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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201월] 남북 정상회담 추진, 국민 신뢰가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영국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연내 추진 의지를 분명하게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면서 "조만간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지만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북한과의 물밑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언급이다. '6월 지방선거와 11월 G20 정상회의 사이'라는 관측이 나올 만도 하다.
남북은 지난해 후반 싱가포르와 개성 등에서 비밀협상을 통해 정상회담 추진을 논의했지만 의제와 조건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의견 차를 좁혀가며 정상회담을 깊숙하게 논의하고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제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대화와 위협을 병행하는 북측의 투트랙 전술로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교착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또한 선 제재 해제와 선 복귀를 내세운 샅바싸움으로 지지부진한 6자회담 재개에도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 같은 기대가 회견 내용의 왜곡 논란으로 빛이 바랜 것은 유감스럽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발언의 여파가 클 것 같아 대통령에게 진의를 물어 보도자료를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발언을 그대로 소개한 뒤 배경 설명을 해도 충분했다. 국민에게 뭔가 감추려 한다는 인상을 준 것은 정상회담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약속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대로 정치적 국면 전환용이 아닌 실질적 성과가 있는 정상회담이 되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뢰는 우리 국민에게도, 남북 상호간에도 필요하다. 최근 논란이 됐던 '비상통치계획-부흥' 언론 보도나 국방장관의 선제공격 발언처럼 남북간에 불필요한 긴장과 불신을 초래하는 일이 이어져서는 신뢰가 축적되기 어렵다. 정부는 지혜롭고 믿음직스럽게 남북관계를 관리하면서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201월] 회견 내용 변조, 청와대의 잘못된 언론관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비비시>와 한 회견에서 한 말을, 청와대 대변인이 국내 언론한테는 바꿔 전달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대통령의 발언에 민감한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애초 발언은 그대로 전달하고 배경설명을 덧붙이면 될 일이다. 금방 전세계에 알려질 발언 내용을 버젓이 왜곡하고 변조했으니, 국민과 언론을 바보 취급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공식 회견까지 변조한 것은 어느 한 개인의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언론과 여론을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빗나간 생각이 청와대에 팽배한 탓에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보는 게 옳다. 언론 장악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그렇게 장악한 언론매체를 통해 제 뜻대로 여론을 몰아가려 한 그간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이 이번만도 아니다. 지난해 9월30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유치 관련 대통령 기자회견 때, 청와대는 정상회의와 관계없는 질문은 아예 받지 않겠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홍보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질문을 통제한 셈이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등 유리한 사안은 ‘엠바고’(보도유예) 등을 통해 최대한 부풀리고,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은 대놓고 무시했다. 그런 홍보 풍토에서 이번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발언 왜곡의 당사자인 김은혜 대변인은 물론 홍보 책임자인 이동관 홍보수석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이 대통령의 잘못된 언론관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대변인은 “여파가 클 수 있는 발언이어서 인터뷰를 마친 뒤 이 대통령에게 진의를 물었고, 이 대통령이 설명한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발언 변조를 보고받고 재가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셈이니, 마땅히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이런 발언 왜곡에는 정부 내부의 복잡한 사정도 드러나는 듯하다. 정상회담에 관한 대응 기조가 정부 안에서도 통일되어 있지 않고, 남북관계 진전 속도를 놓고도 온도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태로는 남북간 대화에서도 혼선과 불신이 빚어질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선 어느 정도 비밀교섭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정책과 의제를 조정하는 과정은 최대한 투명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20100201월] 남북정상회담, 정부가 좀 더 냉철해야 할 이유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외신 회견 발언과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영국 BBC방송에 한 발언은 몇 가지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연내 정상회담 가능’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김 대변인이 대통령 발언이라고 국내 언론에 전한 내용은 한발 물러선 원론적 표현으로 읽힌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7500만 민족의 삶과 직결된 중대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이슈다. 이런 사안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의 언급은 토씨 하나라도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뉘앙스가 다르게 전달된다는 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든 좋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는 어제 “과거처럼 일회성으로, 정치적 이벤트로 회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근원적 반성에서 출발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수시로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대통령 발언의 진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당초 발언이 세계로 알려진 이상, 설사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 하더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수시로 만나’라는 부연설명도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추진 상황을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국민이 모르는 ‘막후(幕後)’가 많을수록 정부의 부담이 오히려 커질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대해 국민은 과거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회담 때보다 냉정하게 그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10년 좌파 정권의 대북정책에 심대한 문제의식을 느껴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국민은 남북정상이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환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1차의 6·15선언이나 2차의 10·4선언이 내포한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크게 실망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회담을 한다면 반드시 ‘북핵 해결’을 전제로 해야 하고, 이를 비롯해 남북 간에 걸린 본질적인 현안들을 푸는 데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는 회담이어야 한다. 만약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정상회담 분위기가 만드는 플러스 효과보다 그 결과에 따른 마이너스 측면이 더 클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이 이번에 또다시 평양으로 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불만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 내용의 중요성이 더하다. 정부가 회담 성사를 우선시해 부실하고 불리한 회담을 감수한다면 그 후유증이 오히려 정부를 궁지로 몰 우려마저 없지 않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냉철해야 할 이유는 이처럼 많다.
