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날이 포근해지면서 지하철만 타면 (아마도 입을 벌리고!) ^^;;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거기도 봄이죠?
올해는 아들이 다니는 5학년 학부모대표에다가 장학위원회 준비모임장을 맡게되어
이런저런 모임이 많아졌어요. 토론을 하다가 자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나는 장학위원회 관련한 것인데요...
아시다시피 어떤 재정보조도 없는 대안학교들은 학비에 기부금까지
학교마다 서로 다르지만 모두 만만치 않은 돈을 내야합니다.
결국 중산층 가정만 그런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비판이 있어왔구요.
그 높은 문턱을 낮추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들을 나름대로 만들어내려하고 있습니다.
과천자유학교는 장학금이라는 형태로 올해 처음 그 노력을 시작했는데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시작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어쨌든 사후에 장학위원회 준비모임라는 것이 만들어졌고
지금 그 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경제에 관한 지향점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시켜보고자 하여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 발도르프 학교의 학비관련 규정 또는 지향하는 상에 관하여
- 삼중사회구조
에 관한 자료를 추천해주셨으면 합니다.
사례를 주셔도 좋고, 토론 or 공부할 자료도 좋습니다.
두 번째는 미디어 또는 대중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한해도 거르지 않고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입니다.
처음엔 TV 더니 컴퓨터 오락과 핸드폰을 거쳐
MP3와 대중문화까지 전방위적입니다.
아이들의 감각을 보호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일반적인 전제를 넘어
이제 아이들이 8학년에 접어들면서
언제까지나 금지할 수는 없다는 항변과
학교가 작고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크다보니
8학년들이 즐기는 문화가 동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항변까지
점점 논란이 거세어집니다.
허용을 한다면 과연 언제부터 어떤 형태여야 할까를 포함해서
저희들의 논의를 도와줄 수 있는 자료나 생각할 거리등을 주실 수 있을까요?
세 번째는... (많기도 하네요.)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의 수학 가르치기’라는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지난겨울 연수 때 질문했던 내용이기도 한데요,
genius라는 단어가 아직도 저를 괴롭힙니다. ㅠㅠ
영어로 The Genius of Language(by Steiner)라고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 책의 독일어 제목을 찾아보니 Geisteswissenschaftliche Sprachberrachtungen이네요.
Geist로 시작하는 저 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가능하다면 본문에서 쓰인 의미와 함께
적당한 한국어가 무엇일지...
문제와 해답을 다 주시면 가만히 받아먹으려는 건 아니구요 *^^*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거기서도 똑같은 문제로 (아마도)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그 선례 또한 들어보고 싶구요.
바쁘시겠지만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그 긴 단어는 '정신과학적 언어고찰'입니다. 우선 짧은 것: Sprachgenius는 제가 '언어의 정령'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특수교육학 강의에도 잠시 나오는데, 언어라는 것이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단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정신세계에 속하는 존재들이(그것을 제가 언어의 정령으로 번역했습니다.) 정신적 내용을 언어에 포함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감, inspiration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정신적인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 그런 것을 언어예술로 표현합니다. 그 존재들이 언어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인간이 퇴화되지 않는다고 특수교육학 강의에서 말합니다.
여름에 '에테르의 신비'라는 주제로 할 특강에서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 에테르를 통해서 언어의 정령이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귀의 구조를 드려다 보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귀의 의학적 기능을 보면, 중이를 지나서는 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야 말로 vibration을 통해서 상상할 수 없는 섬세함으로 소리를 구분합니다. 그런 것은 현대의학은 그저 vibration이 있고, 신경을 통해서 인식한다고 합니다. 인지학적으로는 감각활동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귓속에서 이미 영감이 체험됩니다. 언어예술은 그것을 의식화한 사람이 표현한 것이지요.
