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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살과 안락사에 대해 의무론적 입장을 지지한다. 의무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자들은 자살을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안락사 역시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살이 허용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안락사를 검토하는 것은 보다 복잡하다. 그러나 결국 허용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자살과 자발적 안락사는 큰 차이가 없다. 비자발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사람들의 추론에 따르면, 자살과 자발적 안락사를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있음은 죽는 자의 사정이 죽음으로 인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에 있기 때문에 동일한 믿음이 비자발적 안락사의 도덕적 허용성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분석을 해보면 세 가지 주요 결론이 나온다.
공리주의에 입각한 자살의 논의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 자연법 윤리학이나 칸트의 의무론적 관점을 거부하며, 자살을 인간의 권리라는 차원으로 접근한다. 여기서 삶을 지속하게 하는 실제적인 근거는 ‘행복’ 혹은 ‘쾌락’이다. 따라서 쾌락은 추구하고, 고통은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쾌락의 결핍이 지속될 때,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의 제창자라 할 수 있는 흄은 “자살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자살의 권리를 공리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옹호하는 논변을 편다. 그의 논의는 공리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초기의 자살론에 해당하지만 전반적으로 공리주의적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자살을 금지하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을 폐기하거나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 영역을 자살에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칸트의 의무론과 같은 성격의 윤리이론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정하는 공리주의적 색채를 견지하고 있다.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창조자의 질서를 거역한다는 죄책감이나 비난 때문에 죽음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고 고통과 불행 가운데 생명을 연명한다고 흄은 지적한다. 이제 흄은 자살이 신에 대한 의무의 불이행이 아님을 증명한다. 흄 이외의 여러 공리주의 도덕 철학자에 논거에 의거하면 다음 세가지 주장을 들 수 있다.
첫째, 표준적 논변들은 자살과 안락사가 도덕적으로 허용가능한가를 결정하는데 모두 적절하지 못하다. 둘째, 시도되는 자살과 살인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척도가 있으며, 그것은 죽게 되는 사람의 욕구와 어느 정도 무관하다. 셋째, 죽음을 유발하는 일과 죽음을 내버려 두는 일간의 구분,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 간의 구분은 통상적으로 그것에 부여되는 것만큼 큰 의미가 없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자살의 도덕적 허용가능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변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생명을 처리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개인의 권리에 의거하는 모든 논변을 받아들이지 않듯이 이러한 논변도 거부한다. 자살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변은 사람이 타인에 대한 것이든, 사회 혹은 신에 대한 것이든 간에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사람이 갖는 특수한 의무에 의거하는 모든 논변을 받아들이지 않듯이 이러한 논변도 거부한다. 안락사에 대한 논의도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논점은 명백한 것인데, 즉 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한 대표적인 모든 찬반논변은 누가 어떤 권리를 소지하며, 누가 어떤 의무를 지고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결과론적인 사고 유형인 공리주의는 따라서 이러한 모든 대표적인 논변을 거부하게 마련이다. 공리주의자들의 통상적인 기준, 곧 어떤 행위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그르다는 기준이 여기에도 적요된다. 따라서 자살이나 안락사가 욕구의 최대 만족과 최소의 좌절을 가져올 경우에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된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과 불명예를 참아내는 일을 원치 않고, 나아가 그가 더 산다고 해서 그의 가족이나 사회에 어떤 중대한 이득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공리주의자들은 자살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가 더 살게 되면 고통과 불명예를 피하고자 하는 그의 중대한 욕구가 좌절될 것이며, 그가 더 살게 됨으로써, 좌절된 욕구를 상쇄시키고서 충족될 다른 욕구도 없다. 여기서 도출한 결론은 자살과 안락사 구분 없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발적/비자발적 안락사도 구분하지 않는다. 다른 상황(인생을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 사업 실패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 그의 생각, 느낌과 무관하게 그의 죽음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할 수 없다. 일시적 불행으로 그의 남은 여생을 잘못 판단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다시 설계함으로써 여러 욕구들이 충족될 수도 있는데, 그가 죽게 될 경우, 그러한 욕구가 좌절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이 유발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위의 경우들 중 한 경우에서는 공리주의자가 당사자가 하려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 경우에서는 그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볼 때, 공리주의적 입장은 당사자 개인의 욕구나 의사결정과는 다소 독립적일 수밖에 없는 각 상황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들에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특정 당사자의 죽음이 타인들의 욕구 충족과 좌절에 어떤 함축적 의미를 갖는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불치의 병에 걸린 타인들의 생명에 중대한 기여를 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만한 어떤 근거가 있을 경우 공리주의자는 그 사람이 자살을 하든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죽여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그릇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이것은 자살과 안락사의 옳음과 그름에 대한 공리주의적 기준이 해당 당사자의 욕구와 어느 정도 무관한 것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이상의 두 가지 논점은 세 번째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 번째 경우의 불치의 병을 다시 생각해 보자. 공리주의자들은 당사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행위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그 사람의 연명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의거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어떤 식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그르다고 말할 것이다. 죽음이 누구에 의해 실행되든, 그 방식이 어ᄄᅠᆫ 것이든 그르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리주의자들은 특정인의 죽음이 모든 이의 관심을 고려해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경우를 제외하고는 목숨을 빼앗는 모든 형태의 일이 그르다고 생각 할 것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자에게는 인간 생명을 빼앗는 행위의 도덕적 성격은 그 생명이 그것을 살아야만 하는 본인에게 갖는 성질과 그의 삶이 그에 의 영향을 받는 자에게 함축하는 의미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