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로 가는 길목, 경도인지장애
의사가 쓰는 메디컬 리포트’는 현직 의사가 기사를 직접 작성합니다. 의사의 전문 의료지식과 현장감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드리기 위한 기획입니다. 김철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연재 중인 ‘치매, 극복할 수 있다’의 이번호 주제는 경도인지장애입니다.
50대 주부 L씨는 최근 들어 사소한 실수를 자주 해 남편에게 “정신머리를 어디다 두고 사느냐”는 핀잔을 여러 차례 듣고 혹시 자신이 치매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이다. 자동차 열쇠나 휴대전화, 지갑 등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같은 질문을 몇 번씩 반복하거나 심지어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건을 가지러 안방에 들어갔다가 방에 왜 들어왔는지 기억이 안 나 그냥 나오기도 하고, 달걀과 두부를 사러 갔다가 엉뚱하게 다른 재료만 잔뜩 사오기도 한다. 불안한 마음에 딸과 함께 병원을 찾은 L씨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높은 경우다.
기억력, 인지기능 약해졌다면 치매 검사를
경도인지장애는 치매가 되기 바로 전 단계를 말한다. 초기에는 주로 자신만 기억 장애를 느끼고 주위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이 시기를 ‘주관적 경도인지장애’라고 한다. 증상이 좀더 진행되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표가 나는 경우를 ‘객관적 경도인지장애’라고 한다.
경도인지장애는 기억 장애가 있긴 하지만 다른 인지기능은 정상인 경우가 많다. 함께 사는 배우자에게는 환자의 기억 장애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따로 사는 가족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치매라고 볼 수 없는 단계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처럼 종류에 따라서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기억력 저하가 아닌 다른 인지 기능의 변화로 시작하기도 한다. 기억 감소가 두드러지고 인지기능의 감소는 크지 않은 경우 알츠하이머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건강한 노인에 비해 10배에 이른다. 이와 달리 기억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진 경우는 피질하 혈관성 치매나 전두측두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증상은 행동이 평소와 달리 굼뜨거나 성격이 변하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등 다양하다.
따라서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거나 다른 인지기능이 약해졌거나 성격이 바뀌었거나 사고나 행동이 굼떠졌거나 다른 사람이 볼 때 사람이 변했다는 느낌을 주면 치매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그 전 단계로 오른쪽의 설문지 조사를 먼저 해보는 것도 좋다. ‘한국형 치매 선별 설문지(대한치매학회)’를 기본으로 한 내용이다. 병원에서는 주로 보호자를 대상으로 조사하지만 가족이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다.
▲ 치매 간단 테스트
1,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2, 약속을 잘 잊어버린다.
3, 방금 놓아둔 물건을 못 찾는 경우가 있다.
4,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5, 같은 잘못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6, 대화에 맥을 자주 놓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핀잔을 듣는다.
7, 물건이나 사람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8, 길을 잃은 적이 있다.
9, 계산이 서툴러졌다.
10, 예전에 잘 다루던 기구 외 조작이 서툴러졌다.
11, 성격이 바뀌었다.
12, 예전에 비해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하거나 안 한다.
13, 예전과 달리 옷을 상황에 맞게 잘 입지 못한다.
14, 대중교통 이용이 힘들거나 잘 알던 길이 낯설다.
15, 위생 관념이 많이 떨어졌다.
(각 항목의 점수를 ‘아니다’ 0점, ‘가끔 또는 조금 그렇다’ 1점, ‘자주 또는 많이 그렇다’ 2점으로 하여 30점 중 총점이 8점을 넘으면 경도인지장애나 치매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건망증도 소홀히 넘겨선 안 된다.
경도인지 기능 저하는 본격 진행되기 약 5년 전부터 뇌세포가 많이 부서지면서 시작한다. 뇌세포 손실이 많아지면서 인지력이 감소하고 건망증도 심해진다. 뇌 손상이 지속되면 경도인지장애를 거쳐 치매로 진행된다.
