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시인을 만나다|신작시-신진
양산버스환승센터의 날짐승들 외 1편
양산버스환승센터 잔디밭 장의자 위에 늙은이 하나 얹혀 있습니다
오후의 가을볕이 낡은 국방색 바지, 누리끼리한 파카, 털 빠진 털모자를 훑으며 오르내립니다
늙은이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로수 그늘이 눈뜨고 감음의 경계를 썼다 지웠다 장난을 걸고 있습니다
잔디밭에서 꾸욱 꾹꾹 비둘기 떼 깨금발 뛰기를 하며 노는 사이 까마귀 한 마리 종, 종, 종, 종족의 구분을 허물고 비둘기들 틈에 제 놀이터를 고릅니다
햇살에 저승꽃 도두치며 노인은 어구구구 어구구구 저리는 허리다리 조금씩 일으킵니다
반쯤 일으킨 후엔 두 손을 뻗어 모이 부리는 시늉을 합니다 부풀어 오른 손마디마디의 관절염과 잘려나간 왼손 검지 엄지손가락 끝마디가 그가 한때 날아다녔던 신분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닫혔던 손이 열리자 모이 쪼러 새들이 모여듭니다. 거친 굳은살 안의 황금알곡 볕들이 새들의 모이이고 노인의 겨울 식량인가 봅니다
구구구 꾸꾸꾸 까마귀 발톱 세워 비둘기 뒷덜미 깃마다 흘러넘치는 햇살 빗어올리며 돌아다니는 동안 모이 주던 늙은이A 공중부양하고 버스환승센터 잔디밭 장의자에는 어구구구 구구구 늙은이B가 내려와 앉습니다
늙은이B 천천히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는 까마귀 발톱 한 손으로는 공중에 뜬 늙은이A의 손을 잡고 비둘기 떼 사이사이 인사를 하러 다닙니다
가만 보니 그 늙은이가 그 늙은이 그 까마귀가 그 까마귀 그 비둘기가 그 비둘기입니다 가을의 황금 햇살이 짐승과 짐승 간 경계를 허뭅니다 모든 날짐승이 노래는 하는 둥 마는 둥 얼키설키 손에 손을 잡고 도움닫기 중입니다 날아오를 채비인가 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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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아수라장 근처
사랑하지 않는 자
사랑한다 사랑한다 따라다니며 사랑 짜내고
사랑 넘치는 이 어금니 앙다문 채 갈라서고
외롭지 않은 자 외롭다 외롭다 한 말 또 하고
한없이 외로운 이 허허 꺼얼껄 웃으며 살고
아프지 않은 자 아프다 아프다 사람 부르고
온 데 다 아픈 이
괜찮다 괜찮다며 몸 부은 채 살고
돈 있고 줄 있어 자유자재 설치는 자
시도 때도 없이 자유 달라 울부짖고
맨주먹에 기고 사는 이 자유가 뭔지 모르고
죄 많은 자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노라 기염을 토하는데
죄짓지 않은 이
한가득 쌓인 부끄럼에 하늘 볼 낯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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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진|1974~76년 이원섭, 김남조 시인에 의해 《시문학》 추천완료했다, 동아대학교 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퇴임, 현 명예교수이다. 목마, 전망, 얼토, 부산문학인길벗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학예술 평론신인상, 시문학상, 부산시인협회상 본상, 한국광역시문학상 대상, 봉생문화상(문학), 부산시문화상(문학), 설송문학상 본상, 낙동강문학상 대상, 문덕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집 『목적 있는 풍경』, 『장난감 마을의 연가』, 『멀리뛰기』, 『강(江)』, 『녹색엽서』, 『귀가』, 『미련』, 『석기시대』, 『못걷는 슬픔을 지날 때』, 시선집 『풍경에서 순간으로』, 『사랑시선』, 창작동화 『낙타가시꽃의 탈출』, 동화집 『반려인간』, 귀촌 에세이 『촌놈 되기』 등이 있으며 논저로는 『우리 시의 상징성 연구』, 『한국현대시읽기』, 『창작문학론강의』, 『한국시의 이론』, 『차이 나는 시 쓰기-차유의 시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