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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가 파계를 하고 절을 떠난 이유 ②》
~♡~
[ 경허집(鏡虛集) (39) ]
20240812
서른아홉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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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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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契此清心法門
夫人生一世也壯色不停如奔馬如草露如西光無常迅速之謂也似糞聚 似夢聚如怨賊如毒蛇謂其幻妄無好事也孔子曰予欲無言又云無適也無 莫也莊子日遺其玄珠罔象得之又云天地一指萬物一馬況我學佛沙門乎 當究其本心研精明妙則百千三昧無量妙義不求而自得諸佛祖豈異人哉 而今去聖時達出家人不識自家體裁悠悠泛泛過了一生吾佛正法眼藏埋 沒不明而全以虚偽邪惡習與成性而甚者返以誹謗嗚呼不可以言之矣六 祖大師云前念迷即衆生後念悟則佛為山禪師日以思無思之妙返思靈燄 之無窮思盡還源性相常住事理不二真佛如如得其光也等諸佛於一朝失 其光也順生死於萬劫如龍換骨不改其鱗凡夫廻心作佛不改其面無明實 性即佛性幻化空身即法身這箇道理租為太近開眼便刺着合眼處亦自現 成如何是佛汝即是如是等明白指導不可煩引而皆是革凡成聖之直截道 理古人之恁麼叮嚀苦口用心緊切如老婆誦習而返究博問先覺以決擇分 明悟理為懷仔細琢磨其成道也誰人無分賢愚貴賤老少男女皆有分也鸣 呼薙髮染衣當為何事眼被色牽歸餓鬼耳隨聲去入阿鼻沈醉聲色場酒墮 沒受想坑穿昏昏不覺今日也如是明日也又如是乃到臘月三十日頭痛額 裂肝腸痛切手脚抽牽懷懂如落湯螃懈痛忍如生脫龜皮神識昏迷上天入 獄也不曉得嗚呼惜哉回憶古賢於臨終也坐脫立亡容易如門開人出相似 戒禪師倚杖而化佛印長老嗎然一笑而去或停筋而逝垂足而寂倒立而滅 去數尺而亡皆以返究自性學全定慧之致也鳴呼古人豈異於人哉洞山和 向云袈裟下失人身是苦也可以箴戒如上四箇嗚呼也感恨如海誰知之書 此以贈承華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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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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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계차청심법문(契此清心法門)
(1편)
대저 우리 인생의 한 세상 삶이 건장한 청년기가 머물지 않음이 달리는 말과 같고 풀끝에 이슬 같고 지는 해와 같으니 무상 (無常)이 빠름을 말함이다.
똥무더기 같고 꿈결 같으며 원수나 도둑 같으며 독사 같다 함은 헛되고 부질없어서 좋은 일이 없음을 말함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말이 없고자 하노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맞는 것도 틀리는 것도 없다." 하였으며 장자(莊子)는 황제(黃帝)가 잃은 현주(玄珠)를 망상(罔象)이 찾았다." 하며 또 이르기를 “천지(天地)는 한 손가락이요 만물은 한 마리 말이라." 하였다.
항차 우리 불교의 사문(門)이란 마땅히 본심(本心)을 참구하여 세밀히 연마해서 밝고 오묘한 경지에 이르면 백천 가지의 삼매와 한량없이 묘한 이치를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으리 니 모든 부처와 조사가 어찌 별다른 사람이겠는가.
이르되 "이제 성현이 가신지 오래 되어서 출가한 사람이 자기 집의 가장도 모르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헛되이 일생을 보내니 우리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蔵)을 매몰하여 밝히지 못하고 온통 허위와 사악한 습성만 익힌 자가 심지어는 오히려 비방까지 하니 슬프다. 가히 말로써 다 할 수 없도다." 하였다.
육조대사(六祖大師)가 이르기를 "앞 생각이 미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하였으며
(39~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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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오늘 제목은 계차청심법문(契此清心法門)이라는 내용 중 1편 내용인데요. ^^
여기서 말하는 계차(契此)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포대 화상]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계차청심법문(契此清心法門)이란 말 그대로 [포대 화상이 전하는 마음을 맑게 하는 법문]이라는 뜻이랍니다.
