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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방학도 다 지나가고 내일부터 개강이네요. 정다운 사람들과 다시 만나 함께 공부도 하고 환담 내지는 한담도 나누고 할 것을 생각해보니 가슴이 조금씩 뛰는 것 같네요. 그럼 워밍업으로 한 자 배워보고 강의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경주 교동에 있는 최씨고택의 대문입니다. 이렇게 양옆의 행랑보다 대문을 높여서 만든 것을 솟을대문이라 하지요. 옛날에는 양반 같은 특권계층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일종의 특혜였습니다만 조선말기로 넘어오면서 사회질서가 붕괴되어 너도나도 솟을대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이렇게 솟을 대문을 만든 이유를 알아야겠죠. 양반들이 이렇게 솟을대문을 만든 것은 초헌 같은 높은 가마, 말이나 마차를 탄 채로 문을 통과하려면 보통의 문보다는 높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차나 초헌도 없이 이렇게 솟을 대문을 만드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큰 승용차도 없으면서 그만한 규모로 대문을 크게 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겠지요. 이 문(門)은 원래 양쪽에 쌍으로 붙은 여닫이가 있는 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래의 옛날 서부극에 등장하는 술집의 문처럼 말입니다. 이런 문을 본뜬 글자가 있는데 바로 「문 문」(門)자입니다. 「문 문」(門)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정말 모양이 똑같지 않습니까? 원래 문(門)이라는 것은 담에 달린, 그러니까 어느 집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솟을대문 같은 「문」을 통과하면 집이 나옵니다. 집에는 사람들이 주거하는 방이 있지요. 이 방으로 들어가려면 또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래의 사진과 같이요. 사진을 보면 문이 외짝으로 된 것도 있고 쌍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쌍으로 달린 여닫이 문은 위에서 말한 「문 문」(門)자와 같은 형태입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문자적으로 따진다면 이렇게 방의 문으로 들어가는 문은 「호」(戶)라고 하였고, 훈은 「지게」라고 합니다. 「지게」라는 말은 물건을 운반하는 지게와 표기가 같습니다만 뜻은 달라 외짝문을 나타냅니다. 가난한 사람의 집에는 문(門) 같은 쌍으로 된 대문이 없을 수도 있고,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흔히 외짝문이 많았습니다. 나중에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게 호」(戶)라고 하였습니다. 「지게 호」(戶)자의 갑골문-금문대전-소전 옛날이나 지금이나 담장을 통하는 문이 없이 방으로 통하는 문만 가진 집이 있게 마련입니다. 즉 문(門)은 없고 호(戶)만 있는 집 말이지요. 위의 사진이 바로 문은 없고 호만 덩그러니 있는 집입니다. "초가삼간 집을 짓고~"라는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집입니다. 옛날에는 어지간한 집이 아니고서야 거의 저런 집밖에 없었지요. 영화 <러브 스토리>를 보면 문을 통과해서 집으로 가는데 차로 한참 들어갑니다. 아마 그런 집에는 문은 하나지만 호는 여럿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인구조사를 할 때 가구를 헤아리는 단위가 문이 아니라 「호」(戶)를 쓰게 된 것이지요. 좀 호화로운 집에는 방으로 드는 문도 양쪽으로 된 것을 쓸 수도 있겠지요. 그렇긴 해도 그런 것도 원칙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모두 「호」(戶)인 것입니다. 저런 방문은 보통 안에서 손쉽게 잠글 수가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문고리를 걸고 굵은 쇠막대를 구부려서 꽂거나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숫가락을 거꾸로 꽂아두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간단하게 잠글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가마나 마차가 드나드는 큰 대문의 경우에는 그렇게 간단하게 잠글 수가 없었고 비교적 거창한 장치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말이죠. 저렇게 양쪽 문에다 나무를 가로로 질러 걸어잠그는 것을 우리말로는 빗장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훈을 「빗장」이라 하고 「關」이라고 씁니다. 전략적으로도 협곡 등과 같이 외길이 통하는 곳을 관(關)이라고 합니다. 한번 잠그면 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지요. 육국과 진(秦)나라의 통로를 함곡관, 삼국시대 위나라와 촉나라의 통로를 검문관, 당나라 때 호와 당나라의 통로를 동관(潼關)이라고 하는데 다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빗장은 바로 위의 사진처럼 대문을 잠그는 장치를 말하고, 처음의 사진처럼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근 뜻을 나타내는 한자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닫을 폐」(閉)자입니다. 「빗장 관」(關)자의 금문-소전 「닫을 폐」(閉)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지금은 문 안쪽 부분의 모양이 「재주 재」(才)자 모양으로 바뀌어서 뜻을 유추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만 원래는 十이나 ‡ 모양으로 문의 빗장을 굳게 걸어잠근 모양을 나타냈습니다. 반면 저렇게 굳게 닫힌 문을 열려면 두 손으로 빗장을 풀어야 했지요. 