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의 노원역상권, 은평의 연신내상권, 강서의 강서구청상권, 관악의 신림역상권이 있다면 강동엔 뭐니뭐니 해도 천호동 천호역상권이다. 노원에선 노원역이 최고라 하고, 관악에선 신 림역이 최고라 하듯 강동에선 천호역을 큰 형님으로 대접해야 한다. 1,000호가 살 만한 비옥 한 땅, 천호동은 길동, 명일동, 둔촌동 등 강동구의 지구상권을 동생처럼 거느리는 지역상권 이며, 하남시의 젊은이들도 포용하는 광역상권이다. 예전엔 주눅이 들어 그렇지 못했지만 지 금은 송파의 잠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말해도 꼭 천호동을 공치사하는 말은 아니다.
▶ 개구리가 다시 뛰기 위해 움츠리고 있는 형상이다 70 ~ 80년대 천호동의 판세는 구사거리 쪽의 천호시장과 천호동 텍사스가 쥐고 있었다. 한 쪽 에선 월남치마에 쪽파를 사고 팔자며 야단법석이 벌어지면, 다른 한 쪽에선 양복에 갈지자의 취객을 끌어당기는 호객이 다반사였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으로 홍등가의 불이 꺼졌는데 천 호시장도 덩달아 냉기가 흐르는 것을 보면 둘간에도 끈끈한 교분이 있었나보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천호동상권은 숨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5호선이 신사거리(천호 사거리)에 개통되었고,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섰다. 신세계 천호점은 92년 목산백화점을 20년 간 장기임대방식으로 입점하여 강동을 호령했다. 455-8번지 나산백화점 부지에 현대백화점 이 들어서면서 천호동은 강동의 지존으로 자리를 확실히 굳히게 되었다. 구사거리에 이랜드 의 2001아울렛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현대백화점이 매머드급으로 등장하자 신세계는 발빠 르게 할인점 이마트로 전환하여 오히려 백화점보다 나은 장사를 하고 있다. 또 은하예식장이 나비패션몰로 리노베이션되었다. 사실 천호동은 지금 썩 좋은 상태는 아니다. 캐쉬카우인 천호동 텍사스를 잃었으니 속이 시커 멓게 탈 만 하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그 나마 재개발 이야기로 위안을 삼고 있는 듯하다. 천호대로에서 시장사거리까지 천호동로데오거리를 조성하여 한결 쇼핑타운같아졌지만 90년대의 호황이 그립기만 하다. 지금 천호동상권은 천호동뉴타운에 기 대를 걸며 마치 개구리가 뛰기 위해 움츠러드는 형상같다.
▶ 천호동에서 음식점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천호동상권은 음식점이 상세력을 주도하는 곳은 아니다. 비율로 보면 전체 업소의 약 24% 정 도로 의류·잡화판매점의 비율 36%에 못미친다. 현대백화점에서 길동 방향의 천호대로변과 천 호동로데오거리같은 상급지에서 음식점은 의류·잡화판매점의 등쌀에 끼어있어 기를 펴지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천호동에서 음식점이 안정적인 배경이 된다. 왜 그럴까? 우선 공급 측면에서 보면 의류·잡화판매점이 동업종간 경쟁으로 자리싸움을 하기 때문에 음 식점이 진입할 점포가 마땅치 않다. 상대적으로 다른 상권에 비해 음식점의 수가 적은 만큼 평균 매출액이 높다는 장점이 된다. 둘째로 수요 측면을 보자. 요즘 음식점 밀집지역이 고전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외식비 지출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급성장했던 외식시장은 가계소비에서 외식비의 증가와 연관 성이 높다. 그러나 2004년에서 2005년 근로자 가구당 외식비는 정체 상태이다. 그만큼 음식점 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천호동상권은 음식점이 애써 홍보비를 들이지 않아도 손님 들이 찾아온다. 바로 의류·잡화판매점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10대 학생, 20대 대학 생 및 OL(Office Lady), 30대 주부 등 다양한 소비계층들이 유입되어 쇼핑과 외식의 구매벨트 에 몸을 싣게 된다.