중국 자료에는 포대 화상이 살아 계실 때 당나라 말기 현재 절강성 닝보시 봉화구 봉화 출신의 승려로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네요.
닝보시는 닝보항을 통해 석탄 업을 할 때에 입출 입을 했었던 곳이라 저와는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아주 깊었던 도시였는데요.^^
이쪽 지역은 우리에게는 개성상인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온주 상인들이 아직도 꽉 잡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데요.
온주 상인들은 아직도 중국 내에서 크게 번성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저도 온주 상인들과 첫 작품으로 석탄 계약을 성공 시키는 바람에 중국 사업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뒤로는 기반을 잡았던 지역이라 그런지 닝보시는 중국 내에서도 어느 지역보다 애정을 느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데요.^^
온주 사인들은 같은 중국 사람이라도 아주 심플하고 지저분한 것이 일절 없는 그런 사업가들이 많은데요.
솔직히 다른 중국 사람들은 질질 끌면서 시끄러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같이 일해 먹기 힘든 거시기들이 많거든요.^^
살듯 살듯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 저도 적응이 되어서 싸게 팔듯 팔듯 하면서 심리적으로 애를 먹인답니다.^^
그러면 중국 아이들이 저보고 뭐라 하는지 아십니까?^^
너는 중국 사람들보다도 더 중국 사람 같다고 한답니다.^^
저도 사채업을 20년 넘게 한 사람이기 때문에 밀땅에는 선수이거든요?^^
이번 달 말에는 시간이 되어서 오랜만에 회사도 가볼 겸 식구들도 만날 겸 식구들과 같이 거래했던 친구들도 만날 겸 대련으로 해서 심양→흑룡강→닝보→항주→대련→한국 순으로 비행기표까지 빡빡하게 예약을 해놓은 상태인데요.
아무튼 닝보시와는 이런저런 인연들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개인적으로 닝보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는데요.
포대 화상도 이 지역 사람이라고 하니까 저하고는 이래저래 인연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포대 화상 그러면 할 말이 참 많은 사람인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해보겠습니다.^^
중국 자료에 의하면 포대 화상은 특유의 이미지와 인품으로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중국 자료에는 쓰여 있었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 싶이 아주 뚱뚱한 비만이셨다고 쓰여있었고요.
그리고 얼굴은 주름진 눈썹과 큰 배를 가지고 있었으며 말투가 불규칙하고 하루 종일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다녔다 합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 많았고, 유머가 넘쳤고, 똑똑했고, 친절하고, 아주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설두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고 설두산에서 불교를 설법하여 "미륵의 성지"로 숭배받기도 했답니다.
일부 중국 불교 사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배불뚝이 미륵(또는 배불뚝이 비구)을 모델로 삼아 세상에 관용을 배우도록 상기시키는 교육의 한 형태로 삼고 있다고도 하네요.
이는 화합이 부를 가져다주고 부를 축적한다는 뜻으로 민간 신앙에서는 부의 신으로도 숭배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부다이 승려를 칠복신 중 하나로도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닝보시와 저장성 무형문화유산에 포함되었으며, 2010년 문화부가 국가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포함시켰다고도 합니다.
계차(포대화상)의 삶은 전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이미지와 이야기는 중국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와 지역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중국 자료에는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포대 화상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요.
오늘 보니까 닝보가 고향이라고 하니까 더욱 좋아졌는데요.^^
그 이유는 서초동에 있는 대성사라는 절에 무슨 일이 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당이라는 곳을 들어가 본 것이 2013년 8월 25일 17시쯤이었는데요.
그 당시에 사진을 찍어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건데요.
