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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아침 일찍 버스 타고 진부령에 다시 섰지만
버스 타고 이곳에 서기까지 무려 8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내가 좋아서 가는길에 "금강산 일만 이천봉" 중 신선들이 노닐었던 신선봉에서 나홀로 일몰보는 것도
좋으리라 위안을 삼으며 쪼그려 앉아온 보람인가 그끝에 진부령에 도착한다.
서울의 모산악회에서 대간 출정 기념 시산제를 지나고 있어, 대충 인증 담으려는데 클럽 소속의 회원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기나긴 대간길로 들어 간다.
백두대간
세월이 흘러서 다시 이곳에 섰을때
인생반백을 갓지나 그동안 무얼 얻고 무얼 잃었는지
산은 그대로 인데 내 모습만 변해있는듯
인생 반백을 지나니 검은 머리 어느덧 반백의 흰머리로 변해있고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자리 여기다 두고 다시 백두대간길로 가지만
훗날 10년뒤에 다시 이곳에 선다면 반백의 머리마져 변해 있을듯 하다.
백두대간
한반도의 동과 서를 가르는 산줄기이며 산꾼이라면 누구나 기나긴 백두의 대장정으로 가보고 싶어 하는길이기도 하다.
한번에 이어 갈까 수십차례 생각을 해봤지만
사는게 그리 녹녹치 않으니 애들이 다 클때까지 그 꿈은 미련없이 버린다.
어느날 애들 둘을(현성이.준성이) 앉혀 놓고 딱 18일만 집을 비워도 되냐고 물으니
큰애가 하는말이" 다녀와도 되는데 회사 짤렸어요" 한다
작은애는 "아버지 백수야 뭐야 그람 밥은"
애들한테 마음의 상처를 주는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미련없이 꿈을 버린다.
대간길의 비닐 하우스와 멀리 향로봉이 지척이다.
폐군부대를 지나고
지나온 편안한 길
폐점의 알프스 리조트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간 산길로 오른다.
이번 대간 산길은 늦가을 혹은 겨울에 지리에서 흰눈과 함께 끝맺음 하리라 생각하고 왔지만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름길을 오르니 별 별 생각이 다든다
가볍게 해서 대간을 가볍게 가느냐
야간에 누워서 별을보는 즐거움을 상상하며 무겁게 가느냐
모든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산길
마산봉에 도착
대간길에 나름의 자료를 올려 보려고 짐을 싸들고 나왔지만
워낙 돌팔이라 아는것도 없고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본다.
우리 선조분들의 옛지도 제작에 관하여
조선시대의 여지편람의 산경표가 나오기 까지 산줄기는 어떻게 제작 되었나
지도는 삼국시대 그 이전부터 제작이 되어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지나며
조선왕조에 들면서 본격적이 지도를 제작하게 된다.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의 지도 용도란 전쟁과 전투에 많이 사용 되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왕명에 의해 지도가 제작되는 과정은 전국 8도의(경기.충청.경상,전라.강원,황해.평안도) 각지방
관찰사가 관리 감독하에(관찰사:예하 지방 수령들을 감찰하며 행정 사법 전권을 행사) 지도가 각지방마다 만들어져
다시 중앙으로 모여 중앙에서 지도를 제작되어(성종.영조) 지방의 분활과 지배가 쉽게 이루어 지게된다.
조선 전도는 우리나라의 국토 전체를 그린 지도이다.
국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그린 지도는 조선시대 이후의 것들이지만
삼국시대 이후로 부터 지도 제작이 활발하게 되어 오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한반도 전체의 윤곽을 사실에 가깝게
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일리역대국도지도" 에 수록된 조선 전도는 고려시대의
지도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전체 모습은 실제로 한반도의 모습에 근접해 있다.
조선 전기에는 새로운 이씨 왕조가 열림으로써 국토의 확장으로 행정,군사적 목적으로 새로운 지도가 요구 되었고
변방인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으로 군사적, 개척 등으로 이지역에 대한 사태 파악이 절실 했던것으로 보인다.
