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이 넘으니 현저히 체력의 열세를 느끼게 된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세월에 순응할 수밖에 없음이 서글프다
세월이 한 고개 넘어갈 때마다 예전의 당당함은 하나,둘씩 꼬리를 감추고
세월을 누가 이기랴...위로한들 허청거리는 마음 걸음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직원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요청에
'내가 가겠노라.' 선뜻 나섰는데 무너지는 체력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마침 신년 초라 손님도 없으니 "바빠지면 연락하라 한 달 동안 휴가를 받았다 생각하고 쉬겠다." 라고 하니
"3월에 꼭 다시 오라"며 붙잡지 못함을 미안해했지만 아쉬움 따위는 눈곱만치도 남기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
따뜻한 방안에서 뒹구는 것은 좋은데 날씨가 추워 계획했던 여행이 줄줄이 취소되니 시간이 아깝다
마침 방학이라 컴퓨터에 붙어사는 딸과 함께 맛집 여행을 계획했다
계절이 겨울이니 겨울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정해 가까운 곳부터 찾아 나섰다
100년 전통의 이문 설렁탕으로 정한 첫날,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에 붙어 있던 딸이 12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는다
"딸아~~
엄마 배고파 돌아가시겠어
빨랑 일어나 설렁탕 먹으러 가자~~"
겨우 실눈을 뜨고 한다는 말이
"이 추운 날 꼭 설렁탕 먹으러 거기까지 가야겠어?"
이런...니미럴...어제밤까지 철석같이 약속 하구서는 푹 꺼진 배 참고 있는 엄마에게 뭔 소릴 지껄이는 거야?
"엄마는 꼭 먹어야겠어. 그리고 너 약속했잖아 약속 지키지 않으면 똥꼬에 털 난다~~
똥꼬에 털 나면 아마 시집도 못 갈걸~~ ㅋㅋ
협박 반, 애원 반으로 1시가 넘어 겨우 집을 나섰는데
에구...종각에서 내려야 하는 것을 종로 3가에서 내렸다.
종각을 향해 걷고 또 걷는데 아직 풀리지 않은 날씨에 오돌돌 떠는 딸이 안쓰러워 목적지를 바꿨다
"딸아
엄마가 몇 년 전에 먹었는데 그 집 국밥이 무척 맛있더라
우리 거기 갈까?"
날씨가 추워 걷는 것이 귀찮은지 선선히 대답하는 딸의 손을 꼭 잡고 장터 국밥으로 유명한 시골집으로 갔다
드디어 시골집에 도착.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열었더니 이런...망할...메모리 카드가 없단다
"딸아 너 카메라에 손댔어? 메모리 카드가 비었단다"
"어...그거...컴텨에 꽂아놨는데..."
으이그...어쩌다 사진좀 찍으려했더니...쩝...
할수 없이 검색을 통해 몇 개의 사진을 빌렸으니 착오 없으시길...
'VJ 특공대 맛집 방영' 음식점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물론 유명 방송에 광고하는 것이 영업으로는 좋겠지만, 상업적으로 변질한, 뭔가 빛을 잃은 그런 느낌이랄까?
종로에는 한옥을 개조한 음식점이 많다
고옥에서 풍기는 정스러운 이미지에 어쩌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여러 개의 간판이 거슬렸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화장과 옷으로 치장한 듯한 어지러움같은거.
어차피 유명한 음식점으로 소문났고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도 많은데
깔끔하고 단정한 한옥의 멋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실내 모습이다
한옥 특성상 구조가 좁은 탓도 있겠지만 뭔가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이 느껴진다
'음식이 맛있으면 되지 뭘 그리 까다롭게 흠을 잡느냐?'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음식점이 어수선하면 왠지 비위생적일 것 같고 맛도 없을 것 같은 선입견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면 다행이겠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당 중간을 가로막은 유리창도 눈에 거슬렸다
아마도 주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간이막을 설치한 것 같은데 그것으로 실내가 더 답답하고 좁아 보였다
30년 전통의 장터 시골집이 예전에는 여관이었다고한다
그정도 크기의 여관이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준호텔쯤은 되지 않았을까?
장터국밥을 시켰다
국밥의 찰떡궁합인 깍두기와 김치,오징어 젓갈이 세팅되고
국밥이 나왔는데 사진으로 보여 드릴 수 없지만, 뚝배기에 담긴 일반적인 국밥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맛을 보면 "그래. 이 맛이야!." 감탄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 양지와 사태를 끓여낸 깔끔한 맛이 일품인 국밥은 보통의 국밥에서 느껴지는 누린내도 없었고
부드러운 고기와 푹 무른 무와 대파, 선지가 푸짐했다
양이 크게 많다고 할 수 없는 보통의 양이었지만 일반적인 식사량에 모자라지 않았다
깔끔하고 개운한 국물과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국밥은 하루의 나들이가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치와 깍두기였다
푹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덜 익은 깍두기와 김치가 국밥하고 따로 노는 것 같아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생절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싱싱한 김치맛이 훌륭할 수도 있겠다
"딸아 어때?