건망증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는 우리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체로 증상이 나타나기 약 5년 전부터 신경섬유의 인산화가 심해지면서 뇌의 자극전도효율이 떨어진다. 이는 수도관에 찌꺼기가 조금씩 쌓이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수도관 안쪽 벽에 찌꺼기가 조금 붙어도 일상생활에서 크게 티 나지 않는다. 그러나 김장을 하는 등 수돗물을 평소보다 많이 사용하면 수압이 약해지고 뭔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뇌의 기능에 문제가 시작되어도 평소에는 건망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머리를 과하게 사용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과부하가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 이미 능력이 떨어져 있는 뇌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러한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많은 기억을 저장하거나 끄집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기억을 야무지게 차곡차곡 저장하지 못해서 빠져나가는 기억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기억상실을 단순 건망증이라고 한다.
대개 단순 건망증은 치매와 관련 없고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뇌에 과부하가 걸려서 발생한다. 그러나 반대로 신경섬유의 인산화로 인해 자극전도 효율이 감소하고 수용 능력이 줄어들어 건망증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즉, 단순 건망증도 뇌의 기능 상태가 나빠져서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 건망증이나 미미한 수준의 신경섬유인산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15년쯤 뒤에 치매로 발전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뇌의 노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뇌의 노화 속도가 다소 감소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뇌의 노화 속도가 같은 연령대에 비해 빠르다면 추후에 치매에 걸릴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래서 단순 건망증이나 뇌의 작은 변화도 치매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방치할 수 없다.
치매 예방, 40~50대부터 시작해야
필자의 옆집 할머니가 한 달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전혀 운신을 못 한 채 누워서 미음 정도만 받아 드시다가 결국 운명하셨다. 보통 이런 경우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엄밀하게 보면 이처럼 정신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는 치매다. 만약 이 분의 투병기간이 길어서 정신이 혼미한 시기가 장기간 지속되었다면 가족들은 치매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수명이 길어지면 치매 환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제 치매는 원하지 않아도 내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치매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40~50대부터 치매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기가 다소 이르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뇌의 변화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뇌세포에 스트레스가 누적될 경우, 빠르면 40대 중반부터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독성물질이 뇌세포 밖에 쌓이기 시작한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약 5년간 계속 축적되면 세포 내 신경섬유의 타우단백이 과인산화되어 신경섬유가 병들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이 5년쯤 더 지속되면 뇌세포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뇌세포 사멸(死滅)이 5년쯤 더 진행되어 뇌세포가 많이 줄어들면 기억 장애가 심해지는 경도인지장애가 된다. 경도인지장애가 5년쯤 더 진행되면 치매 확률이 높아진다.
비록 나이가 젊다고 해도 하루하루를 술, 담배, 심한 스트레스, 무절제한 생활 등으로 뇌를 골탕 먹이면 뇌는 조금씩 골병이 들어간다.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로 40대 중반부터 골병의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초기에는 이러한 뇌의 변화를 알아내기가 어렵고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일반적인 진단기법으로 뇌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진단기법이 발달해 뇌의 초기 형태적 변화인 베타아밀로이드의 축적 여부도 진단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40대에 아무런 치매 증상이 없는데 고가의 검사를 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결국 치매 예방은 이렇게 뇌가 병들어가는 과정을 이해하고 젊은 시절부터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뇌도 늙어간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똘똘한 뇌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년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100세 넘은 노인이 지게를 지고 경운기를 운전하는 모습이 소개된 적이 있다. 물론 경운기를 젊은 시절처럼 완벽하게 다룰 수 없지만, 그분은 다른 동년배 노인들과 달리 경운기를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젊은 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치매 예방 노력은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분처럼 ‘똘똘 백세’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생활화해야 한다.