1424년도 세종시대에 들어 구체적인 지도 제작에 착수되어,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의 지도가 제작되어 정척(鄭陟)이란분은
세종때 이 두지역의 지도를 제작 하였고,1463년도 세조때 양성지와 함께 최초의 실측지도인 동국지도를 완성 하였다 한다.
그 이후 조선지도 제작의 성과는 1530년에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전한다.
세종때 제작된 "세종 실록지리지"는 국가의 지배체계 확립 목적으로 군사.경제.행정. 같은 실용 위주로 만들었다면
성종때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왕권의 위엄과 유교적 지배원리를 강화할 목적이 우세하여 시문.인물.예속.고적 같은 항목이 추가되었다.
멀리 가야할 신선봉
저곳에서 일몰을 봐야 하는데 발걸음이 왜이리 무거운지
조선 후기의 지도 제작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나라는 황페화 되어 전국토를 다시 제건하는 시기였기에
국토의 전반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최신의 지도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에는 민간에서는 지도를 소유하는것을 금지 했으나, 조선 후기무렵 부터 사대부를 중심으로 어느정도 지도를
소유 할 수 있었고 민간에서도 지도 제작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 졌을 시기다.
18세기 영조시대때 실학자이자 지도 학자인 정상기는 조선 후기의 지도사에 획을 그은 '동국지도"를 제작 하였는데
그는 몸이 병약하며 한고을을 벗어난적이 없었고, 전국토를 답사하고 측량하여 동국지도를 제작한건 아니다.
이무렵 최고의 학자들과 교류 하면서 새로운 자료를 찾고 수집하여, 백리척(지도 제작하는 방법: 백리를 1척으로함)을 사용하여 당대최고의 지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지도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산천의 표현에 관심을 두어
산맥이나 물줄기는 지표면의 근골과 혈맥이 되기에 과거의 지도 제작자들 보다 우선적으로 산천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정상기의 동국지도에는 山經(산경)과 水經(수경)이 이전 지도와 비교가 안되게 잘 그려져 있다.
1757년 조정에 알려지게된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관청에서 적극활용하게 되었는데 행정,군사적 용도로 최고의 요건을
갖추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770년 이를 바탕으로 여암 신경준이 "여지도"를 제작하게 되며
1834년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역시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바탕으로 수정 보완된어 "청구도"를 만들었으며
1861년도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드는데 이미 만들어 놓은 청구도를 보완 발전 시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정상기의 동국지도로 이어지게 된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야기는 다음 대간 산행기때 쓰기로 하고...
해넘이는 시작되고 갈길은 멀고
산경표(山經表)
우리가 산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어보는 이름 산경표이다.
산자 분수령(山自分水嶺)"산은 물을 가르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
한국의 전통 지리사상은 천인합일의 사상이며 단군신화는 태백산, 고구려의 해모수는 웅신산,신라의 박혁거세는 양산.
가야국의 김수로왕 구지산에서 나라를 열었다고 전한다.
신화에서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을 다스리고 죽어서는 다시 산신으로 기록되어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전하는데 산신은 삼국시대부터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잘 나타나기도 하며.
고려시대에는 진산으로 지정하고 성황신으로
조선시대때는 진산으로 특별 관리되어 마을의 후면에 위치하며 마을의 풍수지리적으로 조종산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조종산(祖宗山은 어디일까 바로 백두산이며 백두산에서 조선 왕조가 자리하는 한양으로 산줄기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영조때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祖宗)이다, 대체로 큰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
어 중간에 태백산이 있고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그리고 영조때 이중환의 "택리지".팔도총론에 중국의 서쪽 곤륜산에서 시작되는 산줄기가 동쪽으로 달려 백두산이 되었고
조선 산맥의 머리가 되었다고 적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산을 중심으로 체계를 인식하는 산줄기 계통을 족보처럼 기술한 18세기의 걸작인 산경표(山經表)
여암 신경준의 산수고(山水考)를 기초로 만들어진 산경표는 조선의 산줄기 체계를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대간1개, 정간,
그리고 13정맥 15개의 산맥으로 정리 하였다.