발도르프 학교 학비는 학교마다 다릅니다. 그것이 인지학의 특이한 점입니다. 누구도 따를 필요가 없이, 각 개인이 자신의 법칙을 새로이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각 단위학교가 스스로의 법칙을 상황에 맞추어서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과천학교의 상황에 맞추어서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제 딸애의 학교 예를 들겠습니다. 우선 공짜는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조금은 내야 합니다. 최저 학비가 25유로입니다. 누구든지 내야 합니다. 최고는 정관에 쓰여있기를 155유로입니다. 하지만 원하면 더 내도 상관없습니다. 학비를 월 155유로 내지 못하는 사람은 매년 학비감면/감소 신청서를 내고 재정담당 이사와
면담해야합니다. 학비의 기준은 양부모의 월수입의 5%입니다. 3백마넌 벌면 십오마넌입니다. 100유로정도 되지요. 하지만 여기는 입학금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 처럼 가난한 사람도 아이를 뜻만 있으면 발도르프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사회의 삼지적 구조에 대해서는 <사회문제의 핵심, Die Kernpunkte der sozialen Frage>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 다스의 총서가 있는데, 즉각 학교일에 관여를 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삼 년차에 '사회의 삼지적 구조와 발도르프학교 내에서의 실천'이라는 특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등교육비란 말씀이지요?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대안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발도르프 학교라기 보다는), 우리가 만들수 있는 경제적 이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구요. 몇 년 동안 교사회의 임금을 이사회와 논의하면서 나름 인지학적 이상을 이야기해봤지만 아마도 말하는 사람의 내적 성숙이 부족해서인지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참에 그 부분에 대해 공부를 해보고 싶은데 자료가 너무 많고 또 너무 적어요.
저는 한국식 장학제도는 사회적 삼지성과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장학금을 주면, 누구에게 줍니까? 주로 성적과 품행을 보고 학생에게 주는데, 그런 것이 어떻든 간에 그것을 받은 어린이를 차별/구별시킵니다. 모든 어린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구별/차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교사와 어린이의 관계는 순수하게 정신적 관계로만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서 재정문제는 순수하게 부모와 학교(담임이 아님, 담임은 부모가 얼마나 내는지 전혀 모름) 재정담당자 간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신화는 돈이 있어야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교육은 의식의 문제입니다. 물론 한국의 대안학교 상황때문에 기부금을 내어야만 하고, 그래서 중산층의 학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돈 있는 모든 중산층이 대안학교를 설립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도 정말 교육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학교에 찾아와서 사정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부금은 면제하는 대신 학비를 적게 해주는 식으로 빈곤층 어린이를 입학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빈곤층이 없어서 부자학교라는 말을 듣기 때문에 장학금으로 빈곤층 어린이를 학교에 데려 오겠다는 생각은 사회적 삼지성과 완전히 무관합니다.
발도르프학교는 항상 부모들이 재정적인 면을 담당하고, 설립교사가 학교의 내용을 담당하면서 설립됩니다. 과천학교의 문제는 설립교사가 사회적 삼지성을 아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부모들이 재정문제를 넘어서 학교교사의 일까지 관여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세미나를 통해서 학교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학교는 부모들이 우선 재정을 담당해야 하는 데, 학교 세우려는 부모는 없고, 교사만 양성하니 학교가 생길리가 없지요. 저희 세미나를 통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저는 별 기대 하지 않습니다.
