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모래
황야 사이로 길게 뻗은 길을 소떼들이 가로막고 있다. 소를 몰던 카우보이는 사정을 묻는 보안관에게 이야기한다. “농장 근처에 불이 났지 뭐요. 그래서 21세기에 이렇게 말을 타고 소떼를 몰고 있지요. 이렇게 멋진 직업을 아들들은 왜 물려받지 않으려는지 몰라.”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이런 농담들 사이에 놓여 있다. 깊은 자괴감과 실망감에서 나오는 희망 난민들의 농담, 자신의 삶에선 더 이상 건져 올릴 것도 파낼 것도 없이 밑바닥을 본 사람들이 자신의 생애에 보내는 끈적한 위로 같은 농담들 말이다.
글_강유정 (강남대 교수, 영화평론가)
치열한 삶의 전쟁터
<로스트 인 더스트>의 영어 원제는 <Hell or high water>이다. 굳이 풀어 보자면, ‘하늘이 무너져도’라는 의미를 가진 미국식 속담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물이 거꾸로 솟는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인 두 형제는 하늘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드디어 결단을 내린다. 농장을 통째로 빼앗기느니, 그 돈을 빌려 준 은행의 돈을 털어 은행돈을 갚아 주겠노라고 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텍사스의 평원은 금융자본이 싹 쓸고 지나가 이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곳으로 묘사된다. 자동차를 몰고 가는 황량한 평원 곳곳엔 ‘바로 대출’과 같은 간판들만이 즐비하다. 이미 은행들은 빌려준 돈 대신 담보로 잡아뒀던 농장들을 챙겼고, 빼먹을 것을 다 빼먹은 은행들은 모양만 은행이지 아무런 기능이 없다. CCTV도 없는 은행이라니, 사실 그건 은행이라기보다는 그저 동전 교환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영화 속 한 노인은 헛간을 뒤져 1953년 동전까지 환전을 위해 챙겨온다. 영화 곳곳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 다른 미국이 그려진다. 지겹도록 맥주를 마시고, 스테이크 외에는 먹지 않는 사람들, 뭘 먹을 것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뭘 안 먹을 거냐?”라고 당당하게 묻고는 “스테이크만 팔아, 그리고 미디엄, 웰던 밖에 안돼”라고 말하는 웨이트리스가 41년을 머물며 할머니가 된 공간이다. 되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걸 말하는 게 더 빠른 곳, 말하자면 그곳에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조차 허망하다.
하지만 주인공 토비(크리스 파인)는 적어도 이 가난과 절망을 아들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 소떼를 몰던 카우보이의 말처럼 아들들이 뭐라 해도 적어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른 삶을 주고 싶다. 그래서 그는 이혼한 전처가 데리고 사는 아들들을 만나 절대 ‘나처럼 살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건, 세상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늘 쫓기며 살아온 ‘을’의 인생을 더 이상 살지 말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향한 절제된 시선
고작 몇 백만 원에 합법적으로 농장을 삼키는 은행과 그 은행에서 푼돈들을 훔쳐 그들이 지운 빚을 갚는 은행 강도 형제들 중 과연 누가 더 부도덕한 것일까? 인디언이 살던 땅을 백인이 점령하고, 또 그들이 살던 땅을 이제 보이지 않는 은행이 소유한다. 결국, 우리 시대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돈, 신용, 금융일 지도 모르겠다.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은행 강도극이긴 하지만 우리가 보아왔던 하이스트(Heist) 무비들, <보니 앤 클라이드>나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통쾌하거나 멋지진 않다. 영화 속 대사처럼 그런 은행 강도는 삼십년 쯤 전에나 있었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위해 그리고 조카들을 위해 나름의 길을 가는 형, 태너(벤 포스터)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후까지 잔잔한 슬픔을 남긴다.
노련한 보안관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그의 파트너 알베르토가 나누던 농담들도 영화관을 나온 이후까지 머릿속을 맴돈다. 나이든 보안관 해밀턴은 오래된 전통과 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쩌면 법은 더 간교하게 우리의 삶을 합법적으로 단축시키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안관이라는 직업은 그런 불편한 법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은행 강도짓을 하며 태너는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쁜 짓을 하면 결국 돌려받게 되어 있어. 어떻게 아무렇지 않기를 바래?”
하지만 질문을 좀 바꿔 보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너무 많은 권력들이 합법적으로 나쁜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소를 먹일 사료값을 위해, 땅을 일구기 위한 비료값을 위해 돈을 빌렸던 농민들이 결국, 그 비료값과 사료값 때문에 농장도 집도, 소도, 말도 잃는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돈이 곧 신념이 되고, 인간의 가치가 되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되는 세상. 어쩌면 우리는 시시한 농담들을 주고받는 것 말고는 이 고단하고 험악한 세상을 버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