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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꾸리아(성모성심. 황금궁전)
 
 
 
카페 게시글
가톨릭 관련 자료 스크랩 란치아노의 성체기적
황금궁전 추천 0 조회 10 11.05.31 20: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란치아노의 성체기적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인 8세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성 바실리오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신부가 어느 날 아침, 초라한 시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부터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실까? 하는 의심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날도 몹시 번거로운 마음을 간직 한 채 빵과 포도주의 성변화를 위한 축성을 막 끝냈을 때 갑자기 면병이 살아있는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외양이 살아있는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신부는 “오 내 주님이시며 내 하느님이십니다.” 라고 부르짖으며 주저 않고 말았다. 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이 성당이 바로 이태리의 란치아노성당이다. 이 역사상 최대의 성체기적은 한 수사신부의 의심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셨던 것이다.

 

이 란치아노성당은 1176년까지 동방가톨릭교회에 속하는 바실리오회 수사들이 관리하다가 그 후에 베네딕도회를 거쳐 1252년에부터는 꼰벤뚜알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258년에 고딕식으로 재건되었고 1700년에 다시 바로크 형식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기적의 성체와 성혈은 성당 앞부분 큰 제대 옆에 있는 소 성당에 보존되어 오다가 1902년부터는 새로 만든 기념제대 위에 보존되어 있다. 순례자들은 두 줄의 대리석계단을 올라가 이 기적의 성체를 공경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12 세기가 지난 지금,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은빛 수정성작 안에 담겨있는 성혈은 불규칙한 다섯 개 형상을 한 핏덩이로 되어 있고 무게는 16.5 그램이다. 얼른 보면 빛이 바랜 것 같은데, 밝게 하여 보면 황토색 비슷한 자연적인 색을 볼 수 있다.  

 

과학적 조사

1574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서 관할 주교들이 인정한 바 있었으나, 1970년과 1971년에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쪼 병원의 수석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가 성 프란시스 성당을 맡고 있던 프란치스꼬회 수사신부들의 요청에 따라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리놀리 교수가 1970년 11월 18일 오전10시 15분에 란치아노의 페란또니 대주교의 참석 하에 그 기적의 성체로부터 20 밀리그램 정도의 아주 작은 두 개의 샘플과, 성혈로부터 318 밀리그램의 샘플을 채취하여 아레쪼 병원의 실험실에서 시에나대학교 로져 베르텔리 인체해부학교수의 도움을 받으면서 3개월여에 걸쳐 그 샘플들을 조사하였고 1971년 3월 4일,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그 성당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리놀리 교수는 완료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 때 그의 구두 설명과 함께 수많은 문서와 사진들이 제시되었다. 

 

그의 발표 내용과 덧붙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약)

1. 성체 기적의 피는 참으로 피 이며, 살은 참으로 살이다.

2. 그 살은 심장 근육이다.

3.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 이다.

4. 피와 살의 혈액형은 동일한 AB형이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동일인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 할 수는 없다.

5. 피의 성분조사에서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비율의 단백질들과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등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덧붙임

※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 하다.

※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 조처를 취한 흔적은 전혀 없다.

※ 그러므로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 현상이다.

 

그로부터 2년 후인1973년에 이태리의 의사이며 생물학자인 요셉 비온디니 교수는 자기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세계 건강 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리놀리 교수의 검사 결과를 제출하였다. 세계 건강 기구는 이 보고서의 특별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7개국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리놀리 교수의 분석 결과를 조사하도록 위임하였다. 그것은 리놀리 교수의 정직성이라든가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의 결론이 과학에 대하여 가지는 극히 중요한 의미 때문이었다. 핵의학 등 최첨단 기술들이 동원된 15개월간의 연구 끝에 그 국제적인 과학위원회는 리놀리 교수의 결론들을 완전히 확인하였다. 그들의 보고서는 세계 건강 기구의 공식 출판물들에 실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UN 산하의 그 과학자들은 란치아노의 성체기적이 "유례가 없는 케이스"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하였다. 신앙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란치아노에서의 성체 기적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신학과 영성에 관하여 지니는 중요성은 별도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적 인증이 있은 후 1978년에는 이태리에서만 700 여개의 순례단이 방문하였고 그 다음 해에는 1,000개가 넘었으며, 매일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없이 많고 그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와 북미에서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란치아노 기적의 성체 앞에서 온갖 민족과 문화와 모든 사회적 신분의 사람들이 깊은 성체 신심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란치아노에서의 성체기적" 이라는 제목의 이태리어 원본책자는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고 있으며, 영, 불, 독,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필리핀 섬들의 언어인 타가록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1974년 11월 3일 오전에 폴란드의 고위 성직자들이 란치아노의 성지를 방문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신 와틸랴 추기경도 있었다. 그는 오랜 기도 끝에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욱더 당신을 믿고, 당신 안에서 희망하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 기타 성체기적사건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345년. 한 어부가 병자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한 것을 심한 기침 때문에 음식물과 함께 토해내 버렸다. 어부의 부인은 이를 화덕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성체는 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성체를 공경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져 성스러운 행렬을 이루었다. 1452년. 암스테르담에 일어난 큰 화재로 온 도시는 잿더미로 변해버렸을 때 잿더미 속에서 성체는 물론 성체포도 흠 없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포르투갈 이보라; 1010년 이보라의 마리아 본당 주임사제였던 베른하르트 올리버 신부가 미사 도중에 의심을 품었다 성작에서 피가 넘쳐흘렀다. 이때의 제대보등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스위스 루체른 지방의 에스티빌; 1447년 성체대축일에 성체를 도난당했는데 그 범인은 잡았으나 성체는 찾지 못했다. 그 이유는 범인의 진술이 말 해준다. “가져가는 도중에 성체의 무게가 점점 불어나 도저히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무거워져서 숲속에 버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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