산경표 체계는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백두대간을 근간으로 하고,
산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가지를 치면서 각 군현의 마을과 중심되는곳에 이르러 멈춘다는것을 족보처럼 정리한 것이다.
특히 강과 과련하여 10대강의 산줄기 이름을 정한것은 산줄기의 분수령이 되고, 산이 곧 강을 이루는 수원이 되며, 이에
따라 마을과 유역권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의 명칭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정리하여 유명한 산경표의 작가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들이 영조시대의 여암 신경준으로 단정하고 있으나
산경표는 신경준이 지은 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
현전하는 산경표에는 19세기 초에 변화된 지명이 기재된점이나
산경표에 문헌비고의 여지고의 오류를 지적한 점으로 볼때, 신경준이 산경표를 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산경표가 신경준이 편찬한 "산수고"와 "문헌비고의 여지고"를 바탕으로 하여 작성된것은 분명하다.
예)
산경표:한북정맥-날머리 삼각산- 장명산
여지고:인왕산 -목면산(남산)-한강
산경표: 한남정맥-날머리 광교산- 문수산
여지고:한남정맥 날머리 청계산- 관악산
그외 몇몇곳이 서로 다른점으로 볼때 한사람이 썼다고 단정하기 어려운건 사실이다
지도 이야기는 다소 지루하니 백두대간길로 이어 가보기로 하고.
대간령 안부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석파령 이라고 기록되어 대간령,새이령 이라고도 부른다.
멀리 주걱봉 방향
그토록 갈망하고 고대했던 "금강 일만 이천봉"의 끝자락인 신선봉에서 일몰을 볼 수 있음에 감사 드리며
지나는 백두대간 길이 이렇게 아름답게 이어지기 바래 보면서 해넘이가 끝날때까지 서쪽하늘만 쳐다 본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올때 마다 이름모를 꽃향기가 신선봉에 가득하니
이 꽃향기가 仙界(선계)속의 신선의 향기인양 가슴 깊이까지 넣어 본다.
꽃향기에 취하고 일출에 넋을 놓은지 오래
마음은 급할것도 없으니 ...
이제부터 야간이라 조용한 밤이 이어지고
렌턴 꺼내기도 귀찮고
눈이 보는것 보다, 발이 기억하는길을 따르고자 그렇게 산길을 걸어 본다.
신선봉
헬기장에 몇몇분들이 텐트속에서 술한잔 하는 모습도 보이고
나도 이곳에서 배낭에 든 켄맥주 하나 꺼내들까 했지만 ...
켄 맥주 하나는 어디선가 대간 기념으로 한잔 하기로 하기로 하고
상봉의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지역
미시령에서 비박을 할까 여기서 비박을 할까
1951년 5월 국군 수도사단과 북한군 6사단이 아름다운 이땅을 지키고자 숭고한 희생을 한곳이다.
이곳은 국군 전사자 분들이 잠들어 계시는 곳이라
잠시 묵념만 하고 지나는데 미시령에 불빛이 깜빡인다.
새벽에 미시령에 불이나서 미시령에 국공분들과 소방서 직원들에 비상걸렸다는 이야기는 오다가 들었지만
그래서 그런가...
걸리면 걸리고 껌껌한 밤길을 렌턴없이 길찾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지만
바위구간 지나고 부터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렌턴없이 밤길을 걸어 미시령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미시령은 쓸쓸하기만 한데
어디 조용한곳을 찾아 가니 미시령 휴게소의 넓은 공터이다.
미시령에 9시무렵
국공분들 단속은 없고 넓은 주차장에서 멸치 칼국수 끓이는 재미
이래서 비박을 하는구나
이번 대간길에 비박 잘 하라며 보내주신 종환님표 장비들인데 가볍기도 하고, 성능이 좋아서
금방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종환님께 감사 드리며 대간 마칠때까지 장비 잘 쓰겠습니다.