▶ 첫 번째는 20대 여성, 두 번째는 여성, 세 번째는 여성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갑작스럽게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행인들의 등이 많이 구부러졌다. 날씨의 영향으로 유동인구 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마침 컨설팅 의뢰가 들어와 평일 낮시간, 저녁시간, 주말 낮시간 등 3회에 걸쳐 상권을 돌아보았다. 천호동상권의 고객은 누구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고객의 니즈는 없는가?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고객에 대한 선택은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천호동상권의 고객 층은 단조롭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결국 천호동에서는 여성이다. 현대백화점 쪽에서 도 그렇고, 천호시장사거리 쪽에서도 그렇다. 낮시간에도 그렇고, 밤시간에도 그렇다. 여성 이 유동인구의 60 ~ 70%를 차지한다. 홍등가의 불이 꺼지면서 외지에서 유입되는 남성 무리 는 자취를 감췄다. 있다면 천호대로변의 오피스텔 직장인과 퇴근길의 주민 남성층이다. 좀더 꼼꼼하게 여성들을 살펴보자. 정량적으로 분석해보면 20대 초중반이다. 10대 여학생, 20 대 여성, 30대 주부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대 5대 3 정도일 것이다. 20대 여 성의 소비 행적은 화장품가게, 신발가게, 진의류점, 액세서리점등으로 이어진다. 출출하면 분 식집에서 군것질을 하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거나 남자들과 미팅을 하게 되면 주점에 갈 것 이다. 정성적으로 분석해보면 이들은 종로의 OL(Office Lady)과는 다르다. 홍대입구의 여대생들과 는 다르다. 압구정동의 유한여성과도 또 다르다. 꼭 짚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명품을 고집하 지 않지만 유행에서 밀리지 않으려 하고,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절약하는 미덕을 갖고 있 다. 또 이들은 남자 친구보다 동성의 여자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로 천호동을 선택한다. 과연 이러한 까다로운 고객을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소비자는 빠르고, 음식점은 느리다 패션점포들이 눈치빠르게 탈바꿈하는데 비해 음식점의 변화가 더딘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천 호동상권의 음식점이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써 재투자하여 무리하지 않아도 먹고살만하다 는 말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변화·발전하면서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고 까다로워진다. 소비자 와의 간극이 멀어질 수록 안정성은 깨지기 마련이다. 90년대 후반까지 천호동상권에서 음식점의 주도업종은 패스트푸드였다. 롯데리아, 파파이스 등이 하루 500 ~ 600명선이었다. 지금 2개의 패스트푸드점은 사라졌고, 소형 분식집이 이들 고객을 수용하고 있다. 틈새라면, 본죽, 김밥천국, 한스델리, 명인만두 등이다. 5평 ~ 10평 정 도의 1층 분식집은 손이 쉴 틈이 없어보인다. 로데오거리는 가격파괴 주점이 대세를 장악했다. 몬데오, 인디오, 준코 등 중대형 음식점이 2 층으로 출점해 있다. 여기에 호프소주방, 생맥주전문점 등이 3 ~ 4년 전의 패턴을 그대로 유 지하고 있다. 먹자골목에서는 치킨호프, 바비큐호프, 찜닭, 닭갈비 등 닭요리점이 유난히 많 다. 20대를 공략하고, 여성의 취향에도 맞는 아이템들이다. 그러나 빠른 소비자를 따라가기 엔 역부족이다. 어쩌면 천호동상권에서 음식점들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천호동에 스타벅스, 커피빈 등이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크리스피크림, 스무디킹 등이 생 긴다면 또 어떻겠는가. 강남역의 레비스나 기린비어페스타처럼 요리와 인테리어, 서비스가 어울리는 공간이 생긴다면 또 어떻게되겠는가. 여성 취향의 샤브샤브점, 스파게티점, 우동점 등은 또 어떤가.
▶ 천호동은 음식점의 명당이 될 자격이 있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천호동의 잠재고객수는 9만명에 이른다. 지하철 5호선 천호역의 승하 차인원수를 근거로 잡았다. 실제로 도로에 형성되는 유동인구량은 현대백화점쪽이 시간당 3,000명선이며, 시장사거리쪽이 1,500명선으로 하루 평균 2만 ~ 3만명을 잡아도 무리가 없 다. 그런데 음식점은 100개점에 미치지 못한다. 공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풍부한 행복한 상권이지만 천호동에 대박집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고, 과감하게 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종조사 결과 천호동엔 틈새가 될만한 아이템이 많다. 시장사거리에 위치해 있는 맥널티커피숍은 하루 200명 정도의 손님이 찾아온다. 박준영 대표 는 요즘 변신을 고민 중이다. 식사 고객이 6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커피숍으로써의 역할 도 떨어지고, 4년된 시설이 주고객인 20대의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박사장 의 고민은 천호동 음식점과 천호동에 출점하려는 외식업계 종사자들, 또한 신규 출점을 고려 하고 있는 창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만큼 천호동은 기회가 많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