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순간'을 위한 '최선의 시간'
개봉한지 1주일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2008년 극장가의 첫 선두권을 차지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실제로 아테네 올림픽 직후 시작하여 3년여간 준비된 장기간의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과연 그 긴 시간 동안 영화를 위한 어떠한 과정들이 있었을까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프로듀서인 김균희 PD가 지난 3년간을 정리한 제작노트를 보내왔습니다. “최고의 영화를 위한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는 그 40개월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 자료제공_MK 픽쳐스 / 구성_네이버 영화
1. 우.생.순, 40개월의 여정의 시작
* 글_ 김균희 프로듀서
2004년 8월 30일,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다음날 아침. 커피를 타서 방으로 향하던 심재명 대표님의 발걸음이 직원들을 향해 멈춘다. “어제 여자 핸드볼 결승전 봤어? 죽이지 않아?”
“보다가 울었잖아요” “ 주 멤버들이 아줌마들이라면서요?” 직원들이 한마디씩 보탠다.
“이거 영화로 만들어볼까?” “아줌마들이라…그럼 주인공은?”
2004년 10월_ 임순례 감독님, 연출을 결정
심 대표님이 한 모임에서
임순례 감독님을 만나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감독님께서 흔쾌히 수락하셨다고 한다. 심 대표님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이후 소녀 축구단 이야기를 차기작 아이템으로 고민하셨던 임 감독님을 이 작품의 연출자로 염두하고 계셨다. 아저씨가 아줌마로 바뀌고, 삼류밴드가 핸드볼 선수로 바뀐 ‘아줌마판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께서 [무림고수]를 준비하는 동안 시나리오를 만들기로 한다.
2005년 6~ 8월_ 실제 선수들과의 만남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를 서둘러 쓰기 보다는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충분히 진행한 후 집필을 시작하기로 한다. 핸드볼 협회에 출근부를 찍으며 10년간의 기사들을 샅샅이 찾아서 읽고, 국장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핸드볼 선수들의 비사를 듣고, 태릉 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의 생활을 취재한다. 오늘은 임오경 선수와 오성옥 선수를 만나기로 한 날. 화면에서 너무 자주 보았던 인물들인지라 오늘 처음 만났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오버하여 반가움을 표한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딱 부러지는 말투. 전지훈련 기간 중이라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핸드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도와주겠다”는 그녀들의 마지막 인사말에서 어떤 절실함이 느껴졌다.
2006년 8월_ 배우 캐스팅 시작
주연 배우 캐스팅을 시작한다. 캐스팅 회의를 거쳐
(문)소리씨에게 시나리오를 전달 하기로 한다. 지난 봄 연극 ‘거기’를 보러 가서 만난 소리 씨에게 죽이는 시나리오 하나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큰소리를 쳐 놓은 지 석 달 만이다. 몇 주후에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답변이 왔다. 최근에 보기 드문 건강한 시나리오라며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임 감독님과 문소리. 언젠가 한번쯤은 같은 작품에서 만날 것 같았던 두 사람이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2006년 11월_ 핸드볼 슈퍼 바이저 선정
공개 모집을 통해 핸드볼 수퍼바이저를 선정하기로 한다. 여러 후보들을 만나본 후 청소년대표 출신인 이대진 코치로 결정한다. 핸드볼 수퍼바이저는 액션 영화의 무술 감독처럼 경기 장면의 합을 짜는 일부터 배우들을 트레이닝 시키는 일까지 핸드볼과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지게 된다.
2007년 1월_ 영화 제목이 결정되다
오랫동안 [여자 핸드볼]이라는 가제로 남겨둔 제목을 바꿔보기로 한다. 혹자들은 이 제목이 단순, 명료하여 괜찮다고 하는 무책임한 말을 던지기도 했으나 너무 스포츠 영화 색이 강한데다가 별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제작진의 게으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제목이 아니던가. 하지만 제목 짓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책 제목, 관련 기사 타이틀, 외화 제목, 유행가 제목, 핸드볼 용어를 총망라하여 참고할만한 제목 조사에 들어간다.
300개의 제목을 조사하고도 답을 정하지 못해 나현 작가(각본)께 조언을 구해본다. 나작가님이 제안한 제목은 [질수없다] 강렬하긴 하지만 너무 비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 심 대표님의 엉뚱한 제안.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우리도 [넘어져도 바운드 슛!] 이나 [있는 힘껏 스카이슛!] 뭐 이런걸루 지으면 어떨까?” 푸하하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비슷하여 짝퉁 제목 같다는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들의 삶에 무언가 영광스러움을 부여하고 싶었기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제목으로 가기로 한다.
2.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가다
2007년 3월_ 훈련 시작
주조연 배우들이 모두 결정되어 본격적인 핸드볼 훈련을 시작한다. 이론 교육과 기초 체력 훈련을 마치고 코트로 나선 우리의 베스트 세븐. 주3회 훈련으로 시작하여 패스, 드리블, 슛, 다이빙, 패널티 드로우에 대한 기본기부터 고난이도 기술까지 점차적으로 훈련 강도를 높여 나가기로 한다.
몇 주가 지나자 벌써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대역 선수들을 찾아 보기로 하지만 배우들의 체격 조건과 맞는 대역 선수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가 실내경기라는 특수성과 멀티 카메라로 운용하게 될 촬영 환경을 고려해 보면 대역을 쓰는 것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한 달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강화도로 떠난 단합 대회. 오후에 갯벌에서 축구를 하고 돌아온 배우들이 말한다. ‘우리 영화는 여자 실미도야’.