아무튼 거기서 제가 4살 때 어떤 할아버지를 보고 놀라서 부모님들 얘기로는 그때 제가 뭐에 놀랐는지? 입에 거품을 물고서 숨도 제대로 못 쉬기에 동내 어른들과 같이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모른다 해서 영등포에 있는 한 유명한 침쟁이 할아버지에게 큰 침을 정수리에 맞고 숨이 트이는 바람에 제가 죽다가 다시 살아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대성사 법당 안에 그 할아버지가 나한으로 서 있기에 다리에 힘이 쭉 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그 나한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할아버지 왜 거기에 계세요?"
라고 할 정도로 저에게는 아주 큰 충격적인 사건이 그 법당에서 있었는데요.
4살 때 그 할아버지 얼굴을 본 후로는 단 한 번도 그 얼굴과 자태를 잊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그 법당에 나한으로 서 계셨으니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겠어요?
태어나서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고요.
제가 아무리 뭐 해도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을 놈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힘없이 푹 주저앉았답니다.
햐..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그 법당을 나오면서 법당 옆에 있던 아주 큼직한 배불뚝이 포대 화상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도 같이 그 앞에 서서 배를 쑥 내밀면서 포대 화상 흉내를 내면서 환하게 웃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
그 뒤로는 대성사에 갈 때마다 그 포대 화상만 보면 저도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면서 "잘 있었어요?" 하면서 법당 안으로 들어가곤 했답니다.^^
저는 그렇게 큰 포대 화상을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는데요?
그리고 포대 화상이 저는 돈 많고 부유한 장사치로만 알고 있었는데 승려였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답니다.
그 정도로 제 경우는 불교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는데요.
아무튼 그 나한 할아버지를 보고 난 후부터 전혀 불교 쪽으로는 관심도 없었던 제가 그 절을 내려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나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중국으로 들어가면서 회사 동업자 형이 한국 업자에게 마약 중계를 하다가 걸려서 사형을 당할 때까지 총경리(사장)로 일을 했었던 저도 2년간 꼼짝없이 공안에 불려 다니면서 조사를 받을 때..
우연히 그것도 제가 다니던 한인 교회 도서관에서 법화경과 운명처럼 만나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인데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병아리도 처음 본 것을 어미처럼 따른다고요.
저도 그런 인간적인 정을 그 포대 화상과 그 나한에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때에도 포대 화상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저를 반겨주었고요.^^
그래서 그런지 그 후로는 포대 화상만 보면 좋아서 속으로 "안녕?^^~" 하는 경우인데요.
그리고 그 후로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원이라는 곳을 찾아갔을 때에도 한 행자 님과의 첫 대면을 했을 때에도 지금까지 그 행자 님과 인연을 다하고 있는데요.
이분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원이라는 곳에 갔을 때 친절하게 처음으로 법복을 입고 있는 분과 말을 섞어본 만남이라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건데요.
지금은 남양주에 한 요양원에 계시지만 하루속히 건강이 다시 회복되었으면 좋겠지만 얼마 전에 찾아뵈니까 촛불이 얼마 남지 않은 모습이 많이 안타까웠는데요.
아무튼 그래서 지금도 이법을 알고난 후로도 왠지 저는 포대 화상만 보면 그때 그 포대화상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런데 얼마 전에 대성사를 다시 가봤더니 나한들이 다른 것으로 다 바꿨더라고요?
그때 제가 본 그 나한이 아니었답니다.
제가 사진으로 찍어둔 나한과 비교해 보아도 아니었고요?
서초동 예술의 전당 위에 있는 우면산에 위치한 [대성사]라는 절인데요.
이곳은 제가 사채업과 변호사업을 할 때에 사무장 친구들과 점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수시로 올라갔던 곳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때 한 번도 법당 안에 안 들어 간 것인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가는 경우인데요?
그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그후로 혼자 경전을 보면서?
"아..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 인연이 누구에게나 중요하구나"
했었던 적이 있었답니다.
부처님 말씀도 그렇고 이것은 절대로 인연이 닿지 않으면 아무리 옆에 있어도 모르고 지나칠 수 박에 없다는 것인데요?