백두대간 20차 추백팀 산이 지부장님께 전화를 해서 미시령에 단속 없으니 편하게 미시령으로 올라 오시라고 전하고
침낭속에 누워 하늘을 보니 깨알같은 별들이 무수히 반짝인다.
대간.정맥 기맥이나 지맥길에 꼭 한번은 이런 산행을 하고 싶었는데
대간길에 이런 행운이 올줄은
침낭속에 애벌래 마냥 누워 있으니
넓은 주차장에는 심야 데이트 족들이 잠들만 하면 올라와서 잠이 안온다.
바람은 불고 1시 조금 넘어 새벽길을 떠나려고 장비 정리해서 황철봉으로 오른다.
야간산행 모처럼 해보니 마음이 그렇게 정갈해질 수 없다. 부모님 생각.애들 생각을 하며 항철봉 너덜길을 오르며
잠시 미시령으로 뒤돌아 보니 수많은 불빛이 올라온다. 누굴까 한참을 기다려 보니 부산의 낙동 산악회에서 대간 하시는
분들이 올라 오시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걸레봉에서 일출보며 추백 대간팀을 기다리는데 추워서 침낭속에 들어가 눈만 빼꼼이 내밀어
저항골로 올라오는 운해 구경에 넋을 잃을 지경이다.
멀리있던 운해가 눈 한번 깜박일때 마다 점점 다가 오더니 순식간에 길고긴 저항골을 가득채운다.
운해는 잠시동안 저항골에 머물더니 다시 왔던 곳으로 물러나니 그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꼭 비워야 한다는걸 운해가 알려 주지만 이번 대간길에 무얼 배울 수 있을지
운해가 저항골을 넘어 곰골을 지나 백담사로 가는줄 알았지만 운해는 그러지 못하고 동해바다가 자리하는곳으로 물러 난다.
오늘 일출은 별로지만
앞으로 대간 하면서 일출 볼날이 많으니 ...
일출에 대한 미련은 이것으로 버리고
선두분들
이분들 따라 가다가는 골빙들것 같고 추백팀분들중 산이 지부장님 오시면 콜라 지원 받고 걸음해볼까 한다.
써니님
이분도 빠르니 먼져 보내드리고
천왕산님.
이분은 더 빠르니 보내 드리고
추백팀 중간분들
이분들과 같이가면 미시령까지 따라 갈것 같기도 하고
부채도사 마인드 누님 뒤로 팀분들 올라 오시고
추백 팽달팀
한분 두분 속속 올라 옵니다.
선두분들은 모두 가시고
중,후미분들 모두
이쁜 마녀님
잠시 휴식하며 후미분들 기다립니다.
건강한 체형님
지나온 황철봉 방향
마등령 오름길
황철봉과 멀리 울산바위
마등령 오름길에
이쁜 천명님
오늘 이분과 같이 가려고 따라 갑니다.
대간길에 이름 모를 꽃향기가 너무좋아 시간 가는줄 모르고 걸었던 신선봉에서 마등령구간
가야할 설악
지나온 대간길
언제나 좋은일만 마음속에 가득담을 천명님.
대구 경북팀
선두뺀 나머지 분들
마등령 식사시간
마등령에서 본 화채능선 방향
세존봉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바위죠
나한봉
나한봉에서 본 세존봉
경호님과 산이 지부장님.
몇해전 s**방송 설악 공룡촬영때 작가분이 j3클럽에 대해서 이야기 해 달라고 해서
사실대로 했더니 내가 한이야기는 모두 편집되어 방송에는 그 이야기가 전해지지 못했다.
뭐 이유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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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되는 이야기 라고"...
