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권성훈
버스 공화국 외
출근길 현금 없는 버스 타고 한강을 지나간다
한강도 현찰 없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를 맞대고
현찰을 내지 않아야 탈 수 있는
이곳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잊은 지 오래
한두 푼 아끼려고 강물처럼 건너갔던
지난날이여 안녕
현금 없이도 지하철과 기차를 타러 가고
현금 없이도 사랑을 타러 갈 수 있지만
드디어 자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
국민으로부터 현찰이 나왔던 민주공화국의 주권이여
화폐가 지배하는 버스 밖은 모든 것이 상품이므로
현찰 앞에서는 진열대처럼 누구나 평등하다
다만 여기선 안돼
마르크스 가치가 물질적 부를 이루는 아버지의 나라
유전무죄와 무전유죄도 같은 것도 사라지리니
생명이 있는 자마다 한 자리씩 나누어 가진
공평한 창가에 세습 없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자본 없이도 평화로다
누구나 신자유주의 공화국의 군주가 된다
-----------------------------------------
국거리 장단
수산 시장 한통속 냄비 들썩이는 가락으로 익어간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사당패들
풍미는 발 빠르게 어우러진 사물로
저마다 고여있는 수평선의 강세
길고 짧은 많은 부침이 정박한다
맨몸으로 치는 불규칙한 장단이지만
적절한 리듬의 배후가 늘어졌다가 오므라들다
돌이킬 수 없이 나아가는 원심력에서
돌아올 수 있는 구심력을 항해한다
잘게 쪼개지면서 홀로 섞일 수 없는
국거리 타법으로 굿거리 장단을 완성하며
정오의 절정 연기로 춤을 춘다
완전하게 가락 풀린 사물의 감정이 물든
해물을 곱씹으면서 허기진 빈 칸을 채웠다
-----------------------------------------
권성훈
2002년 《문학과 의식》 시, 2013년 《작가세계》 평론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으로 『밤은 밤을 열면서』 , 유씨 목공소, 푸른 바다가재의 전화를 받다 저서로 『시 치료의 이론과 실제』,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정신분석 시인의 얼굴』, 『현대시 미학 산책』, 『현대시조의 도그마 너머』 등이 있다. 경기대학교 교수이며 사이펀 편집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