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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넘는 참된 믿음 (창 49:22~26)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한번 주간도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년에는 봄을 느끼기도 전에 어느 순간에 봄이 가고 초여름의 무더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여러분들은 얼마나 많은 씨앗을 뿌리셨습니까?
물론, 우리 벧엘교회 성도 분들은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없으시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 밭에 하나님 나라의 義를 위한 온전한 씨뿌리기를 잘 하셨는지요? 잘 하셨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이 육신의 삶에 있어서의 원칙이며 원리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자신의 믿음대로 뿌림으로서 그에 합당한 결실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콩을 뿌리면 콩이 나고, 팥을 부리면 팥이 납니다. 그러나 복 받을 일을 뿌리면 복을 받고, 저주받을 일을 뿌리면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일을 한 민족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 받을 만한 일을 한 개인도 반드시 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이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둘 것이 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오는데, 봄에 뿌려야 가을에 거둘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때를 따라 뿌려야 하며, 무엇을 뿌리되 항상 좋은 것을 뿌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복을 받는 일이라고 하면 무조건 앞장을 서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과연 상을 받을만한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을만한 부끄러운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저에게 ‘목사님은 물질과 시간만 나면 왜 그런 일들을 쫒아 다니시면서 하십니까?’라고 묻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동안 겪어 보셔서 제 목회관을 잘 아시겠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헌금을 모아서 교회를 키우고 성장만 시키는 일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목사인 제가 여러분들이 이 육신의 삶속에서 고생 고생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여러 가지 물질을 가지고 집을 사겠습니까? 아니면 제 자녀들을 위하여 어떤 목사님들처럼 유학비와 외국에 집을 사주는데 쓰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나이가 차서 은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예비하여 우리 사모와 함께 좋은 집에서 편히 잘 살기를 원하여 그 물질을 써야만 하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차라리 목회자의 길을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제 자랑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가 이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사례금 한 푼 받아 본적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수많은 집회를 다니면서 강사 사례금 한 푼 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또한, 그 흔해빠진 자가용 한 대가 있었습니까?
작금에 이 세상에서 저 같은 목회관을 가지신 목사님들이 물론 있겠지만, 그 숫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벧엘교회가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분들은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윤 목사와 함께 계신 여러분들이 오히려 복을 받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니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명함에 보면 저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여러 가지 직책뿐 아닙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부천에 있는 ‘열린낙원’이라는 곳에 예배 인도를 갔다가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곳에는 이 육신의 세상에서 죄를 지어 수 십 년 동안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다가 출소를 하신 그 분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곳의 일을 또 도와주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괜찮지요?(묻기)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항상 온전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복음의 목적을 두고 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어떤 힘이 있는 자리에 앉은 분들은 그 힘을 가지고 어렵고 힘들어 하는 이웃을 돕는데 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남들보다 재산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남을 섬기는데 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많이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믿음을 뿌리고, 천국의 소망을 뿌리고, 예수님의 참된 사랑을 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에는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목숨을 걸고 뿌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댓가에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고백의 기도를 합시다. ‘주님! 좋은 일에는 내 발이 빠르게 하시고, 악한 일에는 우둔하게 하시고, 선한 일에는 지혜롭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여러분!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일에는 내 발이 빠르게 하시고/ 악한 일에는 우둔하게 하시고/ 선한 일에는 지혜롭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 고백한 이 말씀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그러시겠지만, 저는 후덥지근한 여름보다 선선하고 하늘이 새파란 가을이 그렇게 좋습니다. 그래서 선선한 바람과 온 산자락에 내려앉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바라보는 것을 즐깁니다.