치매 환자와 더불어 살기 &치매 예방 생활
‘의사가 쓰는 메디컬 리포트’는 현직 의사가 기사를 직접 작성합니다. 의사의 전문 의료지식과 현장감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드리기 위한 기획입니다. 김철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연재 중인 ‘치매, 극복할 수 있다’의 이번호 주제는 치매 환자와 더불어 살기입니다.
▲ 치매 환자와 더불어 살기
치매에 걸린 85세 된 시어머니를 3년째 모시고 있는 C씨는 우울증과 화병으로 한참 힘들었다. 잘못하면 자신이 먼저 세상을 포기하고 말겠다 싶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며, 몸이 부서지게 아프고, 천근만근인데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언제까지일지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은 답답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화병에 걸린 것이다.
치매 환자와 함께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적·시간적 손실 이외에도 환자가 보이는 이상행동과 신경 심리증상으로 인한 피해는 환자나 가족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와 더불어 잘 살려면 치매에 대해서 좀더 많이 알아야 한다. 환자가 보이는 행동 심리증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치매 종류에 따른 다양한 특징을 알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사회적 지원을 받는 방법도 알면 도움이 된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평소 유지해야 할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환자 부양 요령 익히고 환자를 존중해야
치매 환자를 모시면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환자와 대화도 제대로 안 되고 반복되는 수준 이하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도와주어야 하고 환자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 치매 환자 간병은 대부분 비생산적인 노동이라 정신적인 피로가 커지고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환자를 잘 부양하려면, 가족들이 피로해지기 쉬운 주부양자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가족 모임을 통해 부양 대책과 고통 분담을 논의해야 한다. 치매 환자를 모시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대처 방법은 물론 간병 기술을 익혀야 한다. 치매와 치매 환자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한다.
치매에 걸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치매에 걸렸다 해도 환자는 존중받아야 한다. 매사에 온전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도 무시하거나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고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치매 가족은 지옥에 살고 치매 환자는 천국에 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치매 환자도 감정과 고통을 느낀다. 여러 가지 기억과 인지기능이 부족하고 생각이나 행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스스로 혼란스럽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고 극복하는 능력이 부족해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행동하므로 돌발적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모자라고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가 왜 이상행동을 보이는지 이해하면 갈등의 요소를 줄일 수 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한 환자에게 야단을 치면 야단맞는 이유를 몰라 주눅이 들고 자신감 상실로 그나마 조금 유지되던 정신이 혼란스러워져 증상이 나빠진다. 또한 감정 변화가 심해지고 때로는 피해망상까지 생길 수 있다.
치매 초기에는 일상생활에서 빨래 개기, 채소 다듬기 같은 작은 일이라도 환자가 할 수 있게 하면 자신감과 함께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일방적인 보호는 환자의 의지와 자율성을 쇠퇴시키고 뇌를 자극하지 못하므로 가능하면 무언가 나름대로 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수면과 식사, 배변, 위생 등의 기본적 생리 활동을 우선적으로 잘 관리해준다. 고독하거나 불안하지 않게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좋다.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하고, 남아 있는 능력을 활용하게 하고, 가능하면 누워 지내지 않게 해야 한다. 행방불명이나 골절상이나 화재 같은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치매 환자는 가족에게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고, 모든 것이 불안하게 느껴지고 무섭기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안절부절 못해 왜 집에 안 오느냐고 보채는 것을 타박하면 안 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의 도움 받아야
치매가 진행되면서 환자는 여러 가지 문제행동과 신경 심리적 증상이 심해져서 미운 치매가 되기도 한다. 치매 환자가 보이는 행동 심리증상에는 무감동·우울·불안·초조 등의 심리적 증상과, 망상·환각 같은 신경정신병 증상과 수면장애가 나타나거나 밤중에 배회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행동 이상이 있다. 이러한 행동 심리증상이 심해지면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미운 치매가 될 수 있다. 증상에 대한 약물 치료나 그 밖의 비약물적 치료로 가족과 생활하기 좋은 예쁜 치매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치매 환자를 한 가족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지원시스템이 생겨났다. 2014년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 5등급(치매특별등급) 실시로 치매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 것이다. 치매가 의심되면 가족이나 대리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사를 방문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www.longtermcare.or.kr)에서 장기요양인정신청서 서식을 다운받아 신청하면 된다.
