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2월28일~2024년 2월 8일
신순자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된 분은 아니다. 그러나 믿음 생활에 정성을 다 쏟는 분이었다. 언제든 집사님의 집을 방문해 보면 이 말의 의미를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심방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갈 때마다 온갖 것을 다 내놓으며 먹으라고 권한다.
실제 먹는 것은 일부분이지만 이미 마음에 배부름이 느껴진다. 겨울에 가면 방을 따뜻하게 덥혀놓고 편하게 머물다 가도록 세심하게 준비해 놓는다.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환하여 웃는 집사님의 얼굴만 봐도 되고 진심으로 환영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집사님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잘 통하는 분임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으셔도 이해심도 많고 상황에 맞는 말을 일부러 골라 쓰는 것처럼 어울리는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신다. 농담도 제법 잘 받아넘기실 정도로 여유로우시다. 92세의 할머니여도 60대 젊은이와 대화하는 것처럼 말이 잘 통한다. 어떤 주제를 말하든지 막힘이 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본래 말이 잘 통하면 나머지도 술술 풀리게 되어 있다. 반면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 답답할 정도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보다 귀가 뚫려 있는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집사님은 말이 잘 통하니 말을 걸고 싶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한 마디로 신순자 집사님은 편안한 할머니다. 긍정적 기운이 센 분이다. 분명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는 것 같은데 마지막은 긍정으로 마무리하신다. 힘든 일을 말하면서도 아무 걱정이 없는 분처럼 밝으시다. 부정적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시다. 어려움이 분명히 있어 보이지만, 표현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긍정이다. 어찌 92세의 노인이 그렇게 언어의 기교를 부릴 수 있을까? 타고난 기질이 없고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의 자녀들도 어머니께 효성이 극진하다. 병원에 누워계실 때 자녀들이 번갈아 가며 힘껏 돌보는 모습이 참 귀하게 보였다. 장례식 때에도 자녀들이 모두 신앙생활을 하지 않음에도 일치된 생각으로 믿음의 장례식을 했고 온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었다. 장례를 마친 후 처음 맞은 주일에 온 자녀들이 참석하여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에서 예배드렸다. 끝까지 어머니에 대한 예를 다 했다. 그런 자녀들의 모습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비록 지금은 믿음을 갖지 않은 자녀들이지만, 어머니가 앉은 자리에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니 언젠가 온 자녀들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날이 올 것만 같다. 집사님의 집에서 다시 찬송이 울려 퍼지는 날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어머니가 뿌려 놓은 구원의 씨가 믿음의 꽃으로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천대까지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