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아프고 난 후 자꾸만 늘어나는 건 피곤과 짜증이다. 암 환자가 되었음에도 일상생활이 어려운 치매 시어머님을 돌봐야 하고 농사에 남편 뒤치다꺼리까지. 예전과 달라진 건 중증 환자가 되었다는 것뿐, 일상생활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 삶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동굴 안처럼 숨 막히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며칠이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 나한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며느리, 아내 자리 내려놓고 복잡한 마음 누일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향마을에 원룸 하나를 구해놓을까, 아니면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가서 일주일 살기를 할까, 때때로 엉뚱한 구상에 빠지곤 하였다.
그러나 다른 건 포기할 수 있지만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 직장만은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환자임에도 커다란 욕심 그릇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이러니 구상은 새벽안개처럼 깔렸다가 동트면 이내 소멸해 버렸다.
두어 달 전 시 낭송 예선 전에 응모했던 것이 본선 진출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티맵을 통해 공주와 충북 괴산과의 거리를 검색해보았다. 자차로 한 시간 사십 분 소요라고 나왔다.
낯선 지역을 갈 때 장거리 운전에는 늘 남편이 동행해주었다. 길치인 아내를 남편은 조수석에 앉아 갈아타야 하는 도로를 미리 알려주었다. 그런데 괴산에서 주관하는 시 낭송대회는 혼자서 길을 나서야 한다. 그것이 부담으로 마음에 대들보가 얹어졌고 밤잠 설치는 걱정거리 하나 장만했다.
그렇다고 뭔 큰일을 하러 간다고 출근하는 남편한테 동행 부탁은 감히 꿈도 못 꾼다. 시 낭송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 아닌가. 아마 아픈 몸으로 괴산까지 간다고 하면 노발대발은 기본이고 정신 줄 빼놓고 산다고 할 것이 뻔하였다.
시 낭송 본선 대회 당일이 되었다. 오전 요양 일정을 앞당겨 마치고 시어머님께 이른 점심을 차려드렸다. 그리고 차 내비게이션과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동시에 켜고 집에서 출발하였다. 걱정과는 다르게 마곡 IC에서 남편의 도움 없이도 순조롭게 고속도로에 잘 진입하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청주 방향으로 가다 보니 예전에 없던 충북으로 가는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있었다. 낯선 길이지만 핸드폰의 티맵은 남편처럼 자세히 길을 안내해 주었다. 반대로 차 내비게이션은 업로드를 안 해서인지 새로운 길을 인식하지 못한다. 갈림길만 나오면 고속도로 출구로 빠져나가라 안내 대사만 신경질적으로 반복하였다. 핸드폰의 티맵은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를 잘 달리고, 차 내비게이션은 현재 길도 없는 벌판으로 산으로 달리는 상황이었다. 실시간으로 교통정보에 따라 길 안내를 해주는 티맵 덕분으로 남편 없이 괴산 읍내에 도착하였다.
그동안 찾아다녔던 서울이나 청주와는 다르게 괴산은 읍이어서 행사장 찾기가 쉬웠다. 괴산문화원에서 주최한 전국 시 낭송대회에 무사히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좋은 성과를 기대했던 마음은 실력 부족으로 무너졌다. 모든 대회에서 상을 다 받을 수 없지만, 장거리를 달려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은 입에서 소태맛이 났고 우울했다.
문화원을 빠져나와 어둡기 전에 집에 갈 요량으로 서둘러 고속도로를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처럼 티맵의 안내에 따라 그대로 돌아가면 되는 거였다. 11월의 오후 다섯 시가 넘은 시각, 산으로 길을 여는 고속도로는 빠르게 어둠을 끌어다가 펼쳐놓았다.
한참을 새로 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자 바탕화면을 가득 채운 길 안내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마을 삼촌 이름으로 채웠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신경 쓰느라 전화를 부재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받을 때까지 한다는 마음이었는지 반복적으로 전화가 왔다. 어쩔 수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삼촌이 소개해서 보낸 밤 택배가 엉망인 채로 도착했다고 하였다. 상자가 찢어지고 안에서 젓갈 냄새가 난다며 노발대발이다.
