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下女)
최용현(수필가)
우리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KBS와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시대별 대표영화 12편을 선정하여 매주 금요일 밤에 KBS에서 방영하기로 했다. 2019년 10월 11일, 첫 번째 영화로 1960년 작 ‘하녀’가 전파를 탔다.
‘하녀’는 우리나라가 막 근대화를 시작할 무렵에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려는 부부와 하녀, 여공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이 세상의 축소판 같은 2층집에서 공생하면서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밀실공포 서스펜스영화이다. 김기영(1919~1998) 감독의 대표작으로, 개봉 당시 서울 명보극장에서 10만 명, 전국에서 22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국내 영화제 각 부문의 상을 거의 휩쓸었고, 1961년 제8회 아시아영화제에 출품되었다.
대기업의 방직공장에서 여공들에게 음악을 지도하는 동식(김진규 扮)은 집에서 억척스럽게 재봉틀을 돌리며 맞벌이를 해온 아내(주증녀 扮)와 불편한 다리를 보조기구에 의존하고 있는 딸 애순, 그리고 장난꾸러기인 8살 아들 창순을 보살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살던 2층 집을 리모델링하였고 피아노도 한 대 들여놓았다.
동식은 잘 생긴 외모로 인해 그곳 여공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다. 어느 날 음악수업에 들어간 동식이 피아노 뚜껑을 열자 그 안에 하얀 종이가 있었다. 여공 선영이 동식에게 보낸 연애편지였다. 동식은 이를 기숙사 사감에게 보고하였고, 선영은 3일간의 정직(停職) 처분을 받고 고향에 내려갔다.
동식은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하녀를 두기로 하고, 집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오는 경희(엄앵란 扮)에게 구인(求人)을 부탁한다. 며칠 후, 경희가 공장에서 심부름을 하던 여급(이은심 扮)을 데리고 오자, 동식은 2층 피아노방과 붙어있는 작은 방을 내준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쥐를 때려잡기도 하는데….
셋째를 임신한 아내가 요양 차 친정으로 간 사이, 고향에 간 선영의 자살소식이 전해진다. 선영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밤에, 경희는 동식의 집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 동식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냉정하게 거절한다. 경희가 뛰쳐나가자, 이를 몰래 지켜보던 하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동식을 유혹하여 선을 넘는다.
친정에 갔던 아내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하녀는 동식에게 ‘여보’라고 부르며 자신의 임신사실을 알리고, 자신은 이제 시집도 못 간다며 애 낳을 곳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다. 고민에 빠진 동식은 아내에게 사실대로 실토하고, 아내는 분개하면서 하녀를 2층 계단에서 구르게 하여 뱃속의 아이를 유산시킨다.
아내가 셋째아이를 낳자, 유산된 아이 때문에 독이 오른 하녀는 자신에게 막 대하던 창순에게 쥐약 탄 물을 주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하여 죽인다. 아내가 타협하자며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하녀는 밤에 동식을 2층 자신의 방으로 올려보내라고 한다. 동식은 밤마다 2층에 올라가 하녀와 함께 잔다. 가족의 식사준비를 맡게 된 아내가 하녀의 국에 쥐약을 타지만 발각되고 만다.
오랜 만에 경희가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오자, 하녀는 ‘동식을 유혹하러 왔느냐?’며 부엌칼로 경희의 어깨를 찔러 쫓아낸다. 하녀는 동식에게 함께 죽자고 한다. 결국 쥐약 탄 물을 함께 마신 동식이 1층으로 내려오려고 하는데, 동식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끌려오던 하녀가 마침내 계단에서 축 늘어진다. 동식도 1층 아내의 곁에서 숨을 거둔다.
‘하녀’의 각본을 쓰고 제작과 감독을 맡은 김기영은 치의학도였지만, 미술과 조형에도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 그는 이 영화에서 서스펜스 넘치는 1층과 2층의 공간 배치,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개성, 그로테스크한 조명과 시의적절한 뇌우(雷雨) 등 독특한 미장센과 시대를 앞선 연출력을 선보이며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90년, 프랑스 최고의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은 ‘하녀’를 보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다. 단지 보기 드문 이미지메이커로서의 김기영을 발견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택시드라이브’(1976) ‘분노의 주먹’(1980) ‘좋은 친구들’(1990) ‘카지노’(1995) 등을 연출한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2008년 칸영화제에서 초청 상영한 ‘하녀’를 보고 ‘이토록 강렬하게 밀실공포를 느끼게 하는 열정적인 영화가 서양에서 오직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만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세계영화사의 크나큰 손실이다.’고 하면서, 그해 세계영화재단(WCF)의 첫 디지털 복원프로젝트로 ‘하녀’를 선정하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작업을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1960년 첫 개봉 때는 연소자 관람불가였으나, 2010년 디지털로 복원한 필름 재개봉 때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조정되었다.
이은심(1941~ )은 첫 주연을 맡은 ‘하녀’ 이후 3편의 영화를 더 찍고 돌연 은퇴, 영화감독 이성구와 결혼하여 1982년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1960년 당시, 특히 여자들은 이은심을 보면 ‘저 년 잡아 죽여라!’고 욕을 해댈 만큼 ‘하녀’의 극중 캐릭터에 대한 반감이 컸다고 한다. 2015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때, ‘하녀’가 ‘아시아영화 100편’에 뽑힌데 대한 무대인사차 33년 만에 귀국한 백발의 이은심을 TV에서 봤는데 곱게 늙어가고 있었다.
김진규(1923~1998)는 우리 영화사에 손꼽히는 걸작 ‘하녀’(1960)와 ‘오발탄’(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에서 모두 주연을 맡은 국보급 배우였고, 주증녀(1926~1980)는 400여 편의 영화에서 한국적인 여인상을 보여준 감초 같은 배우였다. 또, 당시의 인기여배우 엄앵란(1936~ )의 젊은 시절 모습과, 지금은 국민배우가 된 안성기(1952~ )의 8살 때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영화는 ‘하녀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속편 격인 ‘화녀’(1971)와 ‘화녀’82’(1982)는 각각 70년대와 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각색한 영화이다. 2010년에는 임상수 감독이 전도연을 기용하여 ‘하녀’를 리메이크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첫댓글 전도연
리메이크작이죠
소용돌이치는 시대적인 극열한 삶의 한부분을 보는듯합니다
동감입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입니다.
전도연의 하녀만 봤는데 그런 치정영화를 않좋아해 못본것 같습니다.
저도 어른이 되어서 봤습니다만, 볼만 하니 꼭 보시기를...
요즘도 간혹 케이블에서 방영을 하더군요.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