아고? 괜히 포대 화상 얘기가 나와서 기쁜 나머지 제 개인적인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 😅
바로 오늘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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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중국 자료)
【契此】https://mr.baidu.com/r/1nQsR8lxaGA?f=cp&u=6fe4fedb62ccd51f
(한국 자료)
포대 화상
https://ko.m.wikipedia.org/wiki/%ED%8F%AC%EB%8C%80%ED%99%94%EC%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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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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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우리 인생의 한 세상 삶이 건장한 청년기가 머물지 않음이 달리는 말과 같고 풀끝에 이슬 같고 지는 해와 같으니 무상 (無常)이 빠름을 말함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깨닫고 보면요? 우리 인생은 한순간 한 찰나랍니다.
아주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지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요.
일반 사람들은 우리 인생이 한 해 한 해가 긴것 같잖아요?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인간 사바세계의 시간으로 봐서 그렇답니다.
왜냐하면 본성 입장에서 보면 무량겁이기 때문에 몇백 년 몇천 년 해봐야 눈 깜짝할 시간이라 그렇습니다.
실제로 깨닫고 이 사바세계를 보면 정말이지 우리 인생은 한순간 한 찰나(刹那)랍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본성을 알게 되었다는 뜻인데요.
정말로 본성 입장에서 보면 지금 우리 인생은 0.01초도 안된답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 입장에서는 100년을 살든, 10년을 살든, 단 하루를 살든 별 의미가 없는 것이고요.(진실)
또
★
똥무더기 같고 꿈결 같으며 원수나 도둑 같으며 독사 같다 함은 헛되고 부질없어서 좋은 일이 없음을 말함이다.
(우리 인생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본성 입장에서 보면 실제로도 그러하고요.
왜냐하면 본성 입장에서 보면 몸이 살아있는 것이 곧 고(苦)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말은 역으로 본성 자리는 엄청나게 고요하고 행복한 자리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옛 분들은 이 자리를 일러 "극락이다" "천국이다" 했던 거랍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진실)
또
★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말이 없고자 하노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맞는 것도 틀리는 것도 없다." 하였으며 장자(莊子)는 황제(黃帝)가 잃은 현주(玄珠)를 망상(罔象)이 찾았다." 하며 또 이르기를 “천지(天地)는 한 손가락이요 만물은 한 마리 말이라." 하였다.
(이것도 위에 내용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
항차 우리 불교의 사문(門)이란 마땅히 본심(本心)을 참구하여 세밀히 연마해서 밝고 오묘한 경지에 이르면 백천 가지의 삼매와 한량없이 묘한 이치를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으리니 모든 부처와 조사가 어찌 별다른 사람이겠는가.
(맞는 말씀입니다.
불가의 출가 사문이라면 누구나 단 한 비구, 한 비구니도 빠짐없이 수행정진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 내에 큰 어른들은 절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수행 분위기로 이끌려고 노력을 하셔야 하고요.
지금처럼 목탁이나 두들기고 염불이나 시키려고 출가를 시키거나 출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떡해서든지 어른들은 한번 출가를 시켰으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젊은 수자들이 수행 정진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뒷바라지해 주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수행을 하기 싫어하는 출가자들은 다 밖으로 내 보내야 한답니다.
그래도 절대로 불교는 안 망한답니다.
오히려 번창하지요.
왜냐하면 불교 역사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최고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정 반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최고 어른이라고 하는 비구들이 앞장서서 천도재다 명패 봉안이다 친견 비다 해서 경허선사가 그나마 일구어 놓은 수행 문화를 다 말아먹고 있다는 것이고,
더군다나 스스럼없이 불종자를 끊는 행위들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말이 되느냐 이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었으면 다른 출가자들과 나누기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그놈의 주머니는 한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도 안 하고요?
그러면서 자기들끼리만 호의호식하고 재산 싸움이나 하고 있고 다른 출가자들은 굶어 죽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고요.
최소한 한참 참선수행을 하고 있어야 할 젊은 출가자들을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편의점이나 막노동판으로 내몰지는 말아야 하는데 얼마나 윗 어른들이 보살펴주지를 않았으면 젊은 수자들이 몰래 나와서 알바를 하느냐 이겁니다?