때문에 벌써 새삼스럽게 생각들 하시겠지만, 선선한 가을을 생각하면서 저와 함께 복지 활동을 하는 시인 김용석 집사님이 쓰신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꽃이랍니다. 그래서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벌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향기는 바람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난 잃은 게 하나도 없답니다. 가을이 오면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테니까요!’ 여러분! 얼마나 의미 있는 내용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주고도, 더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이 행복,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느끼는 참된 사랑이 깃든 행복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육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님의 제자로써, 한 그리스도인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아름다운 꿈을 실천하고 행하면,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적 지혜의 글을 쓴 챨스 스윈돌(Charles Swindoll)은 “당신의 인생은 한 닢 동전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에나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일생에 단 한번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삶은 일방통행입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삶은 단 한 번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요! 때문에 한 번만 살다가 한 번에 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또한,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이기에 그래서 우리가 이 육신의 삶을 살면서 그 어떠한 시행착오도, 연습도 있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사라는 사실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이렇게 고귀한 육신의 세상에서 항상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 육신의 세상에서 성공하는 삶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육신의 세상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성공하는 삶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오늘 본분에 보면, 온전한 믿음으로 성공하는 삶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담장을 넘을 수 있는 참된 믿음’이라고 말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넓은 포도원을 가진 주인은 자신의 담장을 넘어간 큰 포도송이를 담장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두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그 포도를 따먹고, 원기를 회복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한, 과부와 고아들이 그 포도를 따서 양식으로 삼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바로 온전한 믿음의 성도의 모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요점은 요셉이라는 한 인생을 가리켜서 ‘담장을 넘어가는 뿌리 깊은 믿음’이라고 축복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이스라엘의 뿌리가 됨으로서 거기서 이삭이라는 싹이 났으며, 야곱이라는 줄기가 자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가 열두 가지로 넓게 뻗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무성한 한 가지가 있었는데, 얼마나 가지가 풍성했던지 그 가지는 담장을 넘어 뻗어 나갔습니다.
때문에 담장을 넘어 뻗어 나간 그 가지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지를 일컬어서 오늘 본문은 ‘요셉이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실제로 요셉의 일생은 그런 삶을 살았잖아요! 그래서 그 한 사람인 ‘요셉’ 때문에 극심한 가뭄으로 이 육신의 삶속에서 위기를 만났던 그의 형제들과 가정 모두가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 요셉!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가문과 민족이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열방까지도 구원을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하여 여러분 모두가 담장을 넘어 뻗어 가는 무성한 가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그 복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도 구석구석까지 빠짐없이 임하여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한 사람, 한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그 복을 통하여 직장에서도 여러분들이 받은 그 복을 통하여 그 직장이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이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여러분들이 받은 그 복을 통하여 여러분이 받은 복을 통하여 그 사업장이 번창의 복을 받는 형통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모두의 형제들과 일가친지들, 그리고 이웃들에게도 무성한 가지가 되시어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라볼 때마다 은혜가 넘치는 그런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모든 복이 여러분의 공동체 안과 공동체 바깥의 담장을 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서 자라는 무성한 가지였습니다. 잠시 무성했다가 곧장 시들어 버리는 그런 나약하고 힘없는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한때만 창성하다가 더운 바람이 불고, 찬바람이 불면 떨어져 버리는 그런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샘 곁에 심겨진 나무는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그 어떠한 가뭄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 뿌리를 강변에 내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이글거리면 이글거릴수록 더욱더 무성하게 자라갈 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일컬어지는 가나안이나, 미국의 캘리포니아는 한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사막지대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으로 물을 끌어 들여서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포도나무 및 오랜지나무 그리고 각종 과실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나는 각종 열매들은 당도가 아주 높은 최상품의 과실들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아직도 믿음의 성도들 중에는 이 육신의 세상에서 아무런 고난이나, 시련을 겪지 않아도 평탄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어가듯이 형식적으로 교회만 다녀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목사로서 저는 그런 성도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무성한 가지가 되기까지는 이 육신의 세상에서 갖은 실패와 고난, 그리고 고통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이 육신의 삶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환난과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이 겪지 않는 무거운 짐을 저와 여러분들이 지고 신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저와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잘 견디어 낼 때에, 담장을 넘어 사방으로 뻗어 가는 무성한 가지로 성장해 나아갈 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성공을 합니다. 그런데 성공을 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실수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다윗도 실수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유혹과 극한의 고난 속에서도 결코 넘어지지 않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그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특별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귀여움을 받아서 채색 옷을 입었습니다. 그가 채색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아주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때문에 그는 형들로부터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러한 요셉이 자기 아버지였던 야곱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던 이유가 무엇 때문인 줄 아십니까?
