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계정혜에서 혜(慧)는 '교학공부'를 말하나요? 아니면 '깨달음의 지혜, 반야'를 말하나요? 정혜쌍수라고 하니 수행적 차원의 교학을 의미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정혜일치라고 하니 궁극적 차원의 반야바라밀을 의미하는 거 같기도 해서.. 헷갈리네요.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 답변
<정혜쌍수라고 하니 수행적 차원의 교학을 의미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정과 혜를(사마타와 위빠사나) 같이 닦는다는 말입니다.
님의 말처럼 수행을 설명하는 언어입니다.
붓다는 수행의 방법혹은 해탈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설명합니다.
1. 사마타만 닦는 경우 (이것으로 얻은 해탈을 심해탈이라 합니다.)
2. 위빠사나만 닦는 경우(이것으로 얻은 해탈을 혜해탈이라 합니다)
3.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같이 닦는 경우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마지막엔 삼매를 닦은 후에 위빠사나(통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으로 얻은 해탈을 양면해탈이라 합니다.)
<정혜일치라고 하니 궁극적 차원의 반야바라밀을 의미하는 거 같기도 해서.. 헷갈리네요>
위 설명에서 보자면 정혜일치는 3번 '양면해탈'의 깨달음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과정과 결과를 모두 포함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정혜일치가 수행의 과정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수행의 완성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특히 반야바라밀은 <반야>라는 것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 <반야+바라밀>로..
깨달음에는 '깨달음이라는 인식조차 있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입니다.
금강경에서 특히 반야바라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붓다의 가르침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가르침이다' 라는 부처님 말씀을
<청정도론>에서는 계정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계(戒)는 처음이 좋은 것을 나타낸다.
'무엇이 선법(善法)들의 처음인가? 아주 청정한 계이다' 라는 말씀과,
'악을 짓지 않음(諸惡莫作)' 등의 말씀 때문에 계(戒)가 교법의 처음이고,
그것은 후회하지 않음 등의 공덕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정(定)은 중간이 좋은 것을 나타낸다.
'유익함을 받들어 행함(衆善奉行)' 등의 말씀 때문에 정(定)은 교법의 중간이고,
그것은 신통변화 등의 공덕을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혜(慧)는 끝이 좋은 것을 나타낸다.
'자기 마음을 맑히는 것(自淨其意), 이것이 부처님들의 교법이다(是諸佛敎)' 라는 말씀과
또 혜(慧)가 그것의 정점이기 때문에 교법의 끝이고,
그것은 좋고 싫은 것에 대해 평정을 유지하게 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출처: Naver 지식in/질문polkna, 답변whoami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