감각론에서, 메스미디어에 대한 연구로는 Heinz Buddemeier의 Leben in der kuenstlichen Welt, 인공적인 세계에서의 삶이라는 책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있지 않을까... 오늘날 12,3세 먹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완전히 금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tv, 컴터 등에 대한 권력은 아직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도 끝내고, 악기연습도 끝나고, 집에서 할 의무도 다 끝내고 나면 컴터에 메일을 쓰도록 해 준다든지, tv프로그램도 좋은 것을 골라서 함께 본다든지(젤로 좋은 것은 tv가 없는 것) 하는 식으로 조절을 해 주어야겠지요. 어린 동생에게는 형님이나 누나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어른과 어린이를 구분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 딸애에게 저는 항상 그럽니다. 나는 어른이니까 하고 싶은 것 하고 책임도 진다고요. 집에서는 제가 여왕이고 주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동생들도 형이나 누나가 하니까 자기도 해야 된다는 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형이나 누나가 있으면, 그 동생들의 발달이 그렇지 않은 애들 보다는 엄청 빠르더군요. ^^ 중요한 것은 집에서 부모가 얼마나 일관적으로 부모의 권한을 행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애가 조르니까, 귀찮아서, 매스미디어에 관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아이들이 사춘기 들어서면
속수무책이지요. 그리고 부모가 집에서 열심히 tv보고, 컴터 놀이 하면서 아이들에게 완전히 금지할 수 없겠지요. 아이들은 아무래도 모방심리가 있으니까, 부모 스스로 집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산책을 한다든지 등의 다른 일을 한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그런 것을 따라하기 마련이 아닐까... ^^ 그런데 무조건 금지해야할 것은 역시 컴터 놀이 입니다. 너무 공격적이고, 중독증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학교 내에서는 당연히 손전화, mp3-player가 금지 되어있습니다. 12,3세 지나서 중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그런 것에 의존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문제는 부모의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금지시킬 수 없다든지, 조절 할 수 없다든지 라고 말하는 부모들은 사실 스스로 그런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별 생각을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 그런 것에 의존적이라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여기서 자주 그런 경우를 보기도 하고요. 제 딸애가 5학년이었을 적에 학부모회의 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특정한 기준을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한테는 하품나는 학부모회의였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역시 크나 큰 문제라는 사실을 그날 저녁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러게요. 인지학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을 '내' 삶으로 살아내야한다는데 있는 것 같아요. 멋진 말만 늘어놓는게 아니라 내가 아는 지식과 이상을 실천하고 물질화한다는 것, 생각은 쉽지만 정말 어려워요. 나를 포함한 가정까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런 학교에 보냈으니 알아서 잘 크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독어사전의 Genius: 각자에게 나면서 부터 있는 정령, 특히 수호신, 정신(Genius der Zeit: 시대정신)(Genius der Sprache: 언어의 정령, 언령) ----> 독일어의 천재, Genie가 이 단어에서 파생합니다. 자신의 타고난 정령, 언어의 정령, 시대의 정령을 개인성이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경우가 결국은 천재입니다. 독일어에 아직도 이런 것이 살아 있다닌 놀랍군요.
매스미디어에 대해서: GA 175, 골고타 신비의 인식을 위한 구성요소, 1917년 2월 27일자 강의를 읽어 보셔요. 영어판이 있지 않을까... 당시에 무성영화가 겨우 시작되던 때에 이미, 그런 것이 정신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여기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인지학적 연구가 산더미같은데, 잠깐 집구석에서 찾은 기사만해도 스무 가지는 되는데여... 모다 번역해서 올릴 수도 엄고, 그러니 차츰 차츰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기로 하지요. ^^
첫댓글 그 긴 단어는 '정신과학적 언어고찰'입니다. 우선 짧은 것: Sprachgenius는 제가 '언어의 정령'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특수교육학 강의에도 잠시 나오는데, 언어라는 것이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단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정신세계에 속하는 존재들이(그것을 제가 언어의 정령으로 번역했습니다.) 정신적 내용을 언어에 포함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감, inspiration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정신적인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 그런 것을 언어예술로 표현합니다. 그 존재들이 언어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인간이 퇴화되지 않는다고 특수교육학 강의에서 말합니다.
오호, 그렇군요. 정령! 램프의 지니만 생각했네요. 디즈니 만화의 선입견을 제거하고 보니까 그 단어의 본래 의미인 정령이 가장 적절하겠어요. 저는 '내면에서 도움을 주는 고차의 존재'나 '정신'같은 말을 찾느라 애를 먹었는데. '수학의 정령'도 괜찮죠?
여름에 '에테르의 신비'라는 주제로 할 특강에서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 에테르를 통해서 언어의 정령이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귀의 구조를 드려다 보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귀의 의학적 기능을 보면, 중이를 지나서는 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야 말로 vibration을 통해서 상상할 수 없는 섬세함으로 소리를 구분합니다. 그런 것은 현대의학은 그저 vibration이 있고, 신경을 통해서 인식한다고 합니다. 인지학적으로는 감각활동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정신세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귓속에서 이미 영감이 체험됩니다. 언어예술은 그것을 의식화한 사람이 표현한 것이지요.
