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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걷기 (1차) 후기
1. 집합 : 거인(巨仁)마을
완주 동상면 거인마을에 집합. 꼭 20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도 몇이 있다. 김명종님, 김미나님, 김은숙님, 이관성-구은자님 부부, 조필례님.
최연장자 이준유님은 여전히 노익장이라 나는 아직도 2인자다. 계속 1인자로 계십시오, 형님.
날씨는 며칠 전부터 풀렸다기보다 갑자기 너무 따뜻해져서 가볍게 입고 나온 내 판단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햇살이 매우 밝고 모처럼 미세먼지도 좀 덜한 듯.
10시 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 마을은 전주 평화동까지 다니는 871번 버스의 시종점이다.
산촌생태마을사업이 베풀어진 마을. 꽤 크고 깔끔한 거리가 인상적이다. 곶감이 특산인 이 마을, 고종시(高宗柿) 감나무 품종의 시조목(始祖木, 할아버지 나무)이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단다. 수령 350년! 대체 얼마나 늙었고 우람할까 궁금했지만 직접 가보지는 못한다.
곶감마을답게 집집이 감 건조장이 있고 큰 저장창고도 있는 등, 마을 전체가 활기차고 ‘좀 사는’ 마을처럼 윤택해 보인다.
이 마을은 또 「고종시마실길」 제2코스(학동마을~거인마을)의 종점이기도 하다. 우리 그룹이 작년 이른 봄에 걸었던, 그리고 최근에 내가 JTV ‘천년의길’에 출연했던 제1코스도 송곳재를 넘는 길고 가파른 오르막으로 꽤 힘든 길이었는데, 제2코스는 짧지만 대부산을 넘는 험로다.
우리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했다. 도시와 연계된 지역이라 친환경 연료를 쓰는 버스. 이 차로 밤티마을까지 가서 밤샘으로 올라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 오늘의 걷는 경로가 될 것이다.
차비를 내려고 물으니 1,300원이란다. 잔돈을 준비하지 않아 신용카드를 써야 할까 잠깐 고민하고 있는데, 전원의 버스비를 사무국에서 미리 준비했단다. 고맙게스리… 이런 면을 보더라도 정국장의 「깨알」기획과 준비상황은 주도면밀하다.
밤티마을 다리 앞에서 하차. 버스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걷기를 시작한다.
2. 밤티마을~밤샘
마을입구 ‘건강원’ 앞에 ‘밤샘’의 존재를 알리는 팻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방향표지목인데 뽑혀서 쓰러져 있고, 또 하나는 ‘전북산사랑회’라는 모임이 세운 스테인리스 말뚝인데 글자가 거의 다 지워져 있어 겨우 알아볼 정도.
마을 구경은 이따 하기로 하고 우선 만경강 발원지를 찾아 걷는 걸음이 바쁘다. 이 임도는 진안 부귀면의 소태정마을까지 통하는 포장과 비포장 구간이 섞여있는 산길인데 역시 작년에 한 번 걸었던 길이라 익숙하다. 다만 그 때 앞만 보고 걸은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은 안내판을 놓쳐 밤샘을 보지 못했었다.
상업적으로(?) 편백의 어린 나무를 키우고 있는 농장을 지나고(이 농장에는 별로 넓지 않지만 꽤 큰 메타세쿼이어가 가로수처럼 줄 지어 늘어선 밭이 로맨틱하다),
대륜산업인가 하는 기업의 수련원이라고 되어 있지만 규모로 보아 그 기업 대표의 별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잘 지은 집도 통과하여,
가벼운 오르막길을 쭉 올라가면 밤티마을에서 2.4킬로미터 지점에 오른쪽으로 밤샘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작년 봄에는 이 안내판을 놓쳤던 것. 빽빽한 편백나무 숲속을 누벼 불과 50여 미터만 들어가면 목적의 샘을 만날 수 있었는데!
3. 밤샘
‘전라북도의 강’ 만경강 발원지 밤샘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훨씬 작고 물이 솟아나오는 양도 적었다. 가는 물줄기가 겨우 실처럼 흐르는 협곡. 이 물 몇 방울이 80킬로미터를 흘러 그 넓은 맹갱뜰을 적시는 만경강의 원류라니.
물론 강은 한 줄기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이 골 저 골에서 흘러드는 작은 지천의 물이 모여 되는 것이며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또한 합해져 수량이 많아지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발원지라는 이름이 가지는 ‘신비한 솟는 물’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소박함이 충격이었다. 이를테면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에는 맑고 풍부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낙동강 발원샘 황지는 넓은 수면 아래 수많은 용출점이 보이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조금 전에 멧돼지가 장난을 치고 갔는지 흙탕이 된 작은 웅덩이와, 해발 448미터의 높이에서 만경강의 첫물을 소리도 없이 솟구어내고 있는 돌로 쌓은 샘 입구를 바라보며 일행은 잠시 말을 잊는다.
