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먹을 도토리 땅속에 저장… 참나무 번식 도와요
어 치
요즘 가을 숲에서는 다람쥐 같은 동물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열심히 모아요. 잘 여문 도토리는 가을에 적갈색으로 변해 참나무 아래로 떨어져 이듬해 새싹을 틔운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립공원에는 "도토리는 동물에게 양보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곤 하죠. 산에서 도토리를 주우면 숲속 친구들의 서식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그런데 도토리를 좋아하는 동물이 다람쥐 말고 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곤줄박이나 어치〈사진〉 같은 새들도 도토리를 먹고 살아요. 까마귓과에 속하는 어치는 일 년 동안 특정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사는 텃새예요. 몸길이는 35㎝ 정도로 까치(45㎝)보다는 작아요. 다른 새 울음소리를 잘 흉내 내죠. 주로 참나무와 소나무가 섞인 숲에서 살아서 산까치라고도 불러요. 머리는 전체적으로 적갈색이고 꼭대기 부분은 세로로 옅은 검은색 줄무늬가 있어요. 등은 회갈색, 배는 옅은 갈색이죠. 날개 일부와 꼬리는 검은색인데 날 때는 날개와 허리에 흰 점이 뚜렷하게 보여요.
어치는 도토리를 어떻게 저장할까요? 참나무에서 딴 도토리를 부리로 물고 다른 능선으로 이동해요. 햇볕이 잘 드는 등산로 주변이나 덤불이 적은 지상에 앉아 땅속에 묻고 낙엽으로 덮어서 숨겨놓죠.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면 찾기 어렵기 때문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먹이를 숨기는 거예요. 나무에 숨겨놓을 때는 껍질 사이에 꽂아서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켜요. 다른 동물이 도토리를 훔칠까 봐 걱정이 되면 다른 장소로 옮겨서 다시 숨기기도 해요. 이렇게 묻어놓은 도토리를 겨울에 찾아 먹는답니다. 마치 보물찾기처럼요.
어치는 새 중에서도 똑똑한 편이에요. 기억력이 좋아서 숨겨놓은 도토리 네 개 중 세 개는 찾아 먹거든요. 가끔 청설모가 어치가 숨겨둔 도토리를 찾아 먹기도 해요.
참나무는 동물들에게 열매를 주기만 할까요? 사실 도토리 열매를 맺는 참나무 입장에서도 어치 같은 동물이 도토리를 먹는 게 이득이에요. 참나무가 도토리를 나무 밑으로 떨어뜨려도 나무 바로 밑에선 햇볕이 잘 안 들어 싹을 틔우기가 어렵거든요. 또 수많은 싹과 경쟁을 해야 해서 정작 나무로 성장하는 개체는 몇 안 돼요. 이때 어치가 도토리를 먼 곳까지 나르면 한결 번식하기가 쉽겠죠. 어치는 참나무에게 도토리라는 먹이를 얻고, 참나무는 어치를 통해 자손을 멀리까지 퍼트릴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공생이라고 합니다. 산에 가면 산 위쪽에 참나무 한두 그루가 떨어져 자라 있는 경우가 있어요. 도토리가 저절로 산 위로 굴러갔을 리 없겠지요. 어치나 다른 동물들이 도토리를 옮겼기 때문에 산 위쪽에서도 나무로 자랄 수 있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