제가 평생을 몸담았던 기독교 같은 경우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한번 출가를 시켰으면 월급은 물론 기본적인 복지는 물론이고 사대보험에서 죽을 때까지 종단에서 다 책임을 져주는 것은 물론..
교회를 차려서 분가를 하게 되면 일체 모든 집기는 물론 숟가락까지 그것도 매번 유명한 목사들이 와서 부흥회다 뭐다 해서 신도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못 도와줘서 난리인데 이놈의 불교 어른들은 전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드리는 말씀이랍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씀 터뜨린 다면 제가 왜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처음 이법을 깨닫고서 깨달았다고 하는 한 어른이 우리나라 불교에는 큰 어른들이 두 분이 계시는데 시간 날 때 한번 찾아뵈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못 볼 것들만 보고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갈 때에는 정말이지 마치 어린아이처럼 시골에 계시는 외삼촌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갔었는데 이런 큰 무당들 같은 모습들만 보고 왔으니 제 마음이 얼마나 실망감이 컸겠어요?
가만 보니까 나에게 그런 늙은 들여유들을 뵙고 오라고 했던 그 깨달았다고 하는 양반도 천도재에 푹 빠져있었고요.
절에서 목탁 두들기고 염불할 중들이 없으니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젊은 어버버 아이를 출가시켜서 대리로 목탁이나 두들기면서 염불이나 시켜 먹으려고 근기도 안되는 사람들을 출가 시켜서 부려먹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그때 그 자리에서 이런 놈들은 다 필요 없다 마음먹고 이런 인연들을 모두 다 끊어버렸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결국은 그 어버버 아이도 부모가 와서 아들을 일만 부려먹으니까 데리고 가는 모습도 보았고요.
그 부모 마음이 어땠겠어요?
불교는 마음 법인데 그런 마음도 하나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선지식인이라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기껏 선지식인이라 해서 아들을 맡겼더니 법복만 잘 입혀서 그러고 있었으니 부모 마음이 어떻겠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제자들이 보살들과 거시기를 하고 있다고 일러주어도?
건강도 안 좋은 사람을 행자로 들여 놨으면 밥이라도 제때에 먹여주어야 하는데?
하루는 경상도가 고향인 공양 보살이라는 여자가 스님 밥만 있고 건강도 안 좋은 행자 밥은 없이 퇴근을 했기에 제가 라면을 무대기로 사 와서
"스님! 오늘은 우리 라면 끓여서 같이 나누어 먹읍시다"
했던 적도 있었고 오랜만에 불고기를 했으면 다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데 건강도 안 좋은 행자 님 밥에만 불고기가 없기에 제가 일부러 그 경상도 공양주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어? 행자 님 밥에만 불고기가 없네? 제 것 드십시오"
했었던 적도 있었는데요.
사람이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거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되거든요?
그것도 절 안에서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것들을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 하고 문자로 보냈더니 기껏 선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보내온 답변이?
"그런 소리를 자꾸 하면 보살들이 싫어합니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는데요?
내가 하도 기가 차서 속으로
"뭐야? 이 사람?"
했었던 적도 있었는데요.
그렇잖아요?
선지식이라는 사람이? 보살들을 제도해야 할 사람이? 보살들 마음을 이러지도 저러지 못하는 답변이 돌아왔으니?
그것은 곧 보살들 마음에 선지식인이라는 마음이 매여 있었다는 것 아니겠어요?
보살들이 아니면 굶어 죽을 것 같으니까요?
여간하면 자신이 대리고 있었던 행자가 요양원에 입원해 있으면 한 번쯤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남들을 제도한다 하고 누가 누구를 인가한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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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는 어느 유명한 한 비구니가 저의 글을 보고서 한번 보자고 해서 부산 쪽으로 가면서 가 보았더니 엄청 크게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야.. 이분은 정말 기독교처럼 훈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했답니다.
그런데 점점하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요양원은 종단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스폰서가 돈을 대고 자기는 여기서 봉사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그럼 뭐야 당신은 얼굴마담이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는 얘기를 더 들어보니까 점점 더 가관이어서 듣고만 있었는데요.