혹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국내의 국면 전환을 위한 계기로 삼으려는 유혹을 느낀다면 그런 생각은 적중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결과를 창출하는 회담이 아니고는 과거 남북정상회담이 불러일으킨 일시적 열기도 기대하기 힘들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많이 냉정해졌음을 정부도 잘 알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20100201월] 도요타·혼다 리콜이 보여준 1등 기업의 흥망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1000만대 규모의 리콜(자율 회수·수리)과 판매 중단 조치를 취한 데 이어 혼다자동차도 소형차 64만대에 대한 리콜을 한다. 도요타는 캠리·코롤라를 비롯한 8개 주력 차종이 가속페달 부품 결함으로 급발진 등 사고 위험이 있고, 혼다는 창문 틈으로 스며든 빗물이 합선(合線)을 불러와 불이 나는 사고가 있었다.
부품 결함 때문에 1000만대를 리콜하게 된 것은 자동차 역사상 처음이다. 도요타의 작년 판매대수 781만대를 훨씬 웃도는 물량이다. 미국에선 "어떻게 이런 차를 팔 수 있느냐"는 소비자 항의가 쏟아지고, 미 의회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일본차의 품질과 안전은 믿을 만하다는 세계 소비자들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자동차의 이름에도 함께 금이 갔다.
직접 원인으론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도요타의 극한적 원가(原價) 절감 경영이 지적되고 있다. 비용을 줄이려고 해외 공장에 들어가는 부품을 가능한 한 현지에서 조달하면서 값을 먼저 따지게 됐고, 이렇게 늘어난 해외 거래업체에 대한 일본식 품질관리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도요타가 빠져 있는 1등 기업의 자만심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가속페달에 대해서도 이미 2007년부터 미국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도요타는 "차량 결함이 아니라 운전상 문제 때문"이라며 원인을 고객들에게 되돌렸다. 도요타 차가 고장 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오만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 8월 캘리포니아에서 가속페달 결함으로 일가족 4명이 죽는 사고가 터지면서 사태가 여기까지 굴러왔다.
미국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성공기업이 망해가는 과정을 '성공에 도취돼 자만에 빠지는 단계' '원칙 없는 사업확장 단계' '위험신호 무시 단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허둥대는 단계' '망하거나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하는 단계'의 다섯으로 나눴다. 도요타는 1990년대부터 품질과 안정성, 소비자 신뢰, 순이익 등에서 세계 최고 기업 대열에 올랐고, 2007년에는 자동차 판매대수에서도 GM을 누르고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도요타도 이런 1등의 영광에 취해 고객들의 불만을 귓전에 흘려듣다가 결국 빙산(氷山)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사상 최고라는 작년 실적에 들떠 있는 국내 대기업들도 이번 사태의 거울을 통해 "영원한 1등은 없다"는 무섭고도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을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00201월] 지방선거 D-120, 공명·정책에 사활걸라
6·2 지방선거가 내일부터 시·도지사와 교육감 출마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을 시작으로 120일 장정에 돌입한다. 이번 선거는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교육감, 교육의원 등 ‘1인 8표제’로 치러지며 전국에서 1만 5000명 이상 후보자가 나설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벌써 공무원 줄서기가 꿈틀거리고 기부행위 등 범법 사례가 400건 가까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되는 등 과열·혼탁 조짐을 보여 걱정이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공무원 줄서기는 고질병이 되다시피 했다. 선거에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유력 후보를 암암리에 돕고 있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지방의 공직사회에는 “줄 한 번 잘못 서면 4년, 아니 재수 없으면 8~12년 동안 ‘좌천인생’을 면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파다하다. 선거가 끝난 뒤 단체장이 자신을 지지한 공무원의 인사에 특혜를 주거나 매관매직을 일삼는 것은 이런 풍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공명선거를 이루려면 선거권력을 추종하는 공무원들의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돈 선거도 꼭 뿌리 뽑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오근섭 전 양산시장이 선거빚에 쪼들려 사업 특혜를 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가 끝내 목숨을 끊은 사건은 모든 후보자들이 마음에 새겨야 한다. 돈선거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거의 해마다 단체장 선거를 치른 청도군의 사례는 후보자는 물론 유권자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정당들은 후보자에게 특별당비 명목으로 걷는 공천헌금의 폐단을 이번에야말로 없애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단체장 및 지방의원 등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이번 선거부터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번 선거는 특히 세종시 건설과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중앙 정치의 쟁점이 부각돼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야당이 현 정권의 중간평가를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지역 고유의 정책선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공명·정책선거가 되려면 무엇보다 유권자의 깨어 있는 의식과 관심이 중요하다. 지금은 굳이 선거벽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매체를 검색하면 후보의 장단점을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다. 선거문화의 변화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착근(着根)은 결국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201월] 지자체 청사, 호화 논란에 에너지 낭비까지
지자체들이 경쟁을 벌이듯 대형 · 호화청사 신축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에너지 사용의 효율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 요인을 제거하면서 '저탄소 경제'에 앞장서야 할 공공부문이 에너지 절감에 눈감은 셈이다.