여기에도 전북산사랑회가 세운 스테인리스 말뚝 하나가 서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나 안내문이 없다. 전북산사랑회, 아직도 활동하고 있을까?
잠시 쉬고, 이제부터 강 따라 걷는 첫걸음을 비로소 시작한다.
4. 밤티마을
올라온 산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왼쪽으로는 그렇게 희미하던 물줄기가 제법 개천 모양을 이루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골짜기는 오른쪽으로 연석산·운장산 등 금남정맥의 높은 산줄기가 이어지고 왼쪽으로도 원등산·위봉산 등 7백 미터 급의 만만찮은 산줄기가 흐르는 사이의 협곡으로, 강은 동상·대아 저수지를 만나기까지 북쪽을 향해 흐른다. 밤티마을이 속한 동상면은 바로 이 물줄기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 전체다.
밤티마을이 시작되는(끝나는?) 어귀 ‘산울림’이라는 식당에서 다소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작년에 먹었던 집은 영업을 그만 두었다 하여 오늘은 작년과 다른 곳이다. 몇 년을 계속하는 경우가 드문 것이 이 일대 음식숙박업소들의 형편이라는 것.
마을은 비교적 넓고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았다. 어느 산골이나 마찬가지로 이곳도 사람들은 여전히 빠져나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 집을 지어 들어오는 사람도 가끔 있는 모양이다. 작년에 보지 못하던 새집이 몇 채 들어섰다. 마을입구의 매실밭에는 늙은 매화나무가 흰 꽃을 가득 피우고 있다. 「추억의 하얀 벽」 앞에서 오늘도 사진 한 컷을 찍고, 마을을 빠져 나간다.
5. 밤티~시평~연동~신사봉
강을 건너는 다리(밤티1교) 옆에 아직도 남아있는 밤티슈퍼 뒤를 돌아 버스길을 버리고 강둑길로 접어든다. 다리 건너편에도 이제 사람이 살지 않게 된 허름한 집들이 몇 채 남아 있는데…
둑길은 흙길이어서 발밑이 푹신하다. 멀리 연석산의 삐죽삐죽한 바위능선이 바라보이고, 따스한 봄햇살은 막 점심을 먹고 난 일행의 걸음을 늦춘다. 아침에 다소 두터운 옷차림으로 시작했던 몇 사람은 겉옷을 벗어 붙였다.
강의 폭은 넓어졌지만 여전히 실낱같은 물줄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지난겨울과 이 봄 사이 계속된 가뭄 탓도 있겠지만 워낙 만경강은 수량이 풍부한 강은 아니었단다. 이런 빈약한 강이 어찌 맹갱뜰을 적실 수 있었을까. 일본강점기에 이룬 만경강의 직강(直江)화 사업과 농업용수댐 조성사업 등이 징게맹갱뜰을 오늘의 곡창지대로 만든 공로(?)라 하는데, 여기에는 또 숨은 이야기가 있단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강 건너 오른쪽은 지금은 버스길인데 금남정맥의 험한 바위절벽 탓으로 예전에는 사람이 다니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걷고 있는 이 왼쪽 흙길이 원래 다니던 길이었으며 원래의 동네터와 농경지도 이쪽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오래된 방제림의 나무들이 이쪽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하천이 합류되는 곳을 지나느라 한 번 다리를 건너면서 급한 S형으로 꺾어 돌아 다시 징검다리로 강을 건너 왼쪽 둑길로 돌아온다.
연이어 있는 시평과 연동마을이 건너다보이는데, 연동은 연석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어서 비교적 번화하다. ‘연석산미술관’이 근사한 바위 절벽을 배경으로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일대는 좌우의 산도 물도 바위로 둘러싸였다. 강바닥의 암반이 규모는 비록 크지 않으나 그럴 듯한 상류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시평’은 혹시 감뜰[柿坪]에서 유래한 이름일까?
흙길과 시멘트길이 교차하며 그늘이 없어 다소 지루한 강변길 약 3.4킬로미터(밤티마을 기점)를 걸으면 신사봉교 다리다.
6. 옛 사방댐
강 건너편 새사봉마을로 건너가는 다리에 이르러 정국장이 지금부터 재미있는 물길을 만나게 될 거라 예고한다.
왼쪽 산이 함몰한 골짜기를 타고 쏟아지는 강한 물길을 막으려고 쌓은 사방댐. 집채 만한 바위들이 굴러내려 앞길을 막는, 이 경로에서는 가장 험로에 해당하는 곳이다. 큰 바위들을 그대로 두고 이용하면서 작은 돌을 키 높이로 쌓아 만든 폭 1미터가 채 안 되는 댐 위를 통과해야 한다. 역시 이 왼쪽 둑길이 원래 사람이 다니던 길이었음은 이로써 알 수 있다. 짧은 댐은 연이어 두 군데 있어 스릴을 더한다.
댐의 정상이라 할 바윗덩이에 일행 모두가 올라 앉아 잠시 쉬었다. 왼쪽 산골짜기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제법 크다.