여기는 아예 요양원에 어른들이 들어오면 천도재까지 세트로 운영을 하고 있었고 더 기가 막힌 것은 티베트 승려들이 다섯 분이 와 계시는데 환자들에게 기도 빨 이 잘 먹힌다나 어쩐다나 하는 소리를 주의 비구니들에게 듣고서 하도 기가 막혀서 그 유명한 비구니에게 당장 수행처로 돌아가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얼마 전에 사이트를 보니까 스리랑카 승려들과도 짝짜꿍하고 있는 것 같았고 지금은 요양원이 아니라 요양병원으로 바꿨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해서 "제 어니가 불자이신데 거기에 모셨으면 한다" 하니까?
아주 친절하게 사망서부터 천도재까지 49재까지 그 후로도 명패 봉안은 물론 제사까지 다 지내준다 하면서 자제분들은 아무 걱정을 안 하시고 몸만 오시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현재 한국 불교의 현실이 이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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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가 경험했던 것들을 하나만 더 해볼까요?
저의 글을 보고서 여기저기서 와보라 해서 저만큼 선문답을 많이 한 사람이 옛 어른들 빼고는 또 있을까 싶은데요?
하루는 같이 지내고 있는 도반이 아주 유명한 선지식이 있는데 한번 찾아가 보라고 해서 찾아갔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이 도반뿐만이 아니라 주의의 도반들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로 거절하지 않고 보여주기 식으로 찾아간 곳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이 큰스님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스님이 없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선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저의 사주와 관상을 물어오기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했었답니다.
그렇잖아요 부처님의 법은 마음 법인데 사주 관상 따위로 알아차림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더 가관인 것은 선문답을 했으면 한두 번만 해보고 끝을 내야 하는데 어떡해서든지 저를 꺾으려는 마음으로 하니까 할 수 없이 제가 이번에는 제가 선문을 해볼 것이니.. 하면서 제가 선문을 내고 한번 답해 보라 했더니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고래 고래 호통을 치면서 "한번 답해 보라고?" 하면서 반말로 다구져 물으니까 기껏 한다는 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뭐라 뭐라 하기에?
다시 제차 "뭐라고요?" 하니까.
좌삼우오(左三右五)라는 답을 내놓기에 제가 아주 더 큰 소리로 그의 제자들과 대중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나는 생사를 당신에 묻고 있는데 뭐? 좌삼우오?"
하면서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키면서
"당신은 가짜야?"
하면서 소리를 고래 고래 질러 대니까.
나중에는 얼굴이 벌게 가지고 주장자를 들고 밖에까지 따라나오면서 나를 때리려고 하기에?
"오늘은 어른 살림살이를 잘 보고 갑니다. 언제 평택을 지나는 일이 있으시거든 한번 들리십시오. 그러면 그때에는 제 살림살이도 한번 어른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요.
법 앞에서는 나이 따위는 필요 없거든요.
제 경우는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싸움은 피할지언정 그렇다고 죽으면 죽었지 단 한 번도 기가 꺾여본 적은 없었는데요.
아무리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매를 맞더라도 대가리를 꽃꽂이 치켜들고 맞았지요.
그리고 또박또박 말대꾸한다고 더 맞았고요.
저도 엔간하면 이 정도로 몰아붙이지는 않았을 것인데 이분은 선지식이라 하는 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해도 해도 너무했고?
더군다나 처음부터 사주 관상으로 상대를 알아차리려 했었고?
더 기가 막혔던 것은 처음 얘기가 친견비를 3~50을 요구하기에 이번 기회에 일부러 정신 좀 차리라고 야단을 친 경우였는데요.
아래 지방에 있는 어느 제일로 큰 어른이라는 사람도 친견비를 50씩 요구를 했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여기를 가보라고 한 도반들과도 같이 갈까도 생각했다가 차마 이럴 것 같아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저 혼자 갔었던 것인데요?
그렇잖아요?
뭐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수행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겠어요?
그래서 평소처럼 혼자 갔었던 것인데요.