지식경제부와 행정안전부가 16개 광역단체와 230개 기초단체의 지난해 청사 에너지 사용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어찌된 일인지 2005년 이후의 대형 신축청사가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신축청사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국내 상업용 건물이나 선진국의 공공건물보다 1.5배 이상 많다. 절대 사용량도 많아 15개 신축 청사의 평균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평균치보다 2배나 많다. 에너지 효율성도 엉망이다. 대형청사로 손꼽혀온 용인 성남 천안 시청에 대해 건설기술연구원이 '건물 에너지 효율등급'을 분석한 결과 모두 최저수준으로 나타났다. 청와대부터 나서 겨울철 내복입기,실내 기준온도 낮추기라며 에너지 절감을 외치지만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다.
신축청사까지 에너지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중앙정부도 앞으로 공공건물 에너지사용 점검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신축 설계단계부터 에너지절약형으로 조건을 강화한다,대기전력 차단 소프트웨어를 보급한다며 뒤늦게 부산을 떨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지자체 공무원들 스스로 낭비요인을 발굴하고 계획과 목표를 세워 이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청사의 에너지 사용실태는 한 예일 뿐이다. 수려한 외관에 고층 대형의 청사건설에만 신경 쓰는 듯한 풍조가 퍼져가는 것이 더 걱정이다. 일상 업무로 충분히 사전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일조차 뒷전으로 미루니 사업성 검증도 제대로 안된 100층짜리 시청사를 짓겠다는 기초 지자체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올해는 지자체 민선 4기를 마감하고,민선 5기 출범(出帆)을 앞두고 있다. 광역이든 기초든 지자체 스스로가 자율 자립의 기반을 잘 다져나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라는 얘기다. 지방 재정이 거덜나고 파산지경이 되어도 중앙에 손만 내밀면 꾸려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이웃 일본과 미국의 일부 지자체들의 방만한 행정 결과가 어떠한지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카럼-분수대/허귀식(경제부문 차장)-20100201월] 새만금
김제의 벽골제 축조는 초대형 토목공사였다. 둑 길이만 3.3㎞. 벽골제에서 가까운 새만금 간척지구의 방조제는 그것의 10배인 33㎞이지만, 1700년 전 사람의 힘에만 의존한 벽골제보다 쌓기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 태종 때의 벽골제 보수공사도 대단했다. 여러 지방에서 모인 1만여 명이 두 달간 달라붙어 땀을 흘렸다. 제주도 사람들도 동원됐다. 풍랑으로 늦게 도착한 제주도 일꾼들은 벽골제 남쪽 방죽을 완성했다. 그래서 이름이 ‘제주 방죽’이다. 벽골제 근처엔 ‘신털미산’이라는 언덕이 하나 있다. 인부들이 버린 짚신과 짚신의 흙을 털어 모은 더미가 산이 됐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태종은 지금도 수리사업에 공들인 임금으로 기억되고 있다. 벼농사에 이로운 비, 특히 음력 5월에 내리는 단비를 ‘태종우’라고 한다.
벽골제는 ‘벼의 골에 있는 저수지’라는 뜻이다. 벼의 골이란 김제와 만경 일대의 넓은 들이다. 이곳을 줄여서 ‘금만평야’라 불렀다. 지역 사람들은 ‘징게맹갱 외애밋들’이라고 한다. ‘징게맹갱’은 ‘김제만경’, ‘외애밋들’은 평야를 일컫는 방언이다.