올라오는분들을 기다리는 중에
한때는 빠르게 뛰고, 걷고 그렇게 클럽을 알렸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욕할것 같아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뭐든 새로운걸 하려면 연습이 필요하고
이제 적응이 되어 가는것 같다.
모두가 앞으로 지나가니 따라 갈 힘도 없고
설악태극중이신 포항의 선돌님
1275봉으로 가는길에
안부에는 시원한 설악의 바람이 불어오니
등에 달라붙은 배낭을 떨어지게 하기위해 S라인을 만들고
사격자세
1275봉에서
팽달님 갑시다.
솜다리 사는곳이라 했더니
몇몇분 찾으러 가시고
천명님 다람쥐 부르는 소리에 쪼르르 옵니다.
다람쥐 부르는 소리가 옆집 강아지 부르는듯
대간 하라고 꼬득여서 추백에 합류하신 천명님 대구지부의 자랑이죠
범봉이 보이고
태극팀
깜장소복님,노픈산님, 송림님.
만나서 반가웠구요
포항 태극팀
만나서 반가웠구요
설악 태극하시는 두령님
지리태극과 함께 설악 태극까지
여자라서 위험하겠지만 홀로서기 연습 해보시기 바랍니다.
두령님 호위 군사(보디가드)분들
대간 18차 분들 대간 잘이어 가시구요 대간길에 뵐수 있을지
제가 날짜를 한번 맞춰 보겠습니다.
희운각에서
포항의 이상헌님
참 좋으신분 한참 같이 올라 왔네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대간길 무탈하게 잘이어 가십시요
한국산악 마라톤 협회 회장님
잠시 이야기 나누고
조용한 시간에 덕유 육구종주 런 한번 하기로 하고 헤어 집니다.
희운각에서 중청 오름길에 아는분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천명님은 배방장하고 가다가는 속 터진다고 도망가고
체형님만...
한장 담고
비박배낭 무게가 무거워 희운각에서 중청으로 올라오는데 죽을뻔함
먹을것 많은것도 아닌데 꺼내기 귀찮아서 싸짊어 지고 갑니다.
좋은사람 체형
봇따리는 중청에 팽겨치고
허둥지둥 대청에 올라오니 정상석 잡고 인증 담고 싶었지만 산객분들 서있는줄이 만만찮아 대충찍어 본다.
멋지구만
끝청에서 태극하시는 그랭이님을 만나
포카리 물한병 드리고
끝청에서
산이지부장님
등산은 이렇게 하는거임 이라며 잠시 휴식중
이제 좀 살것 같구만
이후에는 모두다 도망가고 몇몇분들과 꼴찌로 진행
뽀얀 고무신님이 담아주신 날머리사진
한계령에 도착하니 먼저오신 경호님이 시원한 콜라 한병을 건내 주신다.
역시 콜라는 좋아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일행을 찾아 나선다.
대간팀은 수박 파티를 하시고
꼴찌로 왔다고 가장 큰녀석으로 골라주신 솔모리님 감사했습니다.
대간산행 혼자서 산을 느껴 봤으면 하다가
걸레봉에서 추백팀을 만나서 함께 진행하며 더 재미있는 길을 걸었고
용대리로 가서 황태 해장국까지 민폐만 끼치고 왔습니다.
추백팀에 감사 드리며 지리산까지 보다 더 즐거운 산길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음주 토요일부터 진행 하고자 하며, 같은 산속이지만 제가 몇걸음 더 멀리서 걸음 할것 같습니다.
단목령 구간에 진드기란 녀석이 달라 붙으니 서로가 조심 해야겠죠
글 감사합니다.
이제 급한 골짜기를 흘러 내리는곳을 지났으니 깊고 깊은 물길의 흐름처럼 고요하게 흘러 대양으로 갈시간이죠
그동안 촐삭이며 시끄럽던 계곡물은 지나고
정맥길 꼭 이어 가십시요
방장님께서 이번진행하시는것 처럼 하고픈분들 많을것 같습니다. 특히 박베낭메고 한방에 유유자적 걸음하는것은 저도 꿈꾸고 있지만, 당장은 어려운일~~
세세하고 읽기만해도 즐거운산행기 잘봤습니다. 조만간 17차팀과 만날 수 있겠죠?^^
유유자적 같이 할 산우가 없어 혼자 다니다 보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게 됩니다.
