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
무리를 지어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소리나 춤을 팔던 남자들의 단체.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떠돌이 예인 집단에는 남사당패를 비롯하여 대광대패, 솟대쟁이패, 사당패, 걸립패, 중매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그 규모나 내용으로 보아 남사당패가 첫손에 꼽힌다. 남사당패의 연원이나 역사적 형성과정을 밝히기에는 남아있는 자료가 빈약하나, 1900 년대초 이전에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적 또는 자연발전적으로 생성된 민중놀이 집단임에는 틀림없다.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모갑이)'를 정점으로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등 여섯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없이 숙식만 제공받게되면 마을의 큰 마당이나 장터에서 밤새워 놀이판을 벌였다. 꼭두쇠란 패거리의 대내외적인 책임을 지는 우두머리로 그의 능력에 따라 단원이 모여들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였다.
꼭두쇠는 한패거리에 한사람이지만 그를 보좌하는 '곰뱅이쇠'는 패거리 규모에 따라 두사람 일수도 있었다. 곰뱅이쇠는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때 놀이판을 벌여도 좋다는 사전 승낙을 맡아보는 일을 한다. 또한 꼭두쇠 밑에는 각 연희 분야의 선임자인 뜬쇠가 있다. 뜬쇠들은 그들이 노는 놀이 규모에 따라 해당 분야의 예능을 익힌 몇사람의 '가열(보통기능자)'을 두게 되고 가열 밑에 초입자인 '삐리'를 두게 된다. 삐리는 꼭두쇠들의 판별에 의하여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놀이에 배속되어 잔심부름부터 시작하여 한가지씩의 재주를 익혀 가열이 되며, 이들이 가열이 되기 까지는 여장을 하는 것이 상례 였다고 한다.
남사당패의 은거지는 주로 경기도 안성, 진위 충청남도 당진, 회덕 전라남도 강진, 구례 경상남도 진주, 남해 북쪽으로는 황해도 송화, 은율 등이었는데 그 곳에서 놀이가 거의 없는 겨울철에 동면을 겸하여 삐리(남사당패에 갓들어온 초입자)들에게 기예를 가르쳤다고 한다.
첫댓글 현시대의 연예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