발도르프 학교 학비는 학교마다 다릅니다. 그것이 인지학의 특이한 점입니다. 누구도 따를 필요가 없이, 각 개인이 자신의 법칙을 새로이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각 단위학교가 스스로의 법칙을 상황에 맞추어서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과천학교의 상황에 맞추어서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제 딸애의 학교 예를 들겠습니다. 우선 공짜는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조금은 내야 합니다. 최저 학비가 25유로입니다. 누구든지 내야 합니다. 최고는 정관에 쓰여있기를 155유로입니다. 하지만 원하면 더 내도 상관없습니다. 학비를 월 155유로 내지 못하는 사람은 매년 학비감면/감소 신청서를 내고 재정담당 이사와
면담해야합니다. 학비의 기준은 양부모의 월수입의 5%입니다. 3백마넌 벌면 십오마넌입니다. 100유로정도 되지요. 하지만 여기는 입학금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 처럼 가난한 사람도 아이를 뜻만 있으면 발도르프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사회의 삼지적 구조에 대해서는 <사회문제의 핵심, Die Kernpunkte der sozialen Frage>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 다스의 총서가 있는데, 즉각 학교일에 관여를 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삼 년차에 '사회의 삼지적 구조와 발도르프학교 내에서의 실천'이라는 특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등교육비란 말씀이지요?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대안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발도르프 학교라기 보다는), 우리가 만들수 있는 경제적 이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구요. 몇 년 동안 교사회의 임금을 이사회와 논의하면서 나름 인지학적 이상을 이야기해봤지만 아마도 말하는 사람의 내적 성숙이 부족해서인지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참에 그 부분에 대해 공부를 해보고 싶은데 자료가 너무 많고 또 너무 적어요.
저는 한국식 장학제도는 사회적 삼지성과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장학금을 주면, 누구에게 줍니까? 주로 성적과 품행을 보고 학생에게 주는데, 그런 것이 어떻든 간에 그것을 받은 어린이를 차별/구별시킵니다. 모든 어린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구별/차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교사와 어린이의 관계는 순수하게 정신적 관계로만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서 재정문제는 순수하게 부모와 학교(담임이 아님, 담임은 부모가 얼마나 내는지 전혀 모름) 재정담당자 간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신화는 돈이 있어야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교육은 의식의 문제입니다. 물론 한국의 대안학교 상황때문에 기부금을 내어야만 하고, 그래서 중산층의 학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돈 있는 모든 중산층이 대안학교를 설립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도 정말 교육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학교에 찾아와서 사정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부금은 면제하는 대신 학비를 적게 해주는 식으로 빈곤층 어린이를 입학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빈곤층이 없어서 부자학교라는 말을 듣기 때문에 장학금으로 빈곤층 어린이를 학교에 데려 오겠다는 생각은 사회적 삼지성과 완전히 무관합니다.
<사회문제의 핵심>이 좀 어렵긴 하지만 그 책을 공부하세요. 사회적 삼지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발도르프 학교의 근거를 모르면서 발도르프 학교 하는 것입니다. 발도르프 학교가 사회적 삼지성을 실질적으로 증거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발도르프학교는 항상 부모들이 재정적인 면을 담당하고, 설립교사가 학교의 내용을 담당하면서 설립됩니다. 과천학교의 문제는 설립교사가 사회적 삼지성을 아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부모들이 재정문제를 넘어서 학교교사의 일까지 관여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세미나를 통해서 학교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학교는 부모들이 우선 재정을 담당해야 하는 데, 학교 세우려는 부모는 없고, 교사만 양성하니 학교가 생길리가 없지요. 저희 세미나를 통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저는 별 기대 하지 않습니다.