1987년 첫 개발 계획 발표 이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간척 사업. 새만금은 금만평야에 버금가는 새(新) 땅이 생긴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새금만’ 대신 새만금이라 한 것은 ‘썩 많은 돈이나 소중한 것’을 의미하는 ‘만금(萬金)’의 음감을 살리기 위한 것이리라.
방조제가 새(鳥) 형상이어서 ‘새’를 붙였다는 설도 있다. 하늘에서 보면 방조제는 유학자 최치원이 살았다는 신시도를 중심으로 서해와 중국을 향해 좌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형상이다. 세계를 향해 웅비하는 새의 땅을 만들겠다는 큰 뜻이 새만금이라는 명칭에 담겨 있는 셈이다. 이렇게 좋은 뜻의 새만금도 소송·시위가 이어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했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새만금이라는 단어에서 간척 사업, 환경 파괴를 떠올린다고 한다.
정부가 새로운 새만금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새만금을 계속 쓰되 ‘아리울(Ariul)’이라는 브랜드를 함께 사용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아리울은 물을 뜻하는 순우리말 ‘아리’와 울타리·터전을 뜻하는 ‘울’을 결합해 만든 단어다. 그러나 새만금에서 보듯 이름만 좋다고 만사형통은 아니다. 이름 갈아 치울 일 없게 이름값 하는 아리울을 만들어야 한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성수(논설위원)-20100201월] 허리우드 극장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운현궁 쪽으로 걷다 보면, 다소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낙원상가를 만날 수 있다. 아래로 차가 다니는 등 기묘한 모양새지만,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상가로 한때는 꽤 현대적 건물이었다. 낙원상가는 인사동과 낙원동을 가르는 문화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인사동이 전통의 거리라면, 낙원동은 실비(實費)의 거리다. 인사동 맛집들이 전통음식으로 저마다 솜씨를 뽐낸다면, 낙원동 뒷골목에서는 순대·돼지머리·냉면 등 서민들의 먹거리가 입맛을 돋운다. 무엇보다 포만감을 느낄 만큼 음식 양이 많고, 밥집 주인 호주머니를 걱정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 미덕이다.
‘허리우드 극장(현 허리우드 클래식)’ 주변 밥집들은 대부분 30년이 넘는 내력을 지니고 있다. 모서리 닳은 숟가락과 찌그러진 양은막사발 등이 세월을 느끼게 한다. 탑골공원 노인들은 하루 세끼를 이곳에서 때우는 경우가 많다. 물냉면, 순두부, 순댓국 등이 2000~3000원이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길가에 세워진 커피 자판기는 ‘입가심용’이다. 자판기가 때론 말썽을 부린다. “동전을 먹었다”며 주인과 승강이를 벌이는 풍경도 종종 목격된다.
낙원동 실비거리 중심에 ‘허리우드 극장’이 있다. 단성사 등과 더불어 내로라하는 영화관 중 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실버영화관으로 운영 중이다. 극장 주인은 30대의 젊은 새댁 김은주씨. 폐관 위기의 서대문 화양극장을 살려낸 고전영화 마니아다. 허리우드 극장도 그녀에 의해 노인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지 1년을 맞았다. 적금 통장을 깨 극장에 쏟아부은 결과라고 한다. 극장 풍경이 재미있다. “추운 날 이렇게 많이 오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한국 영화입니다.” 김씨가 스크린 앞에서 안내를 시작하면 예외없이 박수가 터져 나오고, 그녀의 부친이 만담으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무성영화 시절을 연상케 하는 추억의 풍경이다. 관람료는 57세 이상 2000원으로 표 한 장이면 하루종일 영화를 볼 수 있다. 실버영화관 티켓을 보여주면 인근 밥집이나 이발소에서도 요금을 깎아준다고 한다. 노인들에게는 ‘시네마 천국’인 셈이다.
한국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다.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보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실버영화관은 영화 감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노인들이 숨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시평/김재수(농업진흥청장)-20100201월] 국민농업 시대를 열어야 한다
경인년 새해를 맞아 농업 부문도 호랑이의 기상과 용맹으로 어려움을 헤쳐가기를 기대한다.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 식량과 에너지 부족이 가져오는 지구촌 위기는 우리도 피해갈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FTA) 대응, 식량안보, 농촌경제 활성화 등 산적한 현안이 농업 분야에서 대두하고 있으며 그 해결 방안 마련은 쉽지 않다. 농업 부문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우며 국민적 이해와 협조, 지원이 필요하다. 농업이 국민적 관심과 지원을 받는 `국민의 산업`이 되려면 먼저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와 언제나 찾아가서 쉬고 싶은 깨끗한 농촌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또 국제화 시대를 맞아 경제 성장과 발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해 달라는 요구도 높다. 이 세 가지에 대해 명쾌한 답과 실천 방안을 제시해야 농업이 `국민의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농업 부문은 국가적ㆍ민족적 소명인 안정적인 식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후변화로 한반도 기온은 지난 100년간 세계 평균의 두 배인 1.5도 상승했다. 농작물의 재배 적지가 바뀌고 돌발 병해충도 늘어나 안정적인 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곡물 시장의 불안 요인은 해마다 가중된다. 불과 2년 전 경험한 곡물 가격 상승과 식량 불안은 엄청난 국가적 부담을 초래했다. 4900만 국민의 안정적인 먹을거리 확보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다가오는 통일에 대비하고 7000만 민족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식량안보는 긴요하다.
