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독으로 멍드는 아이들(上)] 청소년 100만명 인터넷 중독… 치료·상담 시급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 소득층이 중독률 높아 아이와 대화 많이 나눠야
경북 구미시에 사는 준호(가명·14)가 인터넷 중독의 늪에 빠진 건 4년 전부터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컴퓨터를 시작한 준호는 점차 난폭한 게임에 빠져들어 헤어날 줄을 몰랐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안될 지경까지 갔다. 누가 "밥 먹었니?" "학교에서는 재미있었니?"라고 물어도 준호는 '아바타' '아이템' 등 생소한 단어를 늘어놓으며 동문서답했다. 준호의 어머니 임모(39)씨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100명 중 14명이 중독...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라고 넘기기 쉽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9~19세 청소년의 14.3%(103만5000여명)는 인터넷 중독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9~19세의 약 2.3%(16만8000여명)가 치료가 필요한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이며 12%(86만7000여명)는 상담이 필요한 잠재 위험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한 전수(全數) 조사에서는, 2%(1만2000여명)가 고위험군이고, 3.8%(2만2000여명)가 잠재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나 인터넷 중독이 저연령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성윤숙 연구위원은 "실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준호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싸우거나 유리창을 깨고, 수업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담임선생님마저 특수학교로 전학을 권유하며 아이를 포기하는 지경까지 갔다.
▲ 인터넷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청소년상담원과 보건복지가족부가 운영하는‘레스 큐(rescue) 스쿨’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 보건복지부 제공
◆저소득층 중독률이 더 높아...
인터넷 중독은 특히 저소득층·방임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복지부 김성벽 아동청소년보호과장은 "저소득층,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 등 가정에서 아이의 생활습관을 면밀히 살피기 어려운 경우 일반 가정보다 인터넷 중독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민준(가명·16)이도 인터넷 중독으로 가출을 일삼았다. 초등학교 때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따는 등 컴퓨터에 소질을 보였던 아이는 점차 폭력적인 게임에 빠졌다. 아버지(48)는 시골(함평)에서 홀로 농사를 짓고 있던 터라,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민준이를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가출한 민준이는 낮에는 PC방에서 게임하고, 밤에는 남의 집 계단 앞에서 쪽잠을 잤다. 아버지는 자신을 탓하게 됐다. "어릴 적에 엄하게 키운다고 매를 많이 들었더니 애가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먹고사는 게 바빠 아이가 게임에 빠진 것도 뒤늦게 알았고요."
민준이의 부모는 한국청소년상담원·복지부가 운영하는 '레스큐(rescue) 스쿨'에서 희망을 보게 됐다. 지난 여름방학에 11박 12일 동안 합숙치료를 받는 인터넷 중독 치료과정 '인터넷 레스큐 스쿨'에 참가한 뒤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준호도 레스큐스쿨에 다녀온 뒤엔 계획표를 짜고 일과를 실천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 임씨는 "지금도 하루에 1시간 정도는 게임을 하지만, 계획대로 정해진 시간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기 일과를 성실히 한다"고 했다. 가족들과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이형초 인터넷중독연구소장은 "정부에서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며 저소득층 10만명 이상에게 컴퓨터와 통신비 등을 지원해줬는데, 가정에서 통제가 어려운 이 아이들이 오히려 인터넷에 중독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아이와 자주 대화하라...
인터넷 중독을 조기발견하기 위해 복지부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1학년(약 127만명) 전체에 대해 인터넷 중독 검사를 실시하고, 내년부터는 초등4·중1·고1의 3개 학년에 대해 매년 실시하기로 했다.
검사를 통해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되면 지역 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게 하고, 고위험군은 정신보건센터(153개)와 협력병원(159개)을 연계해 치료를 받게 된다.
성윤숙 연구위원은 "방임적이거나 반대로 권위적·독재 스타일의 부모 아래에 있는 아이들이 인터넷 중독에 노출되기가 더 쉽다"며 "부모가 아이와 대화를 자주 하고 '일관된' 양육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초 소장은 "인터넷 중독 청소년들은 우울증·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의 질환을 갖는 경우도 많다"며 "아이가 컴퓨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용시간 등 규칙을 정하고, 방문한 사이트의 경로를 파악하거나 유해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는 '아이지킴이 프로그램'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인터넷 중독으로 멍드는 아이들 (下)]
컴퓨터에 빠진 '외톨이'… 조금만 감정 상해도 욕하거나 폭력행동...
심하면 우울증도 발병… "스킨십 자주 시도하고작은 변화에도 칭찬을"
경기도 성남에 사는 신현아(15·가명)양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조금이라도 감정이 상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욕을 퍼붓거나 폭력행동을 일삼았다. 화가 나면 1시간 내내 큰소리로 울며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실 창문에서 바깥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는 등 위험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홀로 빈집을 지키는 시간의 대부분은 컴퓨터에 빠져 지냈다. 현아의 이런 이상행동은 '우울증'에서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 중독에 우울증, ADHD도 '공존'
최근 아동·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이 심해지면서 우울증과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등 정신건강 질환까지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가족부가 처음 실시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선별검사에 따르면, 중·고교생의 17%가 우울증 고위험군, 초등학생의 11%가 ADHD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실시한 '2009년 학생정신건강 선별검사 보고서'에서는 초등생의 15.6%, 중학생의 17.8%, 고교생의 17.6%가 우울·불안·ADHD 등 정신건강 문제로 정밀검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성윤숙 연구위원은 "인터넷 중독을 앓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우울증이나 ADHD 등도 앓고 있다"며 "세 가지 모두 돌봐주는 양육자가 없는 경우 발생 빈도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기 우울증의 증상은 성인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서울대 신민섭 교수(소아정신과)는 "아이들 우울증은 어른들의 우울증과 정반대 증상을 보인다"며 "어른들은 불면증이 따르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잠을 많이 자고, 어른들은 식욕이 떨어지는 반면 아이들은 폭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현아는 지난 3년간 성남시 정신보건센터를 찾아 상담 치료 등을 받았고, 센터는 가정방문을 통해 가족들이 양육태도를 바꾸도록 했다. 컴퓨터 사용시간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치료과정 중 하나였다. 노남훈 팀장은 "주변 사람들이 아이에게 애정을 쏟는 게 중요한데, 학교와 가족이 현아를 이해하게 되면서 현아는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된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 ADHD를 앓고 있는 아이가 놀이치료실의 장난감을 닥치는 대로 헤집어 놓았다. 따뜻한 양육자가 없는 아동은 ADHD나 우울증, 인터넷 중독 등에 노출되기 쉽다.
◆ADHD, 약물치료로 75% 극복 가능
경기도 수원에 사는 전승민(10·가명)군은 지난해 5월부터 ADHD 치료를 받고 있다. 승민이 부모는 몇년 전부터 아이가 공격적이고 산만하다며 상담을 권유받았지만 크면서 괜찮아질 거라 생각해 미뤄왔다. 승민이가 유일하게 집중하는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였다. 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에서는 ADHD 진단을 내렸다.
ADHD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중독과 ADHD와의 선후관계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산만한 아이들이 치료받지 않았을 때 인터넷 중독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ADHD를 방치하면 아동기에 대인관계 형성 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고, 나이가 들면서 주의산만·충동성이 남는 경우가 많아 학습에 문제가 따를 수 있다. 성신여대 채규만 교수(심리학)는 "ADHD는 행동을 통제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받으면 75% 정도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아이들 정신건강에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일관된 양육태도와 따뜻한 관심이 중요하다"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스킨십을 자주 시도하고, 작은 변화에도 칭찬을 해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