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요한 1,1-18)
요한복음서 첫머리에 나오는 이 머리글은 ‘신학적 머리글’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요한복음서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신학적으로 요약해줍니다. 시적인 문체로 구성되어있는 이 머리글에서 저자 요한은 구약 창세기 맨 앞부분에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어내신 창조주 하느님, 바로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선포합니다.
“한처음에 말씀[Logos]이 계셨다.”(1,1)
여기서 요한복음사가가 말하는 ‘한처음’은 우리 인류가 말하는, 이 세상 시간과 공간 안에서 쉼 없이 흘러가는 그런 시간이 아닙니다. 요한이 말하는 ‘한처음’은 이 세상 과학의 영역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초월적 시간 또는 절대적 시간을 말합니다.
요한이 말하는 말씀[그리스말, 로고스 Logos]은?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 안에는 구약의 지혜문학을 비롯한 그리스 문화권(헬레니즘)의 유다교가 스며들어있습니다. “나[지혜]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잠언 8,23-26; 참조: 지혜 7,22-8,1; 집회 24,1-22)
그분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1-3)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
요한복음서 1장 3절의 ‘생기다[gignomai]’라는 그리스말 동사는 창세기 1장 3절의 ‘생기다’라는 동사와 똑같은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모든 피조물이 없음(무)에서 창조되었음[creatio ex nihilo, creatio a nihilo]을 명확히 드러내줍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비롯한 모든 것을 창조주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말합니다. 이로써 요한복음사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는 선하며 가치 있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악한 것이라고 말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해줍니다.
말씀은 누구신가?
요한복음서에서 말씀[Logos]은 하느님 아버지와 한편으로는 다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과 분리될 수 없는 같은 한분 하느님이십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10,30) 세상을 무에서 창조하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선포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1,3)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1,5)
여기서 ‘깨닫다’는 ‘알아보다’(10절), ‘맞아들이다’(11절)와 관련되며 ‘받아들이다’와 ‘믿는다’(12절)와도 관련됩니다. 곧 그분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이는 그분을 맞아들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결국 그분을 믿지도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닫고 맞아들이며 믿는 이에게는 구원이 선사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12절)
요한은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1,8)
공관복음서에서 세례자로 등장하는 요한이 요한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역할에만 충실합니다. 요한의 임무는 하느님을 계시해주시는 분, 곧 하느님 계시자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외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3,30)
성모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요한(2,1-11; 19,26-27)
복음사가 요한은 신약 안에서 그 누구보다도 마리아의 역할을 돋보이게 해줍니다. 갈릴래아 카나 혼인잔치 진행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예수님께 알리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직 임하지 않았음을 알리듯 응답하십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그분이 시키는 대로 행하라고 일꾼들에게 말합니다. 성모님의 지시가 떨어지자 곧바로 예수님께서는 물독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가져다주라고 일꾼들에게 이르십니다. 과방장은 놀라서 말합니다. “……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2,10)
풍요와 양질의 포도주
이와 같이 요한 복음서에서는 마리아의 요청으로 첫 번째 표징이 일어납니다. 그 표징 덕분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2,11).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첫 번째 표징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카나라는 아주 작은 마을 혼인잔치에 온 손님들이 실컷 마시고도 남을 양의 포도주를 선사하셨을 뿐 아니라 과방장이 깜짝 놀랄 만큼 좋은 포도주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잔치
카나 혼인잔치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부터,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완성된 하느님 나라에서나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포도주를 곁들인 잔치를 연상케 해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나누는 잔치에는 어떤 부족함도 없이 풍요로움과 축복이 뒤따를 뿐입니다. 그분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카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줍니다. 아직 이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부족함이 있을 때는 서슴없이 성모님께 부탁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카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자세히 묵상하면서 가톨릭신자들이 늘 되풀이하여 바치는 성모송을 천천히 기도드리며 묵상하면 성모송이 우리에게 새롭게 그리고 엄청난 은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마리아의 등장과 의미
마리아는 요한복음서 앞부분 첫 번째 표징 때에 그리고 뒷부분 수난기에 각 한 번씩 등장합니다. 일곱 번에 걸쳐서 묘사되는 표징 가운데 첫 번째 표징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계기를 만들어 드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수난기 끝부분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제자(요한)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도록 요청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19,26) 아울러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어머니로 모시라고 부탁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19,27) 여기서 우리는 성모님과 제자가 이제부터는 두 가정이 아니라 한 가정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로써 성모님께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 우뚝 서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
십자가 위에서 성모님과 사랑하는 제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목마르다.”(19,28)와 “다 이루어졌다.(tetelestai)”(19,30)는 말씀을 끝으로 숨을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유언으로도 해석되는 다음 말씀을 기억하면 어떨지요?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5,1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This I command you: love one another.”(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