원사봉마을이 있은 후에 신[새]사봉 마을이 생겼을 것이고, 새마을은 바로 이 험로를 지나 강을 건너야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자리를 급류가 막고 있으니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사방댐을 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옛사람들의 지혜와 노력이다. 험한 산기슭 아래의 좁은 곳이나마 살 수 있는 데라면 어디든 찾아 들어가 터를 이루고자 했던 생존본능이 현실화한 현장을 보는 느낌은 숙연하다.
상류의 물을 한 옆으로 이끌어내어 인근 논밭으로 흘려보내었던 좁은 농수로가 꽤 길게 이어져 있는 것도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인다.
7. 원사봉마을~암반지대
사방댐을 지나 1킬로미터 쯤 시멘트 포장길을 걸으면 원사봉마을. 모래[沙]봉 아래에 있다 하여 사봉마을이요, 법정리 이름도 사봉리. 바로 그 사봉리의 이름 유래가 되는 원래의 마을 ‘원(元)’사봉. 터가 넓고 오래된 마을의 흔적이 역력하다. 어마어마 큰 두 그루 둥구나무는 무슨 연유에선지 밑둥만 남기고 수관(樹冠)부분은 잘라냈다. 마을 끝에 모래봉의 기슭이 되는 바위 절벽이 아름다운 피부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 앞을 비닐하우스가 막아선 것이 다소 아쉽다. 바위절벽은 마을 앞 강바닥까지 암반을 쑥 내밀고 있어 마을의 물속 놀이터로 사랑받았을 것이다. 천렵을 하거나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을.
강폭은 그사이 꽤 넓어져 있다.
다리(원사봉교)를 건너 반대쪽은 신촌. 원래 마을의 바깥에 새로 생기는 터를 보통 신기, 새터, 신촌 등으로 부른다. 강 오른쪽 길을 3백여 미터 걸으면 강 가운데 불쑥불쑥 솟아오른 암반지대가 보인다. 이곳이 아마도 오늘의 경로 가운데에서는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일 듯. 비록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섬진강의 장구목에 비견할 만한 곳이다. 암반이 자연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어 다시 건너간다. 시원한 솔그늘 아래 집채 만한 바위들이 또 굴러 내려 있어 잠시 쉬기로 했다. 이곳도 왼쪽 산(모래봉)에서 흘러내린 바위와 그 골짜기를 쏟아지는 물이 합해지는 곳.
높은 바위 위에는 두 개의 오래된 비석이 서 있는데, 둘 다 열녀비였던 것을 반대쪽 면에 현령·현감의 공적비로 대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대에 걸쳐 깎고 다시 새기기를 반복했는지 여러 사람의 이름이 중복되어 있어 누구의 공적을 칭송했는지 제대로 읽기 힘들 정도다.
열녀 두 분은 이우종의 처 수원 백씨, 이인교의 처 김해 김씨. “시부모를 모시되 효로써 모셨고 남편을 섬기되 열로써 섬겼다…” 운운의 행적이 서툰 한자글씨의 사언절구(四言絶句)로 새겨져 있다. 건너편의 ‘가든집’은 이미 올 여름 장사를 대비하여 물놀이 터를 반듯하게 정비해 두었다. 놀러오는 사람들이 쓰레기라도 좀 덜 버리면 고마울 듯한데…
8. 묵계~거인마을
‘만경강의 장구목’을 떠나 오늘의 종점 거인마을까지 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길 2.5킬로미터다. 오후 2시 무렵의 햇살이 걷는 이를 나른하게 한다.
도중에 만나는 묵계마을은 강 건너 동쪽이 주된 터로 주거지와 논밭이 이 골짜기에서는 아마도 가장 넓은 곳이다. 서쪽으로도 약간의 농경지가 있어 예전에는 섶다리나 징검다리로 건너다니며 농사를 지었을 듯. 지금은 묵계교라는 다리가 걸려 있다. 험한 산록지방을 벗어난 안온한 느낌이 여행자를 위로하기 시작하고, 동상면민교를 건너면 종점이다.
오랜만에 14킬로미터를 걸은 기분 좋은 피로감을 안은 채, 다음 주에 (동상·대아 저수지 구역은 건너뛰고) 소향리 ‘완주 전통문화체험장’에서 만날 약속을 남기고 해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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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월요일 아침 출근하여 직장에서 아침 막 먹고 맨 먼저 하고 있는 일이 최감사님의 이 기행기 읽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올렸을 사진을 보고 제 심상을 정리하려는데 감사님 글과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찰찰하게 보고 읽고 되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숙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토요일마다 만나는 새로운 길...
때론 비슷한 듯 다른 길...
혼자인 듯 .. 함께한 분들..
토요일이 기다려집니다.
다음 주는 차량지원 담당으로 예정돼있었는데 면제받아서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네요.
만경강 첫구간 멋진 후기 잘 감상하였습니다.
첫구간부터 참석해야는데 중간부터 가게되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