첫째는, 창세기 37장 2절 이하를 보면, 요셉의 형들이 자신의 아버지 소유인 양떼를 먹이다가 장사꾼들이 오면 자신의 아버지 몰래 양들을 팔아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거짓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요셉의 형들이 그 당시, 타락한 가나안의 생활방식에 오염이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형들이 이런 짓을 하는 일에는 전혀 가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형들에게 언제나 정직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행동들은 요셉의 마음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靈은 언약의 자손들이 거짓말을 하고, 가나안 족속들과 어울리고, 오염되는 것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무성한 가지와 같았던 요셉은 깨끗하지 못한 가나안의 문화에 오염되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자신의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고난의 길에 서게 된 첫 번째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처럼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서 담장 너머로 뻗어 가기 위해서는 이 추악하고, 거짓된 세상문화에 결코 오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타락한 세상문화에 젖어들면 결국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선택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버리듯이 가지치기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함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요셉이 꿈을 통해 보았던 일들을 자기의 형들에게 사실대로 이와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내 곡식 단에 절을 하더라! 형들의 별들이 내 별에게 절을 하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형들은 아무리 못나도 형은 형인데, 우리가 너에게 절을 해? 하고, 형들은 요셉이 꾼 꿈 때문에 몹시 기분이 언짢아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아도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항상 기도 속에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은 꿈을 꾸어도 하늘의 꿈만 꾸게 됩니다. 믿으십니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되새김질 하듯이 묵상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꿈과 환상을 먹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믿음의 성도들은 언제나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육신의 삶만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천국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때문에, 이 육신의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 육신의 삶속에서 세상의 가치관만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육신의 삶에 관한 세상의 꿈과 환상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결코 하늘의 꿈과 환상을 보거나, 가질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형들과 요셉의 분명한 차이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부터는 하늘의 꿈만을 꾸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꿈과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여러분들 가슴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 모두는 샘 곁에 심기워진 나무처럼 무성한 가지가 되어 이 육신의 세상에서 영향력을 주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의 모든 삶은 항상 정직했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늘을 향하는 비전 때문에 무거운 값을 지불하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이 육신의 세상이란 언제나 이와 같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진리와 진실, 그리고 비전은 각종 중상모략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때로는 미움을 당하고,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을 겪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정직하게 살기 위해 당하는 고난이라고 한다면 절대로 실망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비전과 꿈과 환상을 이루어 가다가 당하는 고난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들이 우리들에게는 자랑이요! 긍지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요셉의 고난과 환란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고난과 환란이었음을 말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한 환란과 시련의 웅덩이에 머물러 주저앉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양치는 형들을 보리라는 부푼 꿈을 안고 양들을 치고 있는 먼 곳으로 형들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모략으로 인하여 이들에게 끌려서 물 없는 우물에 던져져 죽을 지경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심령은 산산이 부셔졌으며, 입고 간 채색 옷은 찢겨지고 상처로 인하여 피에 젖어 있었습니다.
또한,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미디안 장사꾼들에게 은돈 20개의 헐값으로 팔리게 됩니다. 그러자 요셉은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며, 그들 상인들에게 애걸을 하였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나라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우리들이 면밀히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는 이 말이야말로 요셉을 뜻하는 유일한 형용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형들은 요셉을 자기 조국에서 추방했지만, 결코 하나님의 품에서까지는 추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부모에게 사랑 받는 것이 눈에 거슬려, 부모와의 사랑의 줄을 끊기 위하여 이방나라로 팔아버렸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만큼은 이방사람들에게 팔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요셉이 입고 있던 채색 옷은 찢겨졌고, 피가 묻었지만 요셉의 거룩한 비전과 환상, 그리고 그의 꿈은 찢을 수도 피를 묻힐 수도 없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의 성도님들은 그런 분들이 없을 줄로 믿지만, 혹시라도 요셉의 형들처럼 남의 꿈과 비전을 찢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 주변에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그 꿈과 비전을 사서 여러분의 몫으로 가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삶을 살아왔던 요셉의 인생은 어떠했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축복을 감히 어떻게 형들이 빼앗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 이 세상의 어느 누가 그의 축복을 막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어떤 힘센 자가 그의 굳센 믿음을 찢을 수가 있으며, 감히 누가 그를 영원히 추방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벧엘교회 성도 분들 중에는 없으시겠지만, 이 육신의 세상 사람들처럼 얕은꾀로 감투를 얻으려고 하며, 악과 불의에 굴복하므로 좋은 자리를 얻으려고 하며, 간사한 타협으로 부자가 되고 성공하려는 자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진실한 믿음으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행하기만 하면, 항상 함께 하심으로서 높은 자리도 주시고, 축복해 주심으로서 좋은 자리에만 들어가는 무성한 가지가 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곳에만 높음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화롭게 해 주시는 그 곳에 영광만이 존재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문제는 내 자신이 진정으로 주님 곁에 있으며, 그리고 주님께서 항상 나 자신과 함께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는 실패 같으나, 성공만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 그곳에는 성공 같으나, 실패만 연속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진리를 깨달아 행할 때, 비로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편이 풀려가고, 보디발의 가정총무로서 성공의 자리를 굳히는가 싶더니, 어느덧 맹렬한 마귀, 사단의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육신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약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약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저에게도 수많은 취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에게도 영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 사단은 속속들이 그러한 것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성경을 뒤져봐도 그 당시 요셉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믿음이 좋고, 잘 생겼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마귀, 사단은 이러한 요셉을 노렸던 것입니다. 