국물맛이 어랑 만두집과 비슷하지?"
"그러네...정말 어랑 만두집하고 똑같아~~"
어랑 만두는 남양주 시청 근처에 있는 이북식 만두집이다
오랜 단골인 이 곳은 사골국물과 김치가 환상이다
특히 입 짧은 딸이 이 집의 만둣국인 사골국을 좋아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
깍두기도 맛있지만, 물김치 또한 계절에 상관없이 환상적인 맛을 제공한다
지금은 물김치를 포장해서 팔기 때문에 오고 갈 때마다 두 팩씩 사다 놓고 입 맛 없을 때마다 그 맛을 즐기는 마니아가 되었다.
딸과 둘이서 맛있게 국밥을 먹자니 남편에게 미안했다
"딸아 일인분 포장해서 저녁에 아빠 드릴까? 아빠도 국밥 좋아하는데..."
국밥 일인분을 포장 주문하고 천천히 국밥 한 그릇을 깨끗히 비웠다
그런데 국밥 포장이 어찌 이럴수가?
어지간히 이름난 음식점에서 포장 주문을 하면 일회용 용기에 담아 주는데
맛집으로 유명한 이곳의 포장은 일회용 비닐에 국밥을 담아 까만 봉지에 담아준다
헐...!
이왕에 포장 판매 하는 것 조금만 신경 쓰면 마지막까지 좋은 이미지로 남았을텐데
무신경한 주인의 감각을 탓한들 무엇하리.
"엄마!
이거 들고 하루 종일 다닐꺼야?"
난감했다
서점에서 문제집 사고 쇼핑하기로 했는데 음식 냄새 나는 까만 비닐 봉지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 신경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이 기우에 그쳤으면 좋으련만 부츠를 사기 위해 들린 신발 가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며 뭐냐고 묻는 말에 "국밥이요!" .
젠장헐...
폼생폼사...폼이 사망한 날이었다.
내일은 춘천 남이섬으로 닭갈비를 먹고 청평에 들려 송어를 먹기로 했는데 딸랭이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좀전의 친구 전화에 친구랑 놀라가라고 성화다
엄마 왕따시키고 아마 친구들과 은밀한? 약속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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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남이섬 선착장에는 닭갈비 집이 즐비하다
다른 집은 모르겠으나 남이섬을 마주보고 오른쪽 마지막 음식점 닭갈비가 맛있다(음식점 이름은 모른다)
닭갈비는 대체적으로 불판에 구워 먹는데 그 집은 숯불로 굽는다
맛이 부드럽고 느끼하지 않아 2인분은 거뜬히 먹는다
여름이면 더욱 좋다
강을 발아래 두고 섬을 바라보는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다이어트 걱정따위는 무장해제 되는 집이다
첫댓글 겨울이지나 봄이 오려나 봅니다. 송화님~~
봅은 송화꽃의 계절인데 저의 계절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ㅎㅎ
이런..니미럴 ㅋㅋ 울엄마도 가끔 이랬겠지 ..
난 엄마속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까댔을텐데..
오늘 엄마의 칸소네를 불러 달라고 국제전화 때려야 겠어요
엄마도 요즘 외로울텐데.. 얼싸좋아하실거
글고 당장 모든 먹고싶어요 ㅜ.ㅜ
ㅎㅎ~엄마속 모르는건 모든 자식들이 아마 똑같지 않을까..하는ㅅ 생각입니다 부모님 마음을 안다면 불효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을테니까요~
다 먹어보고 싶네요
시간날때마다 한번씩 다녀오세요~저도 열심히는 아니지만 노는 시간이 아까워 이리저리 즐거움을 만드는걸요~
인간의 삼대 욕망인 식욕을 채우는 식도락!~ 식도락 삼매에 빠지셨네요^^
네에~~ 맞습니다~~ ㅎㅎ 요즘 맛집 여행에 푹~~ 빠졌답니다
ㅎㅎㅎㅎ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열었더니 메모리 카드가 없단다
심각하시군요.
심각한게 이것뿐이라면 다행이겠지요..에휴...
맛난집을 많이 아시네요
맛난것을 먹으려면 일단 찾아야하니 검색이나 주변분들에게 여쭤보고 구미가 땡기면 바로 달려가는 이 성급함을 어쩌리오~~ ㅋ
치사빤주~ 혼자만 맛있는거 먹구다니시궁!!!
앗! 미안해요 해인아우님~ ㅋ~29일 바닷가 갑니다 함께 가시려우?
아... 저도 가끔 들르는 집입니다. 국밥만 먹기엔 왠지 소주한테 미안해지는... 그런... 그 걸쭉한 국물이 사무치네요...
부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