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1492년콜롬버스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은 유명하다.
콜롬버스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출생, 14세부터 배를 타기 시작,
고향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일찍이 포르투갈에 건너가 결혼을 하고,
선원생활을 하던 중 1484 년 서쪽 항로를 통해 인도에 갈 수 있다는 계획을 포르투갈 왕에게 건의하였으나 거절 당했다.
이에 에스파니아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1492 년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얻어
1492 ~1504 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서양을 왕래하였다.
콜롬버스는 산타마리아호, 니나호, 핀타호등 세 척과 78 명의 선원을 거느리고
1492 년 8 월 파로스항을 떠나 1 차 항해에 나서 2 개월여의 항해 끝에 10월12일 육지를 발견하고 상륙한 곳이,
지금의 바하마에 있는 산살바도르(San Salvador) 였다.
그는 쿠바와 아이티에도 갔는데 그곳에서 산타마리아호는 좌초되어 버렸다.
11월 19일 푸에르토리코에 상륙, 그는 그가 발견한 고장을 끝내 인도 땅 인줄로 알고
"서인도"라 하며 원주민을 인도사람, 즉, "인디안"(Indian) 이라 명명했다.
콜롬버스의 2 차 항해는 그의 flagship(기함) Mariagalante호와 16 척의 배와 선원, 군인, 이주민, 사무원, 법원판사등
1,200 명을 대동하고 식민을 목적으로 1493 년 9 월 25일 Cadiz항을 출발,
11월 3일 새로 도미니카, 자마이카, 과테말라를 발견하고는 이곳이 일본의 부근에 있는 섬으로 착각.
Hispaniola에 남겨둔 그의 선원들이 인디안에 의해 살해된 것을 11월 27일 발견.
Santo Domingo를 최초의 식민지로 삼고 총독이 됨.1496년 7월 31일 스페인 Cadiz항에 귀국.
1498 년 5월 30일 6척의 배와 함께 중국을 찾기위해 남쪽으로 3 차 항해하였으나,
비로소 아메리카 대륙 본토에 상륙, 그곳은 남미 북단 트리니다드, 토바코, 그라나다, 마가리타 등 이였다.
그후1502년 5월 9일 4척의 배와 선원 150명을 데리고 Cadiz항을 4 차 항해 출발,
1503년 1월 6일 오늘날 중앙아메리카 파나마를 발견 함.
그 후 귀족들과의 불화로 큰 뜻을 펴지 못한 채 실의 속에 그가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으며 1505 년 세상을 떠났다.
1492년 콜럼버스는 신대륙 즉 아메리카를 발견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동양의 인도의 일부로 착각하여
원주민을 인디오(Indio:에스파냐어로 인도인이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뒤에 본래의 인도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아메리카의 인도인', 즉 아메리카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메린드(Amerind) 또는 아메린디언(Amerindian)이라고도 한다.
발견 당시의 인구는 아메리카 전체에 약 1,300만 명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내역은 북아메리카 100만 명, 중앙아메리카 300만 명, 남아메리카 90만 명이다.
16세기 이후에 일어난 유럽인의 침입은 그들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문화의 파괴를 초래하였다.
핵(核)아메리카라고 불리는 메소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대에는
유럽인의 도래에 앞서 문명이라 할 만한 고도의 원주민문화가 존재하였으나
멕시코의 아스테크 문명과 유카탄반도의 마야문명은 1521년 코르테스에 의하여,
안데스 지대의 잉카문명은 1532년 피사로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어 멸망하였다.
이후 중앙·남아메리카의 인디언은 에스파냐·포르투갈인 밑에서 광산·대농장의 노예로 혹사당하고,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은 서부개척의 희생자로서 점점 그 수가 감소되었다.
한편 중앙·남아메리카에 사는 아메리카인디언에 한해서 인디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자(엄밀히 말하자면 대륙은 아니지만 어쨋든..-_-)인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서 오스만 투르크의 압박을 피해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돌아가기로 하였죠..인도를 발견하지는 못했어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최악이었다고 봅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스페인인들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등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도 않았을거구요....
아메리카로 이주한 영국인들이 인디언 학살을 하지도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더 크게 본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예를 들어 영국이나 프랑스)이 식민지를 건설하지도 않았을거구요...그
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려한 이유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그들의 식민지인 아메리카에서 엄청난 재물들을 가져오거나
인도 등지에서 향신료 등을 들여와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게 부러웠기 때문이었겠지요...
유럽의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넓혀 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죠...
더욱 넓게 봐서는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미국애들이 일본을 식민지화하려고 개항시켰으니..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시키는 원흉이 되었습니다..
콜럼버스의 발견은 간접적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를 겪게 하는데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두 문명을 처참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업적은 최악이라 봅니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콜럼버스.
대체로 이렇게 알고 있지 않을까 ?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
그가 뛰어난 사람인건 부인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지구가 둥글다고 인정되지 않던 시절
선원들의 머리속을 지배하는건
저 먼 바다의 끝에 가면 지구의 끝이 있고
그 끝에는 무저갱같이 깊은 폭포가 있다.
그런 믿음이 깔려있던 시대에
그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으로 여왕을 설득하고
선원들을 설득해서 항해에 나가게 됩니다.