얼굴도 잘생긴 준수한 젊은이였으니, 이성의 유혹을 통하여 그를 사로잡으려고 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마귀, 사단은 요셉에서 그 어떠한 약점을 잡을 수 없게 되자, 성적인 욕구를 이용하여 요셉을 향하여 시위를 당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가 날이면 날마다 유혹을 하며, 수작을 걸어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각종 유혹의 화살인 온전치 못한 물질이나, 명예들이 내 손에 잡힌다고 해서 덜컥덜컥 받아먹거나 챙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누구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깨달을 줄 알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마귀, 사단이 행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은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성공하는가 싶고, 밥술이라도 먹게 되나보다 할 그 때를 노려 집중적으로 유혹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할 때, 마귀, 사단은 각종 유혹의 화살을 쏘아 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육신도 편해지고, 모든 형편들이 안정될 그 때에, 내 영혼의 기도가 식어지고, 충성이 식어지고, 인간적인 냄새가 높이 높이 연기를 피우면서 활개를 칠 때 마귀, 사단은 각종 유혹의 화살을 쏘아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에게 그러한 영광이 찾아 올 때에, 우리 교회가 지금처럼 부흥될 때에, 더욱 깨어서 기도하며 영적으로 무장할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말씀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칭찬이 한자가 높아지면, 마귀, 사단의 유혹도 한자 더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 한자가 높아지면, 마귀, 사단이 주는 환난도 한자 더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도 한자 더 높아지면, 각종 시련과, 고난, 그리고 시험도, 마귀, 사단이 주는 유혹도 한자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마귀, 사단에게 유혹되어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마시고, 성공하고 안정될 때, 오히려 뜨거운 눈물로 감사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러한 믿음을 가질 때, 저와 여러분들은 샘 곁에 심기워진 나무처럼 담장을 넘어가 뻗어 가는 무성한 가지로 자라갈 수 있는 영적인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의 이 육신의 삶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의 화살이 날아올 때에, 이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을 통하여 이러한 여러 가지 시험들을 어떻게 요셉이 이겼느냐? 하는 내용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교훈과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한 靈이 요셉의 심령 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떠한 환란과 유혹 속에서도 온전한 승리를 할 수 있었음을 이 성경을 통해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육신의 세상은 온통 유혹의 지뢰밭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를 타락시키고, 폭발시킬 유혹의 지뢰밭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놓여있는지 우리들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겠다는 마음만 간직하면, 성령께서는 우리들 모두에게 임하셔서 밝은 영안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마귀, 사단의 유혹들을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물리칠 힘이 없기 때문에 영적인 능력인 성령의 권능을 공급받으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아무리 육신적으로는 경험이 많고, 똑똑하며, 배운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 육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덧입지 아니하거나, 주님께서 항상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동행 하시지 않고서도 절대로 이 육신의 삶을 헤쳐 나가는 것 자체가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이 험난한 이 육신의 삶 속에서 우리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승리 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만 가능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거할 때, 성령께서는 비록 우리들이 연약할지라도 강함을 주십니다. 또한, 우리들에게 지혜가 부족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진실한 심령으로 간구할 때, 우리들의 필요한 것들을 미리 아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언제나 어느 때나, 항상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셉이 시험을 이기는 두 번째 방법이 창세기 39:8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라고 말입니다.
이 말의 내용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유혹을 물리치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주인인 보디발이 모든 권리와 권세를 다 자신에게 위임했지만, 보디발의 아내인 당신은 내게 맡기지 않았다는 말이었습니다.
즉, 주인인 보디발이 자신을 신뢰하며, 이 집안의 모든 것들을 믿고서 모든 것을 맡겼는데, 어떻게 주인의 의리를 배반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으로서 의리를 지키는 요셉의 사람 됨됨이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신앙인이기 이전에 먼저 온전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목사가 되기 전에 장로가 되기 전에, 권사가 되기 전에, 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약속과,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사람 됨됨이가 저와 여러분들의 온전한 신앙에 연결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들 모두의 신앙의 질이 인격과 연결이 되어져 험한 이 육신의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면, 솔직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인간 됨됨이가 무너진 가식된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약속과 신의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거짓된 신앙인들이 이 땅의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되고, 더 악한 짓을 하는 교회 직분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 밖에서 하는 말이 목사를 가르켜 먹사라고 하고, 장로나 권사를 가리켜 권투사범이라고 하고, 집사를 가리켜서 잡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 시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가식적인 성도들은 무성한 가지가 아니라, 잔가지에 붙어있어 잘라버려야 할 쓸모없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여러분들은 잘릴 수밖에 없는 잔가지가 되지 말고, 담장 너머로 뻗어 가는 무성한 가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를 포함하여 여러분들은 우리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한계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 됨됨이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본이 통하고, 원칙이 통하는 온전한 믿음의 신앙인들이 되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39장 9절을 보면 시험을 물리치는 세 번째 방법이 나옵니다. 한번 다시 읽어 보시겠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아멘!