공단 직원이 신청 환자의 거주지를 방문하여 조사해 1차 판정을 한 후, 의사 소견서를 참조하여 등급판정위원회가 최종 판결을 내린다. 등급을 지정받은 환자는 그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치매를 예방하는 6가지 생활수칙
치매는 잘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치료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어떤 질병보다도 예방에 신경 써야 한다. 오늘 하루하루 잘못된 생활은 고스란히 뇌세포에 스트레스로 누적되어 골병이 들어간다. 백세시대에 병든 노후가 길어지면 치매 앓는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바로 예방적 삶이 중요한 이유다.
뇌세포를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뇌에 혈액순환이 잘 되게 하고, 뇌세포를 잘 발달시키고, 뇌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잘 먹고
둘째, 잘 자고
셋째, 열심히 운동하고
넷째, 열심히 다양하게 살고
다섯째, 뇌에 해로운 술·담배 등을 멀리하고
여섯째,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하면서 살아야 한다.
첫째, 잘 먹는다는 것이 산해진미를 많이 먹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바르게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 모자라는 듯 먹는 것이 좋다. 뇌는 에너지원으로 주로 포도당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래 굶어 저혈당이 되거나, 폭식이나 과식으로 혈당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 않다. 세포막과 세포 내 구조물의 막과 신경망의 바깥 구조물인 수초는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이 중요한 구성 성분이다. 체내 합성이 안 되는 필수지방산이므로 매일 적당하게 섭취해야 한다. 등푸른생선과 견과류(특히 호두)와 식물성 기름(특히 들기름)이 좋다. 기타 항산화제로 식물성 색소가 풍부한 채소나 과일도 좋다. 비타민 B와 C, E 등도 적당량 섭취해야 한다.
둘째,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 잠자는 동안은 활성산소, 유리기,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독성물질이 적게 발생할 뿐 아니라 독소 제거가 잘 된다. 잠든 기간에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과도한 활동으로 인해 과흥분된 교감신경은 진정된다. 교감신경이 과흥분되면 혈관이 수축되고 특히 작은 혈관에서는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수면은 이러한 혈액순환 장애를 개선한다. 뇌에 부가된 불필요한 흥분이 제거되면 잡다한 기억이나 고민이 없어지고 뇌가 새롭게 된다. 하지만 너무 많이 자면 오히려 뇌가 약해질 수 있다.
셋째,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뇌의 혈류 순환을 증가시키고 여러 방면으로 뇌를 각성시키며 신경 성장인자를 많이 생산하여 뇌의 손상을 회복시킨다. 또한 엔도르핀·세로토닌 등의 신경 전달물질의 분비를 증가시켜 기분전환을 가져오고, 땀을 배출하여 교감신경의 과흥분을 줄여주며 내분비 기능도 튼튼하게 만든다. 기(氣)가 우리 몸을 한 바퀴 도는 데 32분 정도 걸리므로, 약간 힘든 정도의 강도로 매일 30분 이상 운동하는 것이 좋다.
넷째, 열심히 사는 것은 육체적·정신적 자극으로 뇌를 발달시킨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갑의 입장보다는 을의 입장에서 사회생활 하는 것이 두뇌를 발달시키기에는 더 좋다. 다양한 취미를 가지는 것도 좋다. 타성이나 습관에 안주하기보다는 불편하거나 새로운 일을 피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하는 과정도 뇌를 자극한다. 익숙하거나 항상 해오던 일은 더 이상 뇌를 자극하기 어려우니 생활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약간의 긴장을 즐기는 것이 좋다.