에스퍄냐의 여왕이 그에게 세척의 배와 선원들을 후원한것은
사실은 후추 때문이였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오던 신비의 향신료 " 후추 "
십자군 전쟁의 발발로 실크로드가 막히자
원래 비쌋던 후추의 가격이 폭등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후추의 가격과 사금의 가격이 동일했다고 합니다.
즉 후추의 양과 똑같은 사금의 양이 1:1 로 교환되었다는 뜻입니다.
후추가 흔한 지금의 시대에선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인도의 후추를 처음 접하고 매료됐던 유럽의 귀족들에겐
후추란 동양에서 건더온 신비의 향신료 였습니다.
후추만 뿌리면 고기 노린내가 사라지고 맛을 끌어올렸기 때문이죠.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지만
콜럼버스의 말처럼 육로를 통하지 않고 해로로 인도에 닿을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해로를 독점할수 있다면
금같이 비싼 후추를 비롯 인도의 물건들을 독점 판매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할수 있게 되기 때문에
여왕은 기꺼이 투자를 했고 드디어 콜럼버스는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것처럼 신대륙 (?)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아메리카 라고 불리는 땅이지요.
신대륙.
신대륙 이라는 의미는 아마도 아무도 살지 않는 대륙을 말하는것이겠죠.
그렇다면 이미 수천만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은 신대륙에 해당될까요 ?
정확한 의미는 그저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것이겠죠.
입장을 바꾸서 아메리카의 누군가가 유럽을 발견했다면
그것 역시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것일테고요
그리고 콜럼버스가 죽고나서 400 년이 흐른다음에
그가 믿던 종교단체로부터 그는 성자의 칭호를 받습니다.
콜럼버스가 성자 ?
콜럼버스의 업적이라고 한다면 대륙과 대륙을 잇는 신항로를 개척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두 대륙을 잇는 항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항로를 발견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역사가 크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에 자세한 분들이라면 꽤 많은 사람들이 콜럼버스에 앞서서 항로를 개척했다는것을 알고 있으시겠죠.
저는 서양사에 그다지 지식이 없어서 그들의 이름까진 알지 못하겠습니다.
콜럼버스가 도착한곳은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도 아니고
그 근처에 있는 섬이였을뿐입니다.
그럼에도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믿고
그들은 인디오 , 혹은 인디언 이라고 부릅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난 원주민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친절했습니다.
실제로 세척의 배 중에서 한척이 침몰했을때
원주민들의 거의 무한정한 호의로 그 배를 건져올리기 까지 합니다.
낯선 이방인들에게 큰 친절을 베푼것이지요.
그런데 인도에 도착했다고 보고하려면
여왕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후추를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도가 아니였기 때문에 후추가 없었습니다.
그는 고민하다가 다른것들고 후추를 대체 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작물이 고추였죠.
그리고 금 이였습니다.
금과 고추 그외의 이러저러한 토산품들을 싣고 그는 돌아갑니다.
그리고 2 년후에 거대한 선단을 몰고 다시 찾아옵니다.
침략자의 칼을 앞세우고 말이죠.
우리가 어렸을때 열광하면서 보았던
서부시대의 총잡이 이야기는
사실 그 시작이 콜럼버스로 부터 잉태된것입니다.
그가 고국으로 잡아가서 노예로 팔아먹은 원주민만 1600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땅에서 노예가 된 원주민들의 수는 그 몇십배가 넘고요.
수천년 , 수만년을 자신들의 땅에서 주인으로 살아온 이들 .
그들이 한순간에 타 민족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얼마나 컸을까요 ?
총을 앞세운 이방인의 침략에 여인네들까지 몽둥이로 맞서서
장렬이 최후를 맞이했다고 하니
콜럼버스가 저지른 그 대 학살의 인과는 어디까지 이어지고 있을까요 ?
그런 사람에게 성자의 칭호가 내려지다니....................
그리고 세상에는 뛰어난 모험가 , 휼륭한 위인으로 위인전에 올라있다니.............
우리 인류는 얼마만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것일까요 ?
기록에 의하면 원주민들의 절반 혹은 1/3 이 죽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그들 모두 콜럼버스가 죽인것은 아니고
이방인들에게 묻어왔던 세균에 의해서 병사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직,간접으로 죽인 사람들의 숫자도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입니다.
그렇게 네차례가 방문을 하면서 콜럼버스는 신대륙의 총독의 지위와 함께
식민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하늘이 용납하지 않아서 일까요 ?
그가 만든 식민지는 불과 4 년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원인은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여러가지 학설이 난무하는데
그중 세균설이 현재로썬 가장 유력합니다.
이방인들이 옮긴 세균에 의해 원주민들이 죽었고
원주민들의 풍토병에 의해 이방인( 침략자 )들이 죽었다는 설입니다.
세상에선 콜럼버스를 위인이라 칭하는데
그가 아무리 큰 업적을 쌓았다고 해도 ㅡ 실제로 그의 업적은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ㅡ
그가 만들어낸 피의 강을 생각할때 도저히 좋아할수 없습니다.
흔히들 서양의 근대사는 모 종교의 잔혹사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종교에 몸을 담고계신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이 되겠지만
어떠한 이유를 갖다붙인다고 해도
죄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죄는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잔혹한 학살자가 성인 칭호를 받는 이세상
뭔가 많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