고 전혀 주관을 떠난 것도 아닌 성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령 호랑이는 산신보다 더 영험하다든지 또는 늑대가 더 영험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인식할 경우, 그러한 인식은 물론 보는 사람의 주관이 상당히 덧붙여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혀 공상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질경이란 본질[質]을 띤[帶] 대상[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