다섯째, 술·담배·마약 연탄가스처럼 뇌에 해로운 물질을 멀리하고 뇌에 물리적 충격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여섯째, 하루의 일과를 돌이켜보는 것은 기억력을 키우는 좋은 습관이고, 반성과 내일을 설계하는 것은 전두엽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며, 치매에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가 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상으로 치매를 예방하는 생활수칙을 정리해봤다. 단순하고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실천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모든 수칙을 철저히 지킬 수 없겠지만 되도록 많이 실천하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 치매를 멀리하는 지름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뇌의 노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치매는 이미 증상이 나타나거나 발병한 근거에 의존하여 치료하기보다는, 증상이 없는 단계라도 추정적인 사고를 통해 예방적인 삶과 뇌를 보호하는 예방적인 치료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치매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얘기나 아주 먼 훗날의 일이 아니며, 백세시대에 피할 수 없는 동반자임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치매를 치료하는 다양한 방법
‘의사가 쓰는 메디컬 리포트’는 현직 의사가 기사를 직접 작성합니다. 의사의 전문 의료지식과 경험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드리기 위한 기획입니다. 김철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연재해온 ‘치매, 극복할 수 있다’의 이번호 주제는 ‘치매를 치료하는 다양한 방법’입니다.
L여사는 76세에 알츠하이머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으면 일정 기간 약간의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고 진행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치료 중이다. 같은 해에 비슷한 조건을 가진 동갑내기 O여사도 같은 치매 진단을 받았는데 자식들이 치매는 불치병이라고 판단 내리고 치료를 받게 하지 않았다.
약 3년간 꾸준히 약물을 복용한 후 L씨와 치료를 받지 못한 O씨의 상태를 비교해보니 많은 차이가 나타났다. L씨는 약물 이외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제공하는 사회성과 따뜻한 보살핌으로 아직 초기치매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데 비해, O씨는 성격이 이상해지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주로 누워만 지내는 등 중기 또는 말기 치매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치매 이야기 마지막 편에서는 현재 치매 치료약으로 많이 이용되는 인지기능 개선제가 어떤 작용으로 치료 효과를 보이는지 비유를 들어 살펴볼까 한다. 더불어 한의학적 치료 개념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치매 치료의 중요한 한 부분인 이상행동과 신경심리 증상으로 인한 미운 치매를 치료하는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뇌는 릴레이 경주 경기장과 같다.
큰 운동장에서 오랜 시간 릴레이 경주가 펼쳐지고 있다. 아주 드물게는 100년 넘게 진행되는 경주가 진행되는 운동장이 있지만, 대부분의 운동장은 80년 조금 넘는 동안 경주가 진행된다. 경주가 멈추면 그 운동장은 생명을 다해 폐기된다.
대체로 경주를 시작한 지 오래된 경기장일수록 선수가 많이 줄어들어 남아 있는 선수들의 피로도 심해진다. 트랙에는 흠집이 생기고 운동장 밖에는 쓰레기가 쌓여 보수할 수 있는 자재 공급이 잘 안 된다. 오랜 기간 경주가 진행되다 보니 뛸 자격을 전해주는 바통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약해져 있다. 똑같이 80년 된 운동장인데도 어떤 곳은 활기차게 경주가 진행되고 있지만, 어떤 운동장은 선수도 부족하고 바통조차 모자라서 경주의 재미가 없다.
여기서 ‘운동장’은 두뇌를 말한다. ‘운동선수’는 신경 원세포이면서 신경 흥분을 전달하는 주체이다. ‘트랙’은 흥분이 전달되는 통로인 신경섬유이며, ‘바통’은 다른 신경에 흥분을 이어주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트랙의 흠집’은 신경섬유가 손상된 것이고, ‘쓰레기’는 베타아밀로이드와 같은 찌꺼기이다. ‘활기차게 경주가 진행되고 있는 운동장’은 똘똘한 사람의 뇌이고, ‘경주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재미가 감소한 운동장’은 치매 환자의 머리를 비유한 것이다.
