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빚다
김동원 시인
토하(土荷) 연봉상은 광활한 우주에 흙 점 하나 찍는 사람이다. 도자기는 정신을 빚고 마음을 담는 기물이다. 토하의 달항아리는 전통을 살리되 그것에 함몰되지 않고, 현대적 감각을 수용하되 결코 가볍지 않다. 수많은 실험과 기법으로 현대 도예 미학을 우주로까지 확장한 독보적 심미안을 가졌다. 명품 「푸른 별의 꿈」을 보고 있으면, 그 신비로운 비취의 발색은 황홀하다. ‘도자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는 그의 도자관은, 기존 도예 기법을 과감히 전복(顚覆)한다. 불자락의 기묘한 추상표현 기법은 포스터모던postmodern하다.
그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마 속 불자락’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장작가마와 육송 땔감만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토하의 작품은, 기기묘묘하다. 그의 달항아리 작품인 「달은 천개의 강을 비추고」, 분청 항아리「雪雲」, 접시 작품「Cosmos」는 어떤 도예가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법을 선보인다. 조선백자에서 유추한 현대 조형미겠지만, 토하 유약의 응축과 흘러내린 형태미는 초현실적이다.
요변(窯變)은 흙과 불과 바람이 낳은 도자 예술의 진경이다.훌륭한 도공은 흙 속에 천문(天文), 지문(地文), 인문(人文)의 철학이 숨어 있음을 안다. 토하의 흙은 팔공산 습지에 감춰진 검은 찰흙이다.분청사기, 흑유, 찻사발, 백자항아리 등 실로 다양한 그의 작품은, 이런 풍토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실패와 반복을 통해 되살아난 달항아리의 울퉁불퉁한 분화구는 불가사의하다.
그의 기막힌 요변(窯變)의 멋은, 법고(法鼓)의 아름다움과 창신(昌新)의 미학이 스며든 절정이다. 토하는 불교의 원융(圓融) 세계를 대작「반야심경」 벽걸이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드러냈다. 근래 전통 항아리를 찢는 그의 실험 방식은 도자계의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흙 선(線)의 묘한 조형은 미(美)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시대를 꿰뚫는 탁월한 심안(心眼)과 물성의 처리 방식, 사발의 오묘한 발색은, 토하 도예미의 묘처(妙處)이다.그는 끊임없이`현대미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고정된 예술의 실체를 거부하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그만의 독창성을 추구한다.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겠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그것에 걸맞는 예술의 창조적 파괴가 요구된다. 옛것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나 시류에 영합한 작품의 모방은, 진정한 도예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니다. 예술가로서 도예가는, 오로지 이 우주에서 유일한 한 점 ‘나’만의 도자 작품을 낳을 때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