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충무로 역에서 모여 남산 한옥 마을에 가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18호 민화의 김 만 희 선생님을 만나뵈었다. 한옥 마을에는 널뛰기, 팽이 돌리기등 많은 전통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주변에는 한옥들이 있었는 데, 실제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더운데, 한옥에서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 데 꽁쌤께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에어컨이 없지만 통기성이 잘 된다고. 어렸을 때 민속박물관에서 보던 한옥을 직접 보게 돼서 더 실감이 났다.
김 만 희선생님께서는 백내장 수술이 잘 못되어서 한 쪽 눈만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미술을 하려면 눈이 좋아서 색채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대단하시다.
우리가 주로 학교에서 배우는 미술은 서양화 위주로 수채화, 유화 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동양화과가
따로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그림이 건너와 조선 회화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거치면서 수묵화(묵과 먹을 이용) 산수화(물감을 은은하게)같은 오늘날의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화풍에 맞춰서 그려지고 주로 선비들, 지식인층, 양반 층등 상류층들이 주로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이용해서 그렸다고 한다. 이에 비해 민화는 조선시대 중에서 후기에 유행하는 미술로 일반 서민층의 그림이다. 이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화에 대한 취향으로 그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엄격한 화풍이 없고 그림의 내용을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고, 종류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꽃과 새의 그림, 즉 화조도는 살기 위한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민화는 오래 사는 것, 소망하는 것, 또 이것들이 나쁜 귀신에 의해 방해받는 걸 막기 위한 것(대문에다가 용을 그려 놓는 것 같은 부적과 같다)들이 이 그림 안에 담겨져 있다고 한다. 즉, 민화에 들어가 있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수(오래살고) 복(복받고) 강(건강하게) 녕(마음이 편하게) 부 귀(부자) 다 남(아들이 많은 것) 이다. 선생님께서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까마귀가 오래 살지 못한 다는 슬픔에 잠겨 있는 인간들을 위해 블로초 약을 가지고 오는데, 까치가 자는 동안, 그 블로초약을 소나무가 먹었다는 민담을 말씀해주셨다. 지금도 그렇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인간들의 소망을 잘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미술 교과서에서 보듯이, 민화는 호랑이나 용, 닭 그림이 많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벽장, 문에 풀칠해서 도배할 때 붙였다고 한다. 1년 후 다시 도배하면 그때 버리고 다시 사고.. 가격이 저렴했다 한다. 우리가 있던곳에도 호랑이와 까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호랑이는 수호신을(살면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산신)을 뜻하고, 까치는 울면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것과 같이 예전부터 사람들이 좋아햇던 동물이다. 이 그림은 까치가 천신의 명을 받아서 전달하면, 호랑이는 명을 받들어 백성에게 전해준다는 뜻을 가진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고 민화가 더 가깝게 느껴졌고 재밌게 느껴졌다.
이 민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 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학자들의 연구 결과, 굉장히 오래되었는 데, 아마 불교 고구려 소수림왕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400년 전에는 우리의 천신 사상과 도교, 유교 불교 무속등과 충돌하고 하면서 서로 합쳐졌는 데 (예를 들면 산신각) 민화 중에서도 토착적인 무속과 결합된 기원과 믿음의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있다고 한다. 민화의 그림 에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십장생도(해,구름, 돌, 물, 사슴, 거북이, 학, 소나무, 대나무, 블로초)가 그려져 있고 그밖에도 장생도, 문자도 등이 있다고 한다.
나는 달이 십장생도에 들어가있는 지 알았는데, 아니라서 의외였다.
아! 선생님에 대해서 잠깐!
선생님은 민화를 68년대에 시작해서 40년동안 해오셨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은 민화을 없애버리고 소멸시켰다고 한다. 글구 일부 민화 화가들은 미국 등의 왜국에 건너갔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서도, 서구사상에 물들어져서 민화에 점차 관심이 없었졌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도 가난하니까 자꾸 소멸이 되었고 이래서 선생님은 민화를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민화를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민화의 바탕을 찾고 다 조사하고 사진 찍고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그리셨다고 한다. 이런 선생님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선생님은 뭘 하고 계셨을까?
선생님은 국내 전시회 개인전 45회를 하셨고 외국(미국, 일본, 대만) 등에서 개인전 15회를 하셨다고 한다. 외국사람들이 민화를 참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외국인들이 민화에 더 흥미를 갖는 점이 섭섭하시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직접 그린 그림을 색칠하셨는데, 종이는 창호지보다 더 좋은 선지를 사용하셨다. 직접 물과 악요,등을 알맞게 가루로 만든 분채와 섞으시는 과정도 보여주셨다. 민화에 더 궁금하시면 박물관을 가보시라고 여러 박물관도 소개해주셨다. 우리나라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는 뭘 해야 될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선생님께서는 그림을 그리시느라 신경이 많이 쓰이실텐데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냥 미술교과서만로 배우던 민화를 이렇게 실제로 와서 설명을 듣고 직접 보니 색다르고 왠지 모른 것들이 내 마음 속에 쌓였다는 느낌에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