경주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즉 치료에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엄격한 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운동장에 새로운 선수들을 보강할 수 없는 룰이다. 뇌세포는 해마나 뇌실 주위에서 제한적으로 재생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재생되지 않는다. 새로운 선수를 투입하려면 뇌를 이식하거나 줄기세포를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새롭고 튼튼한 줄기세포를 넣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만만치 않다. 새로운 선수인 줄기세포를 운동장에 투입할 수 있다 해도 제대로 기존 트랙으로 발을 뻗고 뛰게 하기는 쉽지 않다. 즉 선수를 보강하는 것은 아직 연구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트랙의 흠집, 즉 신경섬유의 인산화를 예방하거나 보수하는 것도 쓰레기인 베타아밀로이드를 줄이거나 치우는 방법도 아직까지는 뚜렷한 것이 없다.
치매 치료에 주로 쓰는 인지기능 개선제
현시점에서는 지친 선수들이 분발하도록 독려하는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의 릴레이 경주는 선수뿐만 아니라 바통이 부족하여 경주가 더욱 재미없어지기 쉽다. 재미가 없다는 말은 인지기능이 떨어진 것을 말한다. 이때 선수를 보강하거나 운동장의 환경을 개선하지는 못하더라도 잘 부서지고 있는 바통을 단단하게라도 해주면 바통 부족으로 뛰지 못하던 선수가 뛰게 되면서 경주의 재미도 조금 살아나게 된다.
다음은 현재 치매 치료에서 많이 사용되는 약의 작용기전에 대한 설명이다. 첫 번째는 뛰는 자격을 전달해주는 바통을 감아주고 잘 부서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80년쯤 뛰어온 선수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지쳐 있다. 억지로라도 뛰지 않고 멈추면 그대로 영영 쓰러져버릴 가능성이 많다. 치매 환자의 경우 바통이 부족해서 뛰는 자격을 얻지 못하고 쓰러지는 선수가 증가한다. 즉 뇌세포가 정상상태인 경우보다 잘 부서지면서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테이프는 바통의 손상을 방지하는, 즉 신경전달물질의 분해를 억제하는 물질로서 인지기능 개선제라고 한다. 현재 치매치료제로 주로 사용되는 약들이다.
바통이 많아지면 뛸 수 있는 선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선수들의 능력을 끝까지 불사르게 하므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 운동장의 활력이 개선된다. 이런 결과로 치매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되고, 치매 진행을 조금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지친 선수가 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대체로 약을 먹은 지 4~5년 정도 지나면 선수도 계속 줄어들지만 바통을 받는 왼손이 부어올라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를 수용체가 감소하거나 수용체의 저항성이 증가되었다고 한다. 즉 약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왼손에 쥐어주던 바통 대신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쥐어줄 수 있는 양손용 바통을 준비하는 것이다. 새로운 바통으로 새로운 수용체인 오른손으로도 받으면 또 일정 기간 선수들이 더 뛸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바통을 전해주러 오는 선수들을 분발시켜 바통을 쉽게 전달하게 만들어 수용체가 덜 손상되게 하는 약도 있다. 네 번째는 바통을 전해주러 오는 선수들 사이에 경기와 관련 없는 다른 선수들이 섞여 들어와서 진짜 선수들이 트랙을 제대로 뛰기 어렵다고 보고, 가짜 선수들의 출입을 제한하여 트랙을 조금 쉽게 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주로 중증 치매 환자들에게 많이 사용하는 약이다.
▲ 치매는 릴레이 경주처럼 뇌의 신경전달이 잘되지 않아서 생긴다.
