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로다/ -생략” 최현배 작사 박태현 작곡의 ‘한글날 노래’이다.
올해 한글날은 오백칠십팔 돌이다. 한글(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우리나라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약 사백 오십 년 동안 시련을 겪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의 사대주의에 정신이 빠져서 한글을 천한 글, 상스러운 글이라고 홀대했다. 황금무도(荒淫無道)에 혼이 빠진 연산군은 한글 사용을 탄압했다. 한글로 적혀진 책을 읽으면 불사르게 했고, 한글을 쓰다 잡히면 목을 베어 죽이는 참수형을 단행했다. 한글로 적혀있는 글을 보고도 고발하지 않으면 곤장 100대를 쳤다.
일제강점기에도 한글 탄압은 계속되었다. 일제는 한글 사용을 금지하는 민족정신 말살정책을 펼쳤다. 주시경, 최현배, 이윤재, 장지영 등 선각자들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서 일제에 맞섰다. 한글연구에 힘쓰다가 감옥에 갇혀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끝내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살아서 돌아온 학자들은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훈민정음을 한글로 명칭하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했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고, 조선어 큰 사전도 만들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을 꾸준하게 이어갔다.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들이 있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온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찬사를 보냈다. 미국에서 온 헐버트 박사는 한글의 가치에 눈을 뜨자마자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부터 연구했다.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를 도입하여 더 읽기 쉽고 쓰기 쉽게 한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한글로 세계지리 교과서 ‘서민필지’를 저술한 후,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글과 한국어 홍보대사를 도맡았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벅도, 한글은 과학성과 체계성 독창성이 우수하다고 극찬했다. 케나다에서 온 게일은 한글의 저력을 발견한 뒤, 한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구운몽’ ‘춘향전’ ‘홍길동전’을 영문판으로 펴냈다. 독일의 삿세 교수도 ‘한글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글자”라서 한국인 문맹률이 0%라고 말했다. 일본의 우에다 교수 등 세계 각국의 언어학자들은 한국에 오면 여주에 위치에 있는 세종대왕릉을 참배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했다.
지구촌 식구들이 한글을 사랑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고 독창적이어서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세계 최고 발명품으로 인정을 한 것이다. 한글은 배우기가 쉬워서 지구촌 문맹을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을 하나의 언어로 통일하면 지구촌 식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지구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과 기아와 전쟁에서 해방되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한국어를 세계 공용어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