감각론에서, 메스미디어에 대한 연구로는 Heinz Buddemeier의 Leben in der kuenstlichen Welt, 인공적인 세계에서의 삶이라는 책이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있지 않을까... 오늘날 12,3세 먹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완전히 금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tv, 컴터 등에 대한 권력은 아직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학교에 다녀와서 숙제도 끝내고, 악기연습도 끝나고, 집에서 할 의무도 다 끝내고 나면 컴터에 메일을 쓰도록 해 준다든지, tv프로그램도 좋은 것을 골라서 함께 본다든지(젤로 좋은 것은 tv가 없는 것) 하는 식으로 조절을 해 주어야겠지요. 어린 동생에게는 형님이나 누나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어른과 어린이를 구분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 딸애에게 저는 항상 그럽니다. 나는 어른이니까 하고 싶은 것 하고 책임도 진다고요. 집에서는 제가 여왕이고 주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동생들도 형이나 누나가 하니까 자기도 해야 된다는 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형이나 누나가 있으면, 그 동생들의 발달이 그렇지 않은 애들 보다는 엄청 빠르더군요. ^^ 중요한 것은 집에서 부모가 얼마나 일관적으로 부모의 권한을 행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애가 조르니까, 귀찮아서, 매스미디어에 관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아이들이 사춘기 들어서면
속수무책이지요. 그리고 부모가 집에서 열심히 tv보고, 컴터 놀이 하면서 아이들에게 완전히 금지할 수 없겠지요. 아이들은 아무래도 모방심리가 있으니까, 부모 스스로 집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산책을 한다든지 등의 다른 일을 한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그런 것을 따라하기 마련이 아닐까... ^^ 그런데 무조건 금지해야할 것은 역시 컴터 놀이 입니다. 너무 공격적이고, 중독증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학교 내에서는 당연히 손전화, mp3-player가 금지 되어있습니다. 12,3세 지나서 중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그런 것에 의존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문제는 부모의 삶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금지시킬 수 없다든지, 조절 할 수 없다든지 라고 말하는 부모들은 사실 스스로 그런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별 생각을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 그런 것에 의존적이라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여기서 자주 그런 경우를 보기도 하고요. 제 딸애가 5학년이었을 적에 학부모회의 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특정한 기준을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한테는 하품나는 학부모회의였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역시 크나 큰 문제라는 사실을 그날 저녁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러게요. 인지학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을 '내' 삶으로 살아내야한다는데 있는 것 같아요. 멋진 말만 늘어놓는게 아니라 내가 아는 지식과 이상을 실천하고 물질화한다는 것, 생각은 쉽지만 정말 어려워요. 나를 포함한 가정까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런 학교에 보냈으니 알아서 잘 크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독어사전의 Genius: 각자에게 나면서 부터 있는 정령, 특히 수호신, 정신(Genius der Zeit: 시대정신)(Genius der Sprache: 언어의 정령, 언령) ----> 독일어의 천재, Genie가 이 단어에서 파생합니다. 자신의 타고난 정령, 언어의 정령, 시대의 정령을 개인성이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경우가 결국은 천재입니다. 독일어에 아직도 이런 것이 살아 있다닌 놀랍군요.
아침에 학교나가면서 혹시나 하고 들러보았더니 역시나! 지금은 시간이 없어 감사 인사만 하고 이따 저녁때 다시 올게요. 감사합니다!
매스미디어에 대해서: GA 175, 골고타 신비의 인식을 위한 구성요소, 1917년 2월 27일자 강의를 읽어 보셔요. 영어판이 있지 않을까... 당시에 무성영화가 겨우 시작되던 때에 이미, 그런 것이 정신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여기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인지학적 연구가 산더미같은데, 잠깐 집구석에서 찾은 기사만해도 스무 가지는 되는데여... 모다 번역해서 올릴 수도 엄고, 그러니 차츰 차츰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기로 하지요. ^^
그래요. 선생님, 오늘은 답글만 올렸는데 앞으로 논의되는 과정과 거기서 생기는 질문들도 계속 올릴께요. 번역까진 어려워도 좋은 자료있음 계속 알려주세요. 영어본이라도 번역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미디어 얘기가 나올때마다 돌려보는 자료가 몇년째 그대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