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팔찌
김00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하다. 살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절기엔 옥상 배관 상태, 방수, 냉·난방까지 꼼꼼히 살핀다. 환경을 점검하고 일정의 가중치를 메모 한다. 번호를 매겨가며. 출근하는 선생님들 사이 아침 인사는 한 옥타브를 높인 상냥한 목소리를 주문한다. 일일지계재어신一日之計在於晨 이라하지 않았는가? 하루를 여는 시간이 중요하기에.
"아얏!"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당직 교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끓여놓은 보리차를 보온병에 옮기려다 끓는 물이 손목을 덮쳤다. 순식간에 손목과 팔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선생님, 팔찌부터 빼 주셔요." 도움을 청한 뒤, 응급처치 방법을 잊은 채, 바로 수돗물에 팔을 담갔다. 화상 부위의 열을 빼 내는 것은 얼음찜질이 기본인 것을. 환부는 벌겋게 달아오르고, 군데군데 물집이 생겼다.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쓰리고 아팠다. 손목에는 열기 묻은 팔찌의 형상이 가녀린 손목에 훈장처럼 찍혔다.
부주의로 빚어졌기에 직원들 보기에 민망했다. 아프지 않은 체 했지만, 덧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교직원들은 응급실 가기를 권유했다. '바로 낫겠지.' 애써 호기를 부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부는 커지고, 물집도 번졌다. 심재성 2도 화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스레 버텼다.
“원장님, 큰일 나겠어요. 얼른 병원에 가보셔요.” 보다 못한 직원의 성화다. 병원에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교사 한 명이 자리를 비운 터다. 난감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가까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이른 시간이라 응급실 진료만 가능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의사는 의술의 한계로 화상 전문병원에 치료받기를 권했다. ‘이 나이에 흉터쯤이야 어때.’ 되뇌며 의사 말씀을 묵살해버렸다. 호전될 줄 알았던 화상 부위의 통증이 강도가 점차 높아졌다. 환부가 덧나면서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진물이 그치질 않았다. 먹는 약은 독해 어질어질했다. 매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삼일 째 되던 날이었다.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더럭 겁이 났다.
보다 못한 선생님 한 분이 거울 쪽으로 나를 이끈다. 백짓장처럼 창백한 얼굴이 거울 속에 나타나지 않은가. '더는 미적거려선 안 되겠구나.' 화상 전문병원을 찾았다.
"왜 이렇게 늑장을 부렸느냐?" 그렇게 우둔하냐. 힐난조 질책이 틀림없겠다. 당장 수술절차를 밟아란다. 의사는 중간 관리자에게 꼼꼼히 업무지시를 하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수술 후 흉터는 어떠할지. 장기간 비워야할 직장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수술대에 올랐다. 전신마취다. 마른 침을 연방 삼켰다.
"선생님 정신 드세요." '해냈구나.' 안도의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수술 후유증은 만만찮았다. 만사가 귀찮았다. 그러나 어쩌랴. 극복해야하는 것을. 식욕이 없었지만, 열심히 챙겨 먹었다. 좋다는 연고를 수시로 발랐다. 산소, 고압 치료, 영양제 등 좋다는 건 죄다 했다. 예상외로 차도가 빨랐다. '이 나이에 흉터쯤이야.' 라는 생각이 바로 어저께였는데…. 아이러니의 극치다.
"팔찌 없는 팔찌가 손목에 걸렸네요." 주치의 선생님의 익살이 밉지 않다. 손목에는 샤넬 로고가 선명했기에.
나의 손목은 소중한 선물 두 개를 걸고 있다. 전자는 학위를 받았을 때 시아버님이 마련해 주신 팔찌이며, 후자는 화상이 손목에 찍어준 팔찌다. 시아버님의 내린 팔찌는 사랑의 징표이며, 화상火傷이 가져다 준 팔찌는 삶에 교훈을 담고 있다. 두 선물을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