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찰
오지 않은 편지에 답장을 쓴다
앵두꽃이 피는 중이라고 쓴 행간에서 그믐밤 냄새가 난다
백 년쯤 후에나 본가입납本家入納으로 도착할 답장에서
문득, 강물이 흐른다
앵두나무 밑으로 자리를 옮겨
오지 않은 편지를 환하게 읽는다
마음에 적은 편지가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웃기도 했었지만
내가 쓰는 것은 편지가 아니고 답장이다
앵두나무가 제 그림자를 거두어 몸속에 집어넣는다
없는 편지를 펼쳐두고 쓰는 답장을 지우는 어둠
그러나, 어둠과 오지 않은 편지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저무는 것들의 심사가 그러할 뿐이다
꽃에도, 나무에도 보여줄 수 없는 한 줄 때문에
나는 이 어둠이 달다
박미라, 『파리가 돌아왔다』, 2023
무슨 일인가로 자발적 유폐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어떤 전화도 받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얼마간은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은 듯 견딜 수 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막연히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 지독한 고립으로부터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이 지극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초록 언덕으로 구출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 거의 실현 불가능한 희망 같은 것이었지만(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의미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하였다.
아무도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을 때, 아니, 내가 세상에게 말 걸기를 멈추었을 때, 내게 하루에 한 통씩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내오던 이가 있었다. 그의 안부 카톡은 “꽃에도, 나무에도 보여줄 수 없는” 내 삶의 유일한 희망,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카톡에 기대어 나는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
시인은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오지 않은 편지에 답장을 쓴다” . “앵두꽃이 피는 중이라고 쓴 행간에서”는 여전히 “그믐밤 냄새가 난다” 그러나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는 시인은, 꿈꾸기를 포기할 수 없는 시인은 “앵두나무 밑으로 자리를 옮겨/ 오지 않은 편지를 환하게 읽는다” 희망을 희망하는 한, 시인에게 절망은 없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금의 어둠 가득한 세상마저 “달” 게 읽는다. 절망보다 더 지독한 고통은, “꽃에도, 나무에도 보여줄 수 없는 한 줄” 희망이다. 희망은 힘이 세다.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지 못하는, 희망은 힘이 세다. (홍수연)
< 박미라 시인 >
🦋 다시, 시작하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