삼촌께 택배 상자의 상황을 들으며 전화 통화를 하다 우측으로 시선이 갔다. 조수석 차장 너머로 ‘공주·대전’이라고 씌어있는 표지판이 빠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티맵이 중지되는 바람에 공주 갈림길을 안내받지 못했다.
하나로는 믿음이 안 가 두 개의 내비게이션으로 단단히 보초를 세워것만 핸드폰은 통화에 팔려있고 차 내비게이션은 업로드를 안 해 있으나 마나였던 것. 앞의 표지판은 올려다보았다. 소름 돋게도 이정표에는 서울이라고 쓰여 있다. 전화를 끊고 허둥댔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공주와 정반대인 서울로 차는 달려가고 있었다.
내비게이션 설정을 잘못했나 싶어 다시 집으로 재입력 버튼을 눌렀다. 그랬더니 조금 후에 도착할 천안 IC에서 고속도로 출구로 나가라는 안내가 나왔다. 허겁지겁 생각할 틈도 없이 1차선 하이패스 길만 보고 나왔다. 그랬더니 나오자마자 공주 방향은 맨 끝 4차선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둠 때문에 앞이 잘 구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서둘러 공주 방향으로 차를 옮겨놔야 했다.
순간 당혹감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래도 정신만 차리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는 각오로 곡예 하다시피 하여 공주 방향 4차선까지 차를 옮겨 놓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아뿔싸! 나오자마자 공주 방향은 우측이다. 이미 차는 좌측 회전 도로를 타고 있었다. 고속도로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또다시 식겁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차량에 퇴근 차량이 겹치면서 앞에 펼쳐진 상황은 대야에 쏟아놓은 미꾸라지 떼처럼 겹겹이 쌓이는 차량 들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거기에 끼어들려는 차들이 켜놓은 깜박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조명처럼 어지러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티맵은 바로 앞 신호등 가기 전 유턴 하라고 지시했다. 유턴은 1차선이고 차는 몰리는 차량으로 압사 직전인 상태에서 4차선에 있다. 30년 무사고 운전경력을 믿기로 했다. 무조건 차 머리 들이밀기.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에 하마터면 고막 나갈뻔했지만, 무사히 1차선까지 왔다. 그리고 공주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무사히 올라탔다.
‘혼자 살고 싶다고?’ 환청이 들렸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거에 감사했고, 평소에 원수처럼 생각되었던 남편이 가장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문득 구상 선생님의 시, 꽃자리가 생각났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가 꽃자리니라.’ 그랬다. 치매 시어머님과 남편이 있는, 내가 가시방석처럼 여겼던 것이 꽃자리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에 기쁨의 환한 등불이 켜졌다. 어둠 속을 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내의 늦은 귀가에 남편은 뱁새눈을 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개고생한 오늘, 가장 당신이 보고 싶었노라고. 남편 옆자리가 꽃자리임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남편은 뭔 일인가 싶은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쩍 뱁새눈을 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승달을 걸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편안한 것은 매일 구상했던 나만의 쉼터가 아닌 바로 우리 집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첫댓글 맞아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편안한 것은 바로 집입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생해봐야 정신차린다니까요.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긴장을 하며(긴장하며----긴장을 한다는 말은 안 맞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긴장하며' 이것도 말이 이상하니 "나는 엄청 긴장하며")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두 귀를 더욱 쫑긋 세웠다.
나는 앞의 표지판은 올려다보았다. 소름 돋게도 이정표에는 서울이라고 쓰여 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허둥댔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나는 공주와 정반대인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이 세 번이나 쓰였군요.
재미있게 쓰셨습니다만 '나는'을 많이 삭제하셔야겠어요^^*
첨삭. 감사드립니다.
나는이 범람하네요.
@수연 서문순 수연님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