17차 분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기약하면서
언제나 안전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초보팽달 과 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도란도란 얘기도 하면서 길을 걸을수 잇으니 더 좋았네요
팽달을 지나 이젠 홀로 가시겟죠
늘 몸생각먼저 하시고 걸으시면 좋겟네요
팽달이분들과의 산행은 언제나 즐겁죠
속도가 갑자기 급감하니 당체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도 너무 즐거운 산길이었습니다.
싫든좋든 대장직을 맡고 있는 한사람으로
클럽에 도움이 되고 함께 하는분들과
안전산행을 위해서라도 많은 공부를
해야겠지만 전 그냥 그렇게 걷는게
좋을뿐 공부머리는 아닌가 봐요 ㅎ
제삼리주민이면 누구나 꿈꿀수 있는
방장님의 모습..
방장님께서 주민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시는군요..
아무쪼록 꿈꾸시는 대간길
보람되게 즐기시길 기원합니다~
대장님께는 늘 미안합니다.
힘든산행을 하시는데 도움도 안되고
정맥길에 함께 할수 있는 분들이 많아야 하는데
시간나는대로 한번 보고 이야기 나누기로 해요
글 감사드리구요 언제나 촛불의 밝음처럼...
방장님과 함께 한 추백팀 부러운데요~^^
많은 응원이 되셨을 듯 합니다~ 혼자 다니셔서
쓸쓸하겠다 했더니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항상
안산 하시고 멋진 모습 보여 주세요~^^ 클럽회원님들에게 큰 에너지가 되고 계십니다~ 방장님 ~~화이팅!!^^
동행대간 열심히 하시죠
다치지 마시고 대간길 잘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핫팅하세요.
글 감사합니다.
대간 한번 해보려니 골빙듭니다.
산정에서 만나 너무 반가웠던 방장님
마음이 징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산 즐산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천왕님 좋은산에서 만나뵈어 좋았구요
대간 졸업은 같이할 수 있게 제가 걸음을 도정해보도록 할께요
힘차게 걸음 하십시요
방장님 대간길로 인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재미가 솔솔합니다요^^
설레이는 대간길 이번에는 구릿빛 피부 방장님과 함께해서 더 즐거웠습니다
홀로 진행하시는 백두대간 끝까지 화이팅입니다
대간 졸업은 같이 해야 할텐데
어쩌까 같이 졸업 할까.
힘차게 대간 이어가고 다치지 말고..
긴 산행기 몇일에 걸쳐 나눠 읽었네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추억에 대간길 방장님만에 멋진길 이어가세요
저의길을 걸으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네요
걸음의 미학은 언제나 아름다우니 최선을 다해봐야겠죠
대장님 낙동 잘 시작 하십시요
저도 대간비박 하고있어요 이번주는 닭목령 백복령 구간 갑니다. 두타청옥구간은 혼자 땜빵해야되는데 시간 맞으면 방장님 따라가고 싶네요
청옥 두타구간 같이 갈까요
대신에 라면만 끓여 드립니다
@배병만 전 밥할줄 몰라서 항상 라면만 먹어요^^
이래저래 바빠가 요기서 부터 못봤네요~ㅎ
방장님 산행기는 대충볼수도 없어서 엄두도 못내고 있다보니 대간끝내신지가 언제인데....ㅎ
이제야 보기 시작합니다.
요고 한편 보는데도 시간 윽시러 걸리네요~ㅎ
요래서 숙제는 밀리면 안된다고~ㅋ
산더미같이 보지못한 산행기들 많지만 몇분들꺼는 꼭 보게 됩니다.
밀린거 다볼라면 제법 걸리겠지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