다들 누구라고 법명은 밝힐 수 없지만 한번 거시기 하면 제 목소리가 좀 커야지요?
평생을 그렇게 제 성질대로 살아온 놈인데 여기서도 못할게 뭐 있겠어요?
아마 당시에 경허스님 마음도 저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지금 저의 마음이라 이런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인데요.
제발들 좀 이 글을 보시고 계시는 스님네들은 최고 어른 들게 말씀하셔서 우리 하화중생(下化衆生)들을 바른길로 잘 좀 이끌어 달라고 말씀들 좀 해주십시오.
그곳에서 그런 것 좀 하지 마시고요.
제가 기독교 친구들에게 가서 뭐 자랑할 것이 있어야지요?
지금도 그 사탄의 소굴에서 나오라고 난리인 친구들이 많은데요?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지금 한국 불교는 귀신을 섬기는 사탄으로 보이거든요..
그렇지 않겠어요?
내 기독교 친구들과 만나서 이런 소리를 할 때마다 할 말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 친구들이 다 하고 있으니까요?
기독교 사람들이 현재 한국 불교의 밑낫들을 더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럴 수밖에요 불교 신자였던 분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 고해바치는 말들이 다 이런 이야기들인데요.
기독교에는 고해성사(告解聖事)라는 것이 있거든요.
지금도 얼마나 많은 불교 신자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는지 모르시지요?
어른들이 가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따라가는 것이고요.
어떤 기독교 친구는 오죽하면 저에게 하는 말이?
"너도 거기 가서 제사 지네냐?"
했겠어요?
제가 이법을 몰랐다면 제가 미쳤습니까 이런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게요?
제 경우는 참으로 뒤늦게 불교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동안 못 볼 것들을 너무 많이 본 경우라..
참으로 한국 불교의 앞날이 걱정스러울 따름인데요?
그나마 이 땅의 불교를 젊고 유능한 젊은 출가자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고는 있는데요.
가끔은 젊은 친구들이 저의 글을 보고 제게 와서 출가를 하려는데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제가 그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답니다.
출가는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불교에서는 출가를 하지 마라,
정 출가를 하고 싶으면 경험 삼아서 남방 불교 쪽으로 출가를 해서 한 3년간 빡세게 수행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요.
왜냐하면 요즘은 굳이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수행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실제로 두 명이 남방 쪽으로 출가를 한 스님들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남방도 지금은 점점 예전 같지 않아지고 있고 수행도 알아차림만 하고 있어서 그것이 문제인데요.
마치 화두만 간(看)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달도 같이 봐야지 손가락만 보면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거든요.
아무튼 지금 경허스님 말씀은 비구 비구니들은 한번 출가를 했으면 수행 정진 외에는 다른 것은 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또
★
이르되 "이제 성현이 가신지 오래 되어서 출가한 사람이 자기 집의 가장도 모르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헛되이 일생을 보내니 우리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蔵)을 매몰하여 밝히지 못하고 온통 허위와 사악한 습성만 익힌 자가 심지어는 오히려 비방까지 하니 슬프다. 가히 말로써 다 할 수 없도다." 하였다.
(여기서도 보십시오?
참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경허선사의 마음이 그대로 저에게 전달되는 기분인데요.
"출가한 사람이 자기 집의 가장도 모르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헛되이 일생을 보내면서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蔵)을 매몰시켜 밝히지 못하고(깨닫지도 못하고) 오히려 비방까지 하니 슬프다"
하시지 않던가요?
이 말은 당시에 경허선사도 수많은 동급 이상 출가자들에게 비방을 받았다는 뜻이랍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출가자들이 천도재다 제사다 해서 무당 놀이에 바빴을 것인데요.
그것도 불교 전체가 말이지요?
경허 선사 기질에 지금 제 경우처럼 이런 짓들을 하지 말라고 할 때마다 그 당시의 스님들이
"네가 깨달았으면 깨달았지 네 까짓게 뭔데?"
하면서 비방을 엄청나게 하지 않았겠어요?
경허스님보다 출가를 먼저 한 선배 승려들도 엄청 많았을 것이고요.