그렇게 나온 한자가 바로 「열 개」(開)자입니다. 「열 개」(開)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이런 빗장은 실용적인 면을 넘어서서 장식을 함으로써 예술적인 차원으로 발달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대구에 있는 남평문씨 세거지의 수봉정사에 있는 빗장입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모양으로 빗장을 만들어한껏 멋을 내었습니다. 그렇게는 해도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멋을 풍깁니다. 참으로 멋을 아는 조상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모두 가장 기본적인 풍수지식에 의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집의 정면은 볕을 향한 쪽으로 두었고 출입구를 내었죠. 그리고 빛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큰 창문으로 두고 말입니다. 요즘 아파트 구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앞쪽의 큰 베란다에는 아주 넓은 통유리 창이 있는데 비하여 뒤쪽에는 작은 창문을 달아 통풍이나 시키는 정도로 말이지요. 해를 향한 쪽으로 난 창문은 다음과 같이 생겼습니다. 이런 창문은 안쪽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생겼습니다. 바깥쪽은 둥글지만 안쪽은 네모난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지요. 이런 문을 둥글다고 보통 월창(月窓)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중국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의 창문입니다. 이런 월창을 문자로 만든 것이 바로 「빛날 경」(囧)자입니다. 원래는 둥근 월창을 본뜬 글자인데 그만 훈이 「빛나다」로 바뀌었습니다. 「빛날 경」(囧)자의 갑골문-금문-소전 이런 월창에 달빛이 비치는 비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을 나타낸 자가 바로 「밝을 명」(明)자입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경」(囧)자의 훈이 빛나다로 바뀐 것 같습니다. 「밝을 명」(明)자에 대하여 상세한 것은 다음에 더 알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월창에 비치는 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만 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밝을 명」(明)자의 금문대전 한옥의 북쪽에 난 작은 통풍구입니다. 겨울에는 거의 닫아놓고 있다가 가끔씩 열어서 통풍이나 시키게 하였습니다. 반면 여름에는 항상 열어서 시원한 바람이 들도록 하였죠. 이런 환기창이라면 합천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 장판각의 창문이 있습니다. 전면과 후면의 창은 크기가 각자 다른데 공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서 불경의 장판이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조상들의 놀라운 과학적 지식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인정을 받았죠. 이렇게 공기가 통하게끔 북쪽으로 난 환기창을 한자로 「향」(向)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향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요. 「향」(向)자의 갑골문-금문-소전 윗 부분은 집의 지붕에서 파생되어 나중에는 집을 나타내는 한자에 부수로 쓰이게 된 「집 면」(宀)자가 변한 것입니다. 「집 면」(宀)자는 현재 부수로 읽을 때 보통 「갓머리」라고 합니다. 아래의 「입 구」(口)자가 바로 북쪽으로 향하여 난 창문을 말합니다. 집의 창에는 저런 용도 말고도 또 창이 있습니다. 방으로 통하는 문 위로 구멍이 뻐꿈하게 난 것이 보이죠? 저 창은 방과 연결된 것이 아니고 부엌과 연결된 것입니다. 부엌의 연기라든가 수증기, 그리고 냄새까지 쉽게 바깥으로 배출시키도록 한 환풍장치인 셈이지요. 이런 사정은 서민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가지붕끝에 구멍이 난 것이 보이죠? 이 구멍은 집이 낡아 허물어져서 난 구멍이 아니고 위의 사진과 같은 용도로 일부러 낸 구멍입니다. 이런 집을 우리는 까치구멍집이라고 합니다. 안동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강원도까지 더 북쪽으로 발달했던 가옥구조였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환풍을 위한 목적으로 쓰였지만 아주 옛날의 움집에서는 난방도 이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전체 주거공간을 따뜻하게 하려면 말이지요. 이런 용도로 연기나 수증기 냄새를 배출하기 위한 것을 나타내는 한자가 바로 「창 창」(窓)자입니다. 「窓」은 「窗」, 「囱」 또는 「牕」이라고도 썼는데 뜻은 똑같습니다. 지금은 그냥 창문이라는 뜻으로 다 통용하고 있습니다. 「창 창」(窗)자의 금문대전-소전 「창 창」(囱)자의 금문대전-소전 문에도 문(門)이 있고 호(戶)가 있으며, 창도 다양한 용도로 여러가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문이든 호든 모두 외부와 단절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문호를 잘 개방하고 또 단속도 하여야겠습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게문의 준말이 지게로 굳어져 쓰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책으로 만날 수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많은 홍보 바랍니다.
공부하고 갑니다^^*
오랫만에 공부를 하고 갑니다~ 책으로 나온다니 빨리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