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해지기 쉬운 집을 버리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하지만 불편하고 비좁은 공간, 공간에서
사유와 더불어 가족 간의 정(情)을 느끼며, 또한 외손자, 외손녀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주기 위
해 우리가족은 서로를 배려하며 길을 나서고 있다.
때마침 프랑스에서 아이들이 휴가차 내한하여 함께 떠나는 2박3일 여행길은 차가운 겨울날
씨를 비켜갈 순 없지만, 마음만은 포근하고 총원 10명이 3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가고 있다.
거가대교를 거쳐 침매터널을 지나 거제도에 입성하자마자 외포항으로 달려가서 대구탕, 뽈찜
으로 늦은 점심을 즐겼다. 매년 '대구(大口)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지천에 대구를 건조하고 있
었고, 대구로 이름난 외포항이었건만 음식 맛은 별로였고 한 잔의 술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순화시키기 충분하다.
첫날은 근처 팬션에서 보내고, 둘째 날은 이수도로 가기 위해 시방리에 도착한다.
시간대별로 오는 통선에 가족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통선에 몸을 맡기며, 이러길 15분
여, 우리는 목적지 이수도에 안착하였다. 작은 섬인데 뭍에서는 1박3식 섬이라고도 부른다. 그
것은 하룻밤 유숙하고 3번의 식사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도착하여 민박집을 찾아가는 마을은
온통 벽화가 그려져 있고, 살가운 고부(姑婦)가 벌써 점심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에 아이들과 대작(對酌)하여 속은 별로인데, 매운 생선조림과 해초나물이 전부였지만 맑
은 생선탕은 속 좁은 나의 오장을 편하게 해주었다.
이수도는 거제시 장승포항 북쪽, 시방리 해안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두루미를
닮아 본래는 학섬이라 불렀으나, 후에 대구의 산란해역으로 알려지고 멸치잡이 권현망이 들어
와 마을이 부유해지자 바닷물이 이롭다는 뜻의 이수도(利水島)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이 섬의 트래킹코스는 3km정도인데 가파른 산길을 타고, 바다를 마주하며, 해안선을 끼고
걷는 길이다. 날도 흐리고 바람은 여전하며, 검은 구름은 구르듯 재빨리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파도 또한 아직은 만만해 보이지 않는 힘으로 방파제와 바위를 때리고 있다. 오늘처럼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게 일어 갈매기조차 제대로 날갯 짖을 못할 정도의 날씨였으므로
바닷길을 걷는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해안전망대, 해돋이전망대, 물새전망대
와 정자, 쉼터와 포토존 등이 있어 쉬엄쉬엄 걸어 섬을 일주하고 난 뒤로 거짓말같이 하늘과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되찾고 평온해진다.
언제나 저녁만찬은 즐겁다. 바깥주인이 직접 잡은 농어, 대구, 도다리가 횟감으로 상에 오르
고 못생겼지만 수육으로 일품인 아귀수육까지, 그리고 반주 한잔에 밤은 깊어간다. 슬며시 외
손녀 손을 잡고나와 가로등아래를 걷는 포구의 정경은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
고 있다. "애야! 밤하늘이 어떠하냐?" "할아버지. 밤하늘은요, 별을 빛나게 해주잖아요."
그렇다. 철없는 아이의 한마디는 진실이었고, 순수했다. 순수한 것은 프리즘처럼 모든 것을
통과시킨다. 빛을 분해하여 갖가지 빛깔로 나눠놓듯, 여과시키면서, 설득도 하며, 타인의 감정
까지 감동시킨다. 여기에는 얼마나 순수한 것이냐에 따라, 잡음도 끼일 수 있지만 순수한 것
은 모두 포용할 수 있으나, 순수한 것 아니면 포괄할 수가 없다.
지금 나는 세상의 사치와는 거리가 멀지만, 외딴섬에서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고 하늘에 별
이 쏟아지는 모습을 감상하는 '자연의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첫댓글 좋은 여행 하셨네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어른들이 배워 실천하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 지리라 생각 합니다.