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엄청 비방을 했을 것 아니겠어요?
아마 모르긴 해도 제 경우처럼 죽이겠다고 하는 스님들도 엄청 많았을 것이고요.
당연히 그랬겠지요?
지금처럼 자기들 밥줄을 끊으려 하는데 누가 가만있겠어요?
지금 출가자들도 보통 고집들이 아닌데 그 당시 스님들은 더했으면 더 했을 것이고요?
그래서 결국은 경허선사도 파계를 하고 함경도로 가셨던 것이고요.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절대로 한 절 안에서 이런 사람들과는 같이 지낼 수가 없답니다.
같은 절은 안 썼더라도 주의 절에서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경허선사의 친형인 태허스님도 제사상을 엎었다고 성질을 부리는 판인데요.
안 봐도 비디오지요.
그래서 경허선사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요.
경허선사 같은 경우는 어린 나이에 동진출가(童眞出家)를 해서 평생을 절에서만 지냈을 것인데 그것도 지금과는 달리 조선시대에 나이 먹고 파계를 하자니 왜 이런저런 생각이 없었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허선사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승려가 파계를 한다는 것은 곧 고생길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실제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곳에서는 같이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손오공의 머리띠인 금고아가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경허 선사가 파계를 한 것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으신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런 분들은 전혀 이 자리를 모르기 때문이랍니다.
여러분들 혹시 경허선사처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가장 잘 하게 되는 것이 뭔지 아시나요?
그것은 바로 [버리기]랍니다.
물건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수행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그 자리에서 버리는 선수들이 바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특징이랍니다.
그래서 지금 어른들을 절대로 인정을 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이 그 자리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라면 경허선사처럼 그런 곳을 버리고 떠나게 되지 반대로 그런 곳에 마음이 매여서 그것도 앞장서서 그러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허선사도 당시에 무당들로 가득 차 있는 스님들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같이 한 절을 떠났던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경허선사가 하는 말씀이?
"온통 허위와 사악한 습성만 익힌 자가 심지어는 오히려 비방까지 하니 슬프다. 가히 말로써 다 할 수 없도다."
하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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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대사(六祖大師)가 이르기를 "앞 생각이 미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하였으며
(햐.. 참으로 멋진 표현이 나왔네요. ^^
제가 고서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표현들 때문인데요.^^
그래서 불교 경전도 고서라 생각하고 보게 된 것인데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그런 문장들 말이에요?
그런 문장들이 고서에는 참으로 많기 때문에 제 경우는 고서들을 좋아했던 것인데요.^^
지금 이 말씀도 제 경우는 불법을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고서를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직원들을 교육할 때 자주 했었던 말이기도 하고요.
경허선사도 그 고서를 인용하신 것 같고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은 앞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뒷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리고 앞머리만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뒷머리만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요.
그리고 앞머리와 뒷머리가 동시에 잘 둘아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둘 다 안 돌아가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면?
사람은 앞머리든 뒷머리든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리고 머리만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마음만 잘 쓰는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머리와 마음을 동시에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둘 다 못쓰는 사람이 있답니다.
머리만 쓰면서 살면 얍싹하다는 이미지가 강하고 마음만 잘 쓰는 사람들은 바보 멍청히 이미지가 강하지요.
그리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머리와 마음을 적절히 잘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요.
그런데 지금 경허선사는 이러한 내용을 응용해 불법을 설명하고 계시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앞머리는 요즘 수행자들처럼 수행은 하지 않고 경전 공부나 옛 어른들이 남기신 육조단경과 같은 머리 쓰는 것으로만 글공부를 하고 있다는 뜻이고
여기서 말하는 뒷머리는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를 비유로 말씀하신 거랍니다.
그래서 "앞 생각이 미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하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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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많이 덥습니다.
모두들 건강 관리 잘하시고 우리 모두 꼭 성불이라거 한번 해보고 죽읍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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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경허)>
제목 : 한 번 진심내면.. 경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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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iKJLY2fs5dw?si=kq1w5oHBkpdRsF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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