뇌세포의 체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해
기타 치료법으로 시냅스를 늘리는 방법도 있다. 치매 재활치료는 주로 시냅스 늘리는 방법을 택한다. 치매 예방수칙 중에 시냅스 늘리기를 목표로 하는 것도 있다. 약물로 시냅스를 늘리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냅스를 늘리는 것은 도로망을 발달시키는 것과 같다. 도로망이 발달 되면 자산가치가 올라가고, 가용자산이 늘어나듯 신경망이 발달 되면 뇌세포라는 재산이 적어져도 돈 없는 표시가 덜 나게 되고, 나이 들어도 머리가 좋아 보이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와 다른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활력이 떨어진 뇌세포의 체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지친 선수들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체력을 키우면 바통을 전해주면서 억지로 뛰게 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잘 뛰게 될 것이다. 선수에게 물도 주고 다리도 주물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방법 중에는 한의학적으로 보(補)하는 방법도 있다.
의학적 관점에서는 뇌를 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큰 효과가 없다고 본다. 대부분의 뇌세포가 재생되지 않고, 수용성 물질과 분자량이 큰 물질은 뇌에 들어갈 수 없는 혈뇌장벽이 있기 때문에 보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즉 인위적으로 뇌세포를 좋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뇌세포를 본래의 상태보다 좋게 만들기는 힘들다. 하지만 활력이 떨어진 뇌세포를 본래의 능력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는 있다. 뇌세포는 살아 있거나 죽은 세포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세포도 어떤 세포는 50%, 어떤 세포는 70%, 또 어떤 세포는 90%로 활성도가 다양하다. 100% 이상의 활력을 갖게 하기는 어렵지만 50%를 70%로, 70%를 90%로 만드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신경세포의 활력이 감소 되면 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 물질도 감소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현대의학은 신경전달 물질을 보강하고, 한의학은 신경세포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체력 회복은 신경세포의 ‘재생’이 아닌 ‘재활’을 목표로 삼는다.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은 일정하지 않고 기복이 심하다. 어떤 날은 멀쩡하고 어떤 날은 증상이 심해진다. 이처럼 기복이 있는 만큼 치료의 여지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지기능 개선제는 뇌 기능을 개선 시키는 것으로 뇌를 용쓰게 하는 방법이다. 금방이라도 지쳐 주저앉으려는 선수를 끝까지 용쓰게 하는 좋은 치료법이지만, 선수의 체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어서 사용에 한계가 있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가 아닌 경우에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생활 습관 개선과 예방치료 효과적
이와 달리 뇌세포를 보하는 방법은 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예방 효과도 있다. 예방 효과가 있기 때문에 경도인지장애 이전 단계에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과음하거나 흡연하거나 과로하면 외형상 표가 나지 않지만 상처받는 뇌세포가 증가한다. 이런 일을 피해가야 하지만 이미 생긴 상처는 빨리 아물게 해야 한다. 보하는 것은 뇌 기능을 돕는 작업으로 뇌세포의 미세상처 회복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젊은 사람의 뇌는 뇌세포 부자이다. 나이 들수록 재산, 즉 뇌세포는 점점 줄어들고 재산가치인 세포의 기능도 줄어들어 가난한 뇌가 되어간다. 뇌세포는 늘어나지 않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생 동안 줄어들기만 한다. 젊은 나이에는 마취하거나 과음하거나 머리를 좀 다치거나 심한 탈수 증상 등이 있어도 뇌가 나빠지는 증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치매 환자가 수술받기 위해 마취하거나 장염으로 탈수가 심해지거나 빈혈이나 영양실조 상태 등에 빠지면 가난한 사람이 조금만 과용해도 표가 나듯 바로 치매 증상이 악화된다.
이미 경도인지장애나 치매가 되고 난 후 치료하는 것은 좋아질 여지가 많지 않다. 가난해지기 전에 미리 절약하는 습관, 즉 치매 예방 생활 습관을 준수하고 돈이 새는 구멍을 막듯이 뇌를 보하는 예방치료도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김철수- 서울 송파동에 킴스패밀의원·한의원을 운영하며 양한방 통합 진료를 하고 있다. ‘동네병원 의사’를 표방하며 노인성 질환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동네병원 의사 김철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