여러분! 무슨 뜻인 줄 아시겠습니까? 즉, 요셉은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어떻게, 영생을 얻은 내가 어떻게, 믿음을 가진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겠습니까? 라는 말입니다.
또한, 영어성경에 보면, Coram Deo!라고 하는데 즉,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강력히 마귀, 사단의 유혹을 거부한다. 라는 뜻을 담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을에 호랑이가 내려오면 큰 개들은 끙끙거리고, 사지를 웅크리고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마을에 호랑이가 내려왔는데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집밖까지 나가서 짖어대는 개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개를 무슨 개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짖는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그 하루 강아지를 소위 똥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가식된 신앙인들을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그런 성도들을 똥개교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벧엘교회 성도 분들은 이런 분들이 한 분도 안 계신 줄로 믿습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온전한 믿음의 조상인 큰 지도자들과 큰 나무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온전한 믿음의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서 이 육신의 세상이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육신의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똥개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 육신의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외로운 타향살이를 10년 동안이나, 온전한 믿음으로 항상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꿋꿋하게 살았습니다. 때문에 그 숱한 마귀, 사단의 역사로 인한 각종 시련과 유혹도 모두 깨끗하게 물리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요셉의 앞날에는 평탄하고 좋은 일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다가오는 보상은 결국 감옥살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믿음의 좋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원망하며 정말로 하나님이 계실까? 하면서 의심을 품고 불평, 불만을 할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도 그는 결코 입을 열어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셉을 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그와 같은 요셉 때문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형통함을 누렸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수많은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욱 강성하게 쓰시기 위하여 애굽 왕 바로에게 의미심장한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 꿈을 해석할 자가 애굽 땅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죽음의 문턱 앞에까지 갔다가 요셉의 지혜로 살아났던 관료가 그를 기억하게 됨으로서 요셉을 바로 왕 앞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가 꾼 꿈을 정확하게 해석함으로서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바로 왕은 이방인인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웠던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요셉이 당했던 고난과 환란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즉, 요셉은 그 힘들고 어려운 마귀, 사단의 각종 유혹과 시련을 물리치고 일어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펼쳐줄 멋진 미래의 비전을 이미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께 권면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요셉과 같이 온전한 믿음으로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생각하는 큰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또한,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이룰 수 있는 큰 비전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너를 큰 나무로 삼겠다.’, ‘너를 무성한 가지로 삼겠다.’, ‘네가 받은 은혜가 네 안에 머물지 아니하고, 공동체의 담장을 넘어 열방으로 뻗어가게 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으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때문에 성경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에 처한 모든 일들에서 결코 좌절하거나 조급해 하지 마시고 요셉과 같은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자신의 일생을 통하여 그가 들어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유익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에서는 모두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처지에 놓여있던 부모와 형제들을 살리는 역사가 나타났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주 선한 청지기였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을 통해 그가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의 가정 구석구석에도 복이 이루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다른 죄수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기도 하었으며,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되어 위기에 처한 국가를 살리고, 조국을 기아로부터 건져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셉은 언제나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 풍성한 그늘을 세계만방에 제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벧엘교회 성도들도 요셉과 같이 언제나 성공의 가지와 열매로 담을 넘어가는 그런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과 은혜가 우리 가족과 부모, 그리고 형제와, 직장과, 사업장에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찬송하다가, 여러분 자신이 말씀을 듣다가, 여러분 자신이 기도하다가 하늘의 축복과 은혜가 내 가족과 내 부모, 그리고 내 형제와, 내 직장과, 내 사업장에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심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세상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들의 온전한 믿음을 보면서 마음으로 흠모하고, 마음으로 존경받는 영적 거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담장을 넘어 뻗어 가는 무성한 가지가 되시어, 그 가지에는 온갖 새들이 찾아와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오늘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담장을 넘어 뻗어 가는 무성한 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무성한 가지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는 하나님만을 향한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이미 담장을 넘어, 한없이 뻗어가는 무성한 가지가 되어, 언제나 어느 때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요셉 / 벧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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