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휴가를 이용해 독일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견문이 좁은 나는 어머니 별세 이후 시간이 나는대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평생 부엌일만 하신 어머니를 대신해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9박11일간(1박은 귀국시 비행기에서 날짜 변경) 독일여행에서 9개 도시를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훑어보았다. 처음 독일을 여행했지만 다시 방문할 기약이 없는 상태라서 가급적 독일 전역의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여행 경로는 독일 지도 내부에 임의의 사각형을 그린 후, 그 네 꼭지점에 숙소를 정해 2박을 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남한 전역 여행을 예로들면, 대전-광주-대구-원주에 숙소로 정하고 숙박 이튿날 서울과 인천, 목포, 부산, 강릉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즉 프랑크푸르트-뉘른베르크-라이프치히-하노버에서 잠을 자고 숙박 이튿날 쾰른과 뒤셀도르프, 뮌헨, 베를린, 함부르크 등의 인근 대도시를 고속철을 이용해 갔다 오는 방식이었다.
도시는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순서대로 큰 편이었는데 이들 도시를 하루에 다녀오는 곳은 무리였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을 밀고갔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책과 매체를 통해 수많은 독일의 지명과 사람을 접해왔지만 독일 지명의 감을 잡지 못해 매번 헷갈렸기 때문이다. 도시 라이프치히와 철학자 라이프니츠와 구분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뮌헨과 베를린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앞선 영국과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유럽의 철도 시스템에 익숙해져있었기에 독일의 지리 감각만이라도 익히려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었다. 주요 관광지와 박물관은 인터넷과 유튜브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어 아쉽지만 시간을 많이 할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독일은 국토전체가 평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프스산맥의 북쪽에서부터 시작해 북해까지 뮌헨에서 함부르크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끝없는 지평선을 보여주었다. 뮌헨은 해발고도가 500미터의 산지이지만 거의 평지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독일 면적은 357,021km²이고 인구는 8,267만명이다. 한반도 면적은 220,748km²이고 인구는 남한 5천만명 북한 2,500만명으로 7천500만명이다. 독일과 한반도는 인구수는 비슷하며 면적도 독일은 한반도의 1.5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독일은 한반도의 3배 이상 넓은 국토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반도는 산지가 70%인데 비해 독일은 거의 평지라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쓸모 있는 땅이 많아서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독일은 북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지만 사실상 내륙국가나 다름이 없었다. 도시 대부분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우리 풍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근대이후 세계의 문화 및 과학을 이끈 지성이라든가 이면(裏面)에서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광기 등의 독일의 진면목은 짧은 여행에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검박(儉朴)하고 수수한 독일인의 모습만을 담고 돌아왔다.
독일은 우중충한 날씨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 내내 맑은 날씨가 지속되었다. 특히 이상기온의 여파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섭씨 48도에 달하는 폭염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독일도 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해가 저녁 9시 넘어 지는 데다가 일부 호텔은 에어컨이 약하거나 아예 없는 곳까지 있어서 잠을 설쳤다. 함부르크 시가지를 종일 돌아다니다가 하노버 호텔로 간신히 귀환했을 때, 구토증세가 심하고 현기증마저 일어나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호텔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나도 이제 노인이 되어가는구나’는 생각으로 서글펐다. 작년 이맘때 시카고 뙤약볕을 돌아다녔을 때조차 이러지는 않았다. 하룻만에 완쾌됐지만 앞으로 호텔방에서 음주를 즐기는 객기는 부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팩소주 남은 것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독일은 동화같은 시골 풍경 끝없이 이어졌고 도시에는 고층건물을 규제하는지 옛스러운 석조건물이 많았다. 화려한 간판과 네온사인은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일본과는 다른 인상이었다. 일본도 정갈한 풍경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협소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독일은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산과 들, 강이 어우러진 우리네 한옥이 새삼 편하게만 느껴졌다. 뭔가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여유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남겨주신 달동네 기와 보르크(블록벽) 집에 누워 옛시조 하나를 읖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