2007년 4월_ 덴마크팀, 내한 출연 결정
오늘은 덴마크에서 낭보가 전해져 왔다.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걱정을 했던 외국인 선수 섭외에 청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섭외가 어려우면 국내에서 운동 신경 좋은 외국인을 선발해 핸드볼 훈련을 시켜야 하나 생각하던 터에 6월말 실업 오픈 대회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는 덴마크 SK 오르후스팀에서 경기 참가 후 영화에 출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온 것이다.
3.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
2007년 6월_ 크랭크인
6월 24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첫 촬영이 시작된다. 여느 촬영장의 다소 긴장된 초반 촬영 분위기와는 달리 우리 현장은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어도 계모임 장소처럼 현장에 모이는 배우들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3개월동안 운동하면서 계속 붙어 있어서 일까, 과연 언제 들어갈까 생각했던 촬영이 시작되는 것이 신기해서 일까… 여하튼 최강 팀웍임은 분명하다. 4회차 정도의 가벼운 워밍업으로 6월을 마무리 하고 7월부터는 경기장면 촬영을 강행하기로 한다.
2007년 7월_ 결승전 촬영
아테네 헬레니코 경기장을 재현한 인천 삼산체육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결승전 장면을 한창 촬영중이다. 영화의 20분 정도의 분량에 해당되는 결승전 경기장면을 6회차 안에 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스테디 캠을 포함한 4대의 카메라가 정신 없이 돌아가고 마이크를 들고 지시하는 조감독의 ‘슛’사인과 ‘롤 체인지’를 외쳐대는 촬영팀의 소리가 어지럽게 엉켜있다. 한 사람이 잘 해도 다른 한 사람이 실수를 하면 다시 촬영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진통제를 맞으며 촬영을 강행하는 정은씨의 모습이 안쓰럽고 호흡 곤란을 일으킨 소리씨가 걱정되어도 따뜻한 한마디를 챙겨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벤치에 있는 코칭 스태프에게 까지는 더더욱.
“지금은 우리가 지고 있지만 백코트할 때 서로 격려해 주면서 달려가는 거 잊지 마시구요”
이렇게 언제나 상황을 세심하게 설명해 주시던 감독님께서도 오늘은 무언가 잘 맞지 않는 팀웍에 신경이 날카로워 지신 듯 하다. “한번만 더 해보는데요. 안되면 그냥 전 테이크로 오케이 하겠습니다!” 감독님이 던진 비수에 배우들의 표정이 무거워 진다. 이 분위기가 가장 견디기 힘든 이대진 코치가 달려가 배우들을 격려하며 동작을 교정해 준다.
전쟁 같았던 덴마크전 촬영을 마치고 배우들의 눈물이 쏟아진다. 3개월동안 연습하면서 고생한 생각, 몸이 아파 괴로웠던 생각, 빡빡한 일정 때문에 자신들의 욕심만큼 찍어 보지 못해 속상했던 생각…이 모든 생각들이 한순간 파노라마처럼 밀려왔을 것이다.
2007년 8월_ 태릉 선수촌 분량 촬영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했던가. 올림픽 장면 촬영을 마치고 가벼운 드라마 부분을 촬영하고 있는 배우들이 표정이 한결 여유 있어 보인다. 촬영하다가 NG를 낸
(조)은지씨가 “어떻게 해. 계속 운동만 했더니 연기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나 봐.”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평화로웠던 드라마 부분 촬영도 잠시. 8월 중순부터 전주대 체육관에서 태릉 선수촌 훈련 장면 촬영이 시작된다. 에어컨도 없는 체육관에서 삼복더위와 싸우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배우들. 체력이 바닥났는지 한 테이크를 마치면 그대로 바닥에 널부러진다.
2007년 9월_ 국내 촬영 종료
51회차 태릉 선수촌 메인트랙 촬영을 마지막으로 3개월간의 촬영이 막을 내린다. 트랙을 돌아나가는 박원상 선배님의 애처로운 뒷모습 위로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15시간이 넘는 경기장면 편집을 위해 목욕재계 하고 도를 닦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하셨다는 문인대 기사님의 편집본이 자뭇 궁금해 진다.
2007년 10월_ 그리스 촬영, 그리고 크랭크 업
그리스 산불 때문에 아테네 촬영이 예상보다 조금 미뤄졌다. 영화 촬영 후반 해외로케이션을 가야 할지 한국에서 대체 해서 찍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반복했지만 아테네 외경과 공항 장면은 현지 촬영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감독님, 소리씨만 그리스로 가서 현지 스텝들과 촬영을 하기로 한다.
2007년 12월_ 리얼한 사운드를 담다, 녹음 작업,
편집을 마치고 녹음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촬영을 마치고 몇 달만에 후시녹음을 하기 위해 다시 모인 배우들의 수다에 녹음실이 떠들석하다. 모두들 오랜만에 다시 경기 장면을 보니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이 떠오르나 보다. 녹음실 안에서 뛰고 달리고 넘어지며 숨 소리 하나하나 기합 소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담아낸다. 녹음 초반 “그 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별로 안 힘든데요.” 라며 큰소리를 치고 들어갔던
(김)정은씨가 8시간의 후시 녹음을 강행한 후 파김치가 되어 나온다. “경기 뛰는 거 보다 더 힘들어요.”
이제 40개월의 모든 여정이 끝났다. 우리 모두는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겠지만 우리가 함께 했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리고 2007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