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훈련 덕분
김 국 자
주말 오후였다. <603호 아주머니를 찾습니다. 603호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알리는 안내방송이었다. 603호는 나와 잘 아는 사이였다. 방송을 듣는 즉시 올라가 복도에 있는 가스배관 밸브부터 잠갔다.
문틈 사이로 검은 연기와 고약한 냄새가 새어나왔지만, 현관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어딜 간 거야?’ 여기저기 갈만한 곳을 수소문하고 있을 때,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방차들이 아파트마당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소방관들이 고가사다리를 타고 베란다로 들어가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악취가 풍겨 나왔다. 가스레인지에 올라있는 스테인리스 냄비가 숯덩이가 되었다. 가스 불에 사골 곰국을 얹어놓고 외출한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 곰국만 탔을 뿐 다른 피해는 없었다. 소방관들이 가스배관을 점검하며 “이렇게 밸브가 잠겨있는데 어떻게 불이 났을까?”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에 제가 잠갔어요.”했더니 “아주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잠그셨어요?” 물었다.
도봉소방서에서 관내 직능단체장들을 대상으로 소방교육을 실시했었다. 그때 소방교육에 참여했었다. 소화기 작동 법을배우고, 대피 훈련을 연습하고 화재를 예방하는 홍보영화도 보았다. 외출하기 전에 중간밸브를 잠갔는지, 냄비바닥에 인화물질이 있는지, 사용한 헤어드라이를 빼놓았는지 확인하는 교육이었다.
화재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인하여 이웃까지 피해를 주는 무서운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화재는 개인의 피해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난겨울, 우리 집에도 화재가 발생했었다. 나는 항상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기상하여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날은 저소득층 김장봉사를 하러가는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집안을 정리하는데,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슨 냄새지? 전기밥솥도 밥이 타나?’하며 밥솥을 열어 보려는데, 보일러실에서 타다닥 타다닥 소리가 들렸다.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재빨리 복도로 달려가 도시가스 밸브를 차단하는 동시에 “불이야! 불이야!” 외쳤다. 자고 있던 두 아들이 뛰어나오고 옆집아저씨가 맨발로 소화기를 들고 뛰어왔다. 옆집아저씨가 소화기 핀을 열었지만, 불길에 적중하지 못했다.
내가 우리 집 소화기로 불길을 향해 쏘았다. 불길은 멈추었지만 순식간에 우리 집은 엉망이었다. 옆집아저씨가 소화기작동을 잘못한 탓으로 시커먼 그을음 덩어리가 붙었고, 소화기에서 뿜어 나온 핑크빛 분말가루가 여기저기 흩어졌다. 최루탄가스처럼 매캐하여 목이 아프고 눈이 따가웠다. 불길에 놀란 탓인지 소화기가루 때문인지 따끔따끔 아프더니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쉬어 버렸다.
김장 봉사하러 간 동안 화재가 발생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보일러에서 온수가 새어 전날 오후 보일러대리점에서 출장 왔었다. 요리조리 들여다보던 직원이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부품 교체 후 온수는 멈추었는데 보일러 소리가 요란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소리가 요란해요?” 했더니 “차차 괜찮을 겁니다.”하며 돌아갔다. 보일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보일러수리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본사로 전화했더니 AS센터로 연락해라, AS센터에서는 본사로 연락하라. 서로 책임을 회피했다. 홧김에 ‘매스컴에 고발하겠다.’고 했더니 삼십분도 안 되어 본사직원은 물론 AS센터 직원까지 총출동했다. 검사결과 부품을 완전히 조이지 않은 원인이 발견되었다. 조금씩 누출된 가스가 타이머 작동과 동시에 발화되었다는 결론이 판명되었다.
그 경험으로 603호 가스밸브를 신속히 차단할 수 있었다. 여러 대의 소방차들이 출동했지만, 진화작업 없이 되돌아갔다. “아주머니가 큰일을 하셨습니다.” 소방관들의 칭찬에 “소방교육 덕분이지요.” 했다. 소방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