농업 부문은 우리나라 자연환경과 생태를 보전하고 5000년 역사와 문화를 가꾸는 역할도 해야 한다. 농촌의 땅과 생태환경은 농사 짓는 공간만이 아니라 국민의 휴양, 관광, 문화공간이다. 홍수 조절, 수자원 함양, 토양 보전 등 공익적 기능을 넘어 국민의 쉼터로, 후손의 삶터로 아름다운 농촌을 가꾸는 것은 국민적 과제다. 나아가 농업 부문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국제적 책무를 담당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사회 도움으로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고 가장 짧은 기간에 식량 자급에 성공한 나라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우리는 과거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식량 증산을 위한 전문가 파견, 훈련생 교육, 공동 연구 등 다양한 지원을 하되 `죽은 원조`가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살아 있는 원조`를 해야 한다. G20 회의 개최를 계기로 세계 선두를 향한 국가적 발걸음은 윈윈하는 농업 원조의 성공 모델에서 찾아야 한다.
농업을 국민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재강조하는 것은 선진국의 최근 추세이기도 하다.
톰 빌색 미국 농무부 장관은 지난해 `국민 정원(People`s garden)`을 농무부에 설치했고, 미셸 오바마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에 `부엌 정원(Kitchen garden)`을 조성해 국민에게 안전한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2년 농무부를 창설하고 그 이름을 `국민의 부처(People`s department)`라고 한 것도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라는 메시지다.
지난해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는 농업을 향후 일본 경제를 견인할 고수익, 고용 창출, 지역 활성화 핵심 산업으로 규정했다. 농업은 지금 정보ㆍ생명공학, 나노기술이 융ㆍ복합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해 누에고치를 사용해 인공고막을 개발한 데 이어 이제는 5조원대에 이르는 인공뼈 개발시대로 진입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국가적ㆍ시대적 과제를 완수해야 농업의 미래가 있다. 패배의식과 좌절로 물러서서도 안 되며 물러설 곳도 없다. 농업이 21세기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자리 잡는 국민농업 시대를 열어가자.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이현호(경제부 기자)-20100201월] 허울뿐인 '개방형 공무원' 공모
정기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과천 관가가 술렁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제 컨트롤 타워 인 기획재정부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승진 대상자는 많은데 자리가 없는 탓이다. 본부1급 고위공무원 7명이 9개월째 단 한 명도 이동이 없고 승진을 기다리는 2급 국장들 대다수가 1년 가까이 근무해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재정부와 긴장관계에 있는 출입기자단도 이번만큼은 인사적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재정부가 더 이상 내부 불만이 커지기 전에 숨통이 트이길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최근 재정부 내부사정에 정통한 여권 핵심인사에게 전해들은 인사 소식은 이 같은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했다. 재정부의 개방형 직위인 미래전략정책관과 국제금융정책관 자리가 이미 내정됐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 문제를 책임지는 미래전략정책관은 옛 기획예산처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파견근무 경험이 있는 H모 국장급이, 조만간 교육파견으로 공석이 될 국제금융정책관은 국제금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E국장급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과정에서 A국 인사는 선후배 기수가 꼬이면서 국회에 파견 나와 있는 M모 국장급이 불만을 표시하며 사표를 내 조만간 후임자가 오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내정자들은 사전 업무보고를 받고 벌써 업무파악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인사구도가 이미 그려져 있음을 귀띔했다.
고위공무원단제도 법령상 개방형 직위는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거나 효율적인 정책수립이 필요한 직위로 공직 내부와 외부를 대상으로 공개모집으로 시험을 거쳐 적격자를 선발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사설이 사실이라면 관료조직의 폐쇄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개방형 직위제는 근본취지인 개방과 공모는 허울뿐인 채, '사전 각본인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게 뻔하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한 국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 조직은 더욱 그렇다. 인사부서는 조만간 개방형 직위 공모에 착